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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510 #241

By EDITOR'S LETTER

“그래, 현범아. 딱 중학교 2학년, 그 정도 친구가 읽을 때 술술 읽힐 정도로 써.
어렵지 않게. 그게 좋은 글이야.”

그거 아는가?
인생 첫 편집장의 조언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쉽게 쓴다.
뭣하러, 어려운 말 찾지 않는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가식이다.
독창적 노력 끝에 자주적 성공을 보장할 때에만 허용한다.
부사나 형용사를 씀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경우에만,
즉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구어체, 문어체 경계 없다.

그러고도 많았다.
시간이 흘렀기에 몇 개는 버렸고, 몇 개는 새로 지녔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한 번에 써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읽지 않는다.
읽고 고쳐 쓰면 문장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한 거다.
죄를 쓴 거다.
검열보다 원초를 택한다.
이성적인 모든 것을 제거한다.

뭘 쓸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시작했다.
뭘 많이 보거나 뭘 많이 먹거나 뭘 많이 생각하거나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보다 더하게도 필요했다.
대신 순식간이었다.
지체 없이 빠르게 꽂았다.
아니 취권처럼 흐느적대며 갈지자로 세상을 내뺐다.
지렁이 글.
글 지렁이.

시간이 또 흘러 글만큼은 늙지 않기를 바랐다.
소년의 글은 무엇일까.
글의 판을 벌인 주체도, 글에 놀아나고 있는 주체도 모두 나 자신이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면 경지에 오른 거다.
젊다 못해 어린 글,
시간 지나고 봐도 지금 글.

기억에 없다.

신주쿠 서구, 40층이 넘는 빌딩 꼭대기 층 레스토랑에서 홀로 청소를 했다.
새벽에, 서너 달 동안.
출근 첫날 내 몸집의 세 배만 한 쥐가 튀어나왔다.
도망쳤다.
울었다.
돈이 필요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근했다.
간절하게 다가가니 쥐들도 나를 받아줬고,
이윽고 그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두 달이 돼도 월급을 주지 않았다.
사장이 다니는 한인 교회까지 찾아갔다.
씨발, 타국에서 제일 믿지 말아야 할 게 자국인이라더니.
씨발, 서너 달치 합해 한 50만 엔 됐는데….
결국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게 된 마지막 날,
청소를 마치고 울고 있는 내게 쥐들이 찾아왔다.
아빠 쥐, 엄마 쥐, 아이들 쥐, 일곱 마리는 족히 넘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 나보다 훨씬 컸다.
쥐들이 말했다. “당신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생생하다.
기억에 없다.

스티븐 킹이 자신이 쓴 기억에 없는 소설이 많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그랬다.
옛날에는.

맘에 드는 영화를 만나기가 어렵다.

글 쓰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세상은 문학에 관심이 없다.

4961, 3681, 1649, 2689…
머릿속에 지네라도 들었나.
어디 가서 내가 10년간 이런 생각 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이그니스 리 李兼 Ignis Lee

2025 Jewel & Watch #240

By EDITOR'S LETTER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하필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애를 가져가 버렸다.

손을 본다.
바닥은 괜찮은데, 등이 늙었다.
손거상수술도 있다고, 트렌스젠더가 속삭인다.
효과는 있으나 수술 자국이 티가 많이 난단다.
마블 캐릭터 네일 아트나 버터 향 핸드크림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뭘 해도 예쁜 그 언니가 끼고 있던 예쁜 반지,
그 언니가 앞으로 꼭 살 거라던 팔찌,
엄두도 못 내지만 꿈에 매일 나오는 그 시계.
손을 본다.
필요하다.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그렇게 사귀자고 졸랐을 때 받아줬더라면,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그 애를 빼앗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됐다면 현재의 나는 거들떠도 안 보던 걔를 억지로 사귀어야겠지만, 그 누구도 몰래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그 애와 사귀고 있을 수 있었을까?

목을 본다.
정확히는 턱, 늘어졌다.
갖은 레이저와 시술을 경험했으나 턱을 깎지는 못 했다.
턱선이 날렵한 트렌스젠더 언니에게 DM을 보내 강남역 성형외과까지 찾아갔지만, 예약금 70만원만 날렸다.
겁난 것도 반, 더 처진다는 경고도 반.
귓불에 안착해 턱선의 처짐, 그 시작을 교란시킬 귀고리.
목, 턱은커녕 팔자와 미간 주름까지 기억상실 효과를 선사할 목걸이.
체인도 좋지만, 초원의 동물이든 전설의 생물이라면 더욱 흐뭇할 바로 그 목걸이.
목을 본다.
간절하다.

거들떠도 안 보던 걔가 진짜 하필이면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애를 가져가 버렸다.

1. 셋이 같이 만나주든가.
2. 내놔.

“또래가 좋아요.”

이 모든 게 거울 탓이다.

202509 #239

By EDITOR'S LETTER

K-팝에는 많은 공이 있다.
그중 우리 글과 말의 세계화에 그 어떤 언어도 해내지 못한, 불가사의한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의 가사화.

나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한다. 랩을 한다.
나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 같은 얼굴로, 스타일로.
이름을 듣지 않았다면 차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전 세계 콘텐츠를 장악한 K-팝 뮤지션의 실로 다양한 국적, 블러드.

“며칠 전 일곱 살 난 옆집 아이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K-팝 가사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아이는 미국 아이죠.”
미국 SM엔터테인먼트 SVP(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 출신으로, 현재 타이탄콘텐츠의 CMO인
돔 로드리게스Dom Rodriguez가 K-팝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며 들려준 에피소드다.

Step by step, oo baby, gonna get to you, girl~.
1990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노래를 굳이 ‘영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불렀듯, K-팝이 한국어가 아닌 가사로서 전 세계에 울려 퍼진다.

언어는 공부다.
가사는 친구다.

언어는 암기력이다.
가사는 중독적이다.

언어는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다.
가사는 듣고 부르고 춤추는 것이다.

“넌 K-팝으로, 아이돌로 장사하는구나.”
2015년 가을 〈데이즈드〉 편집장을 시작한 이래 꽤 긴 시간 종종 들은 말이다.
그때마다 리애나를, 저스틴 비버를 서양 패션 매거진에서 촬영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르냐며 맞섰다.
이젠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온오프라인 서점을 장악하는 K-팝 아티스트의 매거진 커버를 볼 때마다 뭔가 ‘깊숙이’ 남다르다.

얼마 전 2016년 8월 8일 데뷔한 블랙핑크의 9주년 소식이 들려왔다.
2017년 4월호 제니의 첫 단독 커버를 담고, 제니가 서점에서 〈데이즈드〉를 들고 반가워하던 사진을 본 게 진심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축하할 일, 대단한 일, 엄청난 일.
차고도 넘치는 경사 속에서 내일을 명상한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격려가 심상치 않다.
그 무엇보다 우선 편견과 차별을 버린 포용 정신이 필요하다.
세계화된 내면으로 외치는 언어여야만 세대를 잇는 진짜 문화가 될 수 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9 #239

By EDITOR'S LETTER

“널 의심하지 않아? 그런 느낌 알아? 시내에 나갔는데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사람들이 다 나만 보는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애니스가 잭에게 묻는다. “그럼 그 동네를 떠나.” 잭의 대답에 애니스는 가당찮은 조언인 양 비아냥댄다. 2000년대 초반(벌써 20여 년 전이라니 놀랍지만), 그 시절엔 나도 그랬다. “여자친구 있어요” 그렇게 말하거나, “요즘 괜찮은 여자가 없네요”라거나, “무성애자예요”라고. 출근하면서부터, 그러니까 질풍노도, 부정과 혼돈의 10대를 거쳐 사회에서의 나는 어떤 가면을 쓴 채 살아야(만) 했다. 마치 애니스처럼 세상이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그렇지만 그 동네(사회)를 떠날 수는 없는.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네가 알까? 난데, 내가 맞는데, 내가 아니어야 하고, 그러니까 진짜 나 자신은 계속 작아지고 불쌍하고 또 그걸 인정하기 싫고, 그러나 그렇다고 가짜인 나로 살기엔 참을 수 없고, 병신 같고, 막 그런. 누군가는 그럴 거다. 네 그 불같은 성격에? 게다가 넌 그 어느 사회보다 열린 패션계에서, 그중에서도 최첨병인 패션 에디터였던 네가? 누군가는 모르니까 그러는 거다. 그 시절엔 발각돼서 쫓겨난 선배, 동료가 많았다는 걸. 마치 개죽음 당하는 잭을, 허구일 거야,라고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편한 너처럼, 나처럼. 2 결국 나는 둘로 나뉠 수 없으나 둘이 돼야 했다. 그리고 이 둘은 창의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했다. 사회의 나와 진짜의 나, 모두 매력적이어야 했고, 결국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그 두 개의 나, 그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했다. 꽤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발견한 방법은 단순하되 아팠다. 내가 나에게서 분리돼 나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내 손에 쥔 메스를 들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피가 낭자했고, 아리는 고통이 온몸의 구멍을 틀어 막았다. 욕을 못하는 게 다행이야. 아물 수 없는 공존, 곧 평화다. 확장이다. 숨 쉴 수 있다. 이보다 현명할 수 없다. 애니스와 잭, 나와 나, 예술과 패션, <데이즈드>와 메종 마르지엘라, 정희민과 조율. 아 참나, 먹고 먹히는 게 아니라니까. 그런 건 그런 거라니까. 죽도록 사랑할게Loved to Death. 그걸로만은 안 돼. 난 나를 둘로 쪼개봐서 잘 알아. 그래서 이게 맞아. 맹세할게. 그 경계를 허물어봐서 잘 알아. 메종 마르지엘라, 그러듯.

“Don’t you ever feel like people are suspicious of you? Like when you’re out in the city, and it feels like everyone’s watching, like they all know something?” Ennis asks Jack. “Then leave that town.” Jack replies. Ennis scoffs, as if the advice is absurd. It was the early 2000s. (Hard to believe that was over twenty years ago). Back then, I did the same. I used to say, “I have a girlfriend.” “I haven’t been meeting many women I really click with lately.” Or even, “I’m asexual.” From the moment I stepped out for work, I wore (had to) a mask— After the storms of adolescence, this was how I had to live in society. Like Ennis, under the gaze of suspicion, unable to leave “that town(society).” How do I explain this so you’ll understand? I was me—but I couldn’t be. The real me kept shrinking, becoming pitiful— and I didn’t want to admit it. But living as a fake me was unbearable. Pathetic. Messy. That kind of thing. Some might say, “With your fiery personality? In fashion, of all places? Weren’t you an editor—at the forefront of the most open industry?” Some just don’t know. Back then, we watched senior editors and colleagues get outed and ousted. Like how it’s easier to believe Jack died a fictional death— That’s how I coped. How you coped, too. 2 In the end, I couldn’t truly split in two. But I had to become two. And those two selves had to speak to each other. The public me and the real me— Both needed to be compelling. Both wanted to be loved. To get there, I had to erase the line between them. After years of grappling, I found a way— simple, but painful. I had to see myself from outside myself. I picked up the scalpel and sliced myself clean in half, from head to toe. Blood spilled. A deep, aching pain sealed off every part of me. It’s a relief, not knowing how to curse. An unhealable coexistence— That’s peace. That’s expansion. I can breathe. Couldn’t be wiser than that. Ennis and Jack. Me and me. Art and fashion. <DAZED> KOREA and Maison Margiela. Chung Heemin and Joyul. Oh, come on. It’s not about consuming or being consumed. It’s just what it is. I’ll love you to death Loved to Death. Love alone is not enough. I know this, because I’ve split myself before. That’s why this feels right. I swear. I know what it means because I’ve broken the boundary myself. Just like Maison Margiela does.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8 #238

By EDITOR'S LETTER

아침을 깨우는 것은 알람 소리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 소음이다.
올 초부터 이어진 이 소음은 한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전 양해를 구한 몇 집, 그러지 않은 집 등 여러 집이다.
참다 못해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언제까지죠?”
“8월 말까지라는데요, 아파트가 오래돼서 그래요. 다 공사하고 이사하려고 하니까요.”
친절하면서도 꽤나 여러 번 같은 답을 한 것처럼 기계적이기도 한 상대의 답에 내가 택할 수 있는 마무리는 별게 없었다.
“아, 네, 그렇죠. 그렇군요. 그렇겠네요.”
나 같아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응당 공사를 하겠다, 싶다.
소음을 잠재우는 방법은 유튜브를 켜는 거다.
한창 뉴스 중독 시기라 도움이 되는 소음이다.
보지 않아도 누가 패널로 참여했는지, 무슨 심산으로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그 표정까지 보인다.
어? 비가 내리네. 창도 열었다.
빗소리는 꿀맛이다.
할라피뇨다.
잘 익은 배추김치다.
이쯤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어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비까지 온다니까.
맛있게.
다시 날 깨우는 것은 허기다.
먹어야 할 약이 있다.
삼시 세끼 챙겨 먹으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다.
이쯤에서는 일어나야 한다는 양심이 있다.
거실로 와 소파에 눕는다.
TV로 유튜브를 켠다.
음식을 주문한다.
마시던 물을 마신다.
생각한다.

패션과 스타일의 차이.
차별금지법.
AI.
저출산.
그 사람의 첫 쇼와 그 사람의 마지막 쇼.
어제 본 영화, 오늘 볼 영화.
그들이 내게 전화를 원하는 까닭과 내 입장.

수시로 배달 음식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한다.

최선의 방어.
내 일의 내일.

까마득한 1999년 12월 31일의 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요즘 얼굴에 자꾸 마비가 와서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7 #237

By EDITOR'S LETTER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문과, 이과가 통합됐다.
가슴이 따뜻한 의사, 논리적인 작가, 이런 수식어가 부질없이 들리는 것만큼이나 우린 때로 시스템 안에서 나뉨을 강요받는다.
“넌 문과적 인간이고, 난 이과적 인간이야. 그래서 우린 뭐가 달라도 달라.”
열다섯 살 시절 나눈 이런 대화처럼.

2년 전 패션, 뷰티, 피처, 디지털 등 기존 매거진의 업무 분담 시스템이
각자 지닌 고유의 성장과 개성, 역량에 한계를 둔다는 점에 반감이 들어 그 틀을 깨고 융합한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개념인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로 팀을 나눠
패션과 뷰티, 디지털과 인터내셔널, 피처와 패션 등 역할의 폭을 합치고 넓혔다.
이 개편안을 공표하는 순간 팀명의 괴랄함만큼이나 <데이즈드> 팀원들의 표정은 괴랄했다.
업계는 난감해했고, 심드렁했다.
올봄, 2년 여간 실행한 이 실험을 철회했다.
스스로 지르고, 스스로 덮은 결정이었다.
여러 사정을 고려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자라와 버렸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철회가 아닌 포기다.

면접 때 자주 묻던 질문이 있다.
고정관념이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깼던 일탈이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은 만족할 만한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때로는 예의이고, 때로는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며, 또 때로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답이란 게 놀랍게도 그 당시 감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 0.1초 앞의 미래도 볼 수 없다.
고로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그 뜻, 법, 상식, 잣대, 시스템?
이것이 진정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가.
차별과 갈등, 혐오가 빚어낸 비인간의 시간, 인간에게 주어진 그 자격이란 것.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지 않을 방법은 이 정도다.
용서, 포용, 나로서는 동정.

자본주의에 목맨 무언의 자유가 치솟는다.
겁난다.
우린, 같다.
거기서 거기다.
귀엽고 가여워.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Girl #236

By EDITOR'S LETTER

엄마와 사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속 터 놓을 친구를 둔 사람이 좋아요.
컴퓨터나 휴대폰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아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은 호기심 있는 사람이 좋아요.
앞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같이 영화 볼 때 집중해 보는 사람이 좋아요.
그때, 결말을 미리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얌전히 운전하는 사람이 좋아요.
포용과 박애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좋아요.
흑과 백, 다수결 논리에만 꽂히지 않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아요.
깊이는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사람이 좋아요.
밥 먹을 때 뭐라고 안 하는 사람이 좋아요.
단점이나 실수를 곱씹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눈을 마주치고 건배하는 사람이 좋아요.
공부하는 사람이 좋아요.
편견 없는 사람이 좋아요.
‘퀴어’라는 단어를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내 편인 사람이 좋아요.
안아주는 사람이 좋아요.
안기는 사람이 좋아요.

이 중 하나만이라도 돼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6 #235

By EDITOR'S LETTER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여름은 특히 더하다.

 아시는 분?
맡으신 분?
궁금하신 분? 

요란한 형용사로 대체하지는 않겠다.
직접 맡아야 느낄 수 있는 거고
경험과 취향을 토대로 표현될 각자의 자유니까. 

그런 게 많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들.
아무리 외쳐봐야 공허한 것들.
낱말들, 강조들, 감탄사들, 중언부언들.

 꿉꿉한데 향기롭고 슬프게 막 아린 거, 뭔지 알지? 

살을 부둥키고 백날 품어도 서로 마음이 같을 수 없단 거.
우리 이제 더 희망, 그 따위는 갖지 말자는 거. 

샛길로 새는 이유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재미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그러므로

내 편이, 내 사람이, 내 사랑이
느는 것처럼
주는 것 같아요.
주는 것처럼
느는 것 같아요.
좋은 거 아닌 게 아닌 거 같아요.

 냄새가 난다.
여름이라 그런지 요새 특히 더.
맡고 싶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505 #234

By EDITOR'S LETTER

MOTH(ER) #1

나방이 무슨 죄야.

너를 뭐라고 부를지 많이 떠올렸어.
차마 말하지 못했지.

기묘한 동정심.
끝없는 불안.

너에게 나는 빈약한 기회.
나에게 너는 낭만적인 기적.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런 말 좀 그만해.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
모든 가치의 부정.

 집착과 감시는 나비의 몫이지.
일거수일투족 보고는 너의 몫이지.

개의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빛나는 죄악.
최후의 갈구.
죽음의 관조.

맞습니다.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경탄과 가련.
무기력.
투쟁.

엄마, 나방이 보여.

그만하자고 그만해.

취한 나.

네가 좋아.
네가 좋다는 게 좋아.
네가 좋아하는 게 좋아.

취한 나.

나방이라도 되고 싶었어.
뭐로든 불러주길 원했어.

나방은 죄가 없어.

 

MOTH(ER) #2

눈을 떴더니 날개를 감추래요.
팔을 들었더니 코를 막으래요.
입을 벌렸더니 지퍼를 채우래요.

너를 향해 날아서
너의 페로몬을 맡고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고 싶거늘

아무것도 하지 말래요.
사랑이라고 하지 말래요.

왜 한계를 두나요.
왜 이게 다라고 하나요.

나는 불이 난 방에 있고
너는 비가 오는 밖에 있어요.

나비보다 못한 게 뭐라고
나비를 위해선 자기 자신까지 내려놓기도 하면서
나비의 독은 왜 나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엄마는 아는데,
그 귀여운 걸 몰라줘요.

나는 만들어요.
만들고 말 거예요.

빛이 쏟아질 그날이 오면,
조그맣고 동그랗게 입술을 떼며 말하죠.

너에게
MOTH가 있어.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래요.
같잖게.

P.S 오랫동안 준비한 옷 가게 ‘MOTH’가 오는 5월 1월 성수동에 문을 열어요.
<데이즈드>의 17살 생일, 저도 17살 시절로 돌아가 그때 그 꿈을 꿔봅니다. 오세요.
<데이즈드> 책을 들고 오시면 더 좋게, 더 따뜻하게 해드릴게요.

 

이겸
李兼
Guiom Lee

2025 Spring #233

By EDITOR'S LETTER

봄이 잘 안 오네요.
잠은 잘 오네요.

사랑은 잘 안 오네요.
마감은 잘 오네요.

만족은 잘 안 오네요.
비만은 잘 오네요.

빈말이 허공을 가르는데
뇌리에 꽂힐 것이 아니었는데
마음은 왜 이리 연약한가요.
헐겁게.

발렌시아가에서 10년을 일하고 구찌로 향하는 뎀나와
로에베에서의 11년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는 조나단 앤더슨의
첫 반응을 기억해요.

뭐지? 누구지? 왜 이리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 대체 뭘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한 달, 1년, 3년···.
고작이에요.
이 정도로는 몰라요.

뭐 그리 다 급하고 빨라요?
선택도 결정도 비난도.
착각할 수도 있잖아요.
오해였을 수도 있고요.

한 번 넘어졌다고 비아냥대는 것이 다 뭐예요?
꼬투리 좀 잡았다고 뭐든 다 싸잡아서 절벽 끝으로 몰아 남는 게 다 뭐예요?

뻥, 튀겨서
빵, 부풀리고
펑, 터뜨려서
퍽, 때리면
픽, 찢어져요.

봄이 쉽게 올리가요.
행여, 혹여, 왔다 쳐도 오래 머물리가요.

순수해서 아파서 불쌍해서 그래요, 봄이.
다 보고 느끼고 알아서 그래요, 봄이.
속이지 못해요, 봄이.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