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외가에 가면 MBC 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의 톰 크루즈가 나왔는데 외사촌 누나가
소리를 꽥 질러 깼다. ‘낮에는 박남정한테도 그러더만.’ 초등학생이던 나는 당연히 이불 속에 숨어 몰래 봤다. 기억나는 건 톰 크루즈가웃통을 벗고 꽉 끼는 청바지를 입었는데, 그 사타구니를 유독 강조하는 장면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바지가 끼는 것이구나.’또 언젠가 안동 그 TV 방에서 외사촌 누나의 괴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속 톰 크루즈였다. 어느덧 고3이 된 누나는 연신 화면 속 톰 크루즈의 얼굴을 닦고 또 닦아댔다. “멋있어, 캡이야, 캡숑이야.” 나는 누나가 감전되지 않길 떨며 기도했다.

훗날 알았지만, 미국식 청춘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톰 크루즈가 나오는 이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모두 토니 스콧 감독이 연출했다.1980년대 내가 그 에서 본 톰 크루즈는 20대였고, 토니 스콧은 30대였다.

스물네 살짜리와 함께 이창동 감독의 을 보고 좀 먹먹했다. 60대 중반의 감독과 그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60대 후반의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청춘이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요즘 20대에게 닿기엔 멀어 보였다(스물네 살짜리의 말과 표정은 더 적나라했다). 허기와 굶주림, 동경과 갈증,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진보적인 시선의 연민, 그리고 무언가 순수를 찾아 헤매는 성장통의 아름다움···. 사실 이건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 시대 청춘의 이념들이었다. 만약 내가 스물네 살 때 마흔 살짜리 삼촌과 를 봤다면 같은 기분이었으려나.

요즘 청춘은 결코 동경하지 않는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 대기업의 명함과 이메일 주소, 각자의 동기부여 앞에서 무릎 꿇은 지 오래다. 진보적이라고도,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각각의 이슈에 대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취사 선택이 가능하다. 고로 이념이나 국가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반면 내 삶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인 원초적인 배경과 터전에 대한 연민 따위야 내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망상에 불과하다. 누구의 지원 없이 제프 베이조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도’ 있다.

래리 클락이 쉰두 살에 만든 가 20여 년이 지나 그의 나이 일흔한 살에 만든 보다 억만 배는 더
‘청춘’이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뭐, 안다.
곧 내 차례다.

“나는 이제 일은 뒤로 가 있어. 다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지. 나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유능해. 는 그래야 하고.”
작년, 의 창립자인 제퍼슨 핵이 나를 보자마자 내 나이를 물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유스 컬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황홀한 까닭은 바로 ‘때’가 있어서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순간이 주는 고귀함.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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