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

ASHLEY WILLIAMS
집과 돌봄. 보호.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건만 원하고 바랐던 것. 애슐리 윌리엄스의 2026 봄/여름 컬렉션은 그 누군가의 일상에서 출발했다. 어느 작은 마을, 하얗고 낮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서 사는 아이를 떠올린다. 인형을 갖고 놀고 만화책을 읽고 정원에 물도 주고, 그런 평범한데 특별한.
이번 시즌 애슐리 윌리엄스는 유년의 기억과 상상력을 불러냈다. 런웨이에는 민트·베이비 핑크 같은 파스텔 톤의 유니폼, 아이의 낙서 같은 프린트가 새겨진 파자마, 곳곳에 숨어 있는 쿠션 패드, 장난감 핀을 연상시키는 키치한 액세서리 등 익숙한 물건들이 낯설게 변주됐다. 화장지 롤을 뱅글처럼 연출한 디테일에선 특유의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윌리엄스는 질문을 던진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집을 집답게 느끼게 하는 정서적 감각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SIMONE ROCHA
리본과 플라워 장식 등 시몬 로샤만의 로맨틱한 룩이 런웨이를 가득 채웠다. 크리놀린과 버슬로 볼륨을 강조한 스커트가 돋보였는데, 어딘가 불안정하고 삐뚤어진 듯한 실루엣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오간자, 시퀸, PVC 같은 소재들이 뒤섞이며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베개를 꼭 안은 모델의 모습, 리본 사이에 꽂힌 꽃, 꽃잎을 뒤집어 쓴 듯한 트래퍼 해트는 낭만을 품었다.

ERDEM
역사와 환상,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세계. 19세기 말 자신을 인도의 공주이자 프랑스 왕실의 후손, 화성 여행자라고 믿었던 사람. 에르뎀 2026 봄/여름 컬렉션은 스위스 출신 영매 헬렌 스미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다층적인 정체성은 옷으로 번역됐다. 19세기 복식과 장식적 요소가 현대적 실루엣과 결합했고, 머스큘린 재킷과 뷔스티에 톱, 워크 재킷과 드레스가 자유롭게 믹스매치된 것. 그의 삶처럼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동시에 몽환적이기도 하다. 우아함은 다면적이고 유연할 때 드러난다는 걸 다시금 느낀 순간!
DAY-5

BURBERRY
푸르른 하늘을 프린트한 천막 아래, 버버리 2026 봄/여름 쇼가 열렸다. 볼륨감 덕에 열기구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쇼가 열린 곳은 런던 켄싱턴 궁전의 퍼크스 필드. 17세기에 조성된 이 비밀 정원은 버버리가 과거 자주 사용했던 쇼 장소이자 크리스토퍼 베일리 시절 이후 10년 만의 귀환지다.
영국 록 밴드 Black Sabbath의 ’N.I.B.’와 ‘You Won’t Change Me’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름 페스티벌 무드를 담은 룩들이 줄지어 나왔다. 비틀즈, 사이키델릭, 피트 도허티와 케이트 모스…, 1960-70년대 밴드와 2000년대 인디 슬리즈가 공존했다. 프린지, 크로셰, 메탈릭, 스키니 스카프, 애시드 컬러, 햇빛에 바랜 듯한 색감. 몇몇 룩은 영화 <라스베가스 공포와 혐오>속 장면처럼 광기 어린 로드트립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 시즌 다니엘 리는 영국과 음악, 젊음, 자유를 노래한다. 그것도 아주 버버리다운 방식으로!

ASHISH
춤판이 벌어졌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모델들이 자신만의 리듬을 타며 런웨이를 댄스 플로어로 바꿔놨다. 미러볼처럼 눈부신 룩이 주를 이뤘고 형형색색으로 물든 드레스가 있는가 하면 타이 다이 드레스, 챕스(카우보이가 바지 위에 덧입는 팬츠) 등 의상 또한 다채롭다. 백스테이지에서 디자이너를 만났다. ’FASHION NOT FASCISM‘라 쓰여 있는 그의 티셔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시즌의 메시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대답 대신 티셔츠를 가리킨다. 억압 대신 자유를, 획일 대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DILARA FINDIKOGLU
또각또각. 나무 바닥 위를 걷는 구두 소리,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 철문을 여는 소리로 쇼가 시작됐다. 숨 죽인 관객 사이로 모델들은 비틀비틀 불안정하게 걷는다. 라텍스, 가죽, 코르셋, 메탈릭, 스터드 등 BDSM을 연상케 하는 디테일 속에서 자유와 속박, 순수함과 욕망을 동시에 보았다.
text KIM SOYEON(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