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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91

By EDITOR'S LETTER

 

 

 

눈 사이가 먼 편입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옆이 보입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학생 때는 칠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어도 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부족했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는 기웃거림이 발동했습니다.

 

에디터 일을 시작하면서는

한 분야를 깊게, 마니아적인 관점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칼럼을 써 대는 선배들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먼 눈 사이를 탓하는 동시에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다닌다는 강북 구석의 아지트에서 새우 깡에 소주를 나발로도 불어보고

프랑스 영화를 틀어 놓고 울다, 웃다

능력 밖의 아이템을 6페이지로 만들겠다며 데스크와 싸우다 말다

그 연예인이 가장 피하고 싶어했던 질문을, 뭐라도 된 양 집요하게 추궁하기도 했습니다.

 

채 1년은 안 걸렸습니다.

제 정체를, 눈 사이는 이번 생에선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문득(전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못 믿겠지만 마치 흰 두부를 뚫고 나오는 듯 묘한 기분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 제 눈 사이가 먼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그러고 보니 제 이상형이 옛날 옛적 SES 바다 씨(죄송합니다)부터

유독 저와 닮은 ‘거리감’이였다는 것도 생각났습니다.

 

얕지만 이 곳 저 곳 안 판 곳이 없는,

배당 받은 원고는 한꺼번에 창을 열어 놓고 한 줄씩 번갈아 쓰는

뭐, 그런 ‘잡’다함.

이게 저더군요.

 

동경의 대상은 누구나 있으며 때론 필요합니다.

저 역시 그들로 인해 더 이상 선글라스를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먼 눈 사이가 가려지면 진짜 제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데이즈드> 11월호에는 여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할 만한,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여자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많이 담았습니다.

여러분의 본질 찾기에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현범

Bom Lee

 

이달의 사람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를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궁금해한 건 알렉산더 왕의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누가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이 될까 하는 부분이었죠. 패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세대교체에 환호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을 무시하냐고요? ‘숭고한’이란 표현이 무색할 만큼 아카이브를 찬양하고 그들이 용납하는 ‘과정’이나 ‘환경’을 거치지 못한 자의 잘됨을 눈에 뜨고 보지 못합니다. 패션은 삶만큼이나 이율 배반적입니다. 발렌시아가도 고민이 많았겠죠. 그들의 선택은 베트멍(Vetenemts)의 헤드 디자이너인 뎀나 바잘리아였습니다. <데이즈드> 10월호에서 ‘탑’이 입고 등장했을 정도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베트멍의 디자이너라는 점은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뎀나 바잘리아가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했고,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여성복 팀과 루이 비통에서 7년간 일했다는 경력은 어른들을 설득하기에 좋은 보증입니다. 발렌시아가는 현명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저 뎀나 바잘리아의 새로운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기다리면 됩니다. 과거와 미래에 양다리를 걸친 패션은 시작이나 과정보다는 그 ‘결과’를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딱 ‘Bitch’니까요.

 

201510 #90

By EDITOR'S LETTER

 

 

 

<데이즈드>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 문제”라고 했습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운동을 잘하지 못할까. 나는 왜 남들처럼 끈기가 없을까. 나는 왜 한 우물만 진중하게 파질 못할까.’ 비교를 많이 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매사 자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간혹 누구한테든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자기애가 부족하고 연민과 사랑을 구별할 줄 몰랐습니다.

대범해야 하는 순간 머뭇거렸고 현실에 안이했습니다.

철없이 다퉜고 경솔하게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그저 몇 해 전부터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고 스스로의 한계를 그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한 둘이 아닌 제가 <데이즈드> 코리아의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근한지 꼭 20여일 만에 제 첫 <데이즈드>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와 <데이즈드>가 참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함께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남들과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만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먹으려면 겁이 없어야 합니다. 겁이 없어지려면 남다른 컨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딱 90번째로 나온 <데이즈드> 코리아 10월호는 ‘다름’을 이야기합니다.

날 때부터 달랐던 탑(T.O.P)의 인터뷰부터 모델은 직업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현재는 모델인 김상우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후 톱 모델의 반열에 오른 안드레아 페직, 그리고 어떻게든 기존의 한국 ‘사람’ 디자이너와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 아이콘이 된 스티브&요니까지.

 

되바라질 예정입니다.

친구들도 좀 이용할 작정입니다.

그냥 넙죽넙죽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 겁니다.

 

<데이즈드>코리와 저는

존재의 이유와 그 가치를 적극 드러낼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현범

Bom Lee

 

10월의 물건

에르메스와 애플 워치가 만났다는 사실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중국과 여성 고객을 노린 지극히 계산적인 조우라는 이야기부터 대놓고 아름답지 않다는 심미안에 대한 지적까지 이어집니다. 처음은 다 그런 법이죠. 게다가 디지털과 하이 패션의 만남이 언제 순탄한 적이 있었습니까? 허나 분명한 것은 후퇴가 아닌 진보란 사실입니다. 시도 조차 하지 않고 기존 플랫폼만 누린 채 살아간다면 소리 소문 없이 낙오되는 것이 순식간인, 어디로 튈 지 모르게 변화하는 초 현대 사회입니다. 키보드만 두드리는 비평은 넘쳐 납니다. 주저 말고 직접 뛰어 들어야 합니다. 부딪히고 깨져 봐야 깨닫고 나아가는 법이니까요. 최소한 그런 의미에서 <데이즈드> 코리아는 에르메스 애플 워치를 환영합니다. 우리도 비옥한 황토를 거부한 채 불구덩이로 뛰어 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