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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101 #160

By EDITOR'S LETTER

스무 살 초반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첫 집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내 기억 속 첫 번째 집은 논현동 지하 단칸방이었다.
2004년인가 2005년이었는데 보증금 500에 월 30만원 정도 냈다.

일찌감치 패션지 에디터를 하고 있던 터라 출퇴근 시간이 워낙 불규칙했고, 그때는 정말 밤샘 업무가 많았으니까.
본가도 안양인 데다 그놈의 폐소공포증 때문에 차멀미를 어찌나 했는지.
성격도 지랄 맞아서 다섯 살 때부터 방문을 잠가놓고 살았으니
일본에서부터 쭉 혼자 살아왔던 터다.

딱 이맘때였다.
크리스마스를 열흘인가 앞둔 12월 중순.
며칠 전부터 속이 메슥거리더니 현기증이 났다.
그런데 뭐, 그때나 지금이나 마감 또한 늘 이즈음.
아프다는 말을 하고 병원에 갈 배짱은 없었다.
핑 돌아가는 눈알을 움켜쥐고 간신히 1월호 마감을 털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은 바깥보다 더 추웠는데, 퇴근하고 밤 12시에 보일러를 켜면 아침이나 돼야 바닥이 따뜻해졌다. 꽁꽁 언 몸을 이불 속에 처박고,
제대로 씻기나 했던가. 눈을 감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꿈꿨다.

얼마 전에 산 홍승완의 보라색 벨벳 재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 일마레의 봉골레 파스타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스테이크도 시켜보자.
끝나고는 에스 바에 가서 진토닉을 마시며 춤이라도 출까.
뭐, 정 안 되면 홍대도 괜찮아.
그런데 누구를 부르지? 누가 있더라, 내게.

형광등 속에 갇힌 벌레들을 보다가 TV 소리가 멀어지면서
스르르 눈이 감기는데···.

어라, 분명 보일러를 30℃에 맞춰놓고 잤는데, 이상하다. 깼는데도 여전히 뭔가 서늘한 기분.
보일러마저 고장인가.

불현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크리스마스이브 계획에 있던 자 중 하나다.

“내가 신고했으니 망정이지. 죽을 뻔한 거 알지?”

죽을 뻔이라···. 열아홉 살에 도쿄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깨보니
4차선 교차로였는데 자칫하면 차에 치여 죽을 뻔했지.

“내가 너네 집 알고 있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

맞아. 집들이 때 각 휴지 네 통을 들고 왔었지.
집과 휴지 격이 안 맞는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
그래, 그런데 어쩌다 내가 병원에 오게 된 거야?

“의사에게 물어봐.”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깨어난 내가 파악한 정황은 아래와 같다.
마감이 끝나면 부리나케 연락하기 바빴던 내가 이틀간 연락이 닿지 않다가 휴대폰마저 꺼지자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이 수소문했고,
그중 한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 벨을 눌렀으나 밖에서 TV 소리는 들리는데 대답이 없는 게 꺼림칙해 열쇠집을 수소문해 문을 따고 들어온 것.
내 상태야 뭐, 예상 가능한, 의식을 잃은 채 실신.

당시 병명까지야 언급하지 않겠지만
쉽게 말해 속이 완전히 썩고 곪아 있었다.
검사와 치료보다 괴로웠던 것은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가족에겐 알리지 않았다.
6인실이었던가, 8인실이었던가. 어르신들 틈바구니 병실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만큼 애틋한 연정을 맺은 지인도 없었다.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리고는 눈물을 훔치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노래하자~ 파라파팜팜 기쁜 구주 성탄 라팜팜팜
즐거운 노래로 라파팜팜 말구유 아기의 라파팜팜 라파팜팜 라파팜팜
라파팜팜 라파팜팜 라파팜팜 라파팜팜···.

2020년 12월,
그때 그 병실과도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차디찬 이 한 해의 끝을 잡고 나는 노래를 부른다.
이번엔 읊조림이 아니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래 이 닦자

이게 다 뭐라고, 희망의 노래라도 불러보며 되새겨보니
아파서 죽을 뻔한 것은 죽을 뻔한 것도 아니었다.

2021년이 이렇게 온다.
뭐라 더 할 말이 없어 실컷 죽을 뻔했던 일을 토해냈다.

202012 #159

By EDITOR'S LETTER

“이젠 정말 한 줄도 못 쓰겠다. 이젠 정말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퇴사한 후배에게 보냈다.
“왜요. 의식의 흐름대로 자동 기술, 이것이 선배의 탤런트 아니셨습니까.”
위로했다.
“내 협착증이 배와 등을 지나 뇌와 가슴까지 퍼진 듯해.”
호소했다.
“그러면 구구절절하지 않게, 겨울바람처럼 날카롭게 사진으로 대신하시지요.”
현명하다.
“그런데 요즘 도통 뭘 기록한 게 없네. 그럴 만한 것도 없었고. 아, 그러면 올해 커버 사진을 싹 붙여놓을까.” 제시했다.
“좋습니다.”
안심이다.
“너는 정말 내게 도움을 주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야.”
진심이다.

+
고맙습니다. 2021년에도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011 #158

By EDITOR'S LETTER

‘상냥한데 참 할 말 다 하네.’

2020년 가을, 요즘을 장악하는 자세는 친절과 독립인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 잘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다 이런 느낌을 가졌더라고요.
상반된 만큼 매력적이지만 막상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죠.
조금 빗나가면 되레 오해하기 십상이니까요.

과시하거나 못되게 굴지 말되 치근덕대지 말고 이성적이기.
아직 어렵다고요?
제가 좀 눈썰미가 좋아서 익혀봤는데요,
다음과 같이 연습해보세요.

첫 인사는 먼저 하세요.
상대의 나이나 직함을 따지거나 가늠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환하게 웃거나 오버해서 악수를 청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그저 맑게 “안녕하세요”. 요즘은 마스크에 뭐에
더욱 인사하거나 밍글링하기 쉽지 않고 예민한 상태잖아요. 먼저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답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대답하세요.
상대의 말을 중간에 자르는 것은 늙었다는 방증이죠. 지루해도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고 답을 하는 게 좋아요. 그런 사람은 다시 안 만나면 되잖아요?

어차피 안 맞는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주는 것보다 그게 더 현명해요.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이모티콘 사용을 줄이고(아예 하지 않거나), 최대한 맞춤법에 맞게 대화하세요.
급하게 바로 대답한다고 해서 상대가 호감을 갖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특히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할 때는 템포의 주도권을 자기가 쥐어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가세요. 연인도 아닌데 이모티콘을 남발하면 좀 쉬워 보여요.
맞춤법을 지키며 지적으로 보이는 것이 대화를 끌어가기에 몇 배 더 유리해요.

농담하지 마세요.
예전에는 재미있는 사람이 비즈니스를 이끌었다면 요즘은 조금 반대인 것 같아요. 유머는 애인이나 가족, 친한 친구에게 하세요. 오히려 냉소적인 게 나아요.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줄이고 일과 연관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가세요. 너무 경직된 거 아니냐고요? 미소가 있잖아요.
말과 표정의 톤을 맑고 친절하게 유지하는 걸로도 충분해요.

‘원래’, ‘옛날에는’ 이런 말 쓰지 마세요.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시죠? ‘앞으로’, ‘이제부터’ 이런 표현을 주로 써서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도록 하세요.

상대의 눈을 보세요.
쑥스러우면 이마쯤도 좋아요. 시선을 회피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술잔을 부딪칠 때만 말고 대화할 때도

눈을 보는 것이 상대에게 오랫동안 좋은 인상을 갖게 해요.

자신만의 시그너처 룩을 만드세요.
이미지 시대예요. 단벌 신사가 유리하죠. 낡고 오래된 까만 후디라도 떠올릴 때 단번에 생각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해요. 그게 ‘친절’ 중 하나예요.

주어는 복수형을 쓰세요.
‘나는’, ‘저는’보다 ‘저희는’, ‘우리는’이라는 말을 쓰면 팀워크가 좋은 것 같아 보여 젊고 따뜻한 감성을 전달할 수 있어요. 특히 무언가 거절할 때 더 쿨해 보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이유로 이럴 사정이 안 돼서요”보다 “저희가 지금 이런 이유로 이럴 사정이 안 돼서요”라고 하면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그 어떤 순간에도 표정은 친절하게요.

개인톡과 단톡을 잘 활용하세요.
이것은 대면 미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여럿이 있을 때와 일대일로 해야 할 이야기를 잘 구별해야 해요. 일종의 인내가 필요한 거죠.

그룹 미팅이나 단체 톡에서 한 개인에게 따로 더 해야 할 이야기는 반드시 별도로 하는 게 좋아요.
오프라인의 경우라면 헤어질 때 잠시 짬을 내달라고 부탁해 이야기를 더 하면 돼요.

좋은 감정은 절제해 표현하고 나쁜 감정은 결코 표현하지 마세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거죠. 어떤 순간에도 일관된 모습이 좋아요. 좋은 감정 중 특히 ‘고맙다’는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에요. 결코 성사되지 않을 상황에도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세련된 태도예요. 반대로 나쁜 감정은 그 어디에도 표현하지 마세요. 차라리 정말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에게 뒷담화하는 것이 현명해요.

10월 16일,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보자면 그제부터 팝업 패션위크란 것을 시작했어요. 2회, 3회 지속될 수 있도록 잘하고 싶어요.

늘 그래왔듯, 쉬지 않고 저지를 거예요.
친절하고 독립적으로.

202010 #157

By EDITOR'S LETTER

서초구 반포, 한신아파트에 살던 외숙모가 어떤 존재였냐면요.
요즘 말로 딱 세련이랄까. 특유의 여유로움, 넉넉함, 온화함, 신뢰감.
그 외숙모가 깎아주는 복숭아의 맛은 뭐가 달라도 달랐고, 그 집에 있는 장난감 하나하나의 때깔도 남달랐더랬죠.

그런 외숙모가 어느 날 어머니에게 그럽디다.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애 이름이 좀 아니랍니다. 승훈이라고 부르면 좋대요.”
당시 외숙모는 그런 기운과 관련한 네트워크에 분명 일가견이 있으셨죠.
아니 그게 아니라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음이 가던 외숙모의 말 한마디였으니 보통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들은 이야기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도 그 음성, 발음, 공기의 톤까지 똑똑하게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어요.
네, 제 인생을 바꿔놓은 순간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렇게 그 시절의 몇 년간 제 일기장을 살펴보면 표지에 적힌 ‘이승훈’이란 이름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잠시 잊고 있던 이름에 대한 트라우마는 성장하면서 외숙모 이야기의 진실을 좇는 저만의 탐구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막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던 시기, 몇몇 용하다는 분을 통해 여러 성명학적 논리에 의해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더욱 구체적인 사유와 함께 알게 되었죠.
특히 제 이름 가운데 글자인 솥귀 ‘현鉉’은 솥뚜껑이나 화살촉을 뜻하는데, 이름을 알릴 수도 있으나 구설에도 자주 오르는 풀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면 마치 제 심장을 화살촉으로 후벼 파는 느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어머니 성씨를 더해 ‘이서현범’으로 명함을 파거나 영어 이름에서 현을 빼고 표기한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행위였죠.

제게 개명은 늘 머리 한쪽에 남아 있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달여 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인터넷 성명학 사이트에 접속하기 전까지는요.
3000원을 결제하고 제 이름 풀이를 보는데, 첫 줄에서부터 바로 이름을 바꾸라는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다음 구절은 줄줄이 어찌나…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마냥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머지 삶은 내 이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개명을 위해 찾은 성명학 전문가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름을 바꾼다는 게 과거 이름의 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다른 부분까지도 볼 수 있게 하는 거라고요.
삶을 더욱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고요.

고심 끝에, 이겸이 됐습니다.
가운데에 무조건 ‘ㄱ’을 넣어야 한다는 한 선생의 조언이 좋았습니다.
마침 한 달여 전 존경하는 의 신광호 편집장이 제게 ‘A’라는 이니셜이 박힌 목걸이를 선물하시면서 더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네 이름엔 알파벳 ‘A’가 없더라고.”

맞아요. 전 ‘ㄱ’도, ‘A’도 없는 심지어 좋아하는 숫자도 ‘2’였던 그런 삶을 살았을 수도요.

오랜만에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사는 세종시를 찾았습니다.
“겸아.”
그간 제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아버지도 기분 좋으시고요.

겸할 ‘겸兼’이란 한자 뜻처럼 포용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Guiom이란 철자를 써서 표기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불러주세요.
저도 제 이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Call me by my name.
For the personal reason, I officially changed my name from Hyunbum(Bom) Lee to Guiom Lee.
Call me by my new name. Thanks.

이겸
李兼
Guiom Lee

202010 #156

By EDITOR'S LETTER

1. 움직이기 싫은 나날이다. 끔찍한 게 무엇인지 실로 체감하는 매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배울 것이 있다더니 몇 가지는 늘었다. 청결 습관과 배달 앱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기가 표면적
성장이라면, 정신적 성장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오프라인으로 만날 사람에 대한
가치를 묻게 된 것. 예전 같으면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 식사 상대나 생일 파티 초대자 정도 돼야
고민하던 것을 매 순간 하고 산다. ‘이 사람, 굳이 오프라인에서도 만나야 해? 마스크 쓰고
위험 부담 감수하면서까지, 그럴 가치 있어?’ 피로는 쌓이고 기준은 못 찾았다. 말만 뻔질나게
했지 여전히 닥치는 대로다. 그래도 생각한다는 게 어디인가.
언젠가는 정교하고 현명한 기능을 갖춘 ‘만남 가치 필터’ 같은 게 장착되겠지.

2. 휴대폰만 보고 사는 멍청한 삶에서 유일한 안식처는 다름 아닌 이곳이다. 종이. 확실히
마음이 놓인다. 덜 쫓기는 기분이다. 좀 잘못 해도 까짓것, 용서받을 기분이다. 종이는 단칼에
무 자르듯 사람을 내치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어떤 일부만 보고 그 나머지마저 막 유추해
결정짓지 않을 거다. 그래서 좀 뻘짓거리할 요량으로 대충 좀 내용도 없는 글을 쓰면 또 어떤가.
종이가 안아준다면 그게 산문이고 수필이며 문학이 될지도 모른다.

3. 행복 중 하나가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거린 글을 컴퓨터 워드 파일에 옮겨 적는 행위다.
복사해서 붙여 넣어도 되지만 나는 그것을 키보드로 쳐서 옮겨 담는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치다 보면 마치 뇌와 심장이 한 번 더 작동하는 기분이다. 이런 글을 썼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데자뷔처럼 묘한 기시감마저 불러일으키는데, 꽤 중독성 있는
괜찮은 맛이다. 반대로 메모장에 쓴 내용이 별로 없을 때는 ‘최근 이리도 생각이 없었던가’
혹은 ‘뭐 하나 적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온통 ‘숫자’만 생각하고 살았던가’, 안타깝다.

4. “너는 네 스스로 무덤을 파. 별것도 아닌데 늘 과장해서 생각해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너 자신을.” 나는 과장된 생각을 한다. 일부러라도 최대한 더 극적으로 나
자신을 몰고 간다. “좀 적당히 가자. 좀 놓고 갈 건 놓고 가자.”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날 죽이는
것이다. 생각을 과장해서 하는 것이야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현세에서 유일하게 나를
구원하는 방법이다.

5.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싫어하는 것은 통화하는 것.

6. 요즘 몇몇의 꿈에 내가 등장했다. 과일을 사놓고 사라지기도 하고, 가족 모임에 마치
가족인 양 참석해 활짝 웃었다고도 한다.
일련의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낀다.

+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개명을 준비 중이다. 무사히 잘 마치게 된다면 ‘이현범’이란
이름으로는(저 밑의 사인 포함) 아마 이것이 마지막 글이 될 거다.
고마웠다. 그뿐이다.

202009 #155

By EDITOR'S LETTER

4년 전, 런던에서 100여 일간 머물렀다.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집 앞의 펍에 들르곤 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언제나 오후 4시 30분 무렵이었다.

내 행동 또한 일관됐다.
일단 펍에 들어가면 카운터로 직진해 큰 사이즈 맥주 한 잔과 올리브 한 접시를 주문한다.
그러고는 쇼디치의 교차로를 끼고 도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는다.
4개의 야외 테이블은 모두 높았지만 의자도 높았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이라 한 번쯤 누군가와 같이 오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맞아. 쓰다 보니 다시 그 생각까지 나네.

자리에 앉은 지 6~7분이 지나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랗다기보다 주황빛에 가까운 수염이 난 가게의 남자가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그의 수염보다 훨씬 금빛에 가까운 맥주는 언제나 찰랑찰랑, 절묘할 정도로 한가득이다.
쟁반 위에는 스시 접시만 한 그릇에 담긴 올리브도 있다.
올리브 한 알의 크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다섯 살 내 조카 주먹만 하다.
언제부턴가 서비스로 간장 종지 같은 데 땅콩도 담아 줬다.

황홀한 순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

지금도 꼴깍 군침이 돌 정도로 목구멍을 타고 잘도 넘어가는 맥주.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전방위에 펼쳐진 군상이다.
에이스 호텔과 올드 스트리트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사람의 표정, 옷차림, 걸음걸이, 희로애락의 몸짓은
그 자체로도 살아 있는 패션쇼이자 연극이고 영화다.

맥주 한 잔을 딱 비우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쯤 하고 돌아가야지 할 때면 어김없이 나를 붙잡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올리브다.
올리브 한 알을 맥주 두세 모금에 나눠 쪼개 먹으니, 한 잔에 열 모금 정도라 치면
맥주 한 잔을 비우는 데 올리브 네다섯 알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중간에 땅콩도 먹으니 그보다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꼭 애매하게 남은 두세 알의 올리브.
날로 먹자니 기분이 또 어디 그런가.
작은 잔의 맥주로 대신하자니 그 또한 영 찝찝하다.

오후 5시 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세상.
남은 올리브 한 알을 입에 물고,
두 번째 시킨 맥줏잔의 바닥의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이제 행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석양이라 해야 하나, 햇볕이 딱 눈을 내치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다.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
맞아, 그때였다.

“저는 삶의 중심에 제가 있어요.”
이번 커버의 주인공, 지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삶의 중심에 나 자신이 있다는 것,
아마도 나는 쇼디치의 그 펍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
그리고 이 에디션은 어려운 시기, 딱 그때 그 올리브처럼 맥주 한 잔에 충분히 넘칠 뿐 아니라
맥주 한 잔 더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선물 같은 존재가 되길 기도한다.

202009 #154

By EDITOR'S LETTER

해리성 정체장애, 이인증, 다중인격장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수도 없이 검색한 것들.

내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공포였지만 다행히 나는 그걸 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나만의 것? 김완선 누나 노래처럼.
더 엇나가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내가 여러 가지라는 것은, 진심으로 축복이다.

나는 나를 편집장 안에 가두는 것을 혐오한다.
누가 내게 편집장이라 부르면 겉가죽은 인공적으로 웃으며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랄 만큼 반성하며 다그친다.
내가 왜 그렇게 보이지? 내가 어쩌다 그런 존재가 된 거지? 빨리 답해,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당장 화를 내고 따져 물으라고!

물론 편집장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냐고? 그렇게 쉽고 후진 포장은 사양한다. 나와 동질감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반대로, 문제야 너무 많다. 여러 자아가 서로 통제가 안 되는 순간 발생한다.
불쑥 목소리가 좀 다르게 나오거나 영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알은척을 하거나
동시 약속을 잡고 동시 취소를 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포효한다.
살려고.

이것도 한때 이야기다. 이제는 힘에 부친다. 사고가 될 수도 있다. 어리석다.
결국 한 번뿐이라는 거다. 인생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
죽음에 대해 한시도 빠지지 않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이 이야기도 난데없지만 꼭 하고 싶었어.

질문을 즐기는 어떤 자아가 할 말이 있단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았는가?
그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죽기 직전 후회하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는 모르는 사람과 공유할 만큼 도덕적인 답을 줄 수 없다.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데 너의 청춘이 행복했는가?
극도로 불행했고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너무 여러 개라고. 그중 하나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슬픈가?
슬프냐고? 한가해서 슬픈 거다. 슬픈 건 정말 한가한 거다.

뭘 이뤘는가?
나는 계속 꿈을 꾼다는 것.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서 고민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달리.

돈은 벌었는가?
말하지 않겠다.

왜?
내 허영은 내 본능을 억제함에 따른 대가다. 내 금전적 희생은 내 여러 개 자아 중 하나를 대변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결국
내가 더 무너지지 않고 나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증거다. 돈을 벌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대답을 할 수 있다.

어찌 살 건가?
나는 누누이 말했듯 내가 지닌 수천 개 자아를 비교적 컨트롤할 능력을 갖췄다. 내가 원하는 순간 어떤 자아라도 꺼내 쓸 수 있다.
그게 나의 유일한 무기이고, 재산이다. 그 정도로 위안하겠다.

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가?
내가 정이 많고 말이 많다. 내가 이 페이지를 넘치게 써서 피 본 사람이 많다. 그만하자. 너, 혹은 나.

시간이 됐다. 아직 너희에게 안 보여준 9999999번째 자아가 출현할 시점이다.
까짓것, 상태도 별론데 이래저래 잘됐다.

일단, 앞으로 나를 편집장이라 부르지 말아줘라.

202008 #153

By EDITOR'S LETTER

친구가 많고 싶었지.
낯을 가리기는커녕 나름 군중 속에서 꽤나 웃기는 사람이기에 이쯤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지.
근데 참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어.
학창 시절을 거쳐 20대를 지나 30대 초반이 돼도 좀처럼 되지 않으니 초조한 마음에 애를 써보기로 했어.
단체 생일 파티에도 참여하고, 또래가 모이는 만남도 가져보고, 초등학교 친구 모임에도 나가보고,
온라인 카페에도 참여하면서 말이지.
이토록 내 선에서는 한다고 했는데, 참 희한하게 잘 안 되더라.
겉돌기만 하더라.
그렇게 그런 척 그 원 안에 있긴 한데, 뭔가 이렇게 두루두루 잘 섞이지가 않게 되더라.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
한창 좀 요란하게 옷을 입고 다닐 때라 하루는 일부러 기본 아이템의 옷을 사서 최대한 단정하게 입고 친구들이 모인 장소로 갔지.
3시간여 숭고한 노력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누구 하나 내게 2차를 갈 거냐고 묻지 않은 그날, 이질감의 원인이 옷차림 때문이 아니란 걸 알게 된 바로 그날 밤,
그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던 택시 차창 밖에 비친 서울의 야경이 아직도 참 선명해.
아마 그날 확실히 알았던 거 같아. 나는 친구가 많을 수 없구나.
쓴웃음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야.
소셜 네트워크로 친구가 많은 사람을 본의 아니게 보게 돼도 잘 견뎌냈거늘.
몇 달 전부터 힘들어도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이토록 슬픈 일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 거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래 나는, 친구가 많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걸.

그리고 매일 밤 과거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어. 여기저기 뒤져보니 흔적들이 보이더라.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시연이부터 중학교 때 짝 영재, 고등학교 때 날 찾아주던 경이···.
거기에서 파생된 그때의 ABCDEFG···.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구나.
어느 날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 이제 나도 그 친구들을 한번 만나야겠다.
가장 친했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혹시 나 기억하니? 현범이야. 우연히 보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한다. 잘 지내는 거 같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다 살기가 힘들고 바쁘니까.
두 달째 오지 않는 답장과 맞물려 친구 찾는 밤도 점점 사라지게 됐어.

이달 우리 커버 모델은 보다시피 이소라야.
딱 2년 전, 2018년 8월호, 이 지면에 이달 커버의 주인공이 내뱉은 언어로만 모두 채운 적이 있었을 만큼 나는 이소라를 담는 순간을 늘 꿈꿔왔어.
얼마나 왜, 그를 좋아하는지 어떤 의미에서 그리된 건지는 말하지 않을게.
그저 몇 없던 소원이란 게 이뤄진 걸로 생각해줘.

그런데 되레 차분해지더라.
그저 흰 꽃과 빨간 와인을 사서 인사를 전하는 편집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촬영을 준비하고 또 지켜보는 내내
할 말이 너무도 많아서 생각이 복잡해졌는데 다행히도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생각이 명료해진 것 같아.

간절히 원한 것은,
정말 사랑하는 것은
가슴에 두는 것이구나.

그래, 이 책을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난 행복해.

P.S.
이 모든 게 찬란해도 극도로 서러운 나날이야.
시간이 나를 울리고 지옥으로 내몰아.
다 덧없고 더 없고 덜도 없는데 피를 보는 가슴이야.
야성, 무명, 아마추어리즘이 그리워.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사는 일,
군중 속에서 꽤나 웃기는 사람,
나는 친구가 많고 싶었다고.
정말.

202007 #152

By EDITOR'S LETTER

꿈을 꿨다.

이 재앙이 종식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진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에는 레이디 가가를 비롯한 팝 스타들이 뛰쳐나와 두 팔 벌려 지나가는 사람을 안고 키스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시청 앞 광장이 인파로 가득 찼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 응원을 할 때가 생각난다.
서로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볼을 비벼가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고생했다는 말조차 필요 없다.
‘비대면 사회 아웃!’이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이 보인다.
고사리손을 맞잡은 어린아이들의 합창도 이어진다.
인류는 더욱 밀접해진다.
물론 환경과 차별 등 바이러스가 가르쳐준 가르침을 곱씹으며 반성의 시간도 가진다.
각종 기부도 쏟아진다.
모두의 웃음이 보인다.
이처럼 환하고 편한 모습의 얼굴을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꿈에서 깼다.

“버젯이 이것밖에 안 되는 데 가능할까요?”
“입금일을 좀 당겨주실 수 있나요?”
“아, 이번 건은 정말 수익이 얼마 없을 것 같아요.”
“일단 견적서부터 받을 수 있을까요?”
“네고 좀 부탁드려요. 저희도 정말 간신히 참여하게 된 거라.”
“디지털 사용 기간을 한 달 더 늘리면 전체적으로 스태프 가격이 올라가요.”
“기본적으로 페이지당 유가 비용이 어떻게 될까요?”
“이 뉴스가 중요해서 그러는데 혹시 무료로 좀 업로드할 수 있을까요?”
“회사가 회생 신청 중이라 언제 송금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딩을 했는데 타사가 훨씬 서비스도 많이 해주고 저렴해서요.”
“이 건을 당신에게 드리면 보통 수수료는 얼마 정도 책정해주시나요?”
“조금이라도 금전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대출 상담하러 왔습니다. 다 안 된다고 해서요.”

숨 쉴 수조차 없이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돈,
나,
돈,
너,
돈,
네,
돈,
뇌.

나는 결코 누가 봐도 슬프지 않은 척하며 될 수 있는 한 가장 우아하고 유려하게,
마음 같아선 ‘죽음의 무도’보다는 ‘종달새의 비상’ 속 김연아의 턴이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오늘도 돈다.
지키기 위해 돈다.
꿈이 돈을 꾼다.
돈이 꿈을 깨운다.

202006 #151

By EDITOR'S LETTER

“아들, 괜찮지?”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좋아요, 버틸 만해요, 기도해주세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두고 봐야죠.’
후보는 많은데 정답이 없다. 늘 엄마의 질문은 이런 식인데 이번만큼은 한결 고차원적이다. 조카 키우느라 정신없는 엄마도 느끼고 있다시피 이런 시대를 산다는 것은 훗날 교훈이 된다 한들 분명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패션 에디터로서 이야기한다면 지옥과도 같은 상황이다.

패션 매거진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업종으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늘 논외의 영역이다. 무료로 배포되는 멤버십 매거진까지 합쳐봤자 채
스무 곳이 되지 않는 데다 이번 사태로 그마저 문 닫은 곳도 생겼다. 노조도 없고 지원도 없다. 이런 힘든 시기라 한들 영화계처럼 독립영화를 돕자는 챌린지도 없고 업계를 지켜야겠다는 기부 문화 따위는 더더욱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패션 매거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유럽과 미국 또한 사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등 미국의 큰 패션 매거진 회사조차 해고와 감봉 등 비참한 뉴스가 쏟아진다. 유럽과 아시아의 몇몇 매거진은 화상 통화나 3D 기법으로 커버를 제작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100페이지 분량으로 한 호를 완성하거나 남녀 버전을 통합하는 등 콘텐츠 자체를 축소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패션 매거진의 주된 수익 기반인 하반기에 담아야 할 브랜드의 광고캠페인 등이 촬영조차 어렵게 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디지털로 치른다고는 하지만 2021년 S/S 시즌 컬렉션도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내가 좌절하지만은 않는 이유는 패션 매거진 에디터가 진화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우리나라 패션 에디터는 더욱 칭찬받아 마땅하다. 단연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섭외뿐 아니라 스타일링, 인터뷰, 사진가 및 스태프 어레인지까지 콘텐츠 제작을 총망라하는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사진가와 모델이 있다 해도 좋은 에디터 없이는 결코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믿는다. 톱클래스 사진가도 에디터의 역량에 따라 패션 화보의 수준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패션 화보는 사진가의 예술일 뿐 아니라 에디터의 예술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에디터들은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패션 매거진의 각 소셜 플랫폼 콘텐츠 제작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월간을 넘어 일간으로 소개되는 콘텐츠의 양 자체가 방대함에도 기획력과 창의력 등 퀄리티 자체가 대담하고 세련됐다. 각종 IT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혁신적 시도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면은 물론 영상 제작에도 능한 멀티플레이어 에디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감각은 그 어떤 분야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K-Pop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기획된 수많은 콘텐트는 에디터 각자의 시야를 문화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여타 어느 나라 매거진보다 브랜드와의 관계가 밀접한 에디토리얼이 많은 특성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타협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역량도 키우게 했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발 맞춰 진행부터 취재, 편집까지 전방위에 걸친 능력을 지닌 이른바 스타 에디터도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과 뷰티 업계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문화 예술계 전반에 걸쳐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가 첨병이 돼 일하고 있다. 바야흐로 에디터의 시대다.

우리가 이 험난한 시기에 풀어야 할 숙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먼저 에디터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스스로 안위하지 않고 성장해야 한다. 업무에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도전과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에디터라는 허울에 갇혀 오만하지 말되 에디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에디터를 공급하는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먼저 한 명의 연습생을 한류 스타로 키워내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처럼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일반 회사원이 아닌 새로운 계약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에디터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패션 매거진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닌 프로덕션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모쪼록 패션 매거진을 발행하는 운영자의 철학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당연한 것이자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 때로는 말이 앞서는 것도 나쁘지 않는 법이다. 이 글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훗날에도 ‘괜찮게’ 기억될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