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Text & Photography Jong Hyun Lee

 

네 번째로 방문한 파리. 하지만 파리 패션 위크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다른 일정 탓에 쇼는 셋째 날부터 볼 수 있었다. 케이트 모스, 나오미 캠벨과 팔짱을 끼고 등장한 킴 존스의 ‘마지막’ 루이 비통과 ‘지금’, ‘가장’ 흥미로운 컬렉션을 보여주는 와이 프로젝트 컬렉션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호텔 객실의 탁자 위에 올려둔 단 두 장의 티켓만으로 파리는 여전히 나를 설레게 했다. 디올 옴므와 알렉산더 맥퀸의 티켓.

디올 옴므라는 브랜드가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패션이라는 것이 그토록 가치 있고 힘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내 관심은 옷 입기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10대 시절 디올 옴므라는 브랜드가 존재해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디올 옴므의 쇼를 보던 날은 기분이 묘했다. 그 시절 디올 옴므를 이끌던 에디 슬리먼은 오래전 하우스를 떠났지만, 그의 퍼스트 어시스턴트였던 크리스 반 아셰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0년을 이끌며 여전히 그때와 같은 떨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송중기와 로버트 패틴슨, 조시 하트넷, 벨라 하디드 그리고 수염을 멋지게 기른 칼 라거펠드가 참석한 가운데 대망의 2018년 F/W 디올 옴므 남성복 컬렉션이 시작됐다.

직접 목도한 디올 옴므 컬렉션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그간 지켜본 디올 옴므의 모든 것이 담겼기 때문이다. 핀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슬림한 슈트와 와이드 팬츠, 스포티한 아우터와 스니커즈, 촌스럽던 트라이벌 문양은 현대적 방식으로 재탄생했고, 이는 지극히 크리스 반 아셰의 방식이었다. 반면 단추와 단추 사이의 간격이 유난히 좁은 형태의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본디지를 연상시키는 크로스된 라펠의 디테일, 샤기 컷 헤어스타일의 모델, 롱 머플러, 빨간색 스트라이프는 과거 에디 슬리먼이 즐겨 사용하던 방식으로 디올 옴므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현재와 과거를 섞어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 디올 옴므는 비록 그 시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진화한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 나도 자라왔다는 사실을, 그 공간에서 공유했던 경험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원고를 쓰는 지금, 왼쪽 벽에는 단 한 명의 디자이너 사진이 걸려 있다. 포토그래퍼 스티븐 클라인이 2002년에 찍은 그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그의 눈동자는 왼쪽 귀에 찬 다이아몬드처럼 빛나지만, 서글픔은 감춰지지 않는다. 알렉산더 맥퀸의 초상이다.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봤다. 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천재성이 남아 있는 여성복도 아닌 사라 버튼이 만드는 남성복이지만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본다는 사실은 내게 특별함 그 자체였다.

알렉산더 맥퀸이 생전에 만든 남성복이 어떤 형태였는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열렬한 팬임에도 그가 남성복에 소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었다는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말해 그는 철저히 여성복에 몰두한 디자이너다. 지금 맥퀸의 남성복은 과거에서 벗어나려 한다. 지속적으로 런웨이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어느덧 맥퀸의 남성복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까지 만들었다. 바로 고딕과 슈트. 이번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장 동시대적 영국의 남성복’이라는 주제로
런던의 양복점 거리인 새빌로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창립자의 정신까지 담았다.

그러나 두툼한 아웃솔을 덧댄 레이스업 부츠나 첼시 부츠는 인기 있는 브랜드의 잘 팔리는 아이템에 강박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고, 아가일 체크 니트나 자수와 시퀸으로 한껏 꾸민 코트, 드롭 이어링과 주렁주렁 레이어드한 네크리스 스타일링 등은 그간 맥퀸이 보여준 컬렉션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은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하나의 이미지를 반복하거나 정립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개했던 아이팟과 아이폰이 그랬듯, 상상도 못한 반전이 있었다. 입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런웨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비전과 패션 디자이너의 자질을 증명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고, 알렉산더 맥퀸의 옷을 사는 것을 수준 높은 취향으로 만들었다.

맥퀸의 쇼를 봤지만 맥퀸은 없었다. 그럼에도 ‘알렉산더 맥퀸’의 이름을 단 쇼를 직접 보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리는 일이었다. 디올 옴므가 그랬듯이. 파리 패션 위크의 모든 일정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준야 와타나베와 준지와 아크네 스튜디오, 톰브라운, 사카이, 벨루티, 발맹, 에르메스 그리고 폴 스미스까지 특별한 기억이 있는 브랜드의 쇼와 함께했다.
준야 와타나베와 사카이, 준지는 여전히 그 독자성이 부러울 정도로 자신의 색이 뚜렷함과 동시에 상업적 성과를 고려한 유행할 만한 디자인과 컬러를 대거 배치했다. 또 한때 하우스 브랜드에서 가장 젊은 디자이너였던 올리비에 루스탱은 여전히 젊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친근한 컬렉션을 지속했다.

고급스러운 공간, 화려한 아이템을 그처럼 끊임없이 선보일 수 있는 디자이너는 없다. 그런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크리스찬 루부탱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레드 컬러와 레오퍼드 패턴, 골드와 실버부터 퍼 제품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요소를 반영한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톰 브라운은 여전히 재기 넘치는 퍼포먼스로 쇼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벨루티 컬렉션에서는 지난 몇 년간 내 마음속 부동의 톱 모델 나탈리 웨슬링을 만나는행운을 얻기도 했다. 생각보다 작은 키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첫 번째 파리는 개선문에서 몽파르나스 타워까지 친구와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눈 장면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파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친구와 와인을 나눠 마시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세 번째 파리는 노천카페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 장면으로 기억한다. 네 번째 파리는 디올옴므와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본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파리는 꼼 데 가르송에 대한 기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