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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203 #180

By EDITOR'S LETTER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하루에 한 장씩 매일 읽었다.
한 페이지를 몇 번씩 곱씹으며 읽느라 아직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아 자꾸 맴도는 문장들이 있다. 
슈타인의 편지를 함께 읽으며 니나는 언니에게 말한다.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했음해 불행했지만,
그 사랑이 그를 살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모든 개념은 반대되는 성질의 것으로 정의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니나의 말에 크게 설득당했다.
살아 있다는 건 괴로움을 동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달 전, 택시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는데 뒤 차가 살짝 받아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이달에는 화보 촬영을 마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반대편 차선에서 교통사고가 나 택시 뒷좌석이 완전히 찌그러진 광경을 목격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내가 탄 것과 똑같은 주황색 택시였다. 뒷좌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운전석에만 에어백이 터져 있었다. 설핏 젖어 있는 도로 위는 사고 차량의 잔해로 가득했다. 
그 앞으로도 줄줄이 찌그러진 차량들. 30분만 일찍 나왔으면 저 차 안에 내가 있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보면 삶의 반대는 결국 죽음이라서 ‘살아 있다’라는 감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쿵쿵 쿵, 맥박이 빨라지고 손끝이 뜨거워지는 아주 섬뜩한 기분이었다.
그러니 한순간도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누군가 나를 몰아가는 신호 같았다.
니나의 말을 빌리자면 생이 나를 휘몰아치게 만드는 것일까.

2022년, 내 나이는 사람들이 예찬하는 시절의 딱 중반부로 접어들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짐작할 수 있다면 한 시절의 절반을 지나는 이 시점이 아닐까?
의미를 부여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전과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혹은 달라지기 위해 결심하게 만드는 바로 이 시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이 울렁대는 바로 지금.
그래서 작년부터 ‘2022년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 참 싫었다. 해묵은 감정을 남기며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좀 더 후련하게 살고 싶다. 
좋든 싫든 <데이즈드>에서의 모든 과정은 불안으로, 긴장으로, 걱정으로 계속해서 심장이 뛰게 하니까.
그래서 온몸에 피가 돌고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손끝이 저리고 안절부절못하니까 움직이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계속 달리고 또 뛰게 된다. 불안한 울렁임과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 딱 살아 있다는 기분이다.
그래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감각이 여기야라고 말한 듯하다.

202203 #179

By EDITOR'S LETTER

  “Who’s That Pokémon?” 
나와 피카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밝고 경쾌한 샛노란색 보디, 
귀여움을 배가하는 빨간 볼, 그리고 상징 같은 번개 모양 꼬리. 
그 어떤 강력한 포켓몬Pokémon이 등장하더라도 
자신만의 존재감과 고유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

누구나 이 정도 얘기하면 바로 피카츄인 걸 알겠지?
왜 그토록 피카츄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 언제 어디를 가든 함께하고 싶은 그런 대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런 존재.

나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어.
형제들에 둘러싸여 형성된 기질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랑받았을 거란 얘기도 자주 들었지.

그럼에도 나는 너무 외로웠고,
어릴 때부터 혼자서 고민하고 이겨내야 할 일이 많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 피카츄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건 그 때문 아닐까?
아직도 내 방 침대 한쪽엔 여러 피카츄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피카츄와 리바이스가 컬래버레이션한 청바지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입으면 왠지 든든해.

어느덧 <데이즈드>에서 3년 차에 접어들었어.
언제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 공간에서 지내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왔고, 제법 멀리 잘 온 것 같아.
비록 누구보다 이 모든 것에 무지했던 내가,
나와 피카츄에 대한 이야기를 <데이즈드>에 쓸 날이 올 줄 몰랐어.

얼마 전에는 프라그먼트Fragment와 포켓몬이 협업해 만든 
피카츄 인형을 선물 받았어.
후지와라 히로시Fujiwara Hiroshi의 검은 번개 심벌이 새겨진 피카츄.

그래서 지금 말도 안 되게 행복해.
자랑하고 싶었어. 한정판이거든

 

 이동걸
BOSCO LEE 

202202 #178

By EDITOR'S LETTER

새벽 택시의 무서움을 안 것은 <데이즈드>에 입사한 이후다.
야근할 때면 자주 택시에 몸을 맡긴다.
택시 안 특유의 적막함이 전투적으로 보낸 하루와 대조되며 나른함 속으로 나를 이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게 싫을 때가 있다.
그냥 어디든 계속 타고 가고 싶다.

27분. 회사에서 집까지의 소요 시간.

일 때문에 잊고 있던 것들이 밀려온다. 차창에서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 익숙하고도 낯선 한강의 풍경.
그 속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나를 위한 보상 심리가 고개를 든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충동구매를 했던가.
몇 주 동안 찜해두기만 했던 코트를 샀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 속 곳곳에 널린 광고에 홀렸다.
어떤 날은 미뤄둔 잠을 자기도 한다.
머리를 쥐어짜던 기획안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창밖 잠든 도시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가늠해보려 애쓰기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선택한다.
그 선택의 시간이 모여 나를 택시로 이끈다. 일의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나를 어떤 목적지에 데려다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고, 그 선택을 믿기로 한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지만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목적지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살아내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는 아무리 내리기 싫을지라도 택시는 결국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다는 것은 안다.

오늘도 새벽 택시에 몸을 맡긴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내게 압축해 들려주는 것을 꽤 즐기고 있는 까닭이다.

이남훈
Lee Namhoon

202201 #177

By EDITOR'S LETTER

나는 물방개야. 

동심은 무지를 동반하기 마련이잖아.
어릴 적, 한사코 나는 아니었고,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겁쟁이니까.
동네 개천에 삼삼오오 모여 물방개를 톡 터뜨리는 걸 본 적 있어.
물방개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 그들 입장에서는 터뜨리는 거고
원치 않게 수심 위로 나온 물방개 입장에서는 터지는 거였겠지. 

숨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내 예민과 과민으로 시험에 들고 싶지 않고
공상과 상상을 굳이 망상보다 선한 거라고 나누고 싶지 않고
이따금 아닌 매 순간 바람처럼 증발해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그래, 내가 나 스스로 그 세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살랑살랑했다가
휘몰아도 쳤다가
연하고 유하고 부드럽게, 세차고 모질고 표독스럽게 

수심 위로 날 올리지 마.
뻐끔뻐끔 살게 내버려둬.
터트릴 거잖아.
알아. 

내가 물방개였으니까.
터져버린 물방개를 보고 시시덕거리던 그 시절 개천 애들처럼
킥킥거렸겠지.
치졸하고 처절하며 처참해. 

새 집에는 우선 암막 커튼부터 달아야겠어.
지금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보다는
잠을 더 잘 필요가 있어. 

내가 꽤 오랜만에 레터, 이 지면으로 돌아온 이유는
2022년 1월호라서야.
맞아,
희망, 사랑, 유대, 뭐, 그런 따뜻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물방개가 날아? 날기도 해? 날개가 있어?

 

 이겸
李兼
Guiom Lee 

202112 #176

By EDITOR'S LETTER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던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얄팍한 패션 지식으로 온몸에 흐르던 땀을 숨기며 면접을 보던 날. 머릿속이 새하얘져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난 항상 나에 대한 질문으로 넘쳐났고, 이제껏 못난 답변으로 대변하던 스스로를 질척거리지 않게 한마디 한마디 충실히 대답했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나를 담백하게 설명하는 건 말이다. 운이 좋았는지,
소같이 일하게 생긴 증명사진 덕분이었는지 와 함께하게 되었고, 오늘로 꼬박 1년 하고도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무지한 열정을 다독이며 옆 동료들을 따라도 해보고, 그 아류가 되는 건 아닌지 주제 넘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힘들다고만 생각한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시간들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 마음속에 정의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는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도 큰 숙제가 될 것 같지만 어쩐지 두렵지는 않다. 
안에서라면. 왠지 이 여정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기호(嗜好)를 펼쳐가면 된다는 걸 배웠다.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격심해도 닳지 않을 사랑.

 박기호
Park Kiho

 

 패션이라는 물살에 이끌려 정처 없이 항해하다 표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떠한 파도가 몰아쳐도 그게 패션과 관련한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그저 이유 없이 패션이 좋았다.
이런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입사 동기인 기호와 ‘동시대적 움직임’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한다.
누구보다 앞서야 하고, 같은 걸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때로는 얼굴 전체보다는 눈 옆에 있는 작은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시야가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뿐더러 평면적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야로 패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막 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다.
촬영 준비와 본촬영 그리고 원고 작성을 하며 매일매일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멀어져 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핑계로, 좋아하던 전시회나 갤러리 방문, 영화 감상과 책 읽기를 일절 멈췄다.
그저 침대에 누워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의지하며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영감을 받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소홀해진 것이다. 게을러진 내 생활을 스스로 반성하며 다가오는 2022년에는 좀 더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살기로 다짐한다. 본질에 더욱 근거해 의미가 담긴 행동들 말이다.

2022년에도 여전히 촬영이 끝난 뒤 네댓 시간 동안 죽음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수십 벌의 옷을 패킹하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비록 몸이 고되고 눈앞에 수북이 쌓인 옷을 보면 정신이 아찔할 때도 있었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로 움츠러드는 순간도 많았다. 
어쩌면 행복한 순간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음에도 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앞으로 더 다양한 것을 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존재로 에서 살아가야, 살아남아야 할까? 이 질문을 여전히 좇고 있으며,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아하는 내가 앞으로 어떠한 새싹으로 자라날지, 어떠한 양분을 먹으며 점진적으로 자라날지 
나 자신도 궁금해진다.

이승연
Lee Seungyeon

202112 #175

By EDITOR'S LETTER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밖에 없다.
누가 얘기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누가 얘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내가 변화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메타버스, NFT, 수소경제, 탄소중립 등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말이 
바로 옆에서 사용되고 있고,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 
역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고, 중요도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가 화제다. 스트리트 댄서들의 경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든 방송사를 온통 이들이 도배하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있고, 그전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에 대한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누구나 아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아파트 한 채 소유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이런 틀에 박힌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가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중요하지 않았고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것이 관심을 받고 그로 인해 부를 얻을 기회가 찾아오고, 다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가치관이 변화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고, 새로운 기회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어느 분야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면 기회가 온다는 점이다.
1세대 댄서들은 방송을 통해 자신이 처음 춤을 시작한 때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부모님조차 평범한 삶을 
살라고 애원하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에 의미를 두었고, 이제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후배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경연에 참가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기회로 이용한 것이 아니기에.

이 두 가지는 자기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현재 남들이 인정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하면 자신의 시간이 왔을 때 기회가 되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조치가 완화된 시점에 소풍과 운동회를 의미하는 ‘소동회’의 이름으로 워크숍을 했다.
이번 워크숍의 룰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간 나이와 역할, 관심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거나 
자주 볼 수도 없던 우리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을 아끼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나중에는 어색한 반말로 소동회를 마무리했다. 현재는 업무에 복귀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이번 시도에 매우 만족한다. 사용하는 말로 인해 갇힐 수 있는 사고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 새로운 세대가 사고하는 것에 아주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변화가 필요하고, 내가 변화해야 하는 데 이런 기회들이 나만의 결심에서 비롯되는 한계에서 
벗어나 환경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변화하려 하지만 개인의 결단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지속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한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떠올리거나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정권자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게나마 시작되었고, 이어가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있다.

202111 #174

By EDITOR'S LETTER

 1
epilogue
to survive, not survive

시작이 그러했습니다. 
10여 년 전 패션 매거진에 들어설 당시, 
페이퍼 매거진의 미래는 디지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거라 예측됐습니다.
그리고 실제도 그러했습니다. 

살아남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수많은 매체가 폐간의 수순을 밟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새로이 강자 타이틀을 달고 보다 단단하게 입지를 굳히는 곳도 존재했습니다. 
디지털과 페이퍼를 대립 관계로 받아들인 곳은 도태했고, 
협력 관계에 선 곳은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시대의 흐름을 탔지만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태도’는 분명 달랐습니다. 

2
old and new

삶에 있어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직면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전에는 없던 것이 최근 생겼거나 만들어졌거나 도입되었거나 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new’는 ‘old’를 전제로 하기에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old and new = 공생관계
공존과 상생은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근간으로 합니다. 
과거(old)는 미래의 자원이고, 새로움(new)은 과거의 결과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만이 공생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prologue
restart, we will survive

공식적으로 11월 1일부터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미래는 팬데믹 속에 억눌려 있던 포텐이 터지면서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입니다.
(침체된 지난 1년 반 사이, 유일하게 활기를 띤 디지털 세상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테지요.)

새 시대의 변화를 앞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은 2021년은 기존의 것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태도’를 갖추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언제나 곁에 함께하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요.

202111 #173

By EDITOR'S LETTER

비행기 안이다. 정확히 1년 7개월 만에 잊고 있던 순간을 다시 맞닥뜨리는 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여전히 기압은 고막을 내리치고, 파리에서 든 사사로운 감정을 모두 끌어안은 채 서울로 향한다.
기내에서만 느끼는 우울함이 몸서리치게 싫은 것도 여전했다.
전염병은 바이러스로 불릴 게 아니라 바이러스로 매개되는 사람과 사람 간 사회적 관계를 남긴다는 말, 역시 기억한다. 

출장만 가면 단절된 관계들이 있다. 고작 그 며칠이 대수냐 싶으면서도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자 아차 싶더군.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다. 아직도 난 그 이유를 모른다. 누군가에겐 어떤 열과 성의를 다했든,
결국 같은 이유로 관계는 일순간 멈췄다. 손에서 열을 내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별안간 수명을 다했을 때,
곧이어 잇따르는 불안과 허무, 초조 그리고 불쾌는 쉽게 지울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출장에서 새로 주고받는 관계도 있다.
호텔, 터미널, 공항처럼 늘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여러 사람이 나타나 머물고 다시 지나가는 임시 공간,
동시에 한정된 기간에 발현되는 새로운 순간. 이 만남은 서로 헤어질 걸 알고 반복해 되새기다 보면 순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더없이 평범한 대화가 가장 시적인 경우가 있으며, 가장 시적인 것이 바로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관계 사이에 커다란 공백을 남겨두기도 하고,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가득히 찬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 이보다 더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 

나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일하며, 대개는 후자의 관계 맺음에 익숙해졌다. 짧고 폭발적인 감정일지라도 비교적 진실되다 말할 수 있는 
그 관계가 좋다. 적어도 거짓된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위안받기도 하며.

파리에 가 있는 동안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장 클로드 부부의 유작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을 볼 수 있었다.
약 2주간 은빛 포장지를 덮은 개선문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줬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렇게 화답했다.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꿈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예술적 모험을 이토록 과감하게 행할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 말고 또 있을까.
동시에 이 작품은 일정 기간 이후에 사라지는 대지 미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값이 매겨지기보다 존재 가치를 불특정 다수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철거 바로 직전 새벽 6시에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은빛의 장대한 개선문, 그리고 그 사이로 파리한 초승달이 떴는데 그 소월이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이러나저러나 다시 파리를 찾은 건 행운이었다. 

어느덧 렉스트림이 창립 4주년을 무탈하게 넘기고, 11월에 워크숍을 떠난다. 총 서른 명이 한뜻을 모아 <데이즈드>를 지키는 중이다.
아직 서로 대면식조차 하지 못한 친구도 있고, 직함이나 직책이 명확하지 않은 친구도 있다.
판권에 이름이 빠지고 추가되길 지켜보며 염려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겠지. 당장 한 달 일하고 관둘지도 모르고,
몇 년을 가족처럼 보낼 사이도 될 수 있겠지만, 이 무모하면서도 불안정한 관계가 마크롱의 말마따나
패션계의 새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믿음.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 구성원이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바로 개인주의다. 보통 회사가 집단의 한뜻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데 비해, <데이즈드>는 개개의 독립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매체다.
가장 강렬한 형태의 개인주의가 예술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각자의 개성, 그리고 개인주의가 모여 당대의 패션계를 교란하고 붕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얻을 때까지 힘써주길 바라며,
오늘 그 이름들을 한 자씩 남겨보았다. 
<데이즈드>의 관계가 새로이 시작됐다.

 

 오유라
Yura Oh 

202110 #172

By EDITOR'S LETTER

 

(폴 에디션에 이어)

그것은 바로 화상 통화로 진행된 프랑수아 오종 감독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자택에서, 전 서울의 <데이즈드> 사무실 1층에서였죠.
대체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제게 어떤 존재냐 하면요,
당시 인터뷰 기사에도 썼지만 제 삶을 바꾼 사람입니다.
열일곱 살 무렵, 아주 우연히 그 말도 안 되게 느린 속도의 인터넷을 휘젓다가
그가 만든 15분짜리 단편영화 <썸머 드레스A Summer Dress>를 보게 됐는데요.
네, 자막도 없어서 프랑스 말을 들리는 대로 번역하면서 말입니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소년이 꽃무늬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장면요.
그때 네, 전 뭔가 자유를 느낀 것 같아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같은 거 반복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제가 
이 영화를 열 번, 백 번, 천 번도 넘게 다시 보면서요.
내 존재에 대한 현재와 미래 그리고 꿈을 생각했습니다.

모르겠지만, 특별하고 싶었어요. 다르고 싶었어요.

그렇게나 큰 선물을 준 프랑수아 오종과 대화를 나누다니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그 영화처럼 딱 15분간이었지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고 난 후 말입니다.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어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우울해졌죠.
프랑수아 오종은 그 뒤로도 제게 수많은 영감을 선사한 작품을 연속으로 세상에 선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 대체 뭘 했나 싶더라고요.
그 감독에게 아마도 전 그저 전 세계 수많은 팬 중 한 명인 동양의 에디터일 뿐이라고 생각하니제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열일곱 살 때 품은 그때 그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 제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에도 썼지만, 전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이고자 했으니까요.
그래, 그렇게 염원하던 그거부터 해보기로 했습니다.
장편 필름, 네, 그걸 흔히 영화라고 부르죠. 그 플랫폼에 맞서보자.
결심했습니다.
그래야만 다음에 어디선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을 만나면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올 초부터 준비했습니다. 프랑수아 오종과 인터뷰하던 <데이즈드> 1층을 본거지 삼아 말입니다.
무조건 촬영은 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데이즈드>의 영상을 만드는 ‘렉스트림’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배우고 깨지고 아프게 성장하면서 우리끼리의 스토리도 정성껏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난 샤넬 제주 행사에 주요 멤버 셋 유록, 윤우, 성재를 데리고 가서 제 포부를 밝히고 일종의 도원결의를 했습니다. 
<데이즈드> 팀에도 양해를 구하며 이야기했습니다.
따뜻한 응원과 지지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라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본도 써야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고, 아카이브 패션 영화다 보니 옷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우리 ‘렉스트림’ 크루들은 너무도 현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나도 그들도 영화는 처음이었으니 울다 헤매길 몇 날 며칠.
매번 촬영이 끝나면 드는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관둬야겠다.

오늘이 9월 17일이니까 촬영한 지 벌써 두 달여가 되어갑니다.
촬영으로 따지자면 75% 정도 마쳤고, 모레면 촬영 순서상 마지막 장면도 찍습니다.
일부러 맞추려고 한 건 아니지만, 첫 촬영일이 하필 7월 27일이었는데요,
그날은 4년 전 ‘렉스트림’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니 감회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네, 제가 영화 이야기를 처음 꺼낸 그 제주도에서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전염병을 뚫고 하나가 되어 
이렇게 지금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영화는 후반 작업이 중요하다잖아요.
촬영도 한 달 정도 더 해야 하지만 마지막 작업까지 마무리하려면 
앞으로의 여정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정도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2022년 봄, 가장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
여러분에게 보여주게 된다면 참 좋을 테니까 말이지요.

현장에서 접해보니 지금까지의 지식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지난주부터 영상 촬영과 편집에 대한 과외도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재밌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 전 다시 <썸머 드레스>에 잠 못 이루던 열일곱 살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 영화에 OST로 쓰인 ‘Bang Bang’을 들으며 살포시 몸을 흔들던 그때로 말입니다. 

부디 절 지켜봐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
표현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순수하게, 저답게.

+

2015년 10월호부터 ‘에디터스 레터’를 쓰기 시작했으니 이번 2021년 10월호가 딱 6년이 되는 레터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토해냈습니다. 
전 이 소중한 공간에 책에 대한 자랑보다는 제 생각과 시간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이곳이 제 영혼을 도려내는 쓰라린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제 이 공간에 대한 예의로라도 조금 휴식을 가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즈드>에는 글을 잘 쓰는 에디터가 많으니까요.
당분간 그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담으면서 <데이즈드>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진짜 ‘에디터스 레터’로 가보려 합니다.
그간 제 주접, 똥글, 다 받아주시고 들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사랑했고, 사랑합니다. <데이즈드>의 이겸은 계속되니 이쯤 하겠습니다.

 

이겸
李兼
Guiom Lee

 

202109 #171

By EDITOR'S LETTER

전 영화에 위로를 받아요.

열아홉 살이었어요.
충무로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에 무작정 찾아가 시나리오를 배웠죠. 
6개월씩 1년 반 과정으로 초급·중급·고급반 순서로 구성됐어요.
학원비가 당시 제 형편으로 감당하기엔 상당히 비쌌는데, 거길 다니려고 청소부터 서빙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매주 화요일, 금요일 저녁에 수업이 있었죠.
수업도 좋았지만 수업 후 충무로 구석구석에 있는 선술집에서 같은 반 형, 누나 때로는 선생님과 마시던 막걸리와 소주가 더 좋았어요.
밤새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지,
우리 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한 번은 비가 막 쏟아지는 날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한참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요,
꿈만 같더라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행복하더라고요.
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요.

전 머리가 노랬어요.
처음 딱 학원에 들어섰는데, 웬 양아치가 시나리오를 배우러 온 거지? 딱 그 생각을 하고 계신 것처럼 깜짝 놀란 선생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죠.
형, 누나들과 전 열 살 이상 차이가 났고 40, 50대도 꽤 계셨죠.
전 스스럼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했어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꼭 좋은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분들이 절 귀여워해주셨어요.
기특하다, 잘해라. 네 나이엔 뭐든 할 수 있다, 이러면서요.

그렇게 반짝반짝 6개월 초급반 코스가 끝나고 마지막 과제가 주어졌어요.
통과하려면 단편 하나를 써서 제출해야 했죠.
제 인생 첫 시나리오 제목이 뭔지 아세요?
리. 모. 콘. 맨.

한 사람이 사고를 당하고 우울한 일에 빠졌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얻은 리모컨을 눌렀더니 그 사람이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실로 유치 찬란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였죠. 결말은 좀 슬펐어요. 결국 리모컨이 그 남자를 공격하게 되니까요.

제 과제를 보시곤 선생님이 두 가지를 말씀하셨어요.

“노란 머리, 넌 맨날 술만 마시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가르친 대로 기본 구성에 충실하게 썼네. 계속해보자. 패스!!!” 이런 기쁜 이야기와 또 하나는요,

“노란 머리, 내가 왜 합격을 줬냐면 KBS 2TV에서 하는, 왜 그 어린이 판타지 드라마 있지? 그런 거 쓰면 잘하겠단 생각이 들어서야.” 쾅쾅쾅, 머리를 때리는 ‘기쁜’ 이야기도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제가 아직 어리지만 언젠간 꼭 어른스러운 판타지도 해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요.

그다음 6개월은 중급반이었죠.
주객전도 아시죠? 다시 말하지만 그때 전 열아홉 살이었다고요.
학원비 벌려고 다닌 아르바이트가 어찌나 재밌던지요. 그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연신 지각, 결석을 밥 먹듯 하다가 채 중간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휴대폰으로 혹은 집으로 같은 반 형, 누나, 심지어 선생님까지 전화를 하셨죠.
“너, 할 수 있어. 학원에 나와. 같이 영화 이야기하자.”
엄마가 선명히 기억하세요. 그분들의 설득을, 음성을, 바람을.

저도 보고 싶어요. 연락을 피한 건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하고요.
어렸나 봐요.

그러고 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조금 개인적 이유로 급하게요.

그렇지만 시나리오 공부에 대한 꿈은 잃을 수 없었어요.
일본에서 3년여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것도 충무로 
그 학원을 찾은 거였으니까요.

다시 중급반으로 등록했어요.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한 덕에 자금 사정은 넉넉했어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네, 전 동시에 패션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기도 했고요.
운 좋게도 재학 중에 캐주얼 브랜드 VMD 파트 인턴으로 취직을 하기도 했어요.

아시죠? 첫 사회생활, 게다가 패션계.
얼마나 화려하고 재밌었겠어요?

청담동, 압구정동의 화려한 조명과
말발 좋고 근사한 옷차림으로 무장한 패션 피플에게 현혹돼
결국은 시나리오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죠.

청담동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피플이 될 테야!

제 꿈은 영화작가에서 패션계 히어로로 그렇게 수정됐습니다.

또 시간이 흘렀어요.
참 속절없이 계속 흐르는 게 시간이라고, 지금부터라도 좀 잡고 싶은데 말이죠.
그렇게 20여 년 남짓 전 제 혼을 바쳐 패션계에서 열심히 일했어요. 
에디터, 마케터, 스타일리스트, 방송, 책, 강의, 패션쇼, 쇼룸 비즈니스, 뷰티··· 
뭐, 안 해본 거 없이 다요.
그러다 이렇게 <데이즈드>까지요.
꽉꽉 채웠죠. 패션으로.

그런데 그럼에도 뭔가 허전했어요.
거의 매일 영화 한 편은 꼭 보고 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영화에 대한 꿈은 버리려야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네, 전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출하는 사람이고자 했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요.

그러다 작년 12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준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됩니다. 네, 추운 겨울이었어요.

+10월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에디터스 레터 연재는 처음 보셨죠?

 

 이겸
李兼
Gui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