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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503 #229

By EDITOR'S LETTER

바라지 말라고.
그 무엇도,
그 누구에게도,
몇 번씩 다짐했던,
수천 번 들었던 이야기.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원하던 걸,
그나마 가졌던 걸,
그토록 바라던 걸,
수만 번 후회하며 반복했던 그 행위.

나한테 그러더라.
회피형 인간이라고.

어쩌다.
어찌하다.

봄이 온다네.
시처럼,
몽글하고,
므훗하게,
XX 온다네.

그런데 나도 하나만 물을 수 있을까?
그러는 그대는 허물이 없었소?
무엇 하나 박애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용할 의지는 있었소?
그렇게 정직하고 고되지 않으오?
마냥 천진하고 순진하게 세상에 긍정뿐이오?


지뿐이오.

막은 스스로 내릴 테니 재촉하지 마소, 고마.

끝.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2 #228

By EDITOR'S LETTER

“5년 만이세요.”
기껏해야 2년 남짓 된 줄 알았는데,
미루고 미뤘던 아랫니 미니쉬 치료를 5년 만에 비로소 마쳤다.

 “저 사진은 뭐예요?”
5년 전 해당 치과에 첫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내 사진에는 앞니가 빠져 있다.
영구처럼.
“기억 안 나세요?”
생각해 보니 그때 그랬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어느 순간 앞니가 빠져버려 신경치료 등을 하면서 도합 1년 여를 앞니가 없는 채로 지냈다.

숫자 앞에 초연한 삶이지만, 2025년 편집장으로 10년을 채우는 한 해가 시작됐다.
‘0’에서 시작해 1과 ‘0’이 되는,
돌고 돌아 다시 ‘0’,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맞는 1, 뭔가 정신차리고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다.

모든 게 빠르다 못해 혼란스러운 요즘,
그중에서도 루머와 루머가 꼬리를 잇는 작금의 패션계에서
나와 같이 10년 차를 맞이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어떤 기분일까?

 채워졌을까.
비워졌을까.
몽롱해졌을까.
아무 생각이 없을까.
작년 여름, 지금껏 최고의 컬렉션이 뭐냐며 되지도 않게 불쑥 던진 내 질문에 뎀나가 그랬다.
“다음의 것(Next one)”이라고.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그럼에도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른다.
붙잡을 수가 없다.
딱 너처럼.

 의 시간에 20년이 넘게 유수의 패션 미디어를 거쳐온,
우리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만큼의 충분한 품위를 지닌 방호광 부편집장이 합류했다.
뱅Bang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에디터 10년 차가 된다며 감히 뎀나와 나의 10/10 클럽에 합류하려는 총괄 디렉터 지웅은 뱅이 갱뱅Gangbang일까 묻는다.
그러면 어쩔 건데, 뭐.
나도 한때 ‘봄 리’였을 시절, 봄이 봄Bomb이 아니냐며 다들 놀려대곤 했는데 뭘.

“’이’ 해보세요. ‘이’.”
거울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드디어 앞니, 아랫니 색이 하나로 맞춰진다.
주말이라고 특별히 만나자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다.
진작 할걸.
진작 이럴걸.
진작 그랬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걸.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1 #227

By EDITOR'S LETTER

시끄럽습니다.
머리와 가슴이,
육체와 영혼이,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나 자신을 탓하자.
절대 남 탓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남 탓만 하는 건 정말 못나고 비루한 거지만
남 탓을, 그러니까 내 탓도 해가면서 남 탓을 좀 해도 되는 건 아닌가.

아닌가요?
말까요?

정말 어떤 때는요.
네, 요즘 같은 때는요.
쉽지 않아요.
누군가를 믿기가,
뭐라도 터놓기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기가.

어찌 여기에 속내를 다 뱉을 수 있겠어요.
나름 오피셜한 공간인데.
그 정도 상식은 있죠, 네.

2025년이라는데요,
사람이 무서워지는 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요?

2025년이라는데요,
나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저 내년 이맘때도
이만큼 흔들리고 고통스러워도
딱 이만큼만 이길 바라요.
그럼 돼요.

+ <데이즈드> 디지털&피처 에디터 소희가 지난 12월 7일, <데이즈드>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한 번 더 첨부합니다.
다리 부상도 핑계고요. 제가 그 현장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는 까닭에서요.

알록달록 동의할 수 없는 밤이지만 국회 앞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알록달록했습니다. 2024년의 응원봉은 촛불보다 좀 더 예쁘고 가볍고 그립감까지 있다고 하니 꽤 효용적인 아이템입니다. 뭐라도 좋으니 그걸 하나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큰 디스플레이 너머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묻습니다. “우리 국회법에도 114조의 2,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이런 조항의 국회법까지 있습니다. 이것마저 훼손되는 것이냐.” 이에 파다하게 흔들리는 가지각색 불빛만큼은 어느 당론에 속한 게 아닌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났습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누군가는 묻습니다. 그러고 싶어도 이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없는 다수가 어떻게 나 한 사람만을 좋아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은 대체 뭔지. ‘그러게요…’라고 그 알 길 없는 마음을 같이 되새긴 날이 많습니다만 오늘 그 이유와 명분에 대해서는 가까이서 본 것 같습니다. 생활의 관성을 깨는 ‘힘’은 결국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구태여 <사랑의 기술>의 한 문장을 응원처럼 꺼내고 싶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다.” 시장의 논리, 세계의 권력, 눈앞의 비합리에 안전하기보다 모험적이길 선택한 이들은 오늘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대담하고 곱고 애틋한 마음입니다. 매주 토요일 알록달록한 응원봉과 함께하는 거국적인 연말 콘서트가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질 예정입니다. 좀 남다른 역사가 여기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2 #226

By EDITOR'S LETTER

꼴깍
숨이 넘어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맛있는 건
딸기잼에 버터 얹은 빵
버터 중에서도 더 맛있는 게 뭐가 있던데 그거까진 모르겠고
그냥 거기에 우유 한 모금

사는 게 헤어지는 거지
오늘의 나, 지금의 감정, 현재의 우리

슬며시

감춰
죽자고 헤어지는 건지

1965년쯤 뉴욕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갤러리 하는 엄마,
자동차 회사 사장 아빠,
그런데 노년에 막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다 서포트해 주는,
그런 거

겉,
숫자,
그런 게 다예요, 여러분!

아무리 표현하고 이야기해 봤자
말이 안 통하는데 뭐 어쩔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데 뭐 어쩔
지 생각만 해대는데 뭐 어쩔
어차피 나가떨어져 난 희생만 했네 할 텐데 뭐 어쩔

아, 솥 밥 먹고 어금니 어딘가에 낀 누룽지

평범하다 그릇
주제넘다 욕심

우린 XX병 이러잖아
쟤넨 XX Bug 이런댄다

다 같긴 뭐가?
되도 않는···
버터 그릇에 코 박고 1965년에서 60년 더해서 숨이나 깔딱대

쫑표 좀 갖다줘
혹은
.

잘해 먹겠네

꼴깍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1 #225

By EDITOR'S LETTER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
변하고 달라져 사랑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해 사랑해.
경계나 편견 따위 없어져 사랑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돼 사랑해.
스스로를 사랑해 사랑해.
용서해 줘 배려해 줘 사랑해.

족해.
설레.
떨려.

보고 싶어.
보태고 싶어.
보드랍고 싶어.

살랑살랑
할랑 말랑
닿을랑 말랑

잠을 잤어?
밥을 먹었어?
아깐 무얼 했어?

못 자.
못 먹어.
못 해, 아무것도.

사랑하는 사람이라 사랑해.

알까?
알려나?
알겠지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4

By EDITOR'S LETTER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근사했다.
그 어떤 헤어스타일보다 잘 어울렸다.

대놓고 부러웠다.
나보다 훨씬 짧았는데
그럼에도,
(예쁘단 말 정말 별로지만)
예뻤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다.
하찮은 내 관점이지만.

머리를 기르고 왁싱을 하고 다음 네일 예약을 기다리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과로 달려가고
헤아릴 수 없는 시술과 넘쳐나는 메이크업 제품을 더해
원피스와 스커트로 치장하기 분주한
내가,
내게,

“넌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이런 단조로운 질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네가 예뻐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순진한 비아냥 따위에도 답할 마음이 없다.

“너는 왜 그런 거야?”

알까?
말한다면?
설명한다면?

아니야.

이게 그런다고 뭔가, 네가, 누군가가 납득이, 설명이, 공감이, 이해가 되는,
될 수 있는 그런 일이거나 상황이거나 현상이라도 되는, 될 수 있는,
되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걸까?

아니야.

흐흐.

왜 웃어요?

우리, 가위바위보를 해요.
전 지더라도 가위가 그리 좋아요.

크크.

왜 웃어요?
X여워서요.
네?
X여워서요!

‘귀’인지 ‘가’인지, ‘가’인지 ‘귀’인지.
헷갈려요.
잘 안 들려요.
차라리 이게 나은가 싶어요.

소희가 머리를 잘랐다.
나는 머리를 묶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3

By EDITOR'S LETTER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한 90일 됐으니까
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은 없다지만,
그래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요.

저를 아는 인간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일이에요.
잠깐이라고 여길 일이에요.
응당히,
그만큼,
중독됐(었)으니까요.

다리를 다쳐서죠.

꽤 빨리 걷는 편이었어요.
뛰는 것도 좋아했어요.
농구든 뭐든.
못해도.

지금 다리는 제 다리 같지 않아요.
로봇 같아요.
통증도 멈추지 않아요.

상상해 봐요.
제대로 걷고,
힐은 바라지도 않아요.
조금이라도 뛰고,
운동을 하겠단 건 아니에요.
그럴 날, 그럴 때, 그럴 순간.

아득해요.
과거에 제대로 걸었는지 물어보고 확인할 정도,
기억이 안 날 정도,
까마득해요.

못 자던 잠을 대낮까지 자요.
발작도, 수면 무호흡도 줄고 잠버릇도 개선됐어요.
이야기하다 보면 얼굴에 경련이 오곤 했는데 다 사라졌어요.
특히 술과 담배 없이 나누는 대화와 시간이 주는 유의미함,
긴장감과 지루함 없이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
뜨겁고 남다르게 다가와요.

그런데 대체 왜 끊었냐고요?
그런데 다리 다친 것과 술, 담배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싫어서
버리려고
싫다는 거
버리라는 거

가을이 길었으면.

내일 파리로 가요.
술과 담배 없이 가는 첫 파리.

이대로가 길었으면.

술을 멈췄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아요.

이제
잘하면


이상
싫어하지
않을

있게
될지도
몰라요.
마지막
기회예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410 #222

By EDITOR'S LETTER

“타쿠야. 머리끈 있니?” “벌써 몇 개째인지 모릅니다.”

“네오는 어디 간 거니?”
“분명 방금 전까지 4층에 있었는데.”

“티싱, 내 지방시 별 스커트 어디 갔는지 알지?” “그거 연무장길 3층에 있나 보죠, 뭐.”

“던, 그 버질 아블로가 사인한 책 1층에 있니?” “그게 뭔데요?”

“추석 연휴에 나랑 보러 갈 사람?” “······.”

머리끈, 네오, 아카이브 피스, , 친구? 사람? 사랑?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미련 따위는 버리는 것이 순리라는 것에 대하여. 찾는다 해도 또다시 사라질 것이 뻔한 것들에 대하여.

조심스레 밀었던 유행어, 뭔지 아시죠?

어느 누구도 내 마음을 모를 테지만
행여 위안이라도 삼으려 수백 번도 넘게 던졌던 그 말, 뭔지 아시죠?

스스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사라지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면서,

뭔지···. 뭔지······. 아잉··· 진짜··· 뭔지······.

아. 시. 죠?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9 #221

By EDITOR'S LETTER

음악을 모른다.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 그저 그 냄새와 스타일을 좋아한다.
말투도 눈빛도 먹거나 마시거나 자는 모습도.

피트 도허티를 좋아한다.
특별히 에디 슬리만이 찍은 피트 도허티.
그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리버틴스라는 그룹을 했다는 것도 지금에야 알았다.

단지 그가 키가 크고
어떤 비율을 갖고 있으며
어떤 스타일을 즐기고
어떤 입술
어떤 콧방울
어떤 손 모양을 지녔는지는 그릴 수 있다.

따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따라 했다.

그런 재킷
그런 페도라
그런 피케 셔츠
그런 벨트
그런 메이크업
그런 흐느적거리는
그런 그런
그런 거.
한때 피트 도허‘범’이라 불릴 정도로.

사실 나는 다 그렇다.
음악도, 영화도, 그림도, 스포츠도, 정치도
뭐, 그 외 세상이 인정하는 어떤 그런 인문학적
뭐, 그런 장르 다 포함해서 다.

다 나는 사실 그렇다.
나는 사실 다 그렇다.
다 사실 나는 그렇다.

겉만 본다.
스타일만 본다.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만 본다.

그게 나는 사랑스럽다.
그런 나라서 기쁘고 좋아 죽겠다.

완벽하지 않은데,
명확하잖아.

마치

처럼.

 

이겸
李兼
Guiom Lee

202409 #220

By EDITOR'S LETTER

무딘 나날이다.
뾰족한 게 없다.
내가 못 찾는 건지, 찾을 만한 게 없는 세상인지
뭐가 됐든 평이하다.

실존주의를 떠올린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 꽤 영향을 받았다.
그중 그 <구토>.

실존주의? 별거 아니다.
옳고 그름이 따로 없는 거다.
신념은 스스로 정하는 거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자유롭되 책임을 지는 것이다.

10대 시절 탐닉한 실존주의는 3년여 도쿄 생활을 통해 증폭됐다.
세기말과 밀레니엄 초, 버블경제 말미가 낳은 고유의 일본식 개인주의가 더해졌달까.

책으로 배운 실존주의에 행동으로 배운 개인주의를 장착한
나는,
자신만만했던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떤 기막힌 세련됨을 갖추게 될 줄 알았다.

웬걸,
되레 허겁지겁 됐다.

나 스스로 정의해서
내가 짜고 생각한 개념은,
또 그 안에서 나름 창조라고 짜낸 내 신념 나부랭이 같은 것들은,

유교(곧 죽어도 강조하고 싶다) 사회라는 틀 안에서
숫자로도
기갈로도
망치로도
도깨비로도
도저히 결코 안 되는 것뿐이었다.

돌겠네,
미치광대.

애매한 시대라고, 시대를 탓할 만큼 유치하진 않다.

근데 드러나면 죽잖아.
감옥이잖아.

기회는 소심하고 시간은 대범하다.
청춘은 순식간이다.

말을 안 하면 그 순간은 끝나요.
삽시간에.
연기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요.

병신의 반격이 필요하다.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