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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6 #258

By EDITOR'S LETTER

파리행을 접었다. 출국 당일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상고온이라고 했다. 2년 만의 파리였다.

짐을 다시 푸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게 무서웠다. 적응된다는 것. 어디도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

끝난 건 아니니까. 파리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고, 비행기는 내일도 뜬다.

자존감. 자신감. 그런 건 어디서 오나 오래 생각했는데, 결국 고생에서 온다.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사라지니까.

사진을 안 찍은 지 오래됐다. 아직은 멀었다. 멀었다는 걸 아는 것도 어디쯤 왔다는 뜻이라고 믿기로 한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 안 된다는 말을 들을 때 내가 그 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게 되는 것.
아끼면 사라진다.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가야 그게 답이 된다.

우주에 하나 남은 것. 희소성. 경매가 전시가 되고, 그 모든 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욕심을 다 차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계속한다.

구름이 예쁘네.

살아 있다는 것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그것마저 기세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

이름을 바꾼 게 도움이 된다. 전화번호도 바꿨다. 후회는 늘 하고 싶은 대로 덜한 것들에서 왔다.

로망. 취향. 손편지. 〈데이즈드〉를 하면서 빼곡하게 받았던 수많은 것.

12일 뒤면 아홉 살이다. 렉스트림. 이젠 더는 철없다고 할 수도 없겠네.

아홉 살의 기세로. 자기 객관화라는 평생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홉 살, 고생했어. 나 자신에게 주는 뽀뽀 선물로.

쪽.

텍스트로라도 입술을.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 SUMMER #257

By EDITOR'S LETTER

소년을 봤다.
정확히는, 도쿄를 봤다.

예상하지 못했다.
그곳이 그대로, 그렇게 거기 있을 줄은.

1999년과 2000년, 내가 살고 일하고 매일 자전거로 누비던 거리.
열아홉과 스물의 내가, 자전거 바퀴 자국처럼 아직 지워지지 않고
거기 있었다.

2년이었다. 두 발로 밖을 나서지 못한 시간이.
그 방 안에서 결심했다.
언젠가 다시 걷게 되면, 그래, 그땐 꼭 그곳에 가겠다고.
소년을 만나러.

그렇게, 절룩이며 찾아갔다.
한 걸음마다 기억을 하나씩 들어 올리면서.
그 동네로, 그 냄새로, 눈에 담아두었던 공기와 내음 속으로.

그러다 발견했다. 1년 넘게 일하던 라멘집. 후쿠신 이케부쿠로점.
사라진 줄 알았던 것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가,
늘 내가 만들던 라멘과 쇼가야키와 교자를 시켰다.
김이 올라왔다. 26년 전의 온도가, 같은 그릇 위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부산 출신 아내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신랑으로,
어린 나에게 매일 밥을 챙겨주던 야바라키 점장이 본사 영업부장까지 지내고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설거지 담당으로 들어간 내게 요리까지 가르쳐준 사사모토 선배가 몇 해 전까지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고 싶다.

울었다.
아니 쏟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곳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26년 전과 똑같은 그 창밖을,
그 창밖을 바라보던 소년을, 다시 만났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똑같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니.

어떤 희망조차 품을 수 없던 그 소년의 고독을,
그때의 공상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그때의 몸부림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유리가 너무 두꺼웠다. 26년만큼.
흰 모자와 앞치마를 두른 소년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내 손끝도, 내 부름도, 끝내 닿지 않았다.

몇 달을 지내던 기숙사는 찾았다.
2년 넘게 살던 센카와의 집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곳은 유독, 너무도 변해 있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미 충분했다.
26년이라니.
난.
난…

허락해 줄래.
이젠 더 이상 그때의 나를 위로하지 않아도 되는지.

용서해 줄래.
네가 견뎌준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나를.

보내줄래.
내가 떠나면 그 시절을 이제 그만 그 창가에 두고 가게.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 #256

By EDITOR'S LETTER

사람을 만나는 일을 줄이고 있다. 웬만한 대화는 AI를 통해 나눈다. 나가지 않아도 견문은 넓어지고, 사사로운 부침 없이 여유롭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 만난 사람은 더 강렬하게, 더 오래 박힌다. 이 효과가, 나쁘지 않다.

그런 와중에 마티유 블라지를 만났다. 뉴욕에서 펼친 샤넬의 메티에 다르 컬렉션을 다시 불러내는 서울의 레플리카 컬렉션. 그 쇼를 위해 그가 이 도시를 찾았다. 우리는 지난겨울부터 이 여정을 준비해 왔고, 그날은 그 대장정의 절정이었다. 쇼는 내일이었다. 옷은 아직 걸리지 않았고, 음악은 아직 울리지 않았으며, 도시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 하루 전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샤넬에 온 지 1년. 1년이면 열 개의 컬렉션이라고,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한 해에 열 번, 세계를 새로 그린다는 뜻이었으니까.

우리가 앉은 곳은 63빌딩 옆, 큐비즘이 내걸린 새 미술관 퐁피두 한화였다. 그는 큐비즘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췄다. “Cubism arrived pre-war, but it predicted the future.” 큐비즘은 전쟁 이전에 등장했지만, 미래를 예측했다. 과거가 미래를 먼저 본다. 그는 그것을 사유의 지형mindscape이라 불렀다. 각기 다른 정신 상태가 한 화면 위에 포개진 풍경. 백남준의 스크린을 떠올리며 어쩌면 자기만 보는 연결 고리일지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그 연결을 함께 보았다.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면서 동시에 미래로 달려가는 도시. 그것이 그가 본 서울이었고, 내가 매일 보는 서울이었다.

패션도 순환한다. 1970년대 바지와 1990년대 신발이 한 사람의 몸 위에서 공존하는 시대. 특정 시대의 스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The decades for me, they’re not so im-portant. You can just borrow and then translate.” 시대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빌리고, 번역하면 된다. 시대를 소유하지 않고 통과시키는 사람의 어법이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많은 역사에서 어떻게 하나의 비전을 길어 올리는가. 작업, 그리고 직감이라 했다. 프레임은 샤넬이다. 그 안에서 그는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만 꺼낸다. 때로는 어떤 패브릭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거기서 시작되니까. 르사주, 몽텍스, 르마리에, 마사로. 장인들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그는 가장 기뻐한다. 그 말이 좋은 대화의 시작이기에. “Me, I can dream. I love techniques. But you can never do it alone.”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기술을 사랑한다. 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혼(魂)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꿈과, 그 꿈을 손으로 옮기는 이들 사이에.

가브리엘 샤넬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가 가장 단단해졌다. 그는 재봉사의 옷,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의 옷을 가져와 귀족의 옷으로 다시 맥락 지었다. 그렇게 계급의 위계 그 자체를 지웠다. 움직여야 하는 사람을 위해 옷을 지었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옷을 통해 같은 기능을 쥐여 주었다. 오늘 아침 티셔츠를, 슈트를, 바지를 입은 모든 여성은 그 근본을 매일 다시 비춘다. “You dig in the past to unlock the future.” 과거를 파고들어, 미래를 연다. 그는 그것을 집중이 아니라 퀘스트라 불렀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갈지 안다고. 그러니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샤넬은, 내일이 있다.

좋은 대화는 그런 것이었다. 한 사람의 과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모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When it’s about culture, it can never be wrong.” 문화에 관한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틀릴 수 없다. 문화는 그렇게,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샤넬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샤넬은 있다.

파리, 뉴욕, 서울을 오가며 오직 그 하루의 쇼를 위해 달려온 7개월을, <데이즈드>의 웹과 소셜 채널을 통째로 샤넬에 빌려준 그 일주일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20년이 넘는 기자 생활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을 장면 중 하나로.

오랜만에 직접 청소를 했다. 몇 년 만에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새집으로 찾아오는 날이 내일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AI와의 만남을, 10퍼센트쯤 줄여야겠다고. 견문은 그렇게 넓어졌지만, 박히는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있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 #255

By EDITOR'S LETTER

원치 않는 변화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겪은 사고 같은 것이다.

2024년 6월, 파리에서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왼쪽 하퇴부.
정확히는 한 번의 부주의.
정확히는 그 이후의 모든 것.

6개월 간격으로 세 번의 수술을 거쳤다.
세 번 다른 침대,
세 번 다른 병원,
세 번 다른 표정,
그러나 같은 상태.

매 수술 뒤에 3~4주간 씻지 못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몸은 견뎠다.
머리는 어려웠다.

몸은 견뎌도 머리는 어렵다.
이 문장을 처음 썼을 때 나는 그게 비유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머리. 두피와 모발과 그 사이의 땀과 비누 거품과 헹굼의 문제.
도움이 필요했다.

첫 수술 후 관리부장의 제안은 전문가를 쓰는 것이었다.
고민은 비용보다는 불편함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 머리를 만진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내 부서진 다리를 본다는 것.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가 작아진다는 것.

뭐가 됐든 머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감고 싶었다.
정확히는 헹구고 싶었다. 그 한 가지.

돈 버는 것은 쉬워도,
저장된 전화번호가 5000개가 넘어도,
머리 감겨줄 사람은 없었다.

첫 수술 후엔 뻔뻔했다.
“좀 도와줄래?”
비교적 그 말이 입에서 가볍게 나왔다.
어쩌면 응석이었다.

두 번째는 달랐다.
도와준 사람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맙다는 말은 받은 마음의 무게를 다 담지 못한다.
자신의 귀한 오후 시간을 내려놓고 내 욕실 앞에 앉아 있던 그 시간, 미지근한 물의
온도를 손등으로 살피던 그 정확함, 그것은 도저히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없다.
무언가 대신할 것을 찾느라 두피의 시원함을 잊었다.

세 번째는 처음 한두 번 도움을 청하고 그 뒤엔 참았다.
참았다는 말은 부정확하다.
그만두었다.
잠수를 탔다.

휴대전화를 뒤집어놓고, 메시지의 미리보기를 끄고,
이메일도 알람을 끄고 쌓아두었다.

연락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래도 세상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다 내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달라졌다.

부러진 다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머리를 감겨 주는 사람과 안부를 묻는 사람.
다른 무게, 같은 단어로 부를 수 없는 것들.

내게 서울은 무관심을 후벼 파는 이용利刃이다.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필요 없는 곳이자
스스로 살아남는 방식을 깨달아야 하는 곳.

서울은 묻지 않는다.
서울은 강요하지 않는다.
서울은 옆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히 서울은 견딜 만하다.

지금 나는 90퍼센트 정도 회복되었다.
10퍼센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괜찮다. 완전했던 적이 없는 것을 완전히 잃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니까.

다리는 계단을 오르고, 계단은 다리를 시험한다.
나는 다시 걷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걷지는 않는다.
그 다름이 좋다.

때론 원치 않는 변화도 있다.
그 변화의 뒤에 원치 않는 깨달음도 있다.

사람의 무의미,
관계의 가벼움,
만남의 헐거움,
서울의 침묵.

그래서
나는
계속

계속.

+머리를 감겨 주고, 휠체어를 끌어주고, 수년 간 나를 부축해 준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호명
李浩銘
Homeón Lee

2026 ICON #254

By EDITOR'S LETTER

 텍스트의 시대다.

질문하는 자가 이긴다.
말하는 자가 해낸다.
능력은 거기서 갈린다.

한때 침묵은 미덕이었다.
얼버무림,
은유,
감춤,
드러내지 않는 전달.
여백이 품격이었고,
말을 아끼는 자가 깊다고 믿었다.

이제는 아니다.

AI를 다루려면 표현해야 한다.
제대로, 원하는 바 그대로.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AI, 다른 인간,
전혀 다른 결과.

누구는 도구를 얻고,
누구는 거울을 얻고,
누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차이는 기계에 있지 않다.
입을 여는 자에게 있다.

표현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그것이 가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표현.
말, 혹은 텍스트.

Deep Entertainment. 

감정을 연습해.
욕이라도 좋으니.

질문이 답을 이겨.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 BEVERAGE #253

By EDITOR'S LETTER

카뮈의 〈전락〉은 암스테르담의 술집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클라망스는 그곳에서 매일 밤 낯선 이에게 자기 고백을 늘어놓는다.
과거엔 잘나가던 파리의 변호사였다고. 그런데 어느 날 밤 센강 다리에서 여자가 뛰어내리는 소리를 들었고, 멈추지 않았다고.
그 이후로 그는 법정 대신 술집을 택했다.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편집장 자리에 막 앉은 직후였다.
멈추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안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먼저 던져지고, 그다음 스스로를 만든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만들었나.
〈데이즈드〉.
텍스트, 그래픽, 스토리텔링, 이미지. 마감. 또 마감. 인간을 선명하게 기록하는 일.
그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덜 알려진 뒷얘기가 있다.
사르트르는 상금을 포기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신념도 신념이지만, 가난했다.
실존주의자도 돈은 아쉽다. 나는 이 대목이 제일 좋다. 위대한 철학자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
클라망스는 타락한 뒤에야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나는 예상보다 오래 한우물을 달렸다. 그게 더 무서운 버전일 수도 있다.

로런츠 하트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뉴욕타임스〉의 한 평론가는 썼다. “하트의 발라드 가사는 자신이 사랑받기엔 너무 못생겼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심장을 멈추게 하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는 키가 150cm를 조금 넘었고, 평생 자신을 혐오했다. 게이였고, 1940년대 뉴욕에서 그건 불법이었다.
그는 호모 섹슈얼리티에 대한 영구적 죄책감 속에 살았고, 사랑에 대한 가사를 수백 곡 썼지만
성숙하고 대등한 관계를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의 가사들, “My Funny Valentine”,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Blue Moon.” 한 전기작가는 썼다.
하트의 가사는 파티에서 배제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문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 자신이 보잘것없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느낌.
그 감정들이 전부 노래가 됐다. 천재의 자기혐오가 세기의 스탠더드로 살아남았다.
그의 오랜 파트너 리처드 로저스가 〈오클라호마!〉 개막 파티를 연 그 밤, 하트는 다른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8개월 뒤, 그는 자신이 즐겨 찾던 맨해튼 8번가의 바 앞 인도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폐렴으로 4일 뒤 죽었다. 48세였다. 클라망스는 술집에서 고백했다. 하트는 술집 앞 길바닥에서 끝났다.
둘 다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만 하트는 멈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자 농구의 전설 위성우는 14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8회, 통산 340승을 쌓고 스스로 코트를 떠났다.
그가 말했다. 기회를 주지 못한 선수들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고.
클라망스가 다리 위에서 멈추지 않은 것처럼, 하트가 술잔을 내려놓지 못한 것처럼, 위성우는 그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 기억을 안고 산다.
위대한 사람의 죄책감은 이런 모양이다. 트로피가 아니라 얼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위성우의 버전은 다르다. 타인은 내가 못 갚은 빚이다.
랭보는 19세에 시를 그만뒀다. 카뮈는 노벨상 상금으로 프로방스에 집을 사고,
기차 대신 친구 차를 탄 날 죽었다. 아무 예고 없이.
하트는 〈오클라호마!〉 개막 8개월 후 48세에 죽었다.
그 밤 사르디스 바에서 마지막 고백을 쏟아낸 뒤.

〈페스트〉의 의사 리외는 묻는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왜 계속 일하느냐고.
답이 없다. 그냥 의사니까. 그냥 여기 있으니까.
나도 그렇다. 왜 18년째 마감을 하느냐. 그냥 편집장이니까. 그냥 여기 있으니까.
스포츠와 위스키는 이 질문을 잠시 유예시킨다. 경기가 시작되면 생각이 멈춘다.
잔을 따르면 판단이 부드러워진다. 이게 쾌락이 아니라 자유인 이유다. 의미를 잠깐 내려놓는 자유.
클라망스는 매일 밤 술집에서 고백했다. 하트는 마지막 밤을 바에서 보냈다.
사르트르는 상금을 포기하며 씁쓸해했다. 나는 가끔 경기를 보며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는다.
다 살아 있는 방식이다. 각자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윤리는 순리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신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ENHYPEN_DAZED

202605 #252

By EDITOR'S LETTER

 〈데이즈드〉 코리아, 〈데이즈드〉 대한민국의 18년은 역발상의 여정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가는 기개 넘치는 탐험이었다.

혈혈단신으로 런던의 〈데이즈드〉 UK 오피스에 찾아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을 때
고작 100만원 남짓 갖고 기존 팀원들과 〈데이즈드〉를 계속하자며 의기투합했을 때
가로등 불빛조차 없던 성수동 연무장길 1로 사옥을 이전했을 때
그 구두 공장을 사무실로 바꿀 비용이 부족해 찜질방 인테리어 전문 사장님을 졸라 건물 수리를 의뢰했을 때
코로나19가 발발해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던 시기에 필름 프로덕션 레이블을 론칭했을 때
10년 전부터 VFX 디자이너를 연이어 채용하며 렌더링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직함 대신 내 이름을 불러달라며 모든 팀원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
‘게이즈드’라는 별명이 뿌듯하다며 LGBTQ+를 향한 각종 콘텐츠와 이벤트를 거침없이 진행했을 때

안 된다고 했을 때
아니라고 했을 때
희한하다고 했을 때
도망가라고 했을 때
에디터 사관학교라고 했을 때

나는, 우리는, 〈데이즈드〉는 이것을 꾸준히 새겼다.
잡지사가 아니다.
잡지가 아니다.
기자‘님’이 아니다.

〈데이즈드〉에 단 1분이라도 머물렀던 모든 이에게,
〈데이즈드〉를 지지해 준 모든 이에게, 

고맙다.
부족하다.
미안하다.

열여덟 살의 〈데이즈드〉는 그래서 한없이 울고 있다.
어리다고,
기다려달라고.

이번 생일에도 커버에 자축의 말은 없다.
그럴 만한 자격이 생기는 날까지,

〈데이즈드〉,
모순과 충돌,
역발상.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 Summer #251

By EDITOR'S LETTER

기억이 집요하다.

풀잎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던 사람.
초여름 냄새는 이렇게 다르다고 알려 준 사람.
열 살의 나는 오래 기다렸고,
기다리는 법 대신 사라지는 법을 배웠다.

떠난 것들은 몸에 남는다.
그게 전부였다.
다행이다.

모른다는 게 무섭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다쳤다는 건 안다.

의지였는지,
우연이었는지.
누구 덕인지, 탓인지.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아이가 됐다가
학생이 됐다가
어른이 됐다가.
응원했다가
놓았다가
미련했다가.

이름을 지운다.

호메옹,
지워서 빚은 그릇.

도망이 아니다.
담기지 않을 때
새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걸 통과라고 부른다.

나를 썰어낸다.
슬라이스처럼, 먼지처럼.
균열 사이로만 빛이 든다.

열 살의 아이를 기다린다.
풀 이름을
초여름 냄새를
사라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해 주려고
입술을 폈다 오므린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04 #250

By EDITOR'S LETTER

사랑이 있었을까.
사람이 있었을까.

역발상과 집요함,
통찰과 차별,
창의와 포용.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순발력과 추진력,
자존감과 솔직함,
공감과 친화.

단 한 사랑.
단 한 사람.

순수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비전.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

저도, 두렵습니다.
사랑과 사람.

강하든
약하든
방향이 맞지 않든
받지도 주지도 못 하니
못하는 것,
헤메는 것.

당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길 바라봅니다.
아프지만 마셔요.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202603 #249

By EDITOR'S LETTER

쇼에 가고 싶어요.
패션위크 가고 싶어요.
20년 넘도록 다니다 다리 부상 후 2년여간 멈췄더니, 그게 그렇게 탐나요.

다닐 때는 몰랐어요.
피곤해, 힘들어, 지루해, 투덜거리기도.

미우치아 프라다의 다소곳한 피날레.
마주칠 때마다 뻗어주는 제퍼슨 핵의 손길.
10년을 넘게 나를 지켜주는 김태기 형, 이젠 형.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파리의 수제빗집, 항아리.
그리고 쇼가 끝나고 나면 들려오는 이야기들.
“미쳤어”, “별로”, “예상대로”, “기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에게 물었어요.
피치스 여인택 대표에게도 물었어요.

질문이 다예요. 전부예요.
질문을 잘해야 하는 시대예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요.

생각이 많아요.
이달 나는 피치올리와 피치스 대표를 만났는데,
피치피치?
운명인가?
부터
사라진 시계의 행방,
지난밤 선명히 꾼 꿈의 의미,
연애는 대체 언제부터 할 수 있는 거니?
까지

AI, 어차피, 싹 다.
전화를 안 받아요.
메신저도 최소화할래요.

네,
그래서 쇼에 갈 거예요.

깨끗하게 다 뱉고 게워내려면
그것만 한 게 없어요.

쇼 주세요, 쇼.
내 약.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