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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410 #224

By EDITOR'S LETTER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근사했다.
그 어떤 헤어스타일보다 잘 어울렸다.

대놓고 부러웠다.
나보다 훨씬 짧았는데
그럼에도,
(예쁘단 말 정말 별로지만)
예뻤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다.
하찮은 내 관점이지만.

머리를 기르고 왁싱을 하고 다음 네일 예약을 기다리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과로 달려가고
헤아릴 수 없는 시술과 넘쳐나는 메이크업 제품을 더해
원피스와 스커트로 치장하기 분주한
내가,
내게,

“넌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이런 단조로운 질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네가 예뻐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순진한 비아냥 따위에도 답할 마음이 없다.

“너는 왜 그런 거야?”

알까?
말한다면?
설명한다면?

아니야.

이게 그런다고 뭔가, 네가, 누군가가 납득이, 설명이, 공감이, 이해가 되는,
될 수 있는 그런 일이거나 상황이거나 현상이라도 되는, 될 수 있는,
되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걸까?

아니야.

흐흐.

왜 웃어요?

우리, 가위바위보를 해요.
전 지더라도 가위가 그리 좋아요.

크크.

왜 웃어요?
X여워서요.
네?
X여워서요!

‘귀’인지 ‘가’인지, ‘가’인지 ‘귀’인지.
헷갈려요.
잘 안 들려요.
차라리 이게 나은가 싶어요.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나는 머리를 묶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3

By EDITOR'S LETTER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한 90일 됐으니까
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은 없다지만,
그래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요.

저를 아는 인간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일이에요.
잠깐이라고 여길 일이에요.
응당히,
그만큼,
중독됐(었)으니까요.

다리를 다쳐서죠.

꽤 빨리 걷는 편이었어요.
뛰는 것도 좋아했어요.
농구든 뭐든.
못해도.

지금 다리는 제 다리 같지 않아요.
로봇 같아요.
통증도 멈추지 않아요.

상상해 봐요.
제대로 걷고,
힐은 바라지도 않아요.
조금이라도 뛰고,
운동을 하겠단 건 아니에요.
그럴 날, 그럴 때, 그럴 순간.

아득해요.
과거에 제대로 걸었는지 물어보고 확인할 정도,
기억이 안 날 정도,
까마득해요.

못 자던 잠을 대낮까지 자요.
발작도, 수면 무호흡도 줄고 잠버릇도 개선됐어요.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에 경련이 오곤 했는데 다 사라졌어요.
특히 술과 담배 없이 나누는 대화와 시간이 주는 유의미함,
긴장감과 지루함 없이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
뜨겁고 남다르게 다가와요.

그런데 대체 왜 끊었냐고요?
그런데 다리 다친 것과 술, 담배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싫어서
버리려고
싫다는 거
버리라는 거

가을이 길었으면.

내일 파리로 가요.
술과 담배 없이 가는 첫 파리.

이대로가 길었으면.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이제
잘하면


이상
싫어하지
않을

있게
될지도
몰라요.
마지막
기회예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2

By EDITOR'S LETTER

“타쿠야. 머리끈 있니?” “벌써 몇 개째인지 모릅니다.”

“네오는 어디 간 거니?”
“분명 방금 전까지 4층에 있었는데.”

“티싱, 내 지방시 별 스커트 어디 갔는지 알지?” “그거 연무장길 3층에 있나 보죠, 뭐.”

“던, 그 버질 아블로가 사인한 책 1층에 있니?” “그게 뭔데요?”

“추석 연휴에 나랑 보러 갈 사람?” “······.”

머리끈, 네오, 아카이브 피스, , 친구? 사람? 사랑?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미련 따위는 버리는 것이 순리라는 것에 대하여. 찾는다 해도 또다시 사라질 것이 뻔한 것들에 대하여.

조심스레 밀었던 유행어, 뭔지 아시죠?

어느 누구도 내 마음을 모를 테지만
행여 위안이라도 삼으려 수백 번도 넘게 던졌던 그 말, 뭔지 아시죠?

스스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사라지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면서,

뭔지···. 뭔지······. 아잉··· 진짜··· 뭔지······.

아. 시. 죠?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9 #221

By EDITOR'S LETTER

음악을 모른다.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 그저 그 냄새와 스타일을 좋아한다.
말투도 눈빛도 먹거나 마시거나 자는 모습도.

피트 도허티를 좋아한다.
특별히 에디 슬리만이 찍은 피트 도허티.
그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리버틴스라는 그룹을 했다는 것도 지금에야 알았다.

단지 그가 키가 크고
어떤 비율을 갖고 있으며
어떤 스타일을 즐기고
어떤 입술
어떤 콧방울
어떤 손 모양을 지녔는지는 그릴 수 있다.

따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따라 했다.

그런 재킷
그런 페도라
그런 피케 셔츠
그런 벨트
그런 메이크업
그런 흐느적거리는
그런 그런
그런 거.
한때 피트 도허‘범’이라 불릴 정도로.

사실 나는 다 그렇다.
음악도, 영화도, 그림도, 스포츠도, 정치도
뭐, 그 외 세상이 인정하는 어떤 그런 인문학적
뭐, 그런 장르 다 포함해서 다.

다 나는 사실 그렇다.
나는 사실 다 그렇다.
다 사실 나는 그렇다.

겉만 본다.
스타일만 본다.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만 본다.

그게 나는 사랑스럽다.
그런 나라서 기쁘고 좋아 죽겠다.

완벽하지 않은데,
명확하잖아.

마치

처럼.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9 #220

By EDITOR'S LETTER

무딘 나날이다.
뾰족한 게 없다.
내가 못 찾는 건지, 찾을 만한 게 없는 세상인지
뭐가 됐든 평이하다.

실존주의를 떠올린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 꽤 영향을 받았다.
그중 그 <구토>.

실존주의? 별거 아니다.
옳고 그름이 따로 없는 거다.
신념은 스스로 정하는 거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자유롭되 책임을 지는 것이다.

10대 시절 탐닉한 실존주의는 3년여 도쿄 생활을 통해 증폭됐다.
세기말과 밀레니엄 초, 버블경제 말미가 낳은 고유의 일본식 개인주의가 더해졌달까.

책으로 배운 실존주의에 행동으로 배운 개인주의를 장착한
나는,
자신만만했던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떤 기막힌 세련됨을 갖추게 될 줄 알았다.

웬걸,
되레 허겁지겁 됐다.

나 스스로 정의해서
내가 짜고 생각한 개념은,
또 그 안에서 나름 창조라고 짜낸 내 신념 나부랭이 같은 것들은,

유교(곧 죽어도 강조하고 싶다) 사회라는 틀 안에서
숫자로도
기갈로도
망치로도
도깨비로도
도저히 결코 안 되는 것뿐이었다.

돌겠네,
미치광대.

애매한 시대라고, 시대를 탓할 만큼 유치하진 않다.

근데 드러나면 죽잖아.
감옥이잖아.

기회는 소심하고 시간은 대범하다.
청춘은 순식간이다.

말을 안 하면 그 순간은 끝나요.
삽시간에.
연기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요.

병신의 반격이 필요하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8 #219

By EDITOR'S LETTER

누구에게나 뷰티는 있다.

내게 뷰티는 일이었다.

스무 살 초반 입사한 PR 에이전시에서 처음 배당받은 일이 뷰티 브랜드였다.
당시 대표가 내게 뷰티 브랜드 담당을 부탁하며 해준 말이 여전히 기억난다.
“우리나라에도 섬세한 남자들이 뷰티를 하는 시대가 곧 올 거야.”

같이 일하던 선배들은 곧잘 그 브랜드의 본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자녀 학자금 제공 등 각종 복지를 얹은 안정감이었다.

나도 뒤처지기 싫어 열심히 했다.
13호와 21호의 차이부터 브랜드별 컬러 팔레트와 제품 성분, 용기를 만드는 공장, 모델 선정과 촬영 기술, 보도 자료 작성 등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뷰티 메커니즘에 관해 쉴 새 없이 공부했다.

내게 뷰티는 꿈이었다.

운이 좋았을까.

패션 에디터로 일하던 어느 날, 그때 그 브랜드의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마음 깊이 나도 모르게, 굴지의 뷰티 대기업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 선배들이 말하는 안정감을 탐닉해 보고 싶었다.
그래, 정상으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몇 달에 걸친 입사 과정을 통해 딱 서른이 되던 해 그곳에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이례적으로 응원의 만세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채 3개월도 머물지 못했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털어놓자면,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내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인해 시큐리티 직원에게 퀵서비스 기사로 오해를 받았다.
당시에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냐 하면, 아예 사원증을 입에 물고 들어간 적도 있고, 지금에야 후회하지만,
‘매일 보는데 일부러 그러시나’ 하는 속상한 마음에 그분들께 못되게 굴기도 했다.
결국 아침마다 반복된 제재는 그곳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사람이란 주홍글씨를 스스로 뒤집어쓴 결과를 초래했다.
며칠만 더 다니면 인센티브가 지급된다는 윗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내게 뷰티는 싸움이었다.

그런저런 경험을 통해 다음 입사한 매거진에서 나는 패션과 뷰티를 동시에 담당하는 에디터가 되었다.
그곳에서 뷰티를 이미지로 연출하는 노하우와 텍스트로 전달하는 요령 등에 대해 호전적으로 학습하고 경험했다.

안타깝게도 그 매거진이 폐간되는 바람에 뷰티에 관한 도전을 이어가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데이즈드> 편집장을 시작한 10년 전, 누군가 <데이즈드>는 뷰티가 약한 잡지라고 그랬다.
“세상이 보수적이라 그래요. 특히 유독 ‘뷰티’가요.”
나는 조금은 되바라진 마음가짐으로 10년을 기다렸다.

‘뷰티’가 <데이즈드>가 가진 다양성과 독립성, 포용성을 닮아가기를,
한계를 넘어서기를,
더 이상 뭔가를 선생인 척 가르치지 말기를,
제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러고 나는 올해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누군가는 꽤나 예쁘다고 ^^

내게 뷰티는 나 자신이다.

<데이즈드> 뷰티는 여러분 자신이다.

누구에게나 뷰티가 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8 #218

By EDITOR'S LETTER

계단에서 굴렀다?
아니 접질렸다?
아니 뒹굴었다?
아니 꺾였다?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난생처음 신체의 일부가 부러져 봤다.
워낙 몸 쓰는 일을 안 하고 살았던 터다.

만화, 딱 그런 데서 본 것처럼
무릎 아래 다리가 밖으로 꺾인 모양이 됐다.
그 광경을 목격한 동료의 눈이 어떤 의미에서든 휘둥그레졌다.

근데 정작, 그렇게 문득 웃겼다.
진짜 아팠는데 배시시 실소가 터졌다.
‘아, 이거였구나.’

구급차 타고 실려간 파리의 병원에서
물 한 모금, 진통제 한 방 맞지 못한 채
덜렁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배고프고 아프고 서럽고 말도 안 통하고 죽겠는데 진짜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아, 날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어찌어찌 다시 구급차에 몸을 싣고 12시간 넘는 비행 끝에
서울에 왔고, 몇몇 검사를 더 한 후 수술대에 올랐다.

알싸한 감각이 하반신을 다시 지배하기까지 꼬박 한나절이 지났다.

뭐라 뭐라 하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아닌 다른 쇠붙이 친구들도
내 종아리에 함께 살게 된 거구나, 그랬다. 뭐.

수술한 지 보름 정도 됐다.
조금 다친 건 아니라서 당분간 목발과 휠체어는 필수다.

맞다.
걷고 싶다.

혼자 외출도 못 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예쁜 옷도 못 입고
메이크업도 좀 늘었는데 하지도 못 하고
다음 주 도쿄에서 친구가 큰 파티를 여는데 거기도 못 가고
아, 술과 담배도 못 한다.

맞다.
낫고 싶다.

그런데 진짜 진심으로 내 속을 말해 볼까?

괜찮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다 못 해서, 천만으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의 나선형) 계단에서 철들었다?
아니 확인했다?
아니 도망쳤다?
아니 살았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8 #217

By EDITOR'S LETTER

“어머, 좀 그만해.”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지인이 꾸짖듯 말한다.
“어머?”
난 좋은데.
“안 어울려.”
단호하다.
“어머?”
이건 진짜 나도 모르게.
“쯧쯧.”

“너 요즘 메사키 상실이야.”
메사키めさき, 일어다.
증권가 은어로도 쓰인다.
앞을 내다보는 자질, 직관력, 눈치, 촉, 뭐 그런.
“너 감 떨어졌어. 어디 가서 그딴 거 메사키라고 들이밀지도 마.”
어머!

“지팔지꼰이라 그렇다. 됐니?”
지 팔자 지가 꼰 거, 뭐 누굴 탓하니.
옛날 말로 뭐 내 탓이오!

“그래 그럼, 맛 대 맛으로 한 번 붙어볼래?”
누구 메사키가 진짠지 맛돌이 나겠다며.
맛 대 맛으로 붙어서 누가 진짜 지팔지꼰인지 붙어보겠다며.

어머!
이게 대체 다 무슨 말이냐고?
어머!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7 #216

By EDITOR'S LETTER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바보.
이것이 사랑이라면 이것 또한 필요.
나는 바보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죄송합니다.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고
싫어서도 싫고,
기다리는 것도 기다려져요.
웃지 말게 해주세요.
언젠가 어느 날엔 누군가가 나를 알아줘요
알아줄 거예요.
눈물이 흐르면 어디부터 어디로 흐르는 거예요?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는 거예요?
꽃이려고 했어요
꽃은 꽃으로서 웃게 만들어요.
나는 나로서 아파요
이게 자연의 노래겠죠?
마음 안에 꽃을 키울래요.

+
소년들아, 단 하루를 살아도 너답게 살아. 그게 낫더라.
소년을 겪어보니.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7 #215

By EDITOR'S LETTER

담임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갑자기 교실에 있는 우리 반 학생 50명 남짓의 눈빛이 빠르게 교환되기 시작한다.
사실은 몇 명,부터다. 나머지는 그들의 눈빛에 담긴 지시 내용을 파악하고 순종 혹은 복종하는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토록 일사불란할 수 있을까.
자리에서 한 명씩 일어서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괴기한, 누군가는 망측한 표정과 포즈를 취한다. 우리는 웃음을 참기에 여념 없다.
이것이 미션이다.
담임은 여전히 칠판에 무언가를 적느라 여념 없다.
이윽고 내 차례다.
스르륵 의자를 뒤로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하려던 찰나,
휙, 담임이 뒤를 돈다.
아뿔싸, 걸렸다.
모든 것은 내가, 말 그대로 ‘덤터기’를 뒤집어쓰고 만다.

나는 운이 나쁜 애였다.

나나난나 나나나난나나 나나난나 나나나난나나
달려가는 여성시대~
방학이면 으레 아침부터 일어나 라디오를 틀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사연이 담긴 편지를 써 보내 각종 경품을 받는 것, 받아내는 것, 고로 세간살이에 보탬이 되는 것.
초등학교 3학년이 어필할 수 있는 사연이라곤 별개 없었다. 먼저 엄마 이름부터 시작했다.
파란만장한 결혼 성공기부터 비련의 시댁살이, 자식과 남편 사이에 있던 깔깔 에피소드 등등등.
AM, FM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라디오 방송사에 그 톤 앤 매너를 맞춰 각각 다른 내용을 보냈다.
반자동 세탁기, 도서상품권, 동글이 청소기, 무선전화, 비디오 등등등.
사연이 채택돼 전파를 타고 집으로 경품이 도착하면 할수록 사연 아니 ’NO사연‘의 당사자인 엄마는 혀를 내둘렀다.
가장 쓸모없는 것은 주유권이었는데,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유권은 교차로 신문, 물물교환 코너에 올려 팔았다.
엄마 이름이 방송사 한 바퀴쯤 돌고 난 후 아빠, 이모, 할머니, 여동생의 이름까지 번갈아 써가며 프라이팬부터 냉장고까지 마련했다.
집안의 복덩이였다.

나는 운이 좋은 애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다이내믹한 일들을 몸소 겪은 후 비로소 깨달은 게 있다.
그건 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걸리지 않은 친구들은 나보다 몇 배는 더 재빠르되 조용히 앉았다 일어서고
배꼽 빠질 만한 포즈를 취할 줄 아는 민첩한 몸놀림을 갖췄다.
라디오에 온 가족 명의를 도용해 보낸 사연이 당첨돼 경품을 쏟아지게 받은 것 또한
날 때부터 스스로도 소름 끼치도록 능수능란한 거짓말을 갖춘 덕분이었다.

요즘 여럿 나를, 나의 과잉을, 나의 지나침을 염려한다.

지금 나는 운이 아닌 실력이 필요한 때다.

지혜롭게 대화할 줄 아는 포용력,
상대의 아픔과 고통, 나아가 그 결핍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
모두가 나 같지 않고, 나 같을 수 없으며, 나 같아서도 안 된다는 성찰력.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힘을 주소서.

계절도, 달력도, 여정도 벌써 반이 지났다.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