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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201812 #130

By EDITOR'S LETTER

 

 

다시 또 순수하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원래부터 가진 것이 없었으므로 더 이상 욕심낼 것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말간 민낯을 보며 만족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나를 닮은 아이를 보게 될 수 있을까.

내가 내 옷장을 정리하고, 거실 테이블의 먼지를 닦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경기도 양평의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출퇴근할 날이 올 수 있을까.

팀원들에게 조금 모자라 보이더라도 따뜻한 미소를 날리며 마감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내년에는 발로 썼다 한들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한 개라도 출품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운동 비슷한 걸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술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줄일 수 있을까.

거의 30년 동안 응원하고 있는 여자 농구 팀이 올해는 프로 리그 첫 우승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믿고 있는 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잠시나마 키우던 강아지를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이틀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쉴 수 있을까.

다음 주부터 계속될 도쿄, 뉴욕, 런던 등의 출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고질병인 인후염을 두 번은 더 겪지 않고 올겨울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정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생길 수 있을까.

다음 주 내로 곰팡이가 슨 이불과 베개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을까.

지금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변함없이 행동으로 옮길 만한 용기를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배고픔 앞에서 차분할 수 있을까.

여동생 딸 ‘솔이’가 사춘기가 되더라도 인정받는 외삼촌이 될 수 있을까.

1년 안에 아빠에게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이 내리는 것을 진심으로 기다려볼 수 있을까.

내가 파운더founder가 된 패션 매거진을 전 세계에 파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소년의 몸이 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너에게 단 하나의 사람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영원한 것도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서양 어디에선가 첫 쇼를 할 수 있을까.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책을 낼 수 있을까.

아늑한 가게를 낼 수 있을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어떤 강 앞에서 백발의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같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2018년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는 이 먹먹한 순간을 2019년 이맘때는 먹먹하지 않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 다 이럴 수 있을까.

201811 #129

By EDITOR'S LETTER

 

VISIBILITY

 

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VJ였다. 1995년 케이블 TV 채널 엠넷의 개국과 더불어 재키림, 최할리 등 1세대 VJ들이 브라운관을 채웠고, 그들은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케이블 TV는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에 힘입어 당시 가장 창조적인 미디어 플랫폼이었다. 말투와 태도는 물론 옷차림과 화장법까지, 이들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개성’이었다. 한마디로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 X세대라는 신조어와 더불어 ‘누네띠네’라는 아이스크림까지 히트 쳤을 정도로 어떻게든 도드라지는 차림을 하고 강남역을 누벼야 했다.

어느덧 케이블 TV가 올드 미디어로 꼽히게 된 요즘, 이제 유튜브와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는 눈에 띄고자 하는 거리의 욕망을 디지털화했다. 이른바 가시성(Visibility). 시각적인 것에 가장 민감한 패션계는 너나없이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가시성을 위한 도구도 진화했다. 1차원적이지만 가시성에 꽤나 효과적이었던 각양각색의 로고 플레이를 넘어, 바야흐로 올겨울의 핵심 키워드는 발광(發光)이다. 좀 더 포장해 말하면 고가시성 패션(High-Visibility Fashion).

미우치아 프라다는 고상한 캐시미어 코트를 버리고 미래 세계에 온 듯한 네온 컬러를 뿜어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색을 입혔는지 신기할 정도로 형광빛이다. 소방관이나 환경미화원이 안전을 위해 입는 반사 재킷은 준야 와타나베와 캘빈 클라인 205W39NYC를 비롯한 일류 브랜드의 애정을 받으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 등 편집매장의 윈도를 장식하고 있다. 그 핵심 소재인 3M 스카치라이트는 리플렉티브(reflective) 패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옷뿐 아니라 가방, 신발 가릴 것 없이 완벽한 원톱 주인공이다. 느닷없이 패션계의 안전 제일주의가 실현된 셈이다.

브랜드의 수장이 바뀔 경우 가시성 높은 이벤트는 당연시된다. 버버리는 홍콩의 이층버스, 서울의 플래그십 매장, 런던의 블랙 캡 등을 리카르도 티시가 만든 새로운 버버리 로고로 감싸는 독창적인 포장 마케팅으로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 모두 화제를 모았다. 역시 새로운 광고 캠페인과 로고를 전 세계 곳곳의 벽마다 포스터로 붙이며 에디 슬리만을 환영한 셀린느 역시 마찬가지다.

패션 매거진의 경우 커버의 가시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스크롤을 멈추게 할 만한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글과 그래픽을 위해 전부를 건다. 2종 커버는 예삿일이며, 맞다. 이달 는 제호부터 번쩍인다.

A.I가 먹거리 광고를 제작하고, 가상 인플루언서 누누리(Noonoouri)가 디올의 새로운 립스틱 모델이 됐다. 2019년을 눈앞에 둔 지금 어떻게 진정성 있고 미래적인 가시성을 쟁취하느냐는 숙제를 넘어선 숙명이다.

이달 는 디지털 에디터 2명과 뷰티 에디터 1명, 피처와 아트 디자인을 넘나드는 에디터 1명 등 총 4명의 새 얼굴을 충원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까마득한 디지털 세계, 우리가 가는 길을 여러분이 잘 식별할 수 있도록, 뿌연 시계(視界)를 맑고 푸르게 걷어내기 위해서.

201810 #128

By EDITOR'S LETTER

 

리얼리티

몇 년 전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이 꽤 잘나갔습니다. 구성은 간단합니다.

가짜가 진짜를 연기하는 가운데 누가 진짜인지를 찾는 게임입니다. 대상은 연예인의 친척이거나 기네스북 등재자,

때로는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를 맞히기도 했습니다. 조금 허술해 보이는 진짜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훈련된 가짜를 마치 탐정이라도 된 양 찾아내는 쾌감이 주는 오락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모창을 잘하는 가짜 중에서 진짜 가수를 찾는 <히든싱어>처럼 진화를 거듭하며 여전히 대중에게 통하는 소스가 되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팔로어 수를 좀 사세요.”

근래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쇼핑으로 모든 스트레스를 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가 유독 사고 싶지 않은 것, 바로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공간에서 숫자를 늘리기 위해 사야 한다는 매거진 SNS의 팔로어 수입니다. 거의 20여 년을 패션계에서 동고동락한 지인이 “그래도 브랜드에서는 숫자를 중요시해. 티도 안 나는데 뭐 그리 뻣뻣하게 굴어?”라는 타박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매거진 커버에 형광 색깔 로고를 박느라 돈을 쓰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니까요.

그러다 3일 전 우연히 본 한 게시물을 통해 정신을 차려봅니다. 요즘 잘나간다는 공간에서 젊은 디자이너의 티셔츠를 입고 9월호 <데이즈드>를 두 손 가득 투명 봉지에 담아 들어 올린 사진 한 장이 담긴 인스타그램의 포스팅. 진짜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니까요. 최근 3년여간 하이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는 베트멍입니다. 그들은 논란과 이슈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바이럴 피스를 양산할 줄 알았고, 금기시되던 기존 브랜드의 로고를 과감한 협업을 통해 재창조해냈습니다. 한마디로 ‘왜 안 돼?’ 정신이랄까요. 베트멍이 협업하면 죽어가던 브랜드도 살아났습니다. 물론 베트멍이 선택한 브랜드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신발이든 티셔츠든 심지어 택배 회사든 자신만의 오리지낼러티를 지닐 것. 그들이 양산한 또 하나의 혁신은 모델 캐스팅입니다. 개성 있는 보통 사람을 런웨이와 캠페인 모델로 적극 활용한 것입니다. 네, 과거 마르지엘라도 그리했듯이요.

헤어와 메이크업을 바꿔가며 옷에 따라 연기하는 톱 모델의 시대를 넘어 적재적소 이미지에 맞는 사람을 쓰는 캐스팅의 혁신은 베트멍만이 아닌 디지털 시대 패션 브랜드 전체의 새로운 세계관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가치가 뜨면 다양한 어젠더를 지닌 또 다른 세력이 출현하기 마련입니다. 포스트 베트멍 시대의 양상은 안개처럼 자욱한 미래의 패션계에 누가 어떤 콘텐츠로 승리를 움켜쥘지 마냥 흥미진진한, 춘추전국시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야흐로 ‘DAZED’하고 ‘CONFUSED’합니다. 멍하고 혼란스러우며 분명치 않습니다.

<데이즈드> 한국판 역시 혼돈의 시기,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월간지의 기존 셈법을 무시한 채 다양한 실험을 곁들여 게릴라식으로 책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10월호, 실제가 주는 가치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서로의 사촌도, 연인의 키스도, 갓 스물이 된 친구 사이도 모두 실제고 진짜입니다. 진실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가짜는 패션계에도, 디지털 세계에도, 감히 여러분의 삶에도 없음을 믿(고 싶)습니다.

201809 #126

By EDITOR'S LETTER

 

안동 외가에 가면 MBC 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의 톰 크루즈가 나왔는데 외사촌 누나가
소리를 꽥 질러 깼다. ‘낮에는 박남정한테도 그러더만.’ 초등학생이던 나는 당연히 이불 속에 숨어 몰래 봤다. 기억나는 건 톰 크루즈가웃통을 벗고 꽉 끼는 청바지를 입었는데, 그 사타구니를 유독 강조하는 장면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바지가 끼는 것이구나.’또 언젠가 안동 그 TV 방에서 외사촌 누나의 괴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속 톰 크루즈였다. 어느덧 고3이 된 누나는 연신 화면 속 톰 크루즈의 얼굴을 닦고 또 닦아댔다. “멋있어, 캡이야, 캡숑이야.” 나는 누나가 감전되지 않길 떨며 기도했다.

훗날 알았지만, 미국식 청춘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톰 크루즈가 나오는 이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모두 토니 스콧 감독이 연출했다.1980년대 내가 그 에서 본 톰 크루즈는 20대였고, 토니 스콧은 30대였다.

스물네 살짜리와 함께 이창동 감독의 을 보고 좀 먹먹했다. 60대 중반의 감독과 그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60대 후반의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청춘이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요즘 20대에게 닿기엔 멀어 보였다(스물네 살짜리의 말과 표정은 더 적나라했다). 허기와 굶주림, 동경과 갈증,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진보적인 시선의 연민, 그리고 무언가 순수를 찾아 헤매는 성장통의 아름다움···. 사실 이건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 시대 청춘의 이념들이었다. 만약 내가 스물네 살 때 마흔 살짜리 삼촌과 를 봤다면 같은 기분이었으려나.

요즘 청춘은 결코 동경하지 않는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 대기업의 명함과 이메일 주소, 각자의 동기부여 앞에서 무릎 꿇은 지 오래다. 진보적이라고도,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각각의 이슈에 대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취사 선택이 가능하다. 고로 이념이나 국가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반면 내 삶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인 원초적인 배경과 터전에 대한 연민 따위야 내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망상에 불과하다. 누구의 지원 없이 제프 베이조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도’ 있다.

래리 클락이 쉰두 살에 만든 가 20여 년이 지나 그의 나이 일흔한 살에 만든 보다 억만 배는 더
‘청춘’이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뭐, 안다.
곧 내 차례다.

“나는 이제 일은 뒤로 가 있어. 다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지. 나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유능해. 는 그래야 하고.”
작년, 의 창립자인 제퍼슨 핵이 나를 보자마자 내 나이를 물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유스 컬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황홀한 까닭은 바로 ‘때’가 있어서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순간이 주는 고귀함.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2018FALL #125

By EDITOR'S LETTER

 

빼앗긴 나의 매력에도 가을은 오는가

“개그맨 하셨으면 잘할 것 같아요.”
오늘, 일 때문에 회의하다가 업계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맞아요. 저 개그맨 시험도 보고 준비도 했었어요. 원래 진짜 재미있는 사람인데 살다 보니 예전만 못해요. 아예 감을 잃었죠.”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는 그의 말에 숨통을 조이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살포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재미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랬다. 그렇게나 좋았다.
‘잘생겼다’, ‘똑똑하다’, ‘멋있다’ 딱히 뭐 이런 말을 못 들어봐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재미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큰 칭찬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남이 웃어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간지러운 설렘과 파렴치한 쾌감을 느꼈다.

“미간에 움푹 파인 주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요. 일하다 보니 생긴 거겠죠.”
어제, 목에 담이 올라와 찾은 병원에서 도수 치료를 하던 의사가 혈액순환이 안 돼 얼굴이 부었다면서 해준 이야기다.
“이해는 되지만 표정을 너무 찌푸리고 살지 마세요” 덧붙이기도 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거울 속 나는 남을 웃기기는커녕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나는 정말 잘 웃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한번 웃으면 그 웃음소리가 하도 크고 특이해서 전교생이 다 따라 웃는 바람에 웃음 금지령까지 내렸었다.
고등학생 때는 웃다가 굴러서 교복이 다 찢어지는 줄도 몰랐다.
어머니는 ‘남자가 너무 자주 웃으면 헤퍼 보인다’라는 어머니다운 조언도 하셨다.

나는 더 웃길 수 있고 웃기고 싶다.
나는 더 웃을 수 있고 웃고 싶다.

본래의 나를 잃어가는 것만큼 우울한 일이 있을까.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에 내 모든 매력을 뺏겼다.
여러분의 정기 구독만이 빼앗긴 나를 보상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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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 #124

By EDITOR'S LETTER

2017년 7월 27일
“이번에 앨범을 내면서 너무 많은 감정을 써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쓸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요.
누가 물어봐도 별로 할 말이 없어요. 만약에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아주 가끔 조금이라도 내 생각난다면 내가 오늘
부르는 이 노래처럼 나에게 그렇게 해줬으면 너무 좋겠어요.”
1998년 5월 23일, 이소라는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 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노래 ‘믿음’을 부른다.

힘든가요 내가 짐이 됐나요 음 마음을 보여줘요
안 된대도 아무 상관없어요 내 마음만 알아줘요
다른 사람 친한 그댈 미워하는
나의 사랑이 모자랐나요 늘 생각해요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 또 없을 테니
내게 힘이 돼 줘요 난 기다려요
그대 난 영원해요

우는 내가 많이 지겨웠나요 음 그래요 이해해요
많은 밤이 지나 그대 후회되면
다시 내게로 돌아올 테니 다 괜찮아요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 또 없을 테니
내게 힘이 돼 줘요 난 기다려요
그댈 난 원해 그댈 사랑해 그대 난 영원해요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 또 없을 테니
내게 힘이 돼 줘요 난 기다려요
그대 난 영원해요

나는 이달,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 리뷰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 인터뷰, 에르메스 일본 출장 후기 등 많은 글을 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개인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썼다. 누가 물어봐도 별로 할 말이 없을 지경, 한마디로 감정과 이성 모두 소진됐다. 그저 이 페이지를 읽고 있다면 이 약속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는 7월 27일이면, 렉스트림이라는 새로운 둥지를 틀어 를 새롭게 발행한 지 꼭 1년이 된다.
살아남을 수 있는 원천이 돼준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는 온갖 프린트 매거진의 풍파 속에서도 ‘믿음’이 되는 책이 되도록 정진할 것이다.

201807 #123

By EDITOR'S LETTER

2019

세계적으로 남성복 패션위크가 한창 열리는 중입니다. 2019년도 S/S 컬렉션입니다.
2019년, 실질적으로 그 숫자를 맞닥뜨리기에는 6개월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경건해집니다.

1999년이 2000년을 코앞에 둔 세기말의 불안감을 억지로라도 즐기게 했다면, 2019년은 ‘벅차긴 한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나는 과연 2020년을 버틸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스스로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2000년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2020년은, 인류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한 번쯤 그려본 ‘초’미래적인 시기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2000년과 2020년이 뭐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오늘 아침, 보테가 베네타의 이메일을 보고 한결 더 와닿았습니다. 2001년부터 17년여 동안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토마스 마이어가 떠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토마스 마이어를 조금 더 근거리에서 만날 기회는 에디터로서 두세 차례 있었습니다. 5년 전쯤 중국 상하이에 보테가 베네타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 행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토마스 마이어의 디너가 있던 저녁, 한 가지 지령이 떨어집니다.
“그와 사진은 찍지 말아주세요. 혹여 몰래 찍더라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대다수, 이 부탁 아닌 부탁을 이해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대중에게 보일 자신 모습의 가이드라인을 잡는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고 배워온 우리에게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유명한 사람과는 반드시 함께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에디터 A의 소셜 네트워크 피드에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마이어는 화난 표정이었을까요? 무표정,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습니다. 약간은 체념한 듯 아니면 허탈한 듯, 표정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런던에서 디자이너 톰 포드를 만나는 이벤트에 취재차 갔습니다. 톰 포드 역시 더하면 더했지 사진을 편히 찍을 수 있는 디자이너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가 속삭입니다.
“웬일인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준대요. 그러니까 날 따라와봐요.”
네, 그날 저는 톰 포드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톰 포드가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과 사진을 찍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전 그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000년에서 2019년 사이 저는 사진 찍는 것을 마냥 불편해하던 토마스 마이어와 시대가 변했다고 느꼈는지 몇몇에게는 사진을 허락한 톰 포드 사이를 우왕좌왕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굉장히 빠르고 다이내믹했으나 그래도 예측 가능한 변화였고, 또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는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하는 것이던 시기, 우리는 그렇게 2000년부터 오늘을 살아왔습니다.

2019년이 가슴 깊이 무겁고도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2020년은 지난 20년과는 달리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한 시기가 될 거라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전조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급변하고 있는 것 또한 2020년이라는 시기가 상징하는 변화에 대한 중압감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물리적 성인이 되는 바로 지금, 1900년대의 가치관은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폐쇄적인 인물이라도 과거를 좇는 ‘꼰대’로 비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네, 2020년은 새롭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울 것입니다.

2018년 하반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과거 영광과의 이별에 둔감해져야 하는 일입니다. 아마도 훗날 2000년과 2020년 사이에 머물던, 이 시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기억될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를 떠나보내야 하듯 말입니다.

저와 <데이즈드>는 2019년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넘어 중국,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갈 그날을 말입니다. 정정합니다. 2019년을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가장 능동적으로 그 시기를 데려오는 데 앞장서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결코 한발 앞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시작된,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부디 이 미지의 길에 동참해주십시오. 발맞춰 먼저 갑시다. 그곳을 향해.

201806 #122

By EDITOR'S LETTER

 

P.S
<데이즈드>의 열 살 생일을 맞아 준비한 영화제, 음악회에 함께해주신 모든 독자, 아티스트, 브랜드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를 잃지 마세요.

 

 

201805 #121

By EDITOR'S LETTER

10년

2008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그해 6월 1일, 이브 생 로랑이 타계한 것입니다.
당시 코리아의 창간팀 에디터였던 저는 피에르 베르제의 마음에는 쥐톨만큼도 못 미치겠지만 슬펐습니다. 그날 일이 생생합니다. 오전 11시 반쯤 사무실에서 점심 메뉴를 이야기하던 중 비보를 접했고, 점심을 먹으며 그에 대한 추모의 칼럼을 창간호인 8월호 맨 앞부분에 싣기로 결정했습니다. 편집팀 어느 누구 하나 이견이 없을 정도로 이브 생 로랑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패션이었고 창조자였으니까요. 그 칼럼에는 이브 생 로랑의 이런 말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의 스타일은 영원하지만, 유행이란 덧없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타계하기 두 달 전, 코리아는 창간했고 2018년 5월호로 10주년이 되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런던에서 온 라는 젊고 주체적인 성향을 지닌 패션 매거진이
독립성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는 이 땅에서,
게다가 어두운 세력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지난 세월을 거쳐
무려 10년을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수줍게나마 축하를 받고자 커버에도 커버 모델인 아이유의 ‘이’를 살짝 뒤집어 ‘10’이라고 표기했습니다. 하나 된 대한민국을 꿈꾸는 바람에서 ‘데이즈드’ 제호를 한글로 표기한 특집 커버도 만들었고, 북녘 땅에서 가장 가까운 삼부연과 직탕폭포에서 촬영한 패션 화보와 2000년대 초반 평양 시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비롯해 군데군데 10주년의 흔적을 뿌려놓았습니다. 지난 3년여간 인터뷰한,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두면 좋을 패션 디자이너 36팀을 엮은 부록 ‘Fashion Designers You Need to Know’도 있습니다.
더불어 오프라인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 , 등이 국내 최초로 상영되는 ‘데이즈드 영화제’와 5월 초에는 ‘데이즈드 아카이브 전시’를 겸한 작은 파티도 열 예정입니다. 디지털로는 ‘데이즈드’를 불러주면 운동화를 드리는 ‘콜 미 바이 유어 데이즈드&’ 이벤트도 하고 있습니다.
아, 그중에서도 지난 반년여간 가장 공을 들인 곳이 있습니다. 4월 말 오픈 예정인 의 홈페이지(www.dazedkorea.com) 리뉴얼 작업입니다. 디지털 월드에서 프린트 매거진의 진정한 경쟁력은 홈페이지의 용이성, 확장성에 있다고 봅니다. 용이성에도 애를 썼지만 그중에서도 자랑하고 싶은 것은 이제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코리아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홈페이지를 마켓화해서 코리아를 디지털에 친근한 상품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둘 예정입니다.

의 창간 10주년 커버 모델인 아이유 역시 올해로 데뷔 10주년입니다. 이제 곧 읽게 되시겠지만, 아이유는 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10주년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뭔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몇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은 있어요. 나는 이럴 때 이렇구나, 이건 잘 변하지 않는 성질이구나, 이 정도는 ‘픽스’로 두어도 되지 않나, 그런 게 좀 생겼어요. 10년, 사실 근데 3년 때나, 8년 때나 크게 다르지는…. ㅎㅎ”

내일이면 대하소설 못지않았던 이번 마감이 끝나지만
다음 날 오전이면 저와 에디터 몇몇은 다음 호 커버를 촬영하러 제주도로 떠납니다.

는 생활입니다.

그럼에도 그저 누군가
“ 10주년 호는 레전드 혹은 갓띵작(명작을 뜻하는 요즘 말)이었어”라고 말해준다면
그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듣는다면 정말 울음이 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같이 프린트 매거진에 관심이 없는 시대에 말이죠.

는, 네, 맞습니다.
전부입니다.

P.S
그리고 바로 이 다음 페이지, 존경에 마지않는 미디어 CEO 겸 의 공동 창립자이자 UK 발행인, 제퍼슨 핵이 창간 10주년을 맞은 코리아에 쓴 축하 편지가 담겨 있습니다. 런던 컬리지 오브 프린팅(London College of Printing)을 다니던 21세의 학생이, 2001년 라는 도발적인 에디션을 만들어 콘데 나스트와 허스트라는 미국 거대 미디어 회사들이 주도하던 세계 패션 매거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역입니다. 더불어 제가 받은 이 선물 같은 편지가 여러분의 기억에도 잠깐이라도 남는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조울증이 심해 여러분에게 많은 감정을 요구한 이달의 편집장 글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