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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207 #185

By EDITOR'S LETTER

INTP에 처녀자리를 타고난 사람은 싫은 게 지천에 널려 있다. 그 사람은 나대서 싫어, 길거리는 냄새가 지독해서 싫어, 뭘 먹어도 유난스러울 만큼 소화를 못 시키는 내 몸뚱이도 싫어, 한국은 아직도 단일민족이라 재미없어서 싫어 등등 이성의 구간부터 감정의 사소한 영역까지, 싫은 게 이토록 많은 사람은 그 주변도 대개 비슷하더라. 하필 친구들도 ENTP(단지 외향형 차이)투성이라, 자기만의 세상이 분명한 이 무리는 단호한 의사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호불호가 확실해 만나면 늘 ‘싫어요’ 잔치를 펼친다고.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라고 해나 아렌트가 말했다. 사유는 인간이 피조물로서 우위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러니 싫은 게 좀 많으면 어떤가. 현상에 불만을 가져야 세상도 바꿀 수 있어,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요즘 들어 디지털 플랫폼과 실생활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유가 끊이질 않는다. 디지털에서 메타버스까지, 다채널과 다각화한
아이디어는 1초만에도 세상을 뒤흔들 파급력으로 우리 삶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의 소셜 네트워크였던 반면, 새로이 등장한 플랫폼 틱톡을 겨냥해 자체적으로 ‘릴즈’를 개발해 그에 대적할 만한 쇼트 폼 형태의 영상을 끊임없이 역설하며 영상의 중요성을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BOF)이 6월 12일 발표한 논제 역시 틱톡의 지속적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틱톡을 포함해 인스타그램의 릴즈, 그리고 영상 콘텐츠의 구심점인 유튜브까지 그들이 소리 높여 강조하는 영상은 실제 눈앞에 있는 ‘진정성’의 가치를 지녔기에 우세하다는 것. 2D인 사진이 가공된 공간이나 환경 아래 아름다움의 일면을 보여준 반면,
영상은 비교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둘 수 있다.

결국 인간이란 진실만 보길 원하고, 그 욕구는 끊임없다.
지금도 급변하는 디지털 매체와 달리 종이 매거진은 다시 안정기에 접어든 듯하다. 디지털 시대의 초창기만 해도 종이 매거진 역시 디지털 매체와 결을 같이해야 한다며 발맞추기에 급급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책은 책이고, 디지털은 디지털이다. 둘의 호흡은 하나가 될 수 없으며, 둘이 공존하기 위해선 평행선 위에 올라 각기 나름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이 현명한 섭리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책 만드는 기쁨이 진정 무엇인지를 몸소 깨닫는 요즘, <데이즈드> 7월호는 초여름처럼 어설프고 앳된 호흡으로 채워 넣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두드러지는 기승전결은 없어도, 이 어설픔조차 그냥 <데이즈드> 같아서 좋을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렇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지 않음을, 이런 설익음에서 다시 우주로,
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어디쯤, 때론 사랑만을 고집하는 신낭만주의로,
여러 시대와 가치, 테마를 오가며 <데이즈드>의 색을 확장할 작정이니 묵묵히 지켜봐주길 바란다.
+
2022년 5월 29일, <데이즈드>가 첫 보금자리를 틀었다. 아직 시공이 덜 된 탓에 한창 마감 중인 6월 18일
토요일 오후 6시에도 엘리베이터 공사 소리가 귓전을 때리지만, 그래야 <데이즈드>지. 늘 완벽하기를 염원해도 부딪히고 깨지며 다시 어떤 열망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
<데이즈드>의 어설픈 새 출발을 축하해 주세요.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유라
Yura Oh

 

202206 #184

By EDITOR'S LETTER

세속적 에로스는 ‘뜨거운 것; 육체, 모험, 감성, 우연, 카오스’.
천상의 에로스는 ‘차가운 것; 지성, 정신, 이성적 행동, 필연, 로고스’.

그러니까, 여름의 문턱이라 적어보는 에로스의 정의다.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 나오는 대로 이 계절에는 사랑을 찬양하리라. 
여름에는, 여름이라서, 여름이니까. 여름을 핑계로 까짓것 뭐든 해보는 거다. 
아직까지 세속에 절어 있어 육체를 탐하는 일이 즐겁다,라고 말하는 호기로움.

반대로 당신은 얼마나 냉정할 수 있는가. 어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인간에게 호소하는 일은 헛된 일이다. 감정을 죽인 채 이성으로만 사는 삶, 살아는 봤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을 텐데. 
하루를 매일 설계해, 과연 완벽할까?

여름에 해야 할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배짱도 괜찮다. 
꼭 여름방학이 그랬지. 
향연의 계절이 돌아왔다. 잔치를 베풀어라. 
그냥 사랑이면 된다. 

 

오유라
Yura Oh

202205 #183

By EDITOR'S LETTER

 

불과 일주일 전, 할머니와 헤어졌다. 새까만 컬 헤어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영정 사진 속 할머니. 낯설다.
가족이란 뭔지. 혈연으로 묶이면 상대를 사람 대 사람, 여자 대 여자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선 엄마도 그렇지.
나는 이제 오십을 넘은 엄마의 마음을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헤아렸는가, 그의 주장을 얼마나 포용했는가,
부모가 아닌 여자로서 얼마나 사랑했는가. 

휴고 우에르타 마린이 지은 <예술가의 초상>은 현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들’ 25인을 조명한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부터 오노 요코, 아녜스 바르다, 그리고 좀처럼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레이 가와쿠보까지
섬세하면서도 뾰족한, 유약한 듯하면서도 대찬,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그들 중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게 말한다.
“패션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 봐야 해요. 현실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지닐 필요가 있어요.”
1977년 파산 위기에 놓인 프라다를 살려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감으로 패션업계에 들어선 후
50년 가까이 수십 번도 넘는 컬렉션과 협업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자기 확신에 대한 끝없는 의심,
시대를 향한 저항, 아름다움으로 빚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패션을 계속할 수 있는 근원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 안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우린 또 얼마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을까.
창간 14주년을 핑계로 <데이즈드>가 목놓아 외친 ‘독립’, ‘저항’, ‘자유’ 정신을 재정비하기에 앞서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자평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어로 사랑은 에로스와 아가페로 나뉜다.
에로스가 자극적이면서도 화려한, 들끓는 욕정에 가까운 본능적 사랑을 갈구한다면,
아가페는 사람과 사람 간 독립적 존재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데이즈드>의 아가페, 이제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라는 가치 아래 자유를 외쳐보려 한다.
내일부터 우린 그렇게 달릴 것이다. 사랑아.

 

오유라
Yura 

202204 #182

By EDITOR'S LETTER

성수역에서 <데이즈드>까지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출근하기 좋은 길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일부러 뚝섬역 대신 성수역에 내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출근한다. 스케이트보드가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타는 사람이 멋있다. 남 눈치 안 보고 보드를 어떻게 하면
잘 탈까 하는 순수하고 깔끔한 고민,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표현하는 수많은 그래픽과
옷가지. 둘째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고통 속에 이뤄내는 단 한 번의 성공. 그 성공을
무수히 쌓아 비로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다.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끼곤 든 생각이, 내가 마지막으로 넘어져본 지가 언제였더라.
그땐 넘어지는 게 무섭지도 창피하지도 않았을 때.

나는 <데이즈드>에서 영상을 촬영한다. 여러 하이패션 브랜드를 찍으며 든 생각은
내가 입을 일 없는 옷,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왠지 그 옷들을 입으면 내가 변할
것 같은 느낌. 서서히 바깥부터 안쪽 깊숙이까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겸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하이패션을 경멸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순수는 아니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보드를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생각으로 타는지가 중요하다고.
그러고는 너를 잃지 말고 차근차근 쌓고 재단하라고 조언했다.

시간이 지나 내 생일. 핑크색 셀린 티셔츠를 선물 받았다. 당장 입어보라는 동료들 말에
회사에서 입어보고는 쑥스러워 얼른 벗어 대충 포장해 집으로 왔다. 분더샵 쇼핑백에
담긴 핑크색 셀린 티셔츠. 혼자 방에서 다시 입어보고 거울을 봤다. 여전히 나.
심지어 생각보다 그 옷을 입은 내가 싫지도 않았다. 피식 웃고는 다시 그 옷을 개어
스케이트보드 티셔츠 사이에 넣었다.

내일 입고 가야지, 낄낄.

 

전기성
Jun Giseong

202204 #181

By EDITOR'S LETTER

 행동

2022년 4월호 표지에 김연아를 담았다.
걸음, 눈인사, 포즈, 말씨. 연아의 몸가짐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담백했다.
안 꾸민 미소, 성긴 문장. 연아가 우리 마음의 반석이 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해요.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좌절도 하고 성공도 맛보고, 롤러코스터 같은 업앤다운이 없는 인생은 없으니까요. 
스포츠 선수인 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기억하시는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난 2월 말,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 기록인
을 펼쳤다.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나뿐이 아니네. 글을 쓰는 사람들,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돼 있어. 요즘엔 더하지 않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잖아.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사랑

3월 둘째 주엔 에바 차우Eva Chow를 만났다.
가 칭한 LA의 컬처 퀸, 10년째 LACMA 아트+필름 갈라의 공동 의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의 감각과 미감을 여실히 세상에 증거하는 시대의 아이콘.
“제 나름의 능력과 노력을 다해 아트 커뮤니티를 서포트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뿌듯해요.
더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도 많지만, 저 또한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할 책임은 있다고 생각해요.”
돌연 물었다. 마음을 다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그 마음을 이용하면 어떻게 해요?
“아유, 이용 좀 하면 어때요. 그렇게 하도록 두세요. 그렇게 내가 도움이 됐다면 좋은 일이지요.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돌아와요. 그때 나에게 돌려줄 거예요.”

봄이 완연한 어느 저녁에는 스물한 살 피아니스트 이혁의 리사이틀에 갔다.
지난해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은 귀재다.
배꼽 인사를 할 땐 영락없이 앳되던 소년이 연주를 시작하자 무섭게 몰입했다.
대신 감정선이 좀 약했다. 슬픔을 흉내 내는 듯했다.
그런데 아뿔싸.
스무 살 청년의 슬픔이 심해 같다면 그것대로 우스울 일이다.
깊은 감정을 구태여 미래로부터 당겨와야 할까.
바로 그 순간의 우리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
흉내 내는 아이는 오늘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깊이와 솔직함 중 내 손에 쥔 게 무엇인지 알 때.
다시 봄이 왔다.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우리가 만들었다. 

 

 Lee Hyunjun 

202203 #180

By EDITOR'S LETTER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하루에 한 장씩 매일 읽었다.
한 페이지를 몇 번씩 곱씹으며 읽느라 아직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아 자꾸 맴도는 문장들이 있다. 
슈타인의 편지를 함께 읽으며 니나는 언니에게 말한다.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했음해 불행했지만,
그 사랑이 그를 살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모든 개념은 반대되는 성질의 것으로 정의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니나의 말에 크게 설득당했다.
살아 있다는 건 괴로움을 동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달 전, 택시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는데 뒤 차가 살짝 받아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이달에는 화보 촬영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반대편 차선에서 교통사고가 나 택시 뒷좌석이 완전히 찌그러진 광경을 목격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내가 탄 것과 똑같은 주황색 택시였다. 뒷좌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운전석에만 에어백이 터져 있었다. 설핏 젖어 있는 도로 위는 사고 차량의 잔해로 가득했다. 
그 앞으로도 줄줄이 찌그러진 차량들. 30분만 일찍 나왔으면 저 차 안에 내가 있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보면 삶의 반대는 결국 죽음이라서 ‘살아 있다’라는 감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쿵쿵 쿵, 맥박이 빨라지고 손끝이 뜨거워지는 아주 섬뜩한 기분이었다.
그러니 한순간도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누군가 나를 몰아가는 신호 같았다.
니나의 말을 빌리자면 생이 나를 휘몰아치게 만드는 것일까.

2022년, 내 나이는 사람들이 예찬하는 시절의 딱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짐작할 수 있다면 한 시절의 절반을 지나는 이 시점이 아닐까?
의미를 부여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전과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혹은 달라지기 위해 결심하게 만드는 바로 이 시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이 울렁대는 바로 지금.
그래서 작년부터 ‘2022년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참 싫었다. 해묵은 감정을 남기며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좀 더 후련하게 살고 싶다. 
좋든 싫든 <데이즈드>에서의 모든 과정은 불안으로, 긴장으로, 걱정으로 계속해서 심장이 뛰게 하니까.
그래서 온몸에 피가 돌고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손끝이 저리고 안절부절못하니까 움직이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계속 달리고 또 뛰게 된다. 불안한 울렁임과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 딱 살아 있다는 기분이다.
그래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감각이 여기야라고 말한 듯하다.

202203 #179

By EDITOR'S LETTER

  “Who’s That Pokémon?” 
나와 피카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밝고 경쾌한 샛노란색 보디, 
귀여움을 배가하는 빨간 볼, 그리고 상징 같은 번개 모양 꼬리. 
그 어떤 강력한 포켓몬Pokémon이 등장하더라도 
자신만의 존재감과 고유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

누구나 이 정도 얘기하면 바로 피카츄인 걸 알겠지?
왜 그토록 피카츄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 언제 어디를 가든 함께하고 싶은 그런 대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존재.

나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어.
형제들에 둘러싸여 형성된 기질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랑받았을 거란 얘기도 자주 들었지.

그럼에도 나는 너무 외로웠고,
어릴 때부터 혼자서 고민하고 이겨내야 할 일이 많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 피카츄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건 그 때문 아닐까?
아직도 내 방 침대 한쪽엔 여러 피카츄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피카츄와 리바이스가 컬래버레이션한 청바지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입으면 왠지 든든해.

어느덧 <데이즈드>에서 3년 차에 접어들었어.
언제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 공간에서 지내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왔고, 제법 멀리 잘 온 것 같아.
비록 누구보다 이 모든 것에 무지했던 내가,
나와 피카츄에 대한 이야기를 <데이즈드>에 쓸 날이 올 줄 몰랐어.

얼마 전에는 프라그먼트Fragment와 포켓몬이 협업해 만든 
피카츄 인형을 선물 받았어.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의 검은 번개 심벌이 새겨진 피카츄.

그래서 지금 말도 안 되게 행복해.
자랑하고 싶었어. 한정판이거든

 

 이동걸
BOSCO LEE 

202202 #178

By EDITOR'S LETTER

새벽 택시의 무서움을 안 것은 <데이즈드>에 입사한 이후다.
야근할 때면 자주 택시에 몸을 맡긴다.
택시 안 특유의 적막함이 전투적으로 보낸 하루와 대조되며 나른함 속으로 나를 이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게 싫을 때가 있다.
그냥 어디든 계속 타고 가고 싶다.

27분. 회사에서 집까지의 소요 시간.

일 때문에 잊고 있던 것들이 밀려온다. 차창에서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 익숙하고도 낯선 한강의 풍경.
그 속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나를 위한 보상 심리가 고개를 든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충동구매를 했던가.
몇 주 동안 찜해두기만 했던 코트를 샀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 속 곳곳에 널린 광고에 홀렸다.
어떤 날은 미뤄둔 잠을 자기도 한다.
머리를 쥐어짜던 기획안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창밖 잠든 도시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가늠해보려 애쓰기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선택한다.
그 선택의 시간이 모여 나를 택시로 이끈다. 일의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나를 어떤 목적지에 데려다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고, 그 선택을 믿기로 한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지만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목적지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살아내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는 아무리 내리기 싫을지라도 택시는 결국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다는 것은 안다.

오늘도 새벽 택시에 몸을 맡긴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내게 압축해 들려주는 것을 꽤 즐기고 있는 까닭이다.

이남훈
Lee Namhoon

202201 #177

By EDITOR'S LETTER

나는 물방개야. 

동심은 무지를 동반하기 마련이잖아.
어릴 적, 한사코 나는 아니었고,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겁쟁이니까.
동네 개천에 삼삼오오 모여 물방개를 톡 터뜨리는 걸 본 적 있어.
물방개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 그들 입장에서는 터뜨리는 거고
원치 않게 수심 위로 나온 물방개 입장에서는 터지는 거였겠지. 

숨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내 예민과 과민으로 시험에 들고 싶지 않고
공상과 상상을 굳이 망상보다 선한 거라고 나누고 싶지 않고
이따금 아닌 매 순간 바람처럼 증발해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그래, 내가 나 스스로 그 세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살랑살랑했다가
휘몰아도 쳤다가
연하고 유하고 부드럽게, 세차고 모질고 표독스럽게 

수심 위로 날 올리지 마.
뻐끔뻐끔 살게 내버려둬.
터트릴 거잖아.
알아. 

내가 물방개였으니까.
터져버린 물방개를 보고 시시덕거리던 그 시절 개천 애들처럼
킥킥거렸겠지.
치졸하고 처절하며 처참해. 

새 집에는 우선 암막 커튼부터 달아야겠어.
지금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는
잠을 더 잘 필요가 있어. 

내가 꽤 오랜만에 레터, 이 지면으로 돌아온 이유는
2022년 1월호라서야.
맞아,
희망, 사랑, 유대, 뭐, 그런 따뜻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물방개가 날아? 날기도 해? 날개가 있어?

 

 이겸
李兼
Guiom Lee 

202112 #176

By EDITOR'S LETTER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던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얄팍한 패션 지식으로 온몸에 흐르던 땀을 숨기며 면접을 보던 날. 머릿속이 새하얘져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난 항상 나에 대한 질문으로 넘쳐났고, 이제껏 못난 답변으로 대변하던 스스로를 질척거리지 않게 한마디 한마디 충실히 대답했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나를 담백하게 설명하는 건 말이다. 운이 좋았는지,
소같이 일하게 생긴 증명사진 덕분이었는지 와 함께하게 되었고, 오늘로 꼬박 1년 하고도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무지한 열정을 다독이며 옆 동료들을 따라도 해보고, 그 아류가 되는 건 아닌지 주제 넘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한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시간들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 마음속에 정의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도 큰 숙제가 될 것 같지만 어쩐지 두렵지는 않다. 
안에서라면. 왠지 이 여정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기호(嗜好)를 펼쳐가면 된다는 걸 배웠다.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격심해도 닳지 않을 사랑.

 박기호
Park Kiho

 

 패션이라는 물살에 이끌려 정처 없이 항해하다 표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떠한 파도가 몰아쳐도 그게 패션과 관련한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그저 이유 없이 패션이 좋았다.
이런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입사 동기인 기호와 ‘동시대적 움직임’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한다.
누구보다 앞서야 하고,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때로는 얼굴 전체보다는 눈 옆에 있는 작은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시야가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뿐더러 평면적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야로 패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막 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다.
촬영 준비와 본촬영 그리고 원고 작성을 하며 매일매일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멀어져 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핑계로, 좋아하던 전시회나 갤러리 방문, 영화 감상과 책 읽기를 일절 멈췄다.
그저 침대에 누워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의지하며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영감을 받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소홀해진 것이다. 게을러진 내 생활을 스스로 반성하며 다가오는 2022년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살기로 다짐한다. 본질에 더욱 근거해 의미가 담긴 행동들 말이다.

2022년에도 여전히 촬영이 끝난 뒤 네댓 시간 동안 죽음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수십 벌의 옷을 패킹하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비록 몸이 고되고 눈앞에 수북이 쌓인 옷을 보면 정신이 아찔할 때도 있었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로 움츠러드는 순간도 많았다. 
어쩌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음에도 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앞으로 더 다양한 것을 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존재로 에서 살아가야, 살아남아야 할까? 이 질문을 여전히 좇고 있으며,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아하는 내가 앞으로 어떠한 새싹으로 자라날지, 어떠한 양분을 먹으며 점진적으로 자라날지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이승연
Lee Seung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