Category

EDITOR’S LETTER

202402 #209

By EDITOR'S LETTER

평온과 울컥 사이, 밀란에 왔다. 몇 년 만인지.
<데이즈드>에서 일하면서는 5~6년 전 여성복 패션위크 때 한 번 왔다.
밀란 남성복 패션위크는 직전 타 매체에서 일할 때 왔으니 진짜 10년 만인 것 같다.

“요즘은 쇼 티켓이 따로 없어요.”
연신 하드 카피 프린트 초대장을 확인하는 내게 후배 에디터가 일러준다.
서너 개의 쇼를 제외하곤 그저 바코드를 포함한 이메일 초대장이 전부다.
파리에서도 많이 겪었지만 밀란에서도 그러니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밀란에서는 늘 바리바리 초대장을 한 줌 들고 다니던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 디지털이라니, 온라인이라니, 어찌 보면 파리보다 앞서가는 형국이다.

정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그만큼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한 위기의식에서 발동된 과거와의
확실한 절연이다. 밀란에 자리한 전통적인 모 하우스 브랜드의 본사 마케터와 미팅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 층은 확실히 파리 브랜드를 더 좋아합니다. 밀란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밀란의 패션 오리지낼리티를 환기시킬 만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쇼는 대체로 좋았다. 밀란의 디자이너 모두가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발적인 뉴 디자이너도 눈에 띄었다.
시몬 크래커Simon Cracker, 프로논스Pronunce 등은 과거 밀란에서 선보인 남성복과 확실히 궤가 달랐다.
파리와 달리 여전히 온기도 동반됐다. 함께하는 디너, 따뜻한 프레젠테이션 현장, 분주하지만 서로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는 차우·그라치에·프레고.

사실 이 글을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이고 있는 지금은
1월 16일 오후 2시 37분 밀란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그간 에디터스 레터를 비행기 안에서 꽤나 쓰곤 했다.-
이 시기 밀란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 거의 모든 사람은 서로를 다 잘 안다.
모두 패션이라는 한 배를 탄 채 패션이라는 예술과 비즈니스에 평생을 걸고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노선의 비행기는 늘 아프다.
그들의 조울과 환희와 지침에 내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우리 모두 파리에 도착해서는 남성복 패션위크부터 오트쿠튀르까지 버텨내야 한다. 10일 이상 더 남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초인이 될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달려온 내가 이젠 패션에 대한 사랑 하나만 가지고
온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냉혹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데이즈드> 편집장으로서 9년,
<데이즈드>를 발행하는 렉스트림 대표(뭐, 현실이니까)로서 7년. 지금의 너와 몇 살 차이 나지 않을 때 시작해
어떤 것을 얻은 만큼 어떤 것은 잃었다. 결심하고 결정할 것이 많은 나날이다.

곧 파리 CDG(약자도 참 예뻐)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창가의 사람들이 창을 열기
시작한다. 창공의 온갖 빛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더니 끝도 없이 그윽해진다.

Great Consuming Love.
“내가 사랑하면 된 거예요.”

나는 밀란이 아무리 그리워도 그리워할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간절히 열망해도 이미 떠난 밀란이 될 수 없다. 곧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을 테지만
그 밀란에 닿을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결코. 밀란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1 #208

By EDITOR'S LETTER

“12월 23일에 시간 되면 한번 만나요.”

솔이가 묻는다. 24일도 묻는다.

“갖고 싶은 거 말해도 돼요?”

솔이가 묻는다. 생일이니 묻는다.

“나 외삼촌이랑 닮았어요?”

솔이가 묻는다. 자주도 묻는다.

“외삼촌은 시간 좋아! 그럼 23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 올래? 외할머니 생신도 있고,

솔이도 그다음 주가 생일이니까 외삼촌 집에서 밥도 먹고, 솔이 안 가본 호텔도 예약해 놓을게.

솔이가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 줄 수 있어?”

내가 답한다. 흔쾌히 묻는다.

“해마다 솔이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게 즐거웠는데 올해는 뭐가 될까?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거면 23일 만나서 같이 가고,

그 전에 준비해야 하는 거면 외삼촌이 미리 알아볼게.

이번에는 책일까? 신발일까? 아님 인형일까? 뭘까? 뭐 갖고 싶어? 원하는 거 있어?”

내가 답한다. 떨리며 묻는다.

“너무 닮았어.

우리 솔이와 나, 정말 처음 솔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솔이를 보며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주 이야기했어.

처음엔 눈, 코, 입만 닮은 줄 알았는데 솔이가 커가면서 하는 행동도 비슷한 거야.

솔이가 책 좋아하는 것, 솔이가 버섯 싫어하는 것, 솔이가 방문 잠그고 생활하는 것,

나 어릴 때를 본 솔이 엄마랑 솔이 할머니가 솔이 성격이 특히 나와 너무 똑같다고 하더라.

솔아, 솔이는 외삼촌과 닮은 게 어떤데?”

내가 답한다. 긴장하며 묻는다.

“네, 물어볼게요.”

“지금 모임 와서 시간이 없어요. 내일 문자 할게요.”

“23일에 이야기해 줄게요.”

2024년 소원: 아이폰으로 바꾼 솔이와의 메시지가 내년 이맘때도 이어지는 것.

글을 못 쓰게 됐고,

말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못하게 된

나 따위가 바랄 수 있을

적당한 행복.

 

이겸
李兼
Guiom Lee

202312 #207

By EDITOR'S LETTER

2023년 12월호?

20년 전 에디터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패션지 일을 오래하게 될 줄 알았을까.

혹시 너는 알았을까.

네가 알았다면 왜 말리지 않고 놔뒀을까.

혹시 알고 있어서 중간중간 다른 일도 해보라고 수많았던 이직 세계로 날 내몰았던 걸까.

너는 참 못됐다.

이렇게 험하고 고되단 걸 알았던 거잖아.

당해 보라고 내던진 거잖아.

뭐, 물론 얻은 것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는데

내 삶에 정작 내가 없잖아.

나만 온통 비정상이라잖아.

왜 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면 안 되는 거냐고.

대답이 없는 너에게 트로이 시반의 ‘One of Your Girls’를 보낸다.

내가 미친 듯이 좋아하는 가사야.

One & Only는 재미없어.

속한 걸로 충분해.

대신 최대한 천박하게 속하게 해줘.

솔직해져야지.

나부터 그랬어야지.

뭐든 그래야 결론이 나지.

미래든 밀애든 밀회든 XX 지옥이든.

다시 또 질풍노도야.

결국 돌아왔어, 나로.

아무도 안 반기는.

그 윙크로.

><

+

기대하세요.

2024년 <데이즈드>는 자신 있어요.

더욱 다를 거니까요.

자신을 사랑할 거니까요.

그런데요, 그래서요.

저처럼 되지 말라고요.

이 소중한 페이지에 이런 ‘개소리’를 남겨요.

+

아, 귀엽고 싶다.

귀여워해 줘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311 #206

By EDITOR'S LETTER

10월 9일

검정 스타킹
‘드러냄’의 행위에 매혹된 사람들. 내 몸을 사랑할 때 그렇다. 릭 오웬스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이다. 그에게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는 많은 걸 함축한다. 유년 시절부터 수십 년간 그 옷차림을 고수한 그가 요즘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젊음이 유효하지 않음을 깨닫고 노출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올해로 예순하나, 가장 최근에 느낀 변화라고 한다. 나의 신체 노출도 같은 결이겠지 하며, 그러니 되레 세상과 단절되고 싶을 때 나는 검은 스타킹으로 다리를 가린다. 속내를 모르겠는 새까만 색의 검정 스타킹이어야 한다. ‘감싸는’ 행위가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감싸고 시작하자고.

아니쉬 카푸어
2012년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을 한 적이 있다. 그 선홍색을 잊지 못한다. 터진 내장이 사방에 튄 채 회전축을 돌며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히죽이던 내 모습도 기억한다. 카니발리즘까진 미친다 할 수 없고 파괴, 파열, 파손된, 하여튼 ‘깨트릴 파破’가 좋았던 것 같아. 그런 그와 재회하고자 국제갤러리로 향했다. 입구에 걸린 회화 작품과 점으로 만든 점 같은 조형작까지 발걸음을 사푼히 옮기면 그게 있다. 터졌다. 여전한 날것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불쑥 튀어 오른 혓바닥도 있었다. 아! 통쾌해, 배 맛 사이다처럼. 그러다 마지막에 본 달을 잊지 못하겠다. 바위 안에 초승달을 숨겨놓고는 다시 투명한 거즈로 감쌌다. 베일이란 뭔지 다시 떠올려보기도 하는데.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인지 또는 더 뽐내기 위한 은유인지 헷갈린다. 나는 초승달이었다.

아이엠 택시
가만 보면 택시란 것에 익숙해지면서 잘도 뻗어 다닌다. 기동력을 ‘+1’로 획득한 셈이니.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엠 택시를 유난히 좋아하는 데엔 ‘자동문’이라는 답이 참 묘하다. 탑승과 하차 시 차문을 열어주는 느낌이 참 좋다. 조건과 감정 없는 환대가 더 반가운 때가 있더라고. 물질주의와 실용주의가 고안한 ‘원 플러스 원’보다 심적으로 개이득이다. 주변에 이런 대접의 뉘앙스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부르고뉴 레드 와인
시월의 가장 강렬한 자극은 혀에서 비롯된다. 혀끝의 미각이라는 통증이 얼마나 예민할 수 있는지 이제야 경험한다. 상대가 될 맛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와인 정도. 와인을 한 모금 입에 털 때 포도의 품종이 어떻고를 차치하고 온갖 과일과 미네랄, 바닐라, 소금 등 수십 가지 조합을 통해 기승전결을 이루는 걸 보면 이것 역시 작은 우주더라. 혀끝에 와인이 닿는 순간은 와이너리의 땅과 물과 날씨를 떠올린다. 딱 그만큼의 공상은 숨 막힌 현대를 살아가는 와중에 조그만 사치이자 어떤 꿈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왜 부르고뉴냐 하면, 2016년쯤, 장우철 선배가 쓴 책 <좋아서 웃었다>의 한 구절이 이랬어. “실은 서울에서부터 티슈로 겹겹이 싸 간 물건이 있었다. 나는 겉멋의 화신이니까 싸면서 일말의 민망함 따윈 없었다. 그건 바카라의 아르쿠르 와인 잔이었다. 부르고뉴에서 이 잔에 와인을 마시겠노라는 순진한 기쁨!” 욕망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우철 선배가 한번씩 보고 싶을 땐, ‘선배’라 부를 사람이 진짜 필요해서다. 어제까진, ‘오빠’였을 거야.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미술 작품명이자 새 다큐멘터리 제목. 부르고뉴 와인을 한잔 걸치곤 이수로 떠났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시사회가 있었다. 먼저 달만 보자면, 달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빛이라 일컫는다. 그는 텔레비전 속 진공관에 자석을 넣은 뒤 신호를 조작해 주기별로 변하는 달의 모습의 표현했다. 시공간을 재조합해 만든 세상은 참 번쩍인다. 서로 다른 축을 뒤흔들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선구자의 자질이로다. 이따금 나는 그런 환영 속에 살고 싶은 건 아닌지 자문한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처럼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한 줄기 희망을 품을 때까지 백남준은 멈추지 않았다. 기세를 이어 1984년 1월 1일, 프랑스와 미국에서 동시에 쇼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독일과 한국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인터넷 방송의 모태이자 누구든지 자신의 채널을 가질 수 있는 오늘날 유튜브를 예견했다. 이런 그의 엄청난 예지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평생을 반추하면 서글퍼지는 점도 있다. 정작 그는 알아듣지 못할 20개 언어를 뒤섞어 구사하며, 한국·독일·일본·미국에 살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정착할 수 없어 떠돌아 다녔다고. 그의 얼굴에 드리운 뚝심이, 외로움이 마음에 쓰였다. 이런 불완전함이 되레 원동력으로 작용하기까지, 나는 당분간 좌절하진 못할 것 같다. 몇 날이고 달을 볼 때마다 그가 꿈꾼 자유를 떠올릴 것 같아서. 하여튼 한날 두 개의 달을 본 건 우연이 아니겠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시월에 뜨는 저 달은 문풍지를 바르는 달

오유라
Oh Yura

202310 #205

By EDITOR'S LETTER

열 살 무렵,
아빠가 다쳤다.
엄마와 여동생이 울었다. 나는 내 손을 봤다. 아빠에게 붙이기엔 너무 작겠지.

엄마 같았던 그 아이의 엄마는
나 같았던 너였기에
되레 더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되레 더 번쩍,
비명조차 낼 수 없게 만들었다.
내 마음은 누구도 묻지 않았던 열아홉, 그 6월의 화장실.

떠난 도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에게 기대는 만큼 그 사람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 사람이 사정한 것은 나를 퀴퀴하고 더러운 하수구로 쓰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관계인지 무얼 뜻하는 것인지 알 턱조차 없었다.
반년이 지나 학교에서 친해진 한 사람을 그 사람에게 소개했다.
셋이 놀면 좋겠다 싶었다.
어느 순간 싸한 기분.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졌고, 난 그 이유에 대해 집착했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내내 부정했지만 그 둘은 결국 연인이 됐다.
버려지기 직전, 그 사람이 내게 마지막으로 원하는 걸 한 가지 들어준다고 했다. 난 그 사람이 강압적으로 요구했던 것 중 가장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것을 부탁했다. 모든 행위가 끝나고 그들이 떠난 후 깨달았다.

나는 그때 죽었다는 것을.

돌아온 서울은 부활의 기회였다.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쉽지만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네 글자짜리 몇 개가 남았고, 얼마의 돈이 생겼고 서울, 네가 잘돼서 기특하지만 예쁘거나 사랑스럽진 않다. 서울, 너도 나에게 딱 그만큼만 줬으니까.
내가 한 만큼을 제외하곤 다 앗아갔으니까. 냉혹하고 냉정하게
진짜 나를 보여주고 쏟아낼, 단 한 사람도 주지 않았으니까.

조금 정리가 되면 뉴욕에 가려 한다.
1년 정도는 살려 한다.
거기선 누구도 내 나이나 위치가 어떠해서
내게 무슨 선을 긋고 나를 두더지처럼 창살 안에 가두진 않겠지.

최소한 나는 너희의 서울보다는 가식적이지 않다. 그래서 또, 다시 또

살기위해

나는 친구도 연인도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연락을 진심으로 기다린다. 나타날 때까지 매달 토해 낼 수도 있다.

착륙할 시간이다.
눈물이 입술을 마구 친다.
결핍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것인 줄, 몰랐다.
XX아.

이겸
李兼
Guiom Lee

202309 LOVE #204

By EDITOR'S LETTER

(나타날) 그대에게

우선 실망했어요.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
이렇게까지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정말 아니잖아요.
사람 탈을 쓴 건 맞죠?
그동안 그대를 찾으려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고 있었죠?
대신 그만큼 잘해줘야 해요.
아, 아니에요.
바라는 건 없어요.
그냥 나타나기만 해요.
정신과 육체, 더는 안 아프게 최대한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먼저 베를린에 같이 가요.
그렇게 좋다는데 스물여덟 살 때인가 가보곤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비행기에서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도착해서는 관광객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고 클럽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어요.
서울로 돌아와서는 집 뒤 작은 숲에 난 산책로를 걸어요.
가볼까 하다가 그대가 오면 같이 가려고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고 있어요.
강아지든 고양이든 반려동물과 함께해도 좋아요.
단, 2년 계약인 집이니 늦지 않게 나타나요.
영화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전시든 공연이든 뭐든 같이 보러도 다녀요.
혼자 가기 뻘쭘한 성격 탓에 못 보고 놓치는 게 많아요.
음악 축제가 그리 많던데 얼굴 타도 좋으니 하루 종일 서서 즐기며 스트레스도 날려요.
기회가 된다면 서로의 가족도 알뜰히 챙겨줘요.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누고 어릴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도 나눠요.
제가 또 나름 어른들에겐 꽤 잘하는 성격이라 그대도 흡족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데이즈드> 러브 & 프러포즈 에디션을 같이 봐요.
남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그려봐요.
책에 나온 커플 아이템도 사고 가라는 곳도 가보고 하라는 것도 해봐요.
메이크업도 따라 해보고 언제가 될지 몰라도 결혼식도 꿈꿔 봐요.
원래 전 뭐든 커플로 함께하는 걸 참 좋아해요.
사실 그러려고 이 책도 만든 거예요.
흡연보다 더 빨리 늙는 원인이 외로움이라는데 외롭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타나요.
꿈에서라도 좋으니
꿈에서라도 괜찮으니
꿈에서라도.

P.S.
다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그대, 나타나기만 해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309 #204

By EDITOR'S LETTER

안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여자 같다고, 가난하다고 폄하하던 사람들로부터.

부단히 그때의 나를 지우려 애썼다.
마치 갑옷처럼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옷이라 믿으며.

옷으로 나를 투영하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옷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도쿄에서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자전거를 탔다.
주중에는 라면을 만들고 주말에는 마사지 가게에서 수건을 빨았다.
낮에는 전단지를 돌리고 밤에는 웃음을 팔았다.
돈이 생기면 옷을 샀다.
안 먹고 안 마시고, 치장에만 애를 썼다.

서울로 돌아온 내게 엄마는 뱀 같다고 했다.
몸무게를 재니 56kg이었다.

내달렸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세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악문 입술에서 터져 나온 피를 모아 꿈을 채웠더니
주어진 시간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집들이 온 동생의 딸이 버섯을 먹지 않는다.
“외삼촌은 버섯을 정말 좋아하는데.”
동생이 묻는다.
“오빠 어릴 때 버섯 정말 싫어했어. 얘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잊고 있었다.
싫어하던 음식이 크면 좋아질 수 있구나.

좋아하던 옷이,
구역질과 함께 쏟아진다.

다시 노란 머리다.
자전거를 타고 도망칠 때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308 #203

By EDITOR'S LETTER

우린 여기까지예요.
이런 말하는 나를 미워하지 말아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다 너를 위해서예요.
너와 더 가면 그 정이, 그 마음이 변질될까 봐 속상해질까 봐 아파질까 봐 
내가 미리 수작을 좀 부린 거예요.
시간이 부쩍 흐르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너도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왜 먼저 그만하자고 한 건지, 왜 먼저 그 모진 말을 뱉어낸 건지 말이에요.

좋았죠. 좋았어요.
사람 사이 관계를 뭐라 뭐라 규정짓는 걸 원치 않아서 그렇지
서로 교감했고 응원했고 배려했어요.

한 번은 너가 먼저 그만하자고 한 적이 있었죠.
소주잔을 기울이던 너의 말을 잘라내며 내가 잡았죠.
“가지 마. 우린 더 나눌 게 있어. 다시 생각해.”
그 연장된 시간 덕에 너와 나는 분명 얻은 게 있었어요.
서로 비겼다고 해도 될까요.

차가운 마음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요.

너와 더 높은 데까지 올라가고 싶었어요.

우린 여기까지예요.
이런 말하는 내가 미워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308 #202

By EDITOR'S LETTER

요즘 잠을 기절하듯 자요.
책도, 영화도, 유튜브도 보다 만 게 수두룩한데
예전 같으면 궁금해서라도 다 보고 잤는데
이젠 뭐든 미련이 없나 봐요.

옷도 그래요.
한 10년 밤 잠 설치며 열심히 모아둔 것들,
절반 가량 <데이즈드> 팀에게 떠나 보냈어요.
한 장 한 장 작별의 순간을 마주할 땐 울컥하기도 했는데
잡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어요.

얼굴도요.
눈매는 좀 아꼈는데…
아니에요.
나아지기보다는 달라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새로워지려고요
아파도요.
질척거림 따위 없이요.

이사도 가네요.
‘남들처럼은 안 살 거야’
빈 땅에다 의기양양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집이었는데
찔끔 눈물 정도랄까.
연연하기는커녕 속이 다 시원해요.

멈추고, 비우고, 버리고 또 바꾸고….

삶의 중간쯤에서 알아가고 있어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야 깨닫게 된다는 것.

다음은 또 무엇과 누구와 헤어지게 될까요?
이것이 제게 의미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얼마나 쓰라리게 터득하게 될까요?

설레요.
겁나요.
호흡이 빨라요.

오세요.
내색하는 방법조차 잊은 제 공허함 속으로
어서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307 #201

By EDITOR'S LETTER

친구를 찾는다.
진심으로 나와 함께해 줄 친구를 찾고 있다.
오죽 간절하면 이 가치 있는 지면을 빌려 부탁할까. 이해를 바란다.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10년 전인가. 인터넷 동갑 모임에 참여해 본 적도 있고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투자도 해봤고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상대에게 눈에 불을 켜고 우정을 구걸한 적도 있다.

문제는 나다.

오래가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랬다. 학기마다 친구가 달랐다.
뭔가 지친 느낌이 들면 연락을 끊거나 피했다. 도망 다녔다.
대학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 2년 잘 지내던 무리를 떠나 잠적하길 반복했다. 당하는 쪽에서는 별안간이었을 거다.

사회에서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나 스스로 무너뜨렸다.
20대는 그래도 꽤 괜찮았다.
‘패션’이라는 틀 안에서 같은 꿈을 꾼 동지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낮으로 시시덕거렸다. 돈 한 푼 없어도 그저 세상이, 패션계가 온통 별천지였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증상이 발현됐다.
월간지의 특성상 일하다 보면 매달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사이클 자체가 내 본질에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다. 1월호 친구, 2월호 친구, 3월호 친구···. 과장을 좀 보태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일과 연관된 사람 이외의 관계 맺기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30대 중반이었다.
꿈에서조차 꿈꿔 본 적 없던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작정한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니 처음에는 몰랐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반드시 잃게 된다는 것,
내 편을 택하면 동료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성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

지금 알고 있는 것의 단 0.1%만이라도 미리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을.

6년이 흘렀다.
지금 곁에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삶은 먼지보다 못한 자국에 불과하다는데, 나 또한 그 찰나에 갇혀 있다.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헛발질.
너희의 일탈을 함께할 수 없듯 나는 고독이라는 천벌을 받고 있다. 안다.

“왜 이렇게 멍을 때려?”

어제도 이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저 멀리서 친구가 보여서요.’

헛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아니어야 한다.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