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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2005 #150

By EDITOR'S LETTER

이 시기 책을 다섯 권이나 샀습니다.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 합쳐 스무 페이지도 읽지 못했습니다.

한 장을 넘기다가 휴대폰 메시지를 봐야 했고, 한 줄을 읽다가 PC를 쳐다봐야 했습니다. 다른 책으로 바꿔볼까 하다가
아이즈원과 함께한 <데이즈드> 댄스 챌린지 반응을 봐야 했고, 사무실에서 읽어야지 했더니 그날 따라 차고 있던 셀린느
귀고리가 너무 무거워 그걸 떼고 어쩌고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잠들기 전에 보려고 꺼냈더니 허리는 왜 이리 쑤시는지,
그렇다고 엎드려 읽으려니 또 목이 저려 다시 돌아눕기를 반복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주말, 양평 집에 가서 한적하게 휴대폰도
끄고 책을 읽어보려 했으나 몇 달째 세종시 집에만 갇혀 계신 엄마, 아빠가 눈에 밟힙니다. 키우는 강아지도 보고 싶습니다. 현저히
떨어진 집중력도 문제였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시국에 열두 살 생일을 맞은 <데이즈드> 5월호를 만드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증명돼버렸습니다.

네, 전 장사꾼이더군요. 그것도 아주 능수능란한 꾼 중의 꾼.

어릴 적 노래방에서 친구 녀석이 제 가방 속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을 발견하고 외쳤죠. “뭐야? 너 문학 소년이야?” 그렇게
생긴 문학 소년이란 별명이 싫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쉬는 시간에 더 책을 꺼내 읽었을 정도로 그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도
했습니다. 희미하지만 결코 옅지 않았던 문학 소년이라는 타이틀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진짜 제 모습일 장사꾼이 또렷이 드러났습니다.

한 달 내내 매일 돈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갖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배낭을 메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사람마다 기능이 다 있다고 하는데 네, 전 사실 이런 것을 무지 잘합니다. 어머니가 그러더군요. “어릴 적
네 별명이 은행원이었던 거 기억하니? 100원 한 장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해서 썼는지 우리가 다 혀를 내둘렀지.” 2년 반 전 제가
<데이즈드>를 발행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뭐 걱정이 없으시다면서 말이죠.

과거 제가 은행원이었든 문학 소년이었든, 2020년 5월의 봄은 장사꾼으로서의 기지가 절실히 필요한 나날입니다. 숫자와 싸워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제가 이 페이지에 썼던 말처럼 허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없이 남발했던 어떤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요즘의 저는 지극히
메마르고 차가우며 까칠하고 기계적입니다. 울고 젖고 흔들리고 방황하던 과거의 전 사치일 뿐입니다.

비록 전 희고 깊은 주름이 파일지언정 결코 열두 살의 <데이즈드>마저 장사꾼의 그림자를 덧씌울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존재의 이유를 놓칠 수 없습니다. 읽는 잡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달 장사꾼으로서의 정체가 탄로난 제 레터는 젊고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을 빌렸습니다. 김혜준(푸드 콘텐츠 디렉터), 박상영(소설가), 박우성(모델), 백현진(작가), 상우(예술가),
신광호(<보그> 편집장), 오선희(자유기고가), 오은(시인), 우원재(뮤지션), 이랑(뮤지션), 장우철(작가), 정성일(영화 평론가),
정지연(<브리크> 편집장), 조정민(공간 화이트노이즈 디렉터), 한다솜(사진가), 황소윤(뮤지션) 등 각계각층에서 피땀 흘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열여섯 분의 진실되기 그지없는 글을 빼곡하게 담았습니다. 다름 아닌 ‘2020년의 5월’이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해가 밝습니다.
열두 살, <데이즈드>는 이토록 두툼합니다.

이제 다시 제가 구입한 다섯 권 중 무려 네 권이나 되는 책의 저자인 롤랑 바르트와도, 과거 읽었던 것을 요즘 이 지경에 맞춰
되새기고 싶었던 <페스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고통이 다 끝나고 정말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장사 잘하는 문학 소년 정도로 불리길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모두가 쓰리도록 아픈 이 봄, <데이즈드>를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004 #149

By EDITOR'S LETTER

웃긴 것은 매번 다음 달이면 이 페이지의 글을 좀 제대로 쓸 수 있겠다 싶은 거였다. 콩보다는 꿀깨 송편이길 정도의 바람이랄까. 더 웃기게 된 것은 이제 다음 달에도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 하게 된 거다.

허망의 시간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예상과 달리 초반에 죽을 때 허망하다고 한다. 공들여 맞춘 퍼즐이 순간의 부주의로 산산조각 날 때 허망하다고 한다.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당할 때 허망하다고 한다. 박경리의 에서 ‘천일애미’가 그랬다. 살고 보니 세상만사가 다 덧없고 허망하다고. 천일애미가 누구더냐. 마당쇠 천일의 어미로 첫째 천일이와 둘째 부일이 그리고 딸까지 출가시키고 남편과도 사별한 여인이다. 남편 생시에는 과묵하고 단정하던 아낙이, 이제는 말씨며 옷맵시며 느슨한 채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아 영호네 배추 솎기를 도우며 내뱉던 말이다. 허망은, 천일애미처럼 살만큼 살아본 사람들이 내뱉을 때 더 쓴 말이다.
더 진국인 법이다.

“왜 마스크를 쓰세요?” 살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누군가는 마스크를 벗고 있는 나를 보고 못 알아보겠다며 유난을 떨기도 했다. 20년도 더 됐다. 마스크를 써야 안락함을 느낀 지.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는 마스크를 쓸 수 없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여느 때처럼 마스크를 쓰고 에펠탑 근처 촬영지로 가던 도중 한 현지인이 내게 외쳤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어 찾은 쇼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자 서울에서 온 선배들이 말한다. “마스크 벗어. 괜히 오해받아.” 오히려 가장 통제받고 싶던 시기에 나는 마스크를 벗었다. 벗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게 굉장히 큰 수치심을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 내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탈리아가 위기다. 유럽과 미국도, 이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중국을 포함한 여타 아시아도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다. 도쿄 올림픽이 어찌될지 모르고, 15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던 멧 갈라가 연기됐다. 노래를 부르며 바이러스 공포를 극복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경의가 넘치고,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는 메시지가 쏟아진다. 마스크 착용을 병에 걸렸다는 표식으로 오해하던 서양인들도 마스크는 곧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보호하는 생존과 관련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는 당연한 사실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이야기는 남는 법이다.

하나 내겐 마냥 허망의 시간이다. 이 충격적인 나날의 연속은 공들여 쌓아 올린 나와 주위의 모든 것이 예상과 달리 빠르게 사라지거나 산산조각 날 수도 있으며, 마땅히 믿거나 기댈 곳조차 없는 나 같은 독립적인 플랫폼이 지닌 불안이라는 한계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천일애미처럼 남편마저 떠나고 느슨해진 채 세상만사 다 덧없고 허망하다고 내뱉고 싶지 않다. 어떤 순간에도 첫 단추부터 정갈하게 꼭꼭 싸맨 채 상대의 눈을 마주 보고 단정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리 단문이라도 글로 거짓 연기를 할 수 없다.

이달 허망에 빠진 이 페이지의 마지막은 1925년 1월 1일에 쓴 한 바닥짜리 루쉰(으로 유명한 중국의 문학가)의 글 ‘희망’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로 대신한다.

내 마음은 유달리 쓸쓸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편안하다. 애증爱憎도 없고 애락爱乐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없다. 아마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내 머리가 벌써 반백半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내 손이 떨리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내 넋의 손도 떨리고 머리도 반백일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있었다. 피와 쇠, 불꽃과 독, 복구復舊와 복수로, 그러고는 갑자기 모두가 공허로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덧없는 자기기만적인 희망으로 그것을 메우려고도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을 방패 삼아 덧없이 어두운 밤이 밀어닥치는 것을 거부하려 하였다. 방패 안쪽도 마찬가지로 공허 속 어두운 밤이라 해도. 그러나 그래 봤자 서서히 내 청춘을 소모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략)

나는 혼자서 이 공허 속의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 몸 밖의 청춘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 내 몸 안의 황혼만은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두운 밤은 어디 있는가? 지금은 별도 없고, 달빛도 없고, 웃음의 유현함도 사랑의 난무도 없다. 청년들은 평화스럽다. 그리고 내 앞에 마침에 참된 어두운 밤조차도 없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함과 같이.

202003 #148

By EDITOR'S LETTER

이별이 많아요.
그런 나날이에요.

이별에도 색깔이 있다고 누가 그랬는데
맞아요.
그 색깔이 다 달라요.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어쩌다 보니 를 만드는 스물몇 명의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해야 하는 존재가 됐어요.
주제는 실로 다양해요.
일 이야기도 해야 하고, 하루는 네, 돈 이야기도 해야 해요.
또 어떤 날에는 서로 고민도 이야기하고, 솔직히 가끔은 제 푸념만 늘어놓을 때도 있어요.
물론 몇몇에게는 그저 그런 직장 상사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눈망울이 보이고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 명 한 명의 마음씨가 느껴져요.

그냥 편집장 하던 때와는 정말 달라요.
그 어떤 무게감, 책임감, 신뢰와 애정, 혹은 상실감 등의 깊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요.
회사를 차린 지 갓 3년 차라 잘은 모르지만 제가 가진 게 많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매일매일 생각이 많아져요.
미칠 것 같아요.

펑펑 울어버리기도 해요.
모노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극 배우처럼 막 웃다, 울다 그러기도 하고요.
좋았다, 싫었다, 난리가 아니에요.

정말 요즘 제 스스로가 컨트롤이 잘 안 돼요.
감정이든, 이성이든.

거의 매일을 함께 지내다 보니 얼마나 많은 일이 있겠어요.
요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를 함께하는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 또 한 번 요동을 쳐요.
잘해주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부족해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막 살가운 말을 못 해요.
칭찬은 더 못 하고, 아기자기하지 않아요.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케어care의 개념이 점점 중요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겪으면서 잘 알고 있는데
제가 친구들을 외롭게 해요.

속은 안 그런데 겉은 미치광이예요.

또 이별이 와요.
빨간색이에요.
아주 뾰족한 유리 날이 가슴을 완벽하게 찌르고 가서 뚝뚝 떨어지는 그런 피 색.

느껴지세요?
울면서 웃는 저.

미안해요.
봄에게도,
너에게도,
진심으로.

202003 #147

By EDITOR'S LETTER

동네 세탁소 사장의 아내가 죽었다.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약 1년 6개월 전이다. 그는 꽤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저 원래 이런 서비스는 잘 안 해줍니다.”
바쁜 나는 세탁물 배달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까지 원했다. 휴대용 카드 결제기가 없던 그는
결제를 위해 우리 집과 세탁소 사이를 한 번 더 왕복해야 했다. 고작이라면 고작, 걸어서 2~3분.
그의 가시 돋친 반응에 떨떠름했지만 이전에 이용하던 세탁소에서 세탁물 분실이나 오염 사고가 있었던 탓에 최대한 공손히 양해를 구했다.
서로 간 신경전이 사라지기까지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세탁물은 여느 가정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이 많았고, 신용카드는 문제없이 잘 긁혔다. 긴 출장 탓에 세탁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카드를 긁고 다시 오면서 세탁물을 두 번에 나눠
가져갈 수 있으니 용이한 면도 있었다. 물론 그의 세탁 솜씨는 예민한 나를 만족시키고 남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나 사장은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

사장의 웃음을 처음 본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세탁소로 전화하면 통화가 안 되는 일이 왠지 모르게 잦아지자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웃었다. “아, 좀 아픈 사람이 있어 가지고···.”
바로 십여 일 전, 그는 또 한 번 웃었다. 세탁물을 건네주려는 나를 붙잡고 “이번 건은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했다.
“아직도 편찮으세요? 누구신데요?” 세탁소 사장과의 대화가 처음으로 두 마디 이상 이어진 순간이기도 했다.
“아, 안사람요. 병원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너 달 전부터 가끔씩 통화할 때 대신 받던,
그의 아내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장 또한 세탁물 수거로 전화하면 병원이라고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럼 몇 달 전부터 병원에 계셨던 게··· 걱정되네요.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별일 없으실 겁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옅게 웃었다.

사장이 세탁물과 함께 돌아오기로 한 날이 지난주 목요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오전 10시, 세탁소 오픈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OO세탁소입니다. 현재 상중이어서 영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주 금요일부터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낯선 연결음, 나는 그날 오전, 전화를 끊고 한참 멍했다.
그의 아내가 명을 달리했다.
5000여 명의 전화번호부를 갖고 20여 년을 국내외 패션계에서 일한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지금의 내가 이토록 폐쇄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살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그 어떤 죽음보다 강렬한 슬픔으로 다가온 이 죽음의 무게에 짓눌렸고,
애도의 심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는 처량하고 비통한 감정 앞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
내 욕망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사회적 인간인가.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내 울부짖으며 묻고 싶었고, 처절하고 또 처절하게 외로웠다.

아홉 살 무렵 아파트 가스통이 놓인 담장 위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귀에서 피가 흘렀다.
두세 시간,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귀를 꽉꽉 눌러 지혈하며 생각했다. ‘고막이 찢어지고, 달팽이관이 날아갔을 거야.
그래 이제부터 난 중심을 잡기 어려울 수 있고,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기도 힘들 거야.
운전도 못할 거고, 비행기도 못 탈 거야. 난 누구보다 쉽게 어지러울 거야.’
그 몇 초의 독백은 현실이 되어 지난 30년간의 날 지배했다. 난 운전도 못하고 방향 감각도 없으며 비행기 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렇게 정해진 거였다. 내 근원.

나의 근간은 바로 불안이다.

지금이 화요일 밤이니 세탁소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금요일 오전까지 3일 남았다.
내 왼쪽 귀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보다 몇 곱절은 더 중요한 그 순간이 곧 오고야 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관계가 몹시도 중요하다.
몹시도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사장은 분명 웃었었다.

202002 #146

By EDITOR'S LETTER

2020년 1월 1일 0시에 알게 된 것들.

더 이상 30대가 아니라는 것.
어린 시절 그저 평범하게 산 게 아니라 달걀 프라이 한번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
그 긴 시간 내내 너에게 잘한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게 다 뒤틀어져버렸다는 것.
헛구역질을 수백 번 해서라도 다 게워내야 제자리로 돌이킬 수 있다는 것.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깊이 왔다는 것.
2월호 편집장 글은 제대로 쓰기 힘들 것이라는 것.
역시 세상사 참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도 고대하던 2020년 1월 1일 0시에 알게 된 것들.

202001 #145

By EDITOR'S LETTER

1989년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주공아파트 2동 303호에 살았다.
안방, 작은방 그리고 부엌과 화장실, 열세 평 남짓한 공간에서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한 살 터울인 여동생까지 그렇게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와 엄마는 저녁이 돼서야 귀가했다.
두 분이 야근할 때면 꼼짝없이 동생과 둘이서 저녁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동생에게 식당 놀이를 제안했다.
넌 요리사이고 나는 손님이니까, 착한 동생은 늘 밥상을 차렸다.
그리고 만화를 봤다.
그러면 왠지 엄마가 더 빨리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는 그해(아니 일생에서) 나를 가장 강력히 사로잡은 만화였다.

“용기와 지혜로 헤쳐나간다
우주 평화 위해 싸우는 용감한 친구들
자랑스러운 친구들
에어스타 타고서 하늘을 나는
원더 키디 원더 키디 원더 원더 원더 키디
신기한 메달이 뿜어내는 무한한 힘에
이슬처럼 쓰러지는 우주의 악당들
지키자 평화를 우주의 평화를
달려라 아이캔, 날아라 예나
원더 원더 원더 원더 원더 키디”

소방차가 부른 주제곡이 TV에서 흘러나오면 나는 밥 숟가락을 멈췄다.
SF란 말이 뭔지도 모르는 열 살 어린이의 눈에 비친 2020년의 우주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만화는 단 13화로 끝났으니까.
동생과 함께 쓰던 작은방 2층 침대에 누워 곱씹고 또 곱씹었다.
진짜 2020년이 되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법의 메달을 차고 우주의 악당을 물리치는 아이캔이 돼 있는 것은 아닐까.

꿈만 같던 시간은 내 생각과 비전을 지구에서 우주로, 현재에서 미래로 확장시켰다.
그 뒤 보게 된 영화 와 등은 그 가치관을 더욱 공고히 했고,
언젠가 편집장의 글에도 쓴 것처럼 중학생 시절 3년은 내내 매일 밤, 달에 대한 글만 썼다.

그래 간혹 어쩌면 나는 지구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어코 2020년이 왔다.
아이캔이 아닌 여전히 이현범의 모습으로.
그래서 를 오마주한 패션 화보를 찍어보기로 했다.
준비하던 중 문득 그 만화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사랑과 평화가 있는 별에선 이제 필요 없어.”
마법의 목걸이로 악당을 물리치고 아이캔과 예나가 우주 어딘가에 그것을 버리며 나누었던 바로 그 말이.

사랑과 평화.
패션계에서 유독 서러울 정도로 차별받는 동양인이 함께 힘을 합쳐 우리의 존재감을 어필하면 어떨까.

다소 거창하게 말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미래 그리고 사랑.
2020년 1월, 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놀랍게도 여전히, 우주의 원더 키디 세계관을 바탕으로 말이다.

201912 #144

By EDITOR'S LETTER

GOOD & BYE

신민아 씨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민아 씨와 촬영하는 거다. 연기는 물론 패션 아이콘으로서 최고 정점을 달리는 그는 패션 에디터에게는 실로 매력적인 피사체다.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오랜 스타일리스트 강윤주 실장 등 모든 스태프와도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 싶다. 더불어 나도 성장하고 싶다. 다가올 10년이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위 글은 지금 얘기가 아니다. 2009년 12월호 매거진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던 당시의 모습을 끄집어낸 단상이다. 데자뷔처럼 2019년 12월호 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 이후 딱 10년이 흘렀건만, 매체와 직함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나는 신민아 씨를 촬영하기 위해 준비했고, 잘하고 싶었고,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스타일리스트 강윤주 실장과 성실히 연락했고, 이 촬영을 잘 마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 싶었다.
당연히 새로운 10년에 대한 큰 기대도 품고 있다.

2010년, 시작은 좋지 못했다. 2월 초 2년여 간 다니던 가 폐간했다. 그 소식을 통보받은 바로 다음 날 나는 캘빈 클라인 진과 함께 해외 화보 촬영을 하기로 돼 있었다. 비행기표는 물론 호텔 예약도 다 마쳤고, 게다가 모델은 연예인이었다. 지난 몇 달간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게 생긴 마당이었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 촬영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당시 캘빈 클라인 진의 마케팅 담당자 이정은 씨가 큰 도움이 됐다. 재빨리 다른 매거진으로 이 촬영을 넘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행과 기획은 이미 내가 한 상황, 다니던 직장이 사라진 고통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동남아 어디선가 그 마케터와 스태프를 붙잡고 통곡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그 마케터가 객원 에디터라는 명목으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금액, 30만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30만원은 한두 달 뒤 입금됐고, 그 화보도 매거진에 실렸다. 그 매거진은 다름 아닌 였다.

살길이 막막해진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한섬 마케터로 한동안 지냈다. 이라는 책도 냈다.

그 후 2011년 8월, 창간한 에 패션 디렉터로 합류했다. 같은 해 6월,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당시 톱 모델이던 알렉산더 조핸슨과 창간호 커버를 촬영했다. 혈혈단신으로 밀란에서 이미 컬렉션 취재와 토즈 화보 촬영을 마친 후 파리에 도착했던 터라 몸은 천근만근 상태였다. 그럼에도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를 모두 본 후 촬영을 위해 파리 곳곳을 누볐다. 나를 제외한 사진가,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모든 스태프는 프랑스인을 비롯한 유럽인이었다. 얼마나 더웠는지 땀이 물처럼 흘렀다. 남은 커버 컷, 사진가가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에서 찍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젊었다.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옷을 산더미처럼 들고 언덕을 걸어 올랐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해도 거칠면서 아늑하다.
그렇게 완성한 커버 컷에는 알렉산더 조핸슨이 푸른 하늘과 대비된 빨간색 니트를 입고 있다. 옷은 모두 디올 것이었다.
에서 편집장을 맡고 난 후 첫 커버도 디올이었다. 발행인이 되고 난 후 첫 커버도 디올이었다.

얼마 후 로 옮겨 꽤 다녔다. 고통은 빛으로 승화된다. 그곳을 다니던 중 사랑을 만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딱 오늘이 그날로부터 2000일째다.

2015년 10월호부터 편집장이 됐다.
팀에는 나 말고 패션 에디터 한 명과 어시스턴트 에디터 한 명이 더 있었다. 편집장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그 두 친구가 다였다.
축하의 꽃을 정말 많이 받았다. 200개도 넘었던 것 같다. 행복했다.

2016년 1월 10일, 데이비드 보위가 죽었다. 내 생일이기도 했다.

2017년 9월호부터 발행인이 됐다. 10평 남짓한 논현동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두 패션 브랜드에서 쓰고 남은 의자와 가구를 선물해줬다. 나머지 가구는 이케아에서 샀다. 배송비를 아낀다고 택시에 실어 들고 와, 조립비를 아낀다고 에디터들이 이틀 내내 조립했다. 총 여섯 명으로 시작했다.
그중 두 명은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네 명도 잘 살고 있길.

2019년 5월, 성수동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곳을 오게 된 이야기 또한 판타지 드라마인데 너무 길어 패스한다. 사적으로 만나면 들려주겠다.
오픈 파티를 열었고, 밴드 혁오가 무료로 공연해주었다.

2019년 12월호에는 신민아 씨와 더불어 두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실었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릭 오웬스와 지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에르메스 남성복을 지켜온 베로니크 니샤니앙.
맥락은 다르지만 두 창조자가 한 말은 같았다. “삶이 다 그렇죠.”
나는 딱 1980년생이라 10년 주기에 따라 나이 셈이 남들보다 더 편하기도 하고 더 아프기도 하다. 결국 이렇게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XXX로 간다.
“네, 삶이 다 그렇죠.”

마지막 페이지 무렵부터는 에디터 중 몇몇의 2010년대에 관한 개인적인 리포트를 담았다. 현재 에는 스물세 명이 일하고 있다. 

201911 #143

By EDITOR'S LETTER

현대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획일화다.
같은 성, 같은 국적, 같은 고향, 같은 이념 등으로 사람의 본질을 구분하고 편을 가르는 것처럼 위험하고 비겁한 일은 없다.
이미 세상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한 지 오래됐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부러워하는 정서가 팽배하다.
그것을 혐오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자신의 미천한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회는 다양성을 상실했다. 다양성을 밑거름 삼아야 단단하게 피어날 수 있는 개방성과 팽창성도 사라졌다.
평등은 평범으로 전락했고,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적이 된다. 개인의 인권과 독립성을 가장 중시해야 할 진보적 가치는 그 어디에도 없다.
국민적 합의, 또 이런 구차한 말을 들먹이며 성차별 금지법 하나 요즘 바이브로 개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의 문제점은 즐비한 데 관심조차 없다. 또다시 다수결 중심의 여론조사 판이 됐다.

그리고, 지겹지도 않나 보다. 20세기 난무하던 도덕과 정의를 묻는다.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비열한 마녀사냥 방식으로. 그 잣대는 실로 보잘것없다.
누가 ‘덜 더럽냐’ 혹은 누가 ‘더 깨끗하냐’, 이 정도 차이인데 그 심판을 철 지난 감성의 언론이 주도하고 있다.
그 언론 위아래로는 분배에 충실하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이론에 능하다는 적당히 부패한 선생들이 기득권을 꽉 쥔 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엉덩이가 참으로 둔하고 더러워 그나마 의식 있는 자 중에 그들이 사라진다 한들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자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터놓고, 지금 20세기 도덕이 그리도 중요한가?

‘뜻밖의’ 생각을 갖고도 나라 밖을 나가 서 있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인데, ‘다양한’ 생각조차 갈 곳이 없다.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변할 줄 알았는데, 세력만 변했다.
깨라고, 열라고, 더 다양해지라고, 늦더라도 앞으로 가라고, 그래서 정말 다른 걸 하라고, 울부짖어야 하는데
자리 눈치만 보고 그 반대로만 가니 싹이 트지 못하고 열매는 바닥에 깨진다. 망자에게 위로의 말조차 꺼내기 겁나는 뼈 아픈 나날이다.

+
이번 판권에부터 보이지 않는 패션 에디터 이종현은 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서울 성수동에 아늑한 터전을 자리 잡아 스무 명이 넘는 팀이 생겨나고,
또 넓게 보면 차이나가 론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지난 4년, 그가 에 쏟은 20대의 시간이 새로 시작하는 30대의 앞날에
마치 그가 좋아하는 피겨들처럼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길 희망한다.
불과 3일 차이 나는 생일을 갖고 딱 열 살 차이 나는 너이기에 군소리를 덧붙였다.

201910 #142

By EDITOR'S LETTER

 

 

 

흰 장미 속 아이유 커버를 보셨나요?
이제 다채로운 색의 장미를 보실 차례입니다.
세상에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주는 가치를 잊지 마세요.
의 가을, 겨울 특집호 또한 루틴을 벗어난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뎀나 바잘리아는 발렌시아가 쇼장 안에서 포토 부스를 과감히 없애버렸고(덕분에 모두가 프런트 로에 앉게 됐죠.
사진가들은 백스테이지 안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고요), 버질 아블로는 쿨하게 세 달간 휴가를 내버렸잖아요.
한 번 더 이야기하는데 ‘안 된다’고 말하지 마세요.
다 됩니다. 부딪혀보자고요.
우리가 얼마나 젊은데요. 아니 어린데 말입니다.

 

 

 

201910 #141

By EDITOR'S LETTER

Declare Independence.

<데이즈드> 독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 문장은 매달 커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이즈드>의 표어와도 같다. 예전에 비요크의 노래 중 동명의 곡이 있었다. 비요크의 6집 앨범 중 세 번째 싱글곡으로, 덴마크의 식민지로 남아 독립을 준비 중인 그린란드와 페로스제도의 독립을 촉구하는 헌정곡이다. 그녀와 여러 차례 작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화제가 됐다. 이 곡이 본의 아니게 더 이슈가 된 것은 2008년 3월, 중국 상하이 공연에서 비요크가 이 노래를 부른 후 “티베트, 티베트!”라고 외치며 달라이라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Declare independence
Don’t let them do that to you
Declare independence
Don’t let them do that to you

반복되는 이 가사는 사실 독립을 염원하는 한 국가뿐 아니라 현대 시민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다수의 의견을 중시하고, 자신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야 할 때가 많으며,
심지어 결혼은 개인이 아닌 가족의 연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인 곳이라면 더더욱.

참 기가 막히게도 내가 <데이즈드>를 맡기 전 <데이즈드>의 표어는 ‘Be the First to Know’였다. 2015년 10월호 이전 <데이즈드>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그렇게 <데이즈드>의 방점 또한 달라진 것이다.

‘2010년대’라는 시간으로 나올 <데이즈드>도 이제 몇 권 남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인 2020년대를 목전에 두고 관계와 독립성을 고민하는 내게 도움이 된 것은 1991년 영화 <조니 스웨이드Johnny Suede>였다. 브래드 피트의 첫 상업 영화인 이 작품에서 음악가를 꿈꾸는 그는 친구의 조언에 이렇게 대꾸한다. “시대라는 건 어차피 금방 지나가잖아. 내 음악은 언제 어디서든 나와. 시대가 따로 없어.” 하기야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지면 당신은 필요 없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20대의 조니 스웨이드(브래드 피트), 즉 청춘만이 가능한 자존심에 풍류를 더한 미학.
틀리면서 동시에 맞는 말이다. 시대는 어차피 금방 지나간다.

이 영화에는 가수이자 영화배우이며 작가인 닉 케이브Nick Cave도 등장한다. 조니 스웨이드가 동경하는 뮤지션 프레이크 스톰Freak Stom 역이다. 닉 케이브가 누구인가. 밴드 ‘Birthday Party’를 비롯해 ‘Nick Cave & the Bad Seeds’을 통해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분노와 슬픔을 느낄 법한 울부짖음에 가까운 고딕 록 사운드로 유명한 뮤지션이자 소설 <버니먼로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혐오와 동정을 창조한 자신만의 천재성을 처연하게 확장하고 있는 시대의 아티스트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이달 <데이즈드> 영국판 커버가 닉 케이브의 아들, 얼 케이브Earl Cave다. 갑자기 나이가 궁금해 찾아봤더니 닉 케이브는 1957년생, 얼 케이브는 2000년생. 그러니까 닉 케이브가 40대 중반에 낳은 금쪽같은 아들인 셈이다. 얼 케이브의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니 1991년도 영화 <조니 스웨이드> 속, 그러니까 30대 초반 닉 케이브와 판박이다. 업로드한 사진이나 글도 비범하다. 피는 못 속인다. 얼 케이브는 구찌 행사에도 초대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200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구찌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무슨 횡설수설이란 말인가. 추석을 하루 앞둔 채 마감하겠다고 사무실에 나와 이것저것 쓰다 보면 논점이 올곧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결국 나는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내 길을 갈 거고, 현재뿐 아니라 어떤 고전을 통해서든 영감을 받아 성장할 거고, 무엇보다 그 끝에 나를 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거다. 그리고 나는 결코 <데이즈드>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내 창작물을 언제 어디서든 나오게 만들 거고, 그것은 시대가 따로 없을 것이다. 회전의자를 360도로 여러 번 돌리고 돌린 끝에 나온
2019년 9월 12일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