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변화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겪은 사고 같은 것이다.
2024년 6월, 파리에서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왼쪽 하퇴부.
정확히는 한 번의 부주의.
정확히는 그 이후의 모든 것.
6개월 간격으로 세 번의 수술을 거쳤다.
세 번 다른 침대,
세 번 다른 병원,
세 번 다른 표정,
그러나 같은 상태.
매 수술 뒤에 3~4주간 씻지 못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몸은 견뎠다.
머리는 어려웠다.
몸은 견뎌도 머리는 어렵다.
이 문장을 처음 썼을 때 나는 그게 비유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머리. 두피와 모발과 그 사이의 땀과 비누 거품과 헹굼의 문제.
도움이 필요했다.
첫 수술 후 관리부장의 제안은 전문가를 쓰는 것이었다.
고민은 비용보다는 불편함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 머리를 만진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내 부서진 다리를 본다는 것.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가 작아진다는 것.
뭐가 됐든 머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감고 싶었다.
정확히는 헹구고 싶었다. 그 한 가지.
돈 버는 것은 쉬워도,
저장된 전화번호가 5000개가 넘어도,
머리 감겨줄 사람은 없었다.
첫 수술 후엔 뻔뻔했다.
“좀 도와줄래?”
비교적 그 말이 입에서 가볍게 나왔다.
어쩌면 응석이었다.
두 번째는 달랐다.
도와준 사람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맙다는 말은 받은 마음의 무게를 다 담지 못한다.
자신의 귀한 오후 시간을 내려놓고 내 욕실 앞에 앉아 있던 그 시간, 미지근한 물의
온도를 손등으로 살피던 그 정확함, 그것은 도저히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없다.
무언가 대신할 것을 찾느라 두피의 시원함을 잊었다.
세 번째는 처음 한두 번 도움을 청하고 그 뒤엔 참았다.
참았다는 말은 부정확하다.
그만두었다.
잠수를 탔다.
휴대전화를 뒤집어놓고, 메시지의 미리보기를 끄고,
이메일도 알람을 끄고 쌓아두었다.
연락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래도 세상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다 내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달라졌다.
부러진 다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머리를 감겨 주는 사람과 안부를 묻는 사람.
다른 무게, 같은 단어로 부를 수 없는 것들.
내게 서울은 무관심을 후벼 파는 이용利刃이다.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필요 없는 곳이자
스스로 살아남는 방식을 깨달아야 하는 곳.
서울은 묻지 않는다.
서울은 강요하지 않는다.
서울은 옆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히 서울은 견딜 만하다.
지금 나는 90퍼센트 정도 회복되었다.
10퍼센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괜찮다. 완전했던 적이 없는 것을 완전히 잃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니까.
다리는 계단을 오르고, 계단은 다리를 시험한다.
나는 다시 걷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걷지는 않는다.
그 다름이 좋다.
때론 원치 않는 변화도 있다.
그 변화의 뒤에 원치 않는 깨달음도 있다.
사람의 무의미,
관계의 가벼움,
만남의 헐거움,
서울의 침묵.
그래서
나는
계속
계속.
+머리를 감겨 주고, 휠체어를 끌어주고, 수년 간 나를 부축해 준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호명
李浩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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