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2024년 겨울 컬렉션 이후 꼭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밀란은 봄 대신 금세 여름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차가운 커피를 찾거나 하면 ‘어디서 감히!’ 미간을 찌푸리고 본다지만 곳곳에서 마주친 이들이 들이켜는 선명한 오렌지빛 아페롤 스프리츠에 아낌없는 얼음 세례를 퍼붓고 있다는 점은 어딘지 귀엽고 또 상큼하다. 번화한 거리 한편 둥그런 공간, 두 달 전 컬렉션장 바닥으로, 또 관객을 위한 좌석으로 존재한 스툴이 이번에는 돌산처럼 잔뜩 쌓여 있다. 2024년 밀란 디자인 위크를 맞아 보테가 베네타가 선보인 대규모 설치 작품 ‘온 더 록스On the Rocks’.

이미 알고 지낸 무언가와 모처럼 재회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모든 게 불타버린 메마른 황무지에서 비롯한 새로운 재생 과정, 그러니까 결국 머물기보다는 어딘가로 향하고 무언가를 해야하는 옷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 지난 컬렉션의 경험과 기억이 겹치며 선선한 마음이 들었다. 온 더 록스는 카시나Cassina 및 르코르뷔지에 재단Fondation le Corbusier과 함께하는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르코르뷔지에 디자인의 아이콘이자 카시나 목공방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LC14 타부레 카바농LC14 Tabouret Cabanon 스툴로 구성되었다. 애초에 LC14 타부레 스툴은 정사각형 공간이자 단순한 상자 형태의 가구가 배치된 개인용 오두막 ‘카바농’을 위해 제작되었다.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고 실용적인 타부레 스툴은 르코르뷔지에가 카바농 인근 해변에서 발견한 나무 위스키 박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온 더 록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의 2024년 겨울 쇼 좌석으로 선보인 LC14 타부레 스툴의 커스텀 에디션부터 고유한 나뭇결 패턴을 드러내고 내구성을 강하게 만드는 일본의 전통 기법에서 영감받아 목재를 그을려 마감하는 독특한 기법charred-wood으로 제작한 우드 에디션, 하우스 아틀리에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인트레치오 풀라드 기법의 가죽으로 덮인 레드, 옐로, 블루, 레인트리 그린 네 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레더 에디션까지 LC14 타부레 카바농 스툴의 변주가 규칙적인 듯 아니면 제 마음대로인 듯 교묘하게 공간을 장악했다.

광활한 수평의 대지를 조각내 수직으로 쌓아 올린 탑이라면 이런 모양새로 우뚝 솟을까. 핀 조명이 떨어지는 그 간극을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과 시선, 개념을 층층이 쌓아 이렇게, 저렇게 오가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풍경을 밀란에서, 연달아 떠난 베네치아 무라노섬에서 어렴풋이 보고 또 느낀 것으로 기억한다. 새삼스럽지만 마침 또 새삼스럽지도 않은 어떤 날. 저 언덕을 힘껏 오르고 싶었는데 온화하지만 엄중한 얼굴로 나의 동태를 살피던 작품 관리자에게 혼날까 봐 겨우 참았네.

 

Text 지웅(Jiwoong, 최지웅)
Art 세라(Sarah, 최연경)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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