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법이 산업이 되었다.
호흡이 팔리고, 잠이 점수가 되고,
잘 살고 싶은 마음들이 1조 달러를 움직이는 시대.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잘 살고 싶어 한 적은 없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멀어진 적도 없었다.
오래 품어온 질문이 있다.
똑똑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과 좋은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뇌와 육체와 혼은
서로 다른 나라의 말을 쓰는가.
소크라테스는 광장에서 캐물었고
그 소란이 끝내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좋은 사람을 이렇게 적는다.
자기의 이야기를 끝까지 하는 사람.
그 이야기대로 사는 사람.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후회가 없다는 말은
방종의 문장이 아니다.
내가 아는 가장 엄격한 문장이다.
2년 전, 파리에서 다리가 부러졌다.
스무 달을 절뚝였다.
그때 알았다.
스스로 고르지 않은 웰니스는
형벌의 얼굴로 내려온다는 것을.
정해진 시간에 눕고
허락된 각도로 다리를 들고
승인된 걸음만큼만 걸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회복이라 불렀다.
그러나 회복은 남이 시키는 일이고
웰니스는 내가 고르는 일이다.
회복은 어제로 돌아가는 길이고
웰니스는 내일로 걸어가는 길이다.
침대에 누워 그 차이를 스무 달 동안 외웠다.
다 외운 밤, 창밖의 달에게 묻는 대신
처음으로 나에게 물었다.
오늘, 너는 너에게 정직했니.
최적화, 항염, 바이오해킹, 수면 추적.
더 나은 버전의 나를 약속하는 말들이
자꾸 나를 남의 눈앞에 세운다.
측정할 수 있는 건강은 늘어나는데
잴 수 없는 마음은 닳는다.
잘 사는 것마저
잘 보여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쓴다.
가장 큰 웰니스는
남의 시선을 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끝까지 바라보는 것.
나에게 엄격할 것.
풀어줄 때를 알 것.
그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끝내 쉬워지지 않는 일.
결국 일상이 웰니스다.
하이패션을 사랑해서 오늘도 하이힐을 신는 것.
곧 죽어도 블랙커피를 쓰게 마시는 것.
그 불편을 기꺼이 치르는 것.
남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라면
몸에 나쁜 것조차 혼에는 약이 된다.
다만 이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천지 차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구차한 다짐 말고,
자기 자신의 바운더리로 돌아가는 것.
남의 마당을 넘보지 않는 일이 아니라
내 마당의 경계를 정확히 아는 일.
그 경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 경계 안에서만 사랑은 시작된다.
해도 돼?
우리는 너무 오래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그 물음표를 부러뜨린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웰니스는 허락이 아니라 생존이다.
고르지 않으면 언젠가 형벌처럼 내려온다는 것을
나는 다리로 배웠다.
거울 앞에서, 잠들기 전에,
흐뭇할 것.
그거면 된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짧고
가장 먼 길, 일상이라는 그 길을.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