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매일 밤 우울은 나를 갉아먹었다. 신경안정제를 먹듯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양효실 작가의 <불구의 삶, 사랑의 말>과 임근준 작가의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 이 책들은 나를 몇 번이고 살렸다. 인터뷰를 가장해 그들을 직접 만났다.


양효실Yang hyosil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을 읽고 유스Youth에 관한 오랜 고민의 해답을 얻었어요. 저는 유스가 어른을 거부한 채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이 불문하고요.
유스는 세대와 무관하죠. 퀴어도 정체성이 아니라 태도라고 하듯이 유스도 태도예요.

유스를 정의한다면요.
뻔한 얘기일 것 같지만 “네”라고 하지 않는 거겠죠.

뭐든 악으로, 깡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인정욕구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결합된 채 살아왔더라고요.
인정욕구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건 비슷한 거예요.

제가 공상도 많이 해요. 몸에 뿔이 있나, 도깨비인가. 이런 생각들이요.
뿔은 뭐예요? 무기? 내 몸에서 자란 어떤 타자? 사슴의 경우 뿔은 공격용이라기보다는 약간의 과시라고 하더라고요. 뿔이 있는 동물이 온순하죠. 폭력적이거나 과격하지 않고. 몸에 뿔이 있나, 도깨비인가,라고 자신을 묘사하는 걸 보니 선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약한 쪽일 것 같고. 총이나 칼을 품은 사람이라고는 묘사하지 않는군요. 이게 뭐지? 이 사람 왜 뿔이라고 그랬지?라고 계속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기조로 살아왔나요.
10대 때는 불안이나 우울이었을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은 우글우글 끓어올랐으니까요. 불어교육과로 대학에 입학하고, 미학과로 옮기면서는 창작이 아니어도 예술 근처에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마흔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이후로 수업이라는 걸 하게 됐죠. 그리고 하고 싶은 걸로 채웠어요.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사로서 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하고 싶은 수업을 하며 폐강 안 당하고 지금까지 살아냈다. 박수!”라고 자화자찬했죠. 유스는 불안과 순간으로, 펑크는 “라잇 나우”라고 말하면서 어른에게 고개를 쳐드는 제스처나 쿨일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나이가 들었고, 좋은 점은 루틴이 생겼고, 삶이 미니멀해졌다는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거, 좋아할 수 있는 거 이외에는 다 쳐낼 수 있게 됐죠. 사람이 맑아졌어요.

본인을 이해하는 건 자기가 설정한 방향으로 산다는 말 같아요. 불안정한 유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게 뭔지는 다들 알 겁니다. 내 존재가 개미처럼 좀 벌레처럼 작아져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 공포에 대해. 최소한의 삶을 살아 복잡하지 않은 사람으로, 없는 재능은 훔쳐보기, 엿듣기를 하면서 호기심을 가지며 살게 됐어요.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구글링하고 유튜브로 찾기도 하고, 스토리텔링도 해요. 인정욕구에도 연연하지 않는 나이이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소수의 사람이고, 나도 이미 그들을 알아봤기에 평등해요. 그래서 판을 크게 키우지는 않을 거예요. 판을 키우면 흐려지잖아요. 집중력이 부족해지고, 사람도 많아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갈등은 필수고요. 스트레스 안 받는 방식으로 최소 인력과 밀접하게 라포를 형성하며 살고 있어요. 아주 평화로워요. 그런데 불안정한 10대, 20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어떤 말을 해도 누군가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다양한 삶과 생각을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꼴리는 대로 살아라. 이기적으로 살아라. 양보하지 마라. 눈치를 보면 그게 이제 억압이 된다고 말해 줄 수 있겠어요. 그런데 타인의 삶에 대해 “넌 왜 그래?”라고 얘기하는 순간, 그 사람을 자극하는 말이잖아요.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친구, 연인, 동료 등 친밀한 관계에서는 고치려고 하는 방식이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건 그냥 들어주는 게 아닐까요.

또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오늘 헤어 스타일링을 해준 분도 마음에 안 들면 정확히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정확하게 얘기하기, 건드리지 않기, 선 넘지 않기,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기, 거리 좁히는 말 하지 않기가 요즘의 미덕이죠. 그리고 사람이 뾰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섞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뾰족한 것을 날리게 되죠. 여러 종류의 혐오 담론이 그렇게 성장해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핸들링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분노하지-않기’라는 당연한 분노의 관성이나 의식을 성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는 책을 조만간 쓰려고 하고 있어요. 푸코가 말한 자기-발명 혹은 자기-창안이 큰 축인 책일 듯하고요. 분노하고 경멸하고 상처 주면서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는 권력 관계를 벗어나는 사랑의 방식을 주장하려는 거죠.

사실 오늘 촬영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왜 또 용기라는 말이 나와요?

스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잖아요.
이 촬영의 섭외를 받고 기획안과 인터뷰 질문지를 보면서 ‘기자의 관성이 없다’, 그다음에 ‘이 사람 여리다’, 또 그다음에는 ‘되게 직진하네’, ‘내가 이 사람하고 매거진 인터뷰가 가능할까?’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제 감정을 담은 인터뷰를 하고 싶었어요.
흑인 노동계급 출신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란 책을 지난 학기 수업에서 읽었어요. 저는 어쩌면 좋은 선생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대 다닐 때 교육학 쪽 수업이 너무 재미없고 힘들어서 교사가 못된 것도 있어요. 거의 모든 교육학적 문제를 다루면서 훅스는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요.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솔직해도 될까 싶게. 읽어보세요.

상대방 의견에 반대될 수 있는데도 제 생각을 말하고 강행할 때도 있어요.
복잡한 감정이 이후 엄습하죠. 내가 그 사람에게 저항한 건가, 그 사람을 무시한건가를 놓고. 상황의 양가성이나 양면성을 물고 늘어지세요. 단순한 것 혹은 단순한 읽기가 파시즘이라고 하니까요. 기자님의 ‘반대되는 의견을 강행했다’라는 묘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날 내 기분이나 날씨나 그 사람과의 ‘그 시간의 관계’ 같은 게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용기였는지 발작이었는지 강행이었는지, 아마 다였을 걸요?

위로받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다는 문장을 계속 생각해 봤어요. 저희 세대는 사랑해라, 가난한 자를 도와라, 세계를 구원해라 등 능동태였거든요. 그런데 위로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는 말은 수동적이잖아요. 검정치마의 ‘좋아해줘’ 중 “날 좋아해 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라는 노랫말이 좋더군요. 좋아해가 아니라 좋아해줘,란 말이 왜 좋았는지는 여러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좋아해”라고 고백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스크립트를 넘어선 것은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이었어요.

일방적인 것 같아요. 사랑해(사랑, 해!)라는 건.
사랑받고 싶다는 밑바닥에는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고백이 깔려 있어요. 저는 이런 얘기를 못 했던 세대예요. 기성세대 아버지는 열심히 존나 희생하면 너희가 알아주겠지 생각했는데, 사실 아니잖아요. 우리가 아빠 보고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이런 대답이 나오는 건 당연해요. 왜냐하면 상대의 동의 없이 희생했으니까. 시건방짐과 약한 공격성이 섞여 있는 ‘사랑받고 싶다’는 질문이 좋네요. 뭐가 될지 모르는 거죠. 다른 사람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은 약한 마음을 계속 관철하는 것, 용기이고 실천일 겁니다. 지지해요. 위로의 말, 사랑의 말은 잘 모르겠어요. 나스Nas의 가사 “Cause life’s a bitch and then you die”가 떠오르네요. 인생은 엿 같고, 결국 넌 죽어. 나도 죽는다가 아닌 게 신선하지 않아요?


임근준Chungwoo Michael Lim



<데이즈드>는 유스 컬처를 향유하는 사람을 위한 플랫폼이에요. 유스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처음으로 젊은이들이 소비시장에서 구매력을 보여 주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유스 컬처라는 말이 생기고, 신비화도 되면서 포장됐어요. 시대별로 쭉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틀스도 마즈 비트닉스 히피를 거쳐 성장 변화하는 드라마를 일궈 비틀스가 됐고···, 디스코를 원형으로 하는 힙합의 시대가 왔다가 1993년 이후 다문화주의 통치 전략을 거쳐 결국 지금 최종형이 아미와 방탄소년단인 거죠. 전 세계의 하위 주체화된 소수자 청소년 청년을 다 엮어 하나의 거대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했으니까요.

유스와 관련해 요즘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관심이 많은 건 정신 건강이에요. 정신질환이 있는 청소년, 청년이 어떻게 하면 기존 타자화된 위상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유스 컬처 안에서도 타자가 된다는 건, 타자 중의 타자라는 뜻이잖아요.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제 게이, 레즈비언도 예전과 같은 타자나 소수자라고 말하기 어렵잖아요. 맨 마지막 남은 절대적 타자는 어린이예요.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생소하긴 해요.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소위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하는 어린이예요. 현대 예술이 지금까지 여러 타자성 탐구를 해왔어요. 끝까지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어린이는 순수하다’는 고정관념을 부수고, 순수하지 않은 상태의 어린이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작업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저는 공상을 많이 해요. 지금도 제 몸속 어딘가 뿔이 있다고 생각해요. 간혹 저를 도깨비라고 소개하거든요. 당신은 누군가요.
유치원 가기 전에 모 대학병원 정신과에 갔던 기억이 나요. 경계성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자폐의 일종이에요. 그 당시 의사가 내린 처방은 딱 하나였어요. 정상인으로 연기하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남들과 성정체성이 다르다고 느꼈지만, 그 이슈는 오히려 두 번째였을 정도였어요. 제일 큰 이슈는 내가 어떻게 하면 경계성 아스피를 들키지 않을까였어요.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은 조각난 파편이었어요. 경계성 아스피라는 한쪽 면이 있고, 성소수자라는 다른 한쪽 면이 있는 식이죠. 디자이너 활동, 미술가 활동, 운동가 활동을 한 면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게이 친구들 따로 있고, 정신병자 친구들 따로 있고, 디자이너 친구들 따로 있고, 미술 친구 따로 있고, 운동권 친구 따로 있다는 거예요. 이 모든 걸 전체 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된 게 비교적 최근이에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옛날에 내가 경험한 것들을 하나하나 연결-통합하는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지금은 제가 저를 볼 때 깨진 그릇을 다시 이어 붙인 모양 같아요.

유스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 사랑의 말이 듣고 싶습니다.
인생은 여행이기 때문에 긴 여정에서 내가 정말로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인생은 기본적으로 개똥 같고, 행복을 추구하면 불행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눈앞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그렇다고 꼭 큰 용기나 결단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순리대로 타고난 에너지의 흐름에 맞춰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면 누구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에너지의 흐름이요?
각자의 이키가이를 찾는 거죠. 저는 산속에 있는 횃불 아저씨로 남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고, 나아가 탈출구를 찾아 구멍을 파고 보내주는 일을 반복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해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밀접한 커뮤니케이션과 교류, 교감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인간관계도 정상적으로만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거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도 인간관계예요. 사람들 모인 곳에서 스몰 토크도 잘해야 하고, 식사 자리에서도 예의 바르고 멋지게 행동해야 하고··· 그런 거 아무 의미 없거든요. 어색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내 취약점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질문을 던지는 것, 아직 깨닫지 못한 걸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 그래서 상대방이 자기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상대해 주는 것. 이게 인간관계의 기본인 것 같아요. 자연스러움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인간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그걸 내려놓고 한국인 특유의 들이대는 정신을 발휘해 관계를 맺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못 견디면 도망가겠죠. 그러니까 본인이 걱정할 몫이 아닌 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싫다고 했을 때 멈추는 미덕만 갖추면 돼요.

기댈 곳 하나 없는 자를 위해 해줄 말이 있을까요.
예술계에는 정신질환 환자들이 타자화되어 온 역사가 있는데, 어릴 적 경험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게 해체하기 쉽지 않아요.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에게 본인의 기대치를 투사하잖아요. 때 묻지 않은 어린이, 순진무구한 어린이, 무궁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는 어린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건강하게 잘 발달한다는 생각은 기존 사회가 만드는 드라마인 거지··· 실제로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단계에서도, 청소년에서 성인이 될 때도 단절이 있어요. 그때 겪은 단절과 상처를 받아들여야 성인기에 맞이하는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물론 모든 게 어릴 적 경험과 트라우마 때문에 성인기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가 각자의 문제를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꺼낼 기회를 만들어나가면 어떨까, 예술가들이 정신질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면 좋겠다,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면 좋겠다 생각해요.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재현의 정치학’을 강조하고 싶어요. 다양한 재현의 방식을 제시하는 게 첫 번째 돌파구예요. 자기 모습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기, 제시하기, 가시화하기. 숨어 지내는 건 진짜 답이 아니고요.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을 읽고 견뎠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에고 트립이 와닿더라고요.
에고 트립이요? 자기과시, 자아 뻥튀기죠. 특정한 행위나 실천을 통해 남들에게 내 자아는 정상적인 사이즈보다 크다는 걸 입증하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나는 특별한 에고를 가진 사람이니까 이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거예요. 에고 트립이라는 게 큰 사건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어느 정도는 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못하는 사람은 왕따가 되고, 직장에서도 계속해서 일거리를 떠안게 되는 거죠. 결국 어느 한쪽이 고장 나는 거예요. 에고 트립은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책에서는 가출, 생과 사 넘나들기, 남자의 양물 과시, 벗은 여자 은물 과시 등 수많은 예술가가 빈약한 에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 행동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은 자아를 확장하는 법을 총망라해 놓았지만, 교훈은 하나예요. 그렇게 꼴값을 떨어봐야 멋있는 사람 되기는 어렵다. 쓸데없는 에고 트립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 분수에 맞게 길을 찾아 인생을 개척하자. 책 속 메시지는 표피적으로 드러난 것과 정반대인 거죠. 사실 악으로 깡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어느 한구석이 뻥튀기되면 다른 한구석은 빌 수밖에 없거든요.

예술가가 되려면 다양한 에고 트립을 해 슈퍼 에고를 가져라,가 핵심 메시지인 줄 알았어요.
정반대예요. 에고 뻥튀기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악마와의 거래인 거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 젊을 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젊을 때는 늙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르니까. 근데 내 인생은 길기 때문에 예술가 인생에서 전성기는 진짜 한 6~7년밖에 안 되거든요. 나머지는 다 망작 시기인 거예요. 늙어서 잠깐 다시 제2의 전성기가 오는 정도예요. 저도 젊을 때에는 망작 만드는 왕년의 스타 예술가들 보면 ‘죽지 왜 살아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지만, 죽을 수는 없잖아요. 살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망작이 있어서 걸작이 돋보이는 거죠. 평생 걸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인생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려고 쓴 책인데, 많은 사람이 예술가는 저 정도 꼴값은 떨어야 한다고 이해하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예술가는 대부분 다 불행하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중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해 주세요.
아무리 좋은 얘기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안 좋게 작용해요. 정답조차 몸에 해롭게 되죠. 요즘 사람들은 옷 입는 것도 결정을 못해 유튜브에 물어보더라고요. 답을 나한테서 찾지 못하고 남에게 묻는 건데, 결론적으로는 한국인의 세계관 위기예요. 한국인들의 세계관이 개인이 아니고 전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지나치게 돈을 강조하면서 살다 보니 가족에 대한 가치도 버렸잖아요. 이것이 각자 끊임없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문제로 귀결돼요. 자아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깨지고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선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자아가 만들어지려면 타자가 필요한 건 어쩔 수 없잖아요.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건강한 자아가 만들어지는데, 타자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나 불건전하잖아요. 한국 사람들 낯선 타인하고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내가 인정할 수 있는 한국의 주류 사람들만 정상적 타자이고, 나머지는 다 배제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다못해 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은 빌라에 사는 아이들하고 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심지어 빌라 사는 사람들을 ‘빌거’라고 부르고, 결국 그런 식으로 타자를 배척하는 세계관 때문에 자아가 망가지는 거죠. 이 문제를 진단하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인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면 좋겠어요. 그다음에 재정의된 가족의 중요성을 되살리는 문화예술 콘텐츠가 필요하겠고요.

Text Marco Kim
Photography Shin Kijun
Art Lee Sanghyeon
Hair Anna Young(Chungwoo Michael Lim), Dayeon(Yang hyosil)
Makeup Im Asil(Yang hyosil), Yun Hyejeong(Chungwoo Michael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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