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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 #100

By EDITOR'S LETTER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갑니다.
인스타그램 2번 들어갈 때 페이스북은 1번꼴로요.
세 달 전쯤에는 스냅챗도 깔았습니다. 아직 남의 것은 볼 줄 아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릅니다.
포켓몬 GO 게임이 유행이라고 해서 어제 새벽에는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속초 갈 정도로 흥미는 없지만요.

뉴스는 JTBC <뉴스룸>을 챙겨 봅니다.
모바일로는 ‘다음’ 홈페이지를 주로 접속하는데, 검색은 구글로 하는 편입니다.
죄송합니다. 신문은 사서 읽지는 않고, 가리지 않고 웹으로 봅니다. .

드라마는 KBS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을 즐겨 보고,
영화는 1만원을 지불하고 그제 <비밀은 없다>를 VOD로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비밀’이 들어가는군요.
예능 프로그램은 <라디오스타>, <엄마가 뭐길래>를 좋아하고 <음악의 신 2>는 끝나서 아쉬워했습니다.
음악은 가장 최근에 닉 조나스의 새 앨범을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었고요.
XXX의 ‘디올 옴므’란 곡도 가사가 재미있기에 찾아 들었습니다.

패션 잡지로는 가장 최근에 <시스템(System)>을 구입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이나 모델스닷컴(Models.com)을 자주 들어갑니다.

심심하면,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잠이 안 오면, <섹스 앤 더 시티>를 봅니다. 시즌 4가 가장 재미있어서 잠들기 어렵습니다.

미디어가 만든 거대한 숲 속에서 제 취향은 까발려집니다.
전 발가벗겨진 채 오늘도 작디작은 램프 하나를 들고 <데이즈드>의 갈 길을 찾습니다.
옅은 바람에도 꺼질락 말락 하는 볼품없이 낡은, 구형 램프입니다.

누군가는 <데이즈드>가 여성지라고 하더군요.
여배우만큼이나 싫어하는 말입니다만,
기왕 하나의 성(性)으로 패션 잡지를 나누려거든
차라리 <데이즈드>는 ‘양(兩)성지’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한국판>이라고 하더군요.
라이선스 잡지라는 한계는 인정합니다만,
한번 굳은 마음 먹고 조금이라도 더 글로벌한 영향력을 갖춘 에디션이 되어볼 테니
<데이즈드> 한국판이 아닌 한국판 <데이즈드>라고 불리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대부분은 ‘잡지 시장은 죽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그분들보다 훨씬 더 피부로 느낍니다만,
시류에 개의치 않고 ‘패션 잡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인쇄물로 영원할 테니
클릭이 아닌 ‘소장’하고 싶은 잡지로 불리면 좋겠습니다.

구구절절한 까닭은 사실 이번 8월호가,
<데이즈드> 한국판이 100번째로 숨을 쉬는 꽤나 의미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가 100호가 아닌 99.9호로 표기된 이유,
전 그것을 위해 다시 달려가겠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친숙해진 작은 램프가 숲을 향해 불빛을 당돌하게 비춥니다.

201606 #98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제가 쓰던 방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창은 제 키보다 두 뼘은 더 높이 있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의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답답했는지 한겨울에도 전 의자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그럴 때면 늘 여지없이 저를 맞은 것이 바로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뾰족하게 날이 선 모습으로, 가끔씩은
소시지 반찬, 네, 그 동그란 미소를 띠기도 했습니다.

그 달이 많이 좋았나 봅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달을 향해 뭔가를 썼으니까요.
달의 모습이 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달에 대한 역할도 매일 달랐습니다. 친구도 됐다가 짝사랑하는
연인도 됐다가 미래의 내 자신도 됐다가 하나님도 됐습니다. ‘달’이라는 제목으로 들쑥날쑥
써 놓은 메모가 3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담긴 것을 보면 참 많이도 의지했나 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상을 찾아 헤매던, 외롭던 사춘기 시절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한 달 좀 힘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못 가 생니를 뽑아낼 만큼 곪아버린 교정 치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불어온 봄바람에 싱숭생숭 코 평수가 넓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하기에 저도 모르게 이래버렸습니다.

“몰라. 사춘기인가 봐.”

思春期. 한자로 사춘기는 생각할 사, 봄 춘, 때 기, 이렇습니다.
여기서의 봄은 만물이 소생함을 의미합니다. 땅속에서 솟아 껍질을 깨는 아픔, 그러면서 어떤
세상 밖 풍경이 펼쳐질지 꿈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봄을 말입니다.

그렇게 따져보니 사춘기가 꼭 10대만의 특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싹 틔우려는
창조적인 소수, 그들에게 사춘기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반복될 테니까요.
멀리서 찾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척박한 한국 잡지 시장에서 남성지도, 여성지도 아닌 패션지의
형태로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즈드>야말로 평생 사춘기 팔자, 아니겠습니까?
마냥 씨앗만 뿌리다 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휘황찬란한 부록 한번 못 드린 마음에서 아마도 제가
대신 사춘기 병에 걸렸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인 사춘기를 즐기겠습니다.
안정보다는 변화, 기득권보다는 미래의 세력,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독창적인 패션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새싹이 움트도록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달 6월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역시 저희와 맥락을 함께합니다.
제 작은 창을 비추며 저를 달래던 그 달은 <데이즈드>에게도 ‘유효’합니다.

 

201607 #99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

201605 #97

By EDITOR'S LETTER

내일

곧 부모님이 세종시로 이사를 갑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어릴 적 추억들이 귀퉁이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꽤나 열심히 썼던 일기장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끄적인 메모들, 졸업 앨범, 성적표….
한참을 낄낄대며 보는데 아버지가 넌지시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저 잡지들은 어떻게 할 거냐?”

고개를 돌려보니 책장에 50여 권의 잡지가 꽂혀 있습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만들었던 잡지 포함, 구입했던 외국 패션 잡지들이었죠.
그런데 제가 참여한 잡지는 남은 것이 별로 없더군요. 한 20퍼센트 정도 있으려나.
아쉽기도 했지만,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부지런 떨며 모아두질 않았던 터입니다.

제 개인적인 성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에 오글거려 합니다.
지난 것이 주는 추억과 유산을 무시한다기보다 민망함이 앞서서 그렇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아니 심지어 내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모두 다 버리고 바람처럼 어디로든 훨훨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고 말하면
이 역시 오글거리는 과대 포장이겠죠?

<데이즈드> 코리아가 2016년 5월호를 발간하며 8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기획 회의를 하면서 몇 주년 특집호, 이런 것을 이야기하자니 상당히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말이야, 2008년도부터 말이야, 얼마나 뭘 했는지 말이야.
하하하.

내일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데이즈드>에는 세대교체의 주역인 아이콘(iKON)과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세 명의 남자 배우처럼 유명한 사람도 나오지만, 동네에서 혹은 SNS에서 봤을 법한 1995년
이후에 태어난 미래의 아이콘 서른 명도 등장합니다. 사진뿐 아니라 간단한 필름으로도 만들어
홈페이지와 SNS에서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패션뿐 아니라 정치도 문화도
젊고 다른 생각도 세상을 바꿉니다.

<데이즈드>가 감히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의 아이콘을 응원할 수는 있습니다.

함께
내일을
만들어갑시다.

201604 #96

By EDITOR'S LETTER

 

Z

 

1990년대 중반 나는 10대였다. 빨리 남자가 되고 싶었지만 남자 티가 확 나진 않았다. 그래도 거침이 없었다. X세대였으니까. X세대는 개성이 중요했다. 김원준이 그랬고 현진영이 그랬고 듀스도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힘을 더했다. 형들이야 압구정동에 가서 오렌지 족처럼 흥청망청 써댔을지 몰라도 당시 10대인 나는 안양과 평촌을 무대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콧방귀 끼며 내 색깔을 만들기에 여념 없었다. 30대 후반이던 삼촌은 이런 나를 안타깝게 봤다. 명절이면 내 옷차림이 늘 도마에 올랐다. 귀를 왜 뚫고 왜 그렇게 큰 바지를 입느냐, 그들은 날 X세대가 아닌 날라리로 봤다.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새롭게 떠오른 세대는 N세대였다. N은 네트(Net)의 약자로 X세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공강 때 당구장과 노래방을 즐겼던 우리와 달리 이들은 PC방에 둥지를 틀었다. TV보다 컴퓨터에 친근하고 전화보다는 문자를 즐겼다. 미안하게도 내게 N세대는 인간미 없는 이기주의자들처럼 보였다.

 

그 뒤로도 다양한 알파벳이 붙은 세대들은 연이어 등장했으나 X나 N세대처럼 또렷하게 주목 받은 세대는 없었다. 그렇게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하고, X세대를 날라리라 부르던 삼촌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의 내 나잇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995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Z세대, 지금의 10대들이다. Z세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디지털 원주민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 적극적이며 자기 표현에 거침이 없다.

 

모처럼 등장한 신 인류에 패션계부터 Z세대를 가만 놔두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파리, 밀란, 뉴욕, 런던의 4대 패션위크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과 딸인 제이든 스미스와 윌로 스미스였다. 제이든 스미스는 루이 비통 캠페인 모델이며 윌로 스미스는 샤넬의 새로운 대사가 되었다. 이들이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은 톡톡 튄다. 제이든 스미스는 여자 친구와 함께 뉴욕 패션위크를 동행하는 등 주변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유명한 부모를 둔 것이 물론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들 자체 역시 매력적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Z세대들이 패션지를 장식하고 패션쇼에 초대받으며 주목 받고 있다. 물론 이름있는 스타의 아들, 딸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패션계가 Z세대를 남다르게 보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소비 패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X세대는 이상주의자였다. 어떻게 보이고 싶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누군가를 따라 입기도 하고 좇기도 했다. 그래서 그 개성이란 것들이 뭉쳐 하나의 유행으로 완성되곤 했다. 하지만 Z세대는 지극히 독립적이다. 또한 경제적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온라인 구매에 능동적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유행이 한 명 한 명의 자아를 통해서 전혀 다른 것들로 재창조된다. 이들에게 기존 패션 브랜드가 지닌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패션계에 남은 과제는 Z세대에게 감흥을 줄 만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느냐와 Z세대와 교감할 만한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Z세대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X세대 출신의 ‘삼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에겐 알파고가 곧 Z세대다.

 

 

201603 #95

By EDITOR'S LETTER

 

이달에도 비행기를 탔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화보를 촬영하고 왔으니까요.

전 고소 공포증과 더불어 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먹지 않으면 가까운 거리도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비행 공포증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흥분이 될 여정이 ‘지옥’같은 순간이 됩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항상 진심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간곡한 기도도 올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또 저를 사랑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전날 택시 기사님에게 차갑게 굴던 장면을 회개합니다. 

아픈 친구의 문병을 가지고 못한 제 자신을 자책합니다.

부모님의 휴가에 용돈을 보내지 못한 불효를 반성합니다.

지금이야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제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구구절절 당시의 마음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지 이륙 직전에는 그야말로 간절합니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착한 남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우연히 비행기 표에 적힌 비행 횟수를 보니 그런 약속을 거듭한 지가 벌써 150회가 넘었더군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 전 150번 넘게 거짓말을 하고 살았던 셈입니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제 자신으로 돌아오고 마는 그저 간사한 한 생명체일 뿐이니까요.

 

6개월 전, 비행기를 탈 때만큼이나(그보다 더라고 말하기엔 정말 하늘을 나는 것이 싫습니다) 간절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데이즈드>코리아의 편집장이란 막중한 자리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즐겨보겠다고 한 작년 8월입니다.

 

3월호를 마감하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150회를 넘어 180일간의 거짓말을 하고 산 것은 아닌지…

혼돈스럽습니다.

깊게 생각하고 여러 번 되씹으면서 내린 결론은, 어느 것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달 <데이즈드>에 등장하는 오혁은 그와 함께 하는 밴드가, 베트멍이라는 아이코닉한 브랜드와

동시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하게 된 뎀나 바잘리아는 오랜 동지인 스타일리

스트 친구들이 함께 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도 혼자가 아닙니다.

<데이즈드>의 편집부 에디터를 비롯해서 아트팀의 디자이너들, 광고와 마케팅, 배본을 위해 동

분서주하고 있는 수많은 팀원들과 인쇄소 사장 그리고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데이즈드>의 컨트

리뷰터들까지.

 

두 손을 한 번 더 모읍니다.

봄은 따뜻하니 봄이겠지요.

 

 

 

201602 #94

By EDITOR'S LETTER

 

 

 

1990년대에 태어날 것을 그랬습니다.

 

“고객님, 치아 교정기 떼셔야죠. 5개월이 넘었습니다.”

새해 제 소원은 이미 의사가 정한 유통기한이 지난 치아 교정기를 떼는 일입니다.

심지어 아랫니만 떼고 윗니는 떼지 못해 날이 갈수록 치아가 뒤틀어지며 음식을 섭취하기에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쉽게 정하지 못합니다. 아니 솔직히 몇 번 정했다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요즘 치과, 참 친절합니다.

 

“초과로 걷은 세금을 돌려드리려 합니다. 어서 확인해 주세요.”

새해 제 소원은 돈을 많이 버는, 아니 모으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그런데 세무서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습니다. 실수로 세금을 더 냈고, 집으로 도착한 서류에 사인을 해서 우체통에 넣어주면 열흘 내 환불해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두 달 째 여전히 세무서 봉투는 거실에 있습니다. 우체통이 어디 있는 지도 알고 있는데 말이죠.

요즘 세무서, 참 친절합니다.

 

“괜찮은 분양이 있는데 넣어 보시라니까요. 싸게 나온 아파트도 있습니다.”

새해 제 소원은 내 집 마련입니다. 지난 15년 여간 매달 지불한 월세도 이젠 부담이 되고 청약 저축 1순위 조건도 충족한지 오래입니다.

1년 여 전 화장품 몇 개를 건네주며 좋은 곳이 나오면 소개하기로 부탁한 동네 부동산에서는 끊임없이 연락이 옵니다. 아쉽게도, 그 뒤로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지만요.

요즘 부동산, 참 친절합니다.

 

“예약하신 목걸이가 입고되었습니다.”

“네. 어서 갈게요.”

“이제 한 피스 남았습니다.”

“네. 제발요.”

그러나 밀라노 컬렉션 현장에서부터 점 찍어놓은, 그렇게도 사고 싶던 그 목걸이는 결국 제 목에 채워지질 못했습니다.

그 점원 분, 정말 친절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돈을 치르고도 아직 찾지 않은 운동화도 있습니다.

매장에서 몇 번 전화를 하시더니 한 달 정도 지나니 오지도 않는 군요.

지금 전화해보기에는 네.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해준다는데도, 하라는 데도,

이러고 있는 것은

못하는 걸까요? 안 하는 걸까요?

제 기억력 때문일까요?

동네방네 오지랖 넓게 휘저어야 분이 풀리는 못난 성격 탓일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우습게도 너무 빨리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여전히 20대 팔팔한 청춘,

커버 모델 남주혁처럼 싱싱한 뉴 아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그런 혁신가가 됐을지도 모를 텐데…

 

하하하.

 

이렇게나마 빨리 태어난 걸 아쉬워할 정도로 철 없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다 <데이즈드> 코리아 덕분입니다.

<데이즈드>, 제겐 참 친절합니다.

부디 여러분에게도, 2016년 2월호 역시도 그러하길 바랄 뿐입니다.

 

 

 

 

 

201601 #93

By EDITOR'S LETTER

 

반가운 뉴스가 있습니다.

 

1996년도에 나온 <트레인스포팅>의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는 거였죠.

전편을 만들었던 데니 보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완 맥그리거, 이완 브렘너, 조니 리 밀러, 케빈 맥키드 등 기존의 주연 배우들이 모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은 제 청춘 시절을 지배한 영화가 바로 <트레인스포팅>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방에 있던 16비트 컴퓨터의 암호부터 PC 통신 시절 참여했던 모임의 아이디까지 모두 <트레인스포팅>의 주인공 이름인 랜튼을 사용했죠.

랜튼이 즐겨 입던 아디다스 저지는 컬러별로 사서 그처럼 꽉 맞게 입었습니다.

배꼽이 보이는 쫄티도, 낡은 스니커즈도, 두 팔을 휘적대며 걷는 껄렁거리는 발걸음과 초점 없는 눈동자도 모두 흉내 내느라 바빴죠.

 

영화 첫 장면의 내레이션은

인생, 가족, 직업, 미래, 대형 TV, 치과, 인스턴트식품, 운동, 결국 늙고 병드는 것…이런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을 왜 선택해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이 대목은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덧붙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트레인스포팅>의 결말은 랜튼이 친구를 배신하고 기성 세대화되는 것처럼 보이면서 끝을 맺습니다. 더 이상 방황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어른, 그런 가정을 꾸리기로 하면서 말이죠.

이 결정은 세상에 진 것도, 청춘에 이긴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가 선택한 삶은 누구도 욕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는 뜻이겠죠.

 

2016년,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모처럼 <트레인스포팅>을 다시 보면서 질풍노도의 10대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삶을 살길 원했던가. 또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가.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트레인스포팅>의 후속편에서 나와 함께 나이를 먹은 랜튼이 그 답을 알려줄 리도 만무합니다.

 

그저 <트레인스포팅>이 끝난 후로부터 20년을 더 살면서,

하나 배운 것은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나를 찾는 과정에 소비될 때 비로소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1월의 <데이즈드> 코리아는 서른 명이 넘는 국내외 창조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512 #92

By EDITOR'S LETTER

 

 

인터뷰를 사랑합니다.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떠났습니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결별 소식 또한 연예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감사했다는 평범한 공동 명의의 보도자료만 남길 뿐이죠.

그 뒤 벌어지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들, 과연 왜 그랬는지 궁금해하며 추측하는 대중들.

환희보다 고통의 심경을 담은 인터뷰가 더 ‘특종’인 시대니까 말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은 왜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그만뒀는지 궁금했을지 몰라도

잡지 일을 하는 저로서는 어떤 매체의 어떤 기자가 그의 인터뷰를 담아낼 것인지가 훨씬 더 궁금했습니다.

연말 앞두고 회사에서 두둑한 보너스는 챙기겠구나.

 

그런데,

라프 시몬스의 심경이 담긴 인터뷰는 우리가 알 만한 그런 ‘유력’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1년에 두 번 발행하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독립 매거진 <시스템(system)>이 그 주인공이었죠.

회당 1만 5천부를 발행하는 겨우 이제 6권이 나온 요즘 말로 ‘듣보잡’.

 

그런데,

이 잡지를 통해 누가 봐도 결별의 이유가 짐작될 법한 라프의 인터뷰가 실린 것입니다.

단, 정확히 말하면 이 인터뷰는 그가 디올을 떠나기로 발표한 직후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올 3월부터 8월 사이, 그러니까 계약을 더할지 말지 그가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더 컷(The Cut)의 패션 칼럼니스트 캐시 호른(Cathy Horyn)과 라프 시몬스와 사이에 이뤄진 토막토막의 인터뷰를 한데 모아 실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솔직한 라프의 담경이 실려있었죠.

네, 누가 봐도 특종이었죠.

 

<시스템>에 특종 인터뷰가 실린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창간호에 실린 디자이너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의 인터뷰는 그가 몸담았던 발렌시아가의 모회사인 크링(Kering)에서 소송까지 걸 정도로 적나라한 것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커플 칸예 웨스트가 그의 아내인 킴 카다시안을 화끈하게 스타일링한 화보도 있었죠.

 

이토록 <시스템>이 주목을 받자 결국 <뉴욕 타임즈>의 패션 저널리스트 바네사 프리드먼(Vabessa Friedman)이 흥미로운 기사를 내놓게 됩니다. 이름하여 ‘어떻게 작은 인디 매거진이 계속해서 특종 인터뷰를 잡고 있느냐’는 거죠.

그들은 <시스템>을 만드는 조나단 윙필드(Jonathan Wingfield), 엘리자베스 본 쿠트만(Elizabeth von Guttman) 등 네 명의 편집자와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특종 인터뷰를 잡는 비결을 두 가지로 압축합니다.

먼저 시간. 결코 단 한번의 만남이 아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중간 중간 긴 호흡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거죠.

두 번째는 퍼스널리티. 이들이 라프 시몬스의 인터뷰를 케시 호른에게 맡긴 이유는 서로 강한 릴레이션십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패션계에서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거겠죠.

그리고 덧붙입니다.

“물론 이런 인터뷰를 계속해서 진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잡지를 만들진 않을 것이다.”

 

<시스템>이 부럽냐고요?

다행히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제가 받는 전화 중 가장 기분 좋은 것이 인터뷰 요청 문의입니다.

솔직히 돈을 쓰겠다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습니다.

비록 월간지라 <시스템>처럼 긴 시간을 지닌 인터뷰를 지금 당장 보여드릴 수는 없겠지만(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시각으로 선별한 재기발랄한 뉴페이스부터 동시대가 사랑하는 쿨키즈들, 그리고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숨은 보석들까지.

<데이즈드>는 <시스템>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뻔한 것은 감동이 되지 못합니다.

1등과 1등의 만남처럼 지루한 것은 없습니다.

2016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데이즈드>스러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