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영어 수업 중 나온 잭의 질문이다. 왜, 어떤 연유에서 저런 질문이 나왔는지는 생략한다.
4년 넘게 하고 있는 영국인 튜터와의 프리 토킹 주제는 스티븐 호킹만큼이나,
아인슈타인과 견줄 만큼 방대하다.
어. 무조건.
빛의 속도로 대답했다.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직전까지 인간에 대한 혐오와
대인 기피, 자본주의의 몰락을 향한 테크놀로지의 디스토피아를 쏟아내던
내 입에서 1초도 걸리지 않고 나온 답이다.
살래.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든, 계속.
그러면 지구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잭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때로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라기보단 언어고, 언어라기보단 사고다. 말장난이고,
결국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 있느냐는 거다.
일종의 빙고 게임이 아닐까?
바이오 혁명을 강하게 믿는 나로서는 평균수명의 진화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60대 후반에서 80대 중반으로, 고작 이삼십 년 사이 우리네 수명은 늘었다.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고, 요즘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아이가 내 나이쯤 될 때면 평균수명이 100살은 넘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이오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만,
AI는 그 기울기를 훨씬 더 가파르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빙고 게임이 뭐?
그러니까 모두 각자 빙고 판이 있고, 엑스나 동그라미를 표시하는 거야.
암, 이건 치료가 가능해져. 동그라미. 핵무기, 이건 어떻게든 죽을 수밖에 없어. 엑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유한한 삶을 받은 인간의 수가 유한하지만은 않다는 거 아니겠어?
꼭 우주까지 안 가더라도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인구밀도가 현저히 낮은 곳이
개척될 수도 있고. 모든 문제의 발단과 결론은 의지라고 봄.
횡설수설의 연속이다. 근래 잭은 결혼했다.
영어 과외 시간을 늘려 나와는 주로 밤 9시가 되어야 두 시간씩 만난다.
그나저나 이제 좀 선선해지지 않았어?
창을 연다. 이 좋은 날, 이 예쁜 이름, 이 깊은 냄새. 초가을이다.
내년 이맘때 잭은 아내와 함께 1년간 해외여행을 떠난다. 유튜브 채널을 열어서.
나는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려 하는데, 원서 마감이 다가온다. 잭이 오늘 또 그런다.
거기 가면, 너 사랑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진짜야, 믿어봐.
우연인지 운명인지 잭과 영어 과외를 시작한 후 쭉 혼자였다.
잭을 믿어야 하나? 뉴욕을 믿어야 하나?
벌써 가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날이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