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재 화물 크레이트 안에 담긴 DROPHAUS는 집이라기보다 하나의 질문에 가까웠다. 우리는 어디에 머무는가. 그리고 무엇이 시간을 통과하는가. 퍼렐이 이끄는 루이 비통이라는 집에는 디자인이 있었고, 장인정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인간의 손길이 남긴 미세한 흔적들이 있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세계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온기였다. 나는 그 온기가 옷보다 먼저 관객에게 도달한다고 여겼다. ‘집의 댄디즘‘. 루이 비통이 말하는 ‘댄디’는 더 이상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사이에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Timeless living이라는 말은 그래서 선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라질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 가까웠다. 나는 이 쇼가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각. 손으로 만들고, 머무르고, 살아간다는 감각을 아주 조용히 되돌려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언제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오래 남는다. 쇼의 마지막, 퍼렐이 훌쩍 뛰며 자기 가족을 끌어안는다. 늘 봐 온 엔딩이건만 좀 다르게 마음이 흔들린 까닭을 서술하시오.
editor MILKYWO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