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트렌치코트는 토즈(Tod’s).


레더 코트와 재킷은 토즈(Tod’s).


레더 블레이저와 하이넥 니트, 팬츠, 펌프스 힐은 모두 토즈(Tod’s).

말하지 않으면
Text Guiom Lee

이제 전 세계가 당신을 이야기해요. “인터뷰를 떠나 지난 <데이즈드> 촬영 (2019년 7월호)이 우리나라에서 첫 커버였거든요. 뭔가 잘 알아보는 것 같다는, 그 얘기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빠르게 픽하고, 계속 서포트하는 것, <데이즈드>가 유일하게요.” 오랜만에 만난 페기 구의 첫 마디. 칭찬, 아니 현상을 말하려 했더니 되레 속사포처럼 묵혀둔 속내를 끄집어낸다. 아픈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떠나보냈다.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느꼈어요. 내가 진짜 멀리 있구나. 정말 가깝지 않은 데 있구나. 한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멀게 느껴질 때가 있구나, 이런 생각이요. 이제 다시 가족과 지내면서 조금은 재충전을 한 것 같아요. 이렇게 충전을 해야 음악도 만들고, 투어도 제대로 돌고 하거든요. 전 여기에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그는, 그의 생각은, 그의 음악은 갈수록 젊어진다. 갈수록 더 세계로 퍼지고 또 퍼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진심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게요, 저도 궁금하네요. 여기에서 가장 자주 듣는 얘기가 ‘부러워요’예요. 외국에서는 그런 말 안 하거든요. ‘부러워요’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멋있다’라고 칭찬하죠. 왜 그럴까, 생각해 봤어요. 여기에선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지내는 친구가 많은 것이 아닐까. 해외에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남다를 게 없는데 말이죠. 전요, 한국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똑똑하고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자존감이 좀 낮은 것 같아요. 남들과 비교되는 문화에서 자라서 그럴까요. 저도 영국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마찬가지였을 것 같기도 해요.”

뼈 때리는 이야기. 100% 공감. 요즘 우리나라 청춘, 자기 비대와 더불어 찾아온 자존감 부족을 넘어선 만연한 자기혐오. 페기 구의 관심은 예술로 향한다.

“앨범을 만들면서 올라푸르 님(아티스트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과 협업하게 되어서인지 아트 세계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전 보통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보며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그게 그림이든 사진이든 저걸 어떻게 했을까, 이런 거에서 영감을 받죠.”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디와 함께한 티셔츠도 예뻐요.

“보내드릴게요!”

페기 구는 바로 다음 날 티셔츠, 모자 등 베르디와 협업한 아이템을 <데이즈드> 촬영팀 모두에게 보냈다. 페기 구와 협업하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가 어디 한둘인가.

“더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해보니 제게 자주 쓰는 단어가, ‘여자’와 ‘아시안’이더라고요. 정말 아시아 사람이 적구나, 그래서 이렇게 내게 강조를 해 쓰는구나, 느꼈어요. 전 아시안 스타나 아티스트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소수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아티스트를 더 서포트하고 싶어요. 저평가된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아시안 유닛. 저도 매일 그것을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일을 너무 사랑하잖아요. 일이 내 삶이고요. 그런데 가끔 아니 매일, 왜 힘들고 외롭고 그러기도 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렇죠. 전 요새 운동에 빠졌습니다. 예전에 제가 피하고 싶었던 감정이 외로움이었거든요. 스스로 그 외로움을 인정하자마자 덜 외롭더라고요.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외로움, 쓸쓸함 이런 감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인정하지 않았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저 스스로 쓸쓸해서 그렇구나, 외로운 거구나, 인정하고부터는 조금씩 괜찮아졌어요. 저야 투어가 많으니 시차도 적응해야 하고 그러잖아요. 몸이라도 규칙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특히 정신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아요.”

돌아다니는 삶, 쉽지 않을 거다.

“근육이 힘들더라고요.”

체력이 창조다.

“정말요. 에너지가 근육에서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몸이 건강해지니 정신이 좀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사실 그때 <데이즈드> 찍을 때도 멘털이 그다지 좋진 않았어요.”

5년 전에도 페기 구는 세계를 평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맑은 페기 구와 비교하면 조금 더 다크하긴 했다.

“맞아요. 그때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엄청 안 행복했구나. 남과 비교하기도 했고요. 내가 나를 사랑할 줄도 몰랐고요. 저는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제 장점이 저 스스로를 계속 돌아봐요. 제삼자 입장에서요. 이거 잘못됐어, 하면서요. 그래서 깨달았죠. 팬데믹 기간이 제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쉬어야 했으니까요.”

제삼자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내가 만난, 내가 인정하는, 세계를 호령하는 아티스트들이 모두 가진 능력이었다. 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협업이 좀 재밌더라고요. 그저 제가 정말 러키하다고도 생각하고요.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생각하죠. 예전에는 앞만 봤는데, 그러다 보니 왼쪽, 오른쪽을 놓치기도 하더라고요. 서두르지 말자는 것이 제 모토예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협업을 더 해보고 싶어요. 남는 건 아트밖에 없으니까.”

페기 구는 어떤 아티스트가 자신과 통한다고 생각할까.

“에너지에 센서티브한 사람이라 에너지를 무조건 봐요. 어떤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도 ‘포토그래퍼’ 에너지 어때?라고 묻죠.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아무리 좋은 사람도 에너지가 안 맞으면 저는 그 자리를 무척 힘들어하는 스타일이에요. 물론 다 떠나서 당연히 예술성을 보기는 하죠. 그 사람의 아트가 내게 영감을 주는가, 이런 부분요.”

아직까지 K-팝 아이돌과 협업한 적은 없다.

“하고는 싶지만 처음에는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좋다. 신선하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올드 스쿨 노래를 하는 것 같아요. 전 뉴진스 무척 좋아해요. 왜 과거에는 유행을 빨리 타고 빨리 사라지는 노래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저는 반대로 타임리스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의문을 가졌는데, 이제 바뀌었어요. 완전 다르게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열려 있는 것, 다양성. 페기 구의 아름다운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내 고통을 토해 냈다. 공격에는 어떻게 대처하세요?

“오피니언이 많은 사람이 욕을 많이 먹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그래도 억울한 것이 많았어요. 근데 이제는, 일단 사람들이 떠들 만한 일을 하는 거니까,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 ‘욕 먹는 거 좋은 거야. 사람들이 질투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욕 먹을 일을 되레 조금씩 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욕하면 그걸 아예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죠. 오히려 ‘Say my name’, 어디 가서 내 이름을 좀 더 얘기해, 약간 이렇게 되는 거죠. 괜히 사람들의 말에 주눅 들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I don’t care’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사람도 있고요. 전 그 욕 먹는 걸 즐기는 과정까지 왔습니다.”

유쾌하고 통쾌한 페기 구의 득도. 그를 한마디로 감히 정의한다면 ‘패션’ 아닐까.

“저는 멀리 보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서포트하는 마인드요. 아까 빈말 한 게 아니라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다소곳이 읊조렸다. 부디 그의 피드에 올라가도 부끄럽지 않을 콘텐츠로 완성될 수 있기를.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의 쿨한 창조일 테니. 그래야 또 페기 구를 다시 만나 이토록 무한한 영감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공유할 수 있을테니. 서로의 혜안을 지지하고 서포트하며. 그런 게 바로 동지라는 것일 테니.

 

그때, 그 밤
Text 세라(Sarah, 최연경)

파리 유학 첫해, 수많은 인파 속에서 페기 구 바로 앞에 선 일이 있다. 나의 열여덟, 밤의 매직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였다.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았지만, 모두 같은 태양 주위를 돌았다. 5년이 흐른 지금, 나는 페기 구와 함께 하는 <데이즈드> 촬영장에 와 있다. 이번에는 눈을 마주하며 음악의 힘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저는 사람들이 10년 후든, 20년 후든 그 밤이 생각났으면 좋겠어요. 그 밤이 그들의 기억에 새겨졌으면 해요.” 페기 구는 본인의 말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알고 있을까.

페기 구에게 그날 밤 파리는 어떻게 기억되는지 늘 궁금했다. DJ로서 최고의 밤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무엇보다 좋은 친구와 좋은 아티스트가 필요해요. 태도가 가장 중요하고요. 개방적이어야 해요. 마치 기 치료를 받을 때 그냥 믿어야 하는 것처럼 아티스트를 믿어야 해요. 그래야만 진정 자신을 버리고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어요.” 사람들과 하나가 된 그날 밤을 돌이켜보면, 마음이 편안했다. 날카로운 아이라인과 그보다 더 날카로웠던 존재감으로, 페기 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완전히 믿었다.

최고의 밤, 최악의 밤, 그냥 그랬던 밤들을 통해 페기 구는 결국 친구들에게 믹싱하는 법을 배웠고, 그다음은 다들 아는 대로다. 그때의 페기 구는 본인이 DJ가 될 거라고 상상했을까?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밤 속에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짜릿함을 만끽할 밤,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을 찾아 헤맨다. 무언가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놀 때, 그냥 막 노세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요. 그냥 자신을 놓아보세요. 음악은 즐겨줘야 해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머릿속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죠. 비록 공간이 어두워도 우리는 많은 시선을 느끼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면서 내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껴진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음악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니까요.”

그래도 모든 도시는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100% 동감해요.” 눈에 띄는 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관중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사람들이에요. 테크노와 하우스가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DJ가 축구 스타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영국에서는 개러지, 더빙, 덥스텝을 거쳐 격조 높은 문화로 진화했어요. 아시아 공연은 달라요. 아시아 관중은 EDM, 트랩 등 다른 장르에 더 빠져 있죠. 대부분 테크노이고 템포도 느린 제 음악은 가끔 다른 경험처럼 느껴요.” 하지만 이 경험은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 “보일러룸 서울에 에너지가 굉장했어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파티를 하더라고요. 안타깝게도 공연을 못 하게 됐지만 ‘한국도 정말 달라졌구나’라고 느꼈어요.” 보일러룸 서울은 한마디로, 너무 많은사람이 페기 구의 음악을 듣고 싶어 감당이 안 된 것이다. 한국 테크노와 하우스의 본격적인 시작.

‘흥부’라는 첫 번째 싱글이 발매된 지 10년이 된 올해, 드디어 첫 앨범 를 발표했다. “DJ는 실제로 앨범을 만들거나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특히 이 앨범은 큰 성과처럼 느껴져요. 제 앨범은 제 아이 같아요. 거의 4~5년에 걸쳐 모든 과정을 신경 썼죠. 드디어 나왔는데, 전 벌써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이 앨범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면서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우리도 그랬으면 해요.” 촬영 내내 동료와 나는 마치 아이들처럼 키득거리고, 수줍게 코를 긁적거리고,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페기 구는 정말 쿨하다.” 쿨함은 타고나는 것보다 배워가는 것이다. <데이즈드>와 함께한 지 5년이 지나 다시 묻는다. 페기 구에게 ‘쿨’이란? “자기에 맞는 옷을 입는 것. 누구의 옷이 아닌,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나만의 옷을 자신 있게 입는 거죠.”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는 게 느껴졌다. 어떤 일이든 해낼 것만 같은.

 

할 말이란 확신
Text 루시(Lucy, 박소은)

촬영이 어언 중반을 향해 달려갈 즈음, 하프 길이의 토즈 레더 재킷을 걸치고 나오며 페기 구가 운을 뗐다. “이 룩에는 레드 컬러 립이 착 붙을 것 같네요.” 그가 직접 도톰한 자신의 입술에 올린 선홍색이 마테오 탐부리니가 이번 시즌 선보인 프린지 고미노 슈즈의 컬러와 절묘하리만큼 일치했다. 페기 구는 요키 고미노를 보며 악동과 쿠키 몬스터가 연상된다 했다. 신발로 뗀 운은 토즈 컬렉션 2024년 가을/겨울 런웨이의 배경음악으로 이어졌다. 이번 촬영을 위해 페기 구가 입은 컬렉션의 배경음악으로 비요크의 높직한 노래가 깔렸다. 비요크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음악을 가까이하는, 혹 존경하는 모든 이에게 비요크가 머물렀던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각별한 곳이다.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랄까. 아니, 가봐야만 하는 곳일 수도 있다. “페기, 아이슬란드 가봤어요? 요즘 전 부쩍 영국과 아이슬란드가 생각나요”라는 말에 “저도요”라는 짧은 답문으로 자연스레 영국, 그중에서도 런던을 이야기했다. 그가 10년 넘게 거주했던 베를린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언뜻 건너 들었다. “과거 런던에서 경험한 삶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수도 있어요. 언어를 넘어 문화를 배웠죠. 전혀 다른 양상의 자아를 형성하고, 성장을 이끌어준 나라예요. 다시 뿌리로, 근원으로 돌아가는 거죠. 영국은 저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에요. 어언 10년 넘게 베를린에 거주하다 보니,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이 딱 적기고요. 지금 저에게 영국만큼 완벽한 곳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 영국, 미국, 일본, 독일은 바이닐의 메카이자 성지라고 불리는 4개국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은 이유가 있겠지만 음악 생산의 기단이었던 레코드의 가치를 아는 뮤지션이기에 그가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데 동감의 의미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레코드로 본인의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이나 되나. 그에게 레코드는 알천 같은 것이다. 아, 페기 구는 세라토와 CDJ 방식의 디제잉 플레이가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시점에 바이닐로 플레이를 고수하던 음악가이기도 했으니. 뿌리와 근원을 다시금 되뇌고 싶어 하는 그에게 듣고 묻고 곰파고 싶은 것은 되레 단순했다. ‘레코드’. “포니카Phonica 레코드 숍을 자주 방문했죠. 아, 그 무렵이었을 거예요. 레코드를 처음 모으기 시작한 시점이요. 그런 곳에서 일해 보고 싶었죠. 메일도 보냈고요. 하하. 그런데 확인은 안 하더라고요.” 포니카는 런던 소호 골목에 위치한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주로 취급하는 바이닐 숍이다. 어스름한 회색 톤 인테리어가 베를린과 닮았다고 느꼈던 곳. 왼쪽 벽면과 숍 중앙엔 바이닐 박스가 정리되어 있고, 오른쪽 벽면에는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턴테이블이 우드 박스 위로 서너 개쯤 있었다. 그보다 더 많았던가. 그곳 주인장의 추천으로 케니 듀오Kenny Duo의 ‘Ghost Walk’를 접했다. 나도 그처럼 영국 런던에서 레코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린 음악을 매개로 런던을 추억했고, 회상했다. 

리스너 입장에서 ‘어떤’ 음악을 혹은 레코드 숍을 추천받는 것도 분명 의의가 있다. 그 속에 살펴보고 구하고 싶은 레코드가 적연히 있을 테고. “베를린의 하드 왁스Hard Wax도 좋아요. 테크노와 일렉트로닉 레코드를 취급하는 최고의 숍이죠.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드렉시아Drexciya요. 일렉트로닉계의 황제죠. 이들의 레어한 레코드를 늘 찾고 있어요.” 이어 그는 로컬 레코드 숍을 거론했다. 음악을 늘 곁에 두는 사람들은 본고장의 문화가 깃든 레코드 숍의 가치를 운운한다. 아티스트 드렉시아는 디트로이트의 테크노 듀오다. 테크노 발상지인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말머리를 돌렸다. “디트로이트,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죠. 제가 주로 찾는 혹은 영감받는 아티스트 대부분 디트로이트 출신이죠. 근데 아시죠? 거기 할렘이잖아요. 실상 방문을 꺼릴 정도로 무서워요. 살고 싶은 곳은 아니에요.” 지역을 논했으니, 시간을 역행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독일의 로만 플루겔Roman Flugel을,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가까이하는 그에게 독일의 어느 시기를 경험해 보고 싶은지도 물었다. “과거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일 뿐이죠. 그 시기에 현존했다면, 그 문화를 경험해 봤다 정도의 감정선으로 갈무리를 하겠죠. 지금 제게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곡이죠.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은 죽지 않아요. 늘 함께해요. 어느 해에 태어나도 접할 수도, 들을 수도 있는 게 음악의 본질이죠. 음악의 제일 좋은 장점 중 하나고요.” 예견할 수 없었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중에 경탄했다. 내가 곁에 두는 음악이 회상의 일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때, 그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그리고 이미 역사 속 한 페이지가 되었을 때 늘 아쉬웠고 회의적이었다. 그 통감이 옅어지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지는 무용지물이었다. 우린 ‘진짜’ 대화를 했다. “우리 정말 할 말이 많은 것 같아요. 그쵸?” 페기 구의 말에 얼마 남지 않은 인터뷰 시간이 그저 야속하기만 할 뿐. 아, 늘 내가 음악을 논할 때 물어 보는 상투적인 질문 하나를 빼먹었다. 이미 <데이즈드>에 몇 번 글을 투고했으니,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페기 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음악의 장점 중 하나가 추억이라는 걸요. 그리고 그 추억이 회상의 과정을 야기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죠. ‘그날 기억나? 이 노래가 흐르던 클럽…’ 같은 것 말이죠. 회상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는 음악이 유일무이하죠. 저에겐 이게 전부죠. 그래서 더 이 일에 몰두할 수 있어요. 리스너의 기억을 제가 책임지고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둬요. 제 음악과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리스너들이 “페기 구의 그날 기억나?”라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I have to take my job seriously.” “음악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개인의 플레이리스트는 곧 일기장과 같다”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에 더해 “노래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그 장면은 기억에 오랫동안 잔류한다”라고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명징하게 들어맞았다. 아주 정확히.

Director & Fashion Guiom Lee
Text 루시(Lucy, 박소은), 세라(Sarah, 최연경)
Photography 노아(Noah, 노승윤)
Art 세라(Sarah, 최연경)
Hair Oh Jihye
Makeup Lee Bom
Nail Kim Nahyun
Assistant 솝(Soap, 오유빈)
Photographic Assistant 지오(Jeo,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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