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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009 #155

By EDITOR'S LETTER

4년 전, 런던에서 100여 일간 머물렀다.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집 앞의 펍에 들르곤 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언제나 오후 4시 30분 무렵이었다.

내 행동 또한 일관됐다.
일단 펍에 들어가면 카운터로 직진해 큰 사이즈 맥주 한 잔과 올리브 한 접시를 주문한다.
그러고는 쇼디치의 교차로를 끼고 도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는다.
4개의 야외 테이블은 모두 높았지만 의자도 높았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이라 한 번쯤 누군가와 같이 오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맞아. 쓰다 보니 다시 그 생각까지 나네.

자리에 앉은 지 6~7분이 지나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랗다기보다 주황빛에 가까운 수염이 난 가게의 남자가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그의 수염보다 훨씬 금빛에 가까운 맥주는 언제나 찰랑찰랑, 절묘할 정도로 한가득이다.
쟁반 위에는 스시 접시만 한 그릇에 담긴 올리브도 있다.
올리브 한 알의 크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다섯 살 내 조카 주먹만 하다.
언제부턴가 서비스로 간장 종지 같은 데 땅콩도 담아 줬다.

황홀한 순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

지금도 꼴깍 군침이 돌 정도로 목구멍을 타고 잘도 넘어가는 맥주.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전방위에 펼쳐진 군상이다.
에이스 호텔과 올드 스트리트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사람의 표정, 옷차림, 걸음걸이, 희로애락의 몸짓은
그 자체로도 살아 있는 패션쇼이자 연극이고 영화다.

맥주 한 잔을 딱 비우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쯤 하고 돌아가야지 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붙잡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올리브다.
올리브 한 알을 맥주 두세 모금에 나눠 쪼개 먹으니, 한 잔에 열 모금 정도라 치면
맥주 한 잔을 비우는 데 올리브 네다섯 알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중간에 땅콩도 먹으니 그보다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꼭 애매하게 남은 두세 알의 올리브.
날로 먹자니 기분이 또 어디 그런가.
작은 잔의 맥주로 대신하자니 그 또한 영 찝찝하다.

오후 5시 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남은 올리브 한 알을 입에 물고,
두 번째 시킨 맥줏잔의 바닥의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이제 행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석양이라 해야 하나, 햇볕이 딱 눈을 내치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다.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
맞아, 그때였다.

“저는 삶의 중심에 제가 있어요.”
이번 커버의 주인공, 지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삶의 중심에 나 자신이 있다는 것,
아마도 나는 쇼디치의 그 펍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
그리고 이 에디션은 어려운 시기, 딱 그때 그 올리브처럼 맥주 한 잔에 충분히 넘칠 뿐 아니라
맥주 한 잔 더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선물 같은 존재가 되길 기도한다.

202009 #154

By EDITOR'S LETTER

해리성 정체장애, 이인증, 다중인격장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수도 없이 검색한 것들.

내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공포였지만 다행히 나는 그걸 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나만의 것? 김완선 누나 노래처럼.
더 엇나가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내가 여러 가지라는 것은, 진심으로 축복이다.

나는 나를 편집장 안에 가두는 것을 혐오한다.
누가 내게 편집장이라 부르면 겉가죽은 인공적으로 웃으며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랄 만큼 반성하며 다그친다.
내가 왜 그렇게 보이지? 내가 어쩌다 그런 존재가 된 거지? 빨리 답해,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당장 화를 내고 따져 물으라고!

물론 편집장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냐고? 그렇게 쉽고 후진 포장은 사양한다. 나와 동질감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반대로, 문제야 너무 많다. 여러 자아가 서로 통제가 안 되는 순간 발생한다.
불쑥 목소리가 좀 다르게 나오거나 영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알은척을 하거나
동시 약속을 잡고 동시 취소를 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포효한다.
살려고.

이것도 한때 이야기다. 이제는 힘에 부친다. 사고가 될 수도 있다. 어리석다.
결국 한 번뿐이라는 거다. 인생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
죽음에 대해 한시도 빠지지 않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이 이야기도 난데없지만 꼭 하고 싶었어.

질문을 즐기는 어떤 자아가 할 말이 있단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았는가?
그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죽기 직전 후회하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는 모르는 사람과 공유할 만큼 도덕적인 답을 줄 수 없다.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데 너의 청춘이 행복했는가?
극도로 불행했고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너무 여러 개라고. 그중 하나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슬픈가?
슬프냐고? 한가해서 슬픈 거다. 슬픈 건 정말 한가한 거다.

뭘 이뤘는가?
나는 계속 꿈을 꾼다는 것.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서 고민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달리.

돈은 벌었는가?
말하지 않겠다.

왜?
내 허영은 내 본능을 억제함에 따른 대가다. 내 금전적 희생은 내 여러 개 자아 중 하나를 대변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결국
내가 더 무너지지 않고 나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증거다. 돈을 벌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대답을 할 수 있다.

어찌 살 건가?
나는 누누이 말했듯 내가 지닌 수천 개 자아를 비교적 컨트롤할 능력을 갖췄다. 내가 원하는 순간 어떤 자아라도 꺼내 쓸 수 있다.
그게 나의 유일한 무기이고, 재산이다. 그 정도로 위안하겠다.

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가?
내가 정이 많고 말이 많다. 내가 이 페이지를 넘치게 써서 피 본 사람이 많다. 그만하자. 너, 혹은 나.

시간이 됐다. 아직 너희에게 안 보여준 9999999번째 자아가 출현할 시점이다.
까짓것, 상태도 별론데 이래저래 잘됐다.

일단, 앞으로 나를 편집장이라 부르지 말아줘라.

202008 #153

By EDITOR'S LETTER

친구가 많고 싶었지.
낯을 가리기는커녕 나름 군중 속에서 꽤나 웃기는 사람이기에 이쯤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지.
근데 참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어.
학창 시절을 거쳐 20대를 지나 30대 초반이 돼도 좀처럼 되지 않으니 초조한 마음에 애를 써보기로 했어.
단체 생일 파티에도 참여하고, 또래가 모이는 만남도 가져보고, 초등학교 친구 모임에도 나가보고,
온라인 카페에도 참여하면서 말이지.
이토록 내 선에서는 한다고 했는데, 참 희한하게 잘 안 되더라.
겉돌기만 하더라.
그렇게 그런 척 그 원 안에 있긴 한데, 뭔가 이렇게 두루두루 잘 섞이지가 않게 되더라.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
한창 좀 요란하게 옷을 입고 다닐 때라 하루는 일부러 기본 아이템의 옷을 사서 최대한 단정하게 입고 친구들이 모인 장소로 갔지.
3시간여 숭고한 노력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누구 하나 내게 2차를 갈 거냐고 묻지 않은 그날, 이질감의 원인이 옷차림 때문이 아니란 걸 알게 된 바로 그날 밤,
그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던 택시 차창 밖에 비친 서울의 야경이 아직도 참 선명해.
아마 그날 확실히 알았던 거 같아. 나는 친구가 많을 수 없구나.
쓴웃음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야.
소셜 네트워크로 친구가 많은 사람을 본의 아니게 보게 돼도 잘 견뎌냈거늘.
몇 달 전부터 힘들어도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이토록 슬픈 일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 거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래 나는, 친구가 많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걸.

그리고 매일 밤 과거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 여기저기 뒤져보니 흔적들이 보이더라.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시연이부터 중학교 때 짝 영재, 고등학교 때 날 찾아주던 경이···.
거기에서 파생된 그때의 ABCDEFG···.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구나.
어느 날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 이제 나도 그 친구들을 한번 만나야겠다.
가장 친했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혹시 나 기억하니? 현범이야. 우연히 보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한다. 잘 지내는 거 같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다 살기가 힘들고 바쁘니까.
두 달째 오지 않는 답장과 맞물려 친구 찾는 밤도 점점 사라지게 됐어.

이달 우리 커버 모델은 보다시피 이소라야.
딱 2년 전, 2018년 8월호, 이 지면에 이달 커버의 주인공이 내뱉은 언어로만 모두 채운 적이 있었을 만큼 나는 이소라를 담는 순간을 늘 꿈꿔왔어.
얼마나 왜, 그를 좋아하는지 어떤 의미에서 그리된 건지는 말하지 않을게.
그저 몇 없던 소원이란 게 이뤄진 걸로 생각해줘.

그런데 되레 차분해지더라.
그저 흰 꽃과 빨간 와인을 사서 인사를 전하는 편집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촬영을 준비하고 또 지켜보는 내내
할 말이 너무도 많아서 생각이 복잡해졌는데 다행히도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생각이 명료해진 것 같아.

간절히 원한 것은,
정말 사랑하는 것은
가슴에 두는 것이구나.

그래, 이 책을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난 행복해.

P.S.
이 모든 게 찬란해도 극도로 서러운 나날이야.
시간이 나를 울리고 지옥으로 내몰아.
다 덧없고 더 없고 덜도 없는데 피를 보는 가슴이야.
야성, 무명, 아마추어리즘이 그리워.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사는 일,
군중 속에서 꽤나 웃기는 사람,
나는 친구가 많고 싶었다고.
정말.

202007 #152

By EDITOR'S LETTER

꿈을 꿨다.

이 재앙이 종식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진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에는 레이디 가가를 비롯한 팝 스타들이 뛰쳐나와 두 팔 벌려 지나가는 사람을 안고 키스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시청 앞 광장이 인파로 가득 찼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 응원을 할 때가 생각난다.
서로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볼을 비벼가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고생했다는 말조차 필요 없다.
‘비대면 사회 아웃!’이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이 보인다.
고사리손을 맞잡은 어린아이들의 합창도 이어진다.
인류는 더욱 밀접해진다.
물론 환경과 차별 등 바이러스가 가르쳐준 가르침을 곱씹으며 반성의 시간도 가진다.
각종 기부도 쏟아진다.
모두의 웃음이 보인다.
이처럼 환하고 편한 모습의 얼굴을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꿈에서 깼다.

“버젯이 이것밖에 안 되는 데 가능할까요?”
“입금일을 좀 당겨주실 수 있나요?”
“아, 이번 건은 정말 수익이 얼마 없을 것 같아요.”
“일단 견적서부터 받을 수 있을까요?”
“네고 좀 부탁드려요. 저희도 정말 간신히 참여하게 된 거라.”
“디지털 사용 기간을 한 달 더 늘리면 전체적으로 스태프 가격이 올라가요.”
“기본적으로 페이지당 유가 비용이 어떻게 될까요?”
“이 뉴스가 중요해서 그러는데 혹시 무료로 좀 업로드할 수 있을까요?”
“회사가 회생 신청 중이라 언제 송금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딩을 했는데 타사가 훨씬 서비스도 많이 해주고 저렴해서요.”
“이 건을 당신에게 드리면 보통 수수료는 얼마 정도 책정해주시나요?”
“조금이라도 금전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대출 상담하러 왔습니다. 다 안 된다고 해서요.”

숨 쉴 수조차 없이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돈,
나,
돈,
너,
돈,
네,
돈,
뇌.

나는 결코 누가 봐도 슬프지 않은 척하며 될 수 있는 한 가장 우아하고 유려하게,
마음 같아선 ‘죽음의 무도’보다는 ‘종달새의 비상’ 속 김연아의 턴이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오늘도 돈다.
지키기 위해 돈다.
꿈이 돈을 꾼다.
돈이 꿈을 깨운다.

202006 #151

By EDITOR'S LETTER

“아들, 괜찮지?”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좋아요, 버틸 만해요, 기도해주세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두고 봐야죠.’
후보는 많은데 정답이 없다. 늘 엄마의 질문은 이런 식인데 이번만큼은 한결 고차원적이다. 조카 키우느라 정신없는 엄마도 느끼고 있다시피 이런 시대를 산다는 것은 훗날 교훈이 된다 한들 분명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패션 에디터로서 이야기한다면 지옥과도 같은 상황이다.

패션 매거진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업종으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늘 논외의 영역이다. 무료로 배포되는 멤버십 매거진까지 합쳐봤자 채
스무 곳이 되지 않는 데다 이번 사태로 그마저 문 닫은 곳도 생겼다. 노조도 없고 지원도 없다. 이런 힘든 시기라 한들 영화계처럼 독립영화를 돕자는 챌린지도 없고 업계를 지켜야겠다는 기부 문화 따위는 더더욱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패션 매거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유럽과 미국 또한 사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등 미국의 큰 패션 매거진 회사조차 해고와 감봉 등 비참한 뉴스가 쏟아진다. 유럽과 아시아의 몇몇 매거진은 화상 통화나 3D 기법으로 커버를 제작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100페이지 분량으로 한 호를 완성하거나 남녀 버전을 통합하는 등 콘텐츠 자체를 축소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패션 매거진의 주된 수익 기반인 하반기에 담아야 할 브랜드의 광고캠페인 등이 촬영조차 어렵게 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디지털로 치른다고는 하지만 2021년 S/S 시즌 컬렉션도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내가 좌절하지만은 않는 이유는 패션 매거진 에디터가 진화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우리나라 패션 에디터는 더욱 칭찬받아 마땅하다. 단연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섭외뿐 아니라 스타일링, 인터뷰, 사진가 및 스태프 어레인지까지 콘텐츠 제작을 총망라하는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사진가와 모델이 있다 해도 좋은 에디터 없이는 결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믿는다. 톱클래스 사진가도 에디터의 역량에 따라 패션 화보의 수준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패션 화보는 사진가의 예술일 뿐 아니라 에디터의 예술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패션 매거진의 각 소셜 플랫폼 콘텐츠 제작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월간을 넘어 일간으로 소개되는 콘텐츠의 양 자체가 방대함에도 기획력과 창의력 등 퀄리티 자체가 대담하고 세련됐다. 각종 IT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혁신적 시도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면은 물론 영상 제작에도 능한 멀티플레이어 에디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감각은 그 어떤 분야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K-Pop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기획된 수많은 콘텐트는 에디터 각자의 시야를 문화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여타 어느 나라 매거진보다 브랜드와의 관계가 밀접한 에디토리얼이 많은 특성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타협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역량도 키우게 했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발 맞춰 진행부터 취재, 편집까지 전방위에 걸친 능력을 지닌 이른바 스타 에디터도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과 뷰티 업계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문화 예술계 전반에 걸쳐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가 첨병이 돼 일하고 있다. 바야흐로 에디터의 시대다.

우리가 이 험난한 시기에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먼저 에디터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스스로 안위하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업무에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도전과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에디터라는 허울에 갇혀 오만하지 말되 에디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에디터를 공급하는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먼저 한 명의 연습생을 한류 스타로 키워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처럼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일반 회사원이 아닌 새로운 계약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에디터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패션 매거진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닌 프로덕션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쪼록 패션 매거진을 발행하는 운영자의 철학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당연한 것이자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때로는 말이 앞서는 것도 나쁘지 않는 법이다. 이 글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훗날에도 ‘괜찮게’ 기억될 수 있다면 말이다.

202005 #150

By EDITOR'S LETTER

이 시기 책을 다섯 권이나 샀습니다.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 합쳐 스무 페이지도 읽지 못했습니다.

한 장을 넘기다가 휴대폰 메시지를 봐야 했고, 한 줄을 읽다가 PC를 쳐다봐야 했습니다. 다른 책으로 바꿔볼까 하다가
아이즈원과 함께한 <데이즈드> 댄스 챌린지 반응을 봐야 했고, 사무실에서 읽어야지 했더니 그날 따라 차고 있던 셀린느
귀고리가 너무 무거워 그걸 떼고 어쩌고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잠들기 전에 보려고 꺼냈더니 허리는 왜 이리 쑤시는지,
그렇다고 엎드려 읽으려니 또 목이 저려 다시 돌아눕기를 반복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주말, 양평 집에 가서 한적하게 휴대폰도
끄고 책을 읽어보려 했으나 몇 달째 세종시 집에만 갇혀 계신 엄마, 아빠가 눈에 밟힙니다. 키우는 강아지도 보고 싶습니다. 현저히
떨어진 집중력도 문제였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시국에 열두 살 생일을 맞은 <데이즈드> 5월호를 만드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증명돼버렸습니다.

네, 전 장사꾼이더군요. 그것도 아주 능수능란한 꾼 중의 꾼.

어릴 적 노래방에서 친구 녀석이 제 가방 속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을 발견하고 외쳤죠. “뭐야? 너 문학 소년이야?” 그렇게
생긴 문학 소년이란 별명이 싫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쉬는 시간에 더 책을 꺼내 읽었을 정도로 그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도
했습니다. 희미하지만 결코 옅지 않았던 문학 소년이라는 타이틀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진짜 제 모습일 장사꾼이 또렷이 드러났습니다.

한 달 내내 매일 돈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갖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배낭을 메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사람마다 기능이 다 있다고 하는데 네, 전 사실 이런 것을 무지 잘합니다. 어머니가 그러더군요. “어릴 적
네 별명이 은행원이었던 거 기억하니? 100원 한 장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해서 썼는지 우리가 다 혀를 내둘렀지.” 2년 반 전 제가
<데이즈드>를 발행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뭐 걱정이 없으시다면서 말이죠.

과거 제가 은행원이었든 문학 소년이었든, 2020년 5월의 봄은 장사꾼으로서의 기지가 절실히 필요한 나날입니다. 숫자와 싸워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제가 이 페이지에 썼던 말처럼 허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없이 남발했던 어떤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요즘의 저는 지극히
메마르고 차가우며 까칠하고 기계적입니다. 울고 젖고 흔들리고 방황하던 과거의 전 사치일 뿐입니다.

비록 전 희고 깊은 주름이 파일지언정 결코 열두 살의 <데이즈드>마저 장사꾼의 그림자를 덧씌울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존재의 이유를 놓칠 수 없습니다. 읽는 잡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달 장사꾼으로서의 정체가 탄로난 제 레터는 젊고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을 빌렸습니다. 김혜준(푸드 콘텐츠 디렉터), 박상영(소설가), 박우성(모델), 백현진(작가), 상우(예술가),
신광호(<보그> 편집장), 오선희(자유기고가), 오은(시인), 우원재(뮤지션), 이랑(뮤지션), 장우철(작가), 정성일(영화 평론가),
정지연(<브리크> 편집장), 조정민(공간 화이트노이즈 디렉터), 한다솜(사진가), 황소윤(뮤지션) 등 각계각층에서 피땀 흘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열여섯 분의 진실되기 그지없는 글을 빼곡하게 담았습니다. 다름 아닌 ‘2020년의 5월’이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해가 밝습니다.
열두 살, <데이즈드>는 이토록 두툼합니다.

이제 다시 제가 구입한 다섯 권 중 무려 네 권이나 되는 책의 저자인 롤랑 바르트와도, 과거 읽었던 것을 요즘 이 지경에 맞춰
되새기고 싶었던 <페스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고통이 다 끝나고 정말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장사 잘하는 문학 소년 정도로 불리길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모두가 쓰리도록 아픈 이 봄, <데이즈드>를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004 #149

By EDITOR'S LETTER

웃긴 것은 매번 다음 달이면 이 페이지의 글을 좀 제대로 쓸 수 있겠다 싶은 거였다. 콩보다는 꿀깨 송편이길 정도의 바람이랄까. 더 웃기게 된 것은 이제 다음 달에도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 하게 된 거다.

허망의 시간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예상과 달리 초반에 죽을 때 허망하다고 한다. 공들여 맞춘 퍼즐이 순간의 부주의로 산산조각 날 때 허망하다고 한다.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당할 때 허망하다고 한다. 박경리의 에서 ‘천일애미’가 그랬다. 살고 보니 세상만사가 다 덧없고 허망하다고. 천일애미가 누구더냐. 마당쇠 천일의 어미로 첫째 천일이와 둘째 부일이 그리고 딸까지 출가시키고 남편과도 사별한 여인이다. 남편 생시에는 과묵하고 단정하던 아낙이, 이제는 말씨며 옷맵시며 느슨한 채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아 영호네 배추 솎기를 도우며 내뱉던 말이다. 허망은, 천일애미처럼 살만큼 살아본 사람들이 내뱉을 때 더 쓴 말이다.
더 진국인 법이다.

“왜 마스크를 쓰세요?” 살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누군가는 마스크를 벗고 있는 나를 보고 못 알아보겠다며 유난을 떨기도 했다. 20년도 더 됐다. 마스크를 써야 안락함을 느낀 지.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는 마스크를 쓸 수 없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여느 때처럼 마스크를 쓰고 에펠탑 근처 촬영지로 가던 도중 한 현지인이 내게 외쳤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어 찾은 쇼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자 서울에서 온 선배들이 말한다. “마스크 벗어. 괜히 오해받아.” 오히려 가장 통제받고 싶던 시기에 나는 마스크를 벗었다. 벗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게 굉장히 큰 수치심을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 내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탈리아가 위기다. 유럽과 미국도, 이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중국을 포함한 여타 아시아도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다. 도쿄 올림픽이 어찌될지 모르고, 15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던 멧 갈라가 연기됐다. 노래를 부르며 바이러스 공포를 극복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경의가 넘치고,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는 메시지가 쏟아진다. 마스크 착용을 병에 걸렸다는 표식으로 오해하던 서양인들도 마스크는 곧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보호하는 생존과 관련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는 당연한 사실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이야기는 남는 법이다.

하나 내겐 마냥 허망의 시간이다. 이 충격적인 나날의 연속은 공들여 쌓아 올린 나와 주위의 모든 것이 예상과 달리 빠르게 사라지거나 산산조각 날 수도 있으며, 마땅히 믿거나 기댈 곳조차 없는 나 같은 독립적인 플랫폼이 지닌 불안이라는 한계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천일애미처럼 남편마저 떠나고 느슨해진 채 세상만사 다 덧없고 허망하다고 내뱉고 싶지 않다. 어떤 순간에도 첫 단추부터 정갈하게 꼭꼭 싸맨 채 상대의 눈을 마주 보고 단정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리 단문이라도 글로 거짓 연기를 할 수 없다.

이달 허망에 빠진 이 페이지의 마지막은 1925년 1월 1일에 쓴 한 바닥짜리 루쉰(으로 유명한 중국의 문학가)의 글 ‘희망’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로 대신한다.

내 마음은 유달리 쓸쓸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편안하다. 애증爱憎도 없고 애락爱乐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없다. 아마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내 머리가 벌써 반백半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내 손이 떨리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내 넋의 손도 떨리고 머리도 반백일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있었다. 피와 쇠, 불꽃과 독, 복구復舊와 복수로, 그러고는 갑자기 모두가 공허로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덧없는 자기기만적인 희망으로 그것을 메우려고도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을 방패 삼아 덧없이 어두운 밤이 밀어닥치는 것을 거부하려 하였다. 방패 안쪽도 마찬가지로 공허 속 어두운 밤이라 해도. 그러나 그래 봤자 서서히 내 청춘을 소모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략)

나는 혼자서 이 공허 속의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 몸 밖의 청춘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 내 몸 안의 황혼만은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두운 밤은 어디 있는가?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고,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스럽다. 그리고 내 앞에 마침에 참된 어두운 밤조차도 없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202003 #148

By EDITOR'S LETTER

이별이 많아요.
그런 나날이에요.

이별에도 색깔이 있다고 누가 그랬는데
맞아요.
그 색깔이 다 달라요.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어쩌다 보니 를 만드는 스물몇 명의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해야 하는 존재가 됐어요.
주제는 실로 다양해요.
일 이야기도 해야 하고, 하루는 네, 돈 이야기도 해야 해요.
또 어떤 날에는 서로 고민도 이야기하고, 솔직히 가끔은 제 푸념만 늘어놓을 때도 있어요.
물론 몇몇에게는 그저 그런 직장 상사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눈망울이 보이고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 명 한 명의 마음씨가 느껴져요.

그냥 편집장 하던 때와는 정말 달라요.
그 어떤 무게감, 책임감, 신뢰와 애정, 혹은 상실감 등의 깊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회사를 차린 지 갓 3년 차라 잘은 모르지만 제가 가진 게 많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매일매일 생각이 많아져요.
미칠 것 같아요.

펑펑 울어버리기도 해요.
모노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극 배우처럼 막 웃다, 울다 그러기도 하고요.
좋았다, 싫었다, 난리가 아니에요.

정말 요즘 제 스스로가 컨트롤이 잘 안 돼요.
감정이든, 이성이든.

거의 매일을 함께 지내다 보니 얼마나 많은 일이 있겠어요.
요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를 함께하는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 또 한 번 요동을 쳐요.
잘해주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부족해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막 살가운 말을 못 해요.
칭찬은 더 못 하고, 아기자기하지 않아요.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케어care의 개념이 점점 중요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겪으면서 잘 알고 있는데
제가 친구들을 외롭게 해요.

속은 안 그런데 겉은 미치광이예요.

또 이별이 와요.
빨간색이에요.
아주 뾰족한 유리 날이 가슴을 완벽하게 찌르고 가서 뚝뚝 떨어지는 그런 피 색.

느껴지세요?
울면서 웃는 저.

미안해요.
봄에게도,
너에게도,
진심으로.

202003 #147

By EDITOR'S LETTER

동네 세탁소 사장의 아내가 죽었다.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약 1년 6개월 전이다. 그는 꽤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저 원래 이런 서비스는 잘 안 해줍니다.”
바쁜 나는 세탁물 배달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까지 원했다. 휴대용 카드 결제기가 없던 그는
결제를 위해 우리 집과 세탁소 사이를 한 번 더 왕복해야 했다. 고작이라면 고작, 걸어서 2~3분.
그의 가시 돋친 반응에 떨떠름했지만 이전에 이용하던 세탁소에서 세탁물 분실이나 오염 사고가 있었던 탓에 최대한 공손히 양해를 구했다.
서로 간 신경전이 사라지기까지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세탁물은 여느 가정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이 많았고, 신용카드는 문제없이 잘 긁혔다. 긴 출장 탓에 세탁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카드를 긁고 다시 오면서 세탁물을 두 번에 나눠
가져갈 수 있으니 용이한 면도 있었다. 물론 그의 세탁 솜씨는 예민한 나를 만족시키고 남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나 사장은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사장의 웃음을 처음 본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세탁소로 전화하면 통화가 안 되는 일이 왠지 모르게 잦아지자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웃었다. “아, 좀 아픈 사람이 있어 가지고···.”
바로 십여 일 전, 그는 또 한 번 웃었다. 세탁물을 건네주려는 나를 붙잡고 “이번 건은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했다.
“아직도 편찮으세요? 누구신데요?” 세탁소 사장과의 대화가 처음으로 두 마디 이상 이어진 순간이기도 했다.
“아, 안사람요. 병원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너 달 전부터 가끔씩 통화할 때 대신 받던,
그의 아내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장 또한 세탁물 수거로 전화하면 병원이라고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럼 몇 달 전부터 병원에 계셨던 게··· 걱정되네요.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별일 없으실 겁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옅게 웃었다.

사장이 세탁물과 함께 돌아오기로 한 날이 지난주 목요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오전 10시, 세탁소 오픈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OO세탁소입니다. 현재 상중이어서 영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주 금요일부터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낯선 연결음, 나는 그날 오전, 전화를 끊고 한참 멍했다.
그의 아내가 명을 달리했다.
5000여 명의 전화번호부를 갖고 20여 년을 국내외 패션계에서 일한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지금의 내가 이토록 폐쇄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살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그 어떤 죽음보다 강렬한 슬픔으로 다가온 이 죽음의 무게에 짓눌렸고,
애도의 심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는 처량하고 비통한 감정 앞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
내 욕망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사회적 인간인가.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내 울부짖으며 묻고 싶었고, 처절하고 또 처절하게 외로웠다.

아홉 살 무렵 아파트 가스통이 놓인 담장 위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귀에서 피가 흘렀다.
두세 시간,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귀를 꽉꽉 눌러 지혈하며 생각했다. ‘고막이 찢어지고, 달팽이관이 날아갔을 거야.
그래 이제부터 난 중심을 잡기 어려울 수 있고,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기도 힘들 거야.
운전도 못할 거고, 비행기도 못 탈 거야. 난 누구보다 쉽게 어지러울 거야.’
그 몇 초의 독백은 현실이 되어 지난 30년간의 날 지배했다. 난 운전도 못하고 방향 감각도 없으며 비행기 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렇게 정해진 거였다. 내 근원.

나의 근간은 바로 불안이다.

지금이 화요일 밤이니 세탁소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금요일 오전까지 3일 남았다.
내 왼쪽 귀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보다 몇 곱절은 더 중요한 그 순간이 곧 오고야 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관계가 몹시도 중요하다.
몹시도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사장은 분명 웃었었다.

202002 #146

By EDITOR'S LETTER

2020년 1월 1일 0시에 알게 된 것들.

더 이상 30대가 아니라는 것.
어린 시절 그저 평범하게 산 게 아니라 달걀 프라이 한번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
그 긴 시간 내내 너에게 잘한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게 다 뒤틀어져버렸다는 것.
헛구역질을 수백 번 해서라도 다 게워내야 제자리로 돌이킬 수 있다는 것.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깊이 왔다는 것.
2월호 편집장 글은 제대로 쓰기 힘들 것이라는 것.
역시 세상사 참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도 고대하던 2020년 1월 1일 0시에 알게 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