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싱글브레스트 블레이저는 맥퀸(McQueen), 셔츠는 키톤(Kiton), 핑크 골드 베젤에 오토매틱 와인딩 메커니컬 무브먼트와 430MC 칼리버를 탑재한 산토스 뒤몽 워치와 손목에 장식한 못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체인 네크리스는 까르띠에(Cartier), 글러브는 에디터의 것.


아가일 패턴 니트 톱과 체크 팬츠, 브라운 벨트는 모두 코치(Coach), 더비 슈즈는 페라가모(Ferragamo), 핑크 골드 베젤에 딥 버건디 다이얼 컬러와 칼리버 822를 탑재한 리베르소 트리뷰트 모노페이스 스몰 세컨즈 워치는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 실버 이어 커프는 톰 우드(Tom Wood).


실크 셔츠와 체크 팬츠, 슈즈, 실크 스카프, 블랙 벨트는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어쩌면 해피엔딩〉의 휴를 한국에서 겨우 이렇게 만났네요.
사실은 지금 휴가차 온 거거든요. 토니상 받을 때까지 거의 석 달을 못 쉬고, 시상식과 행사 다니고 그러느라. 토니상이 마라톤 피니시 라인 같았어요. 끝나고 저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려고 휴가를 왔는데 막상 오니 뭔가 한두 개 잡히다가 이렇게.(웃음) 〈유퀴즈 온 더 블럭〉도 찍었거든요. 찍기 전날, 새벽에 자려고 누우니 막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예요. ‘작가는 원래 작품 뒤에 숨어 있으면 되는데 내가 왜 앞에 나가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겠네요.
자리에 눕기는 했는데 잠도 못 자겠고, 가슴만 두근거리고···. 그러다 저랑 같이 작업하는 윌(윌 애런슨)에게 전화를 했어요.“나 지금 너무 겁난다.” 제가 원래 자존감이 되게 낮거든요. “사람들이 혹시 날 보고 욕하는 거 아닐까. 우리 작품을 싫어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지?” 이런 말을 연달아 했거든요. 요즘 같아선, 지난 10년 동안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걷다 이제 정상에 올랐고, 방송 나가고 나면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뮤지컬 본토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받았으니까요. 이미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겠지만, 6관왕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찾아주실 때 감사한 마음으로 나가고 있어요. 윌도 그랬어요. “나가서 그냥 네 모습을 보여줘. Be yourself”라고. 근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17년 동안 옆에서 절 지켜봐 준 친구니까.

작가는 작품 뒤에 꼭 숨어 있어야 할까요.
작품이 정말 좋다면 (작가가 뒤에 있어도) 성공하잖아요. 정말 잘 쓰는 분들은 가명을 쓰거나, 노출을 일체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왜 얼굴을 비추기로 결심했냐 하면 드라마나 방송작가, 영화 작가 분들에 비해 뮤지컬 작가는 대중이 그 존재를 아예 몰라요. 그래서 뮤지컬 작가들끼리 종종 지난 시간 동안 뮤지컬 작가에 대한 대우가 너무 안 좋다고 이야기해요. 스태프 중에서도 작가는 항상 뒷전이고, 페이도 늦게 주고. 못 받은 적도 몇 번 있어요. 그 이유가 ‘스타 작가’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한국영화계가 발전할 때 스타 감독님들이 나와 한국영화계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되고 대중화됐듯이 뮤지컬 창작자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인식시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친한 작가들도 저한테 “휴, 네가 먼저 나가봐라. 너밖에 없는 것 같다. 유튜브를 해라” 이런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제가 내성적이라서 뭘 못 했거든요. 일할 때는 비즈니스 모드가 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숨어 있지 않고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오랫동안 고민하다 용기를 내 나왔군요. 스타 작가가 된 기분이 어때요.
스타인지는 모르겠고요, 그냥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고,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타인이 물어봐 주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어떤 사람인가요?’ 같은 물음을 좋아해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오늘 〈데이즈드〉 촬영 오기 전에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그동안 저는 뼛속 깊이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외로워하는 성격인데 누군가 나에 대해 궁금해하니까 그렇게 외로움을 끌어올려 뮤지컬을 쓰고, 가사를 써왔구나. 글 쓸 때는 되게 외롭거든요. 그래서 하기싫고. 근데 그 외로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걸 견뎠더니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생기는 게 지금까지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외로움이라는 정서가 작가에게 필요한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어때요.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는 어린애가 왜 이렇게 슬픈 노래만 듣니? 천휴야, 슬픈 노래를 좋아하면 인생이 슬퍼진대.” 저는 정말 어릴 때부터 되게 슬픈 노래를 즐겨 들었어요. 되게 고민이 많았죠. 행복하려면, 슬프지 않으려면 슬픈 노래를 듣지 말아야 하는데 이게 저한테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거예요. 그래서 늘 외로움을 노래로 썼는데, 그러다가 오늘처럼 〈데이즈드〉 촬영도 하고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 옷도 입고,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막 하잖아요.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조금 덜 외로운 것 같아요.

 

 

오늘 수십 번도 더 나온 이름인 윌 애런슨과는 어떻게 만났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뉴욕으로 건너갔을 때, 저랑 윌을 둘 다 아는 한국 친구가 소개해 줘 처음 만났어요. 저는 한국에서 작사가로 활동하다 미술 공부를 하러 갔고, 윌은 뮤지컬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뮤지컬 작업을 하다 막 돌아간 때거든요. 그때 다른 친구가 ‘너희 둘이 만나면 재밌겠다’ 하며 여러 명이 어울리는 자리에 윌을 부른 거예요. 첫 만남에서 “너 작곡가야? 나는 작사 해.” 그러다 따로 만나 술을 마시는데, 취향이 되게 비슷한 거예요. 저희가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를 엄청 좋아했어요. 저도 그 작가의 단편집에 한창 빠져있을 때거든요. 윌은 그걸 세 번 읽었대요. 그리고 둘 다 히치콕 영화를 좋아하면서 컸고, 존 브리언Jon Brion이라는 영화음악 하는 사람 좋아하고, 그런 얘기하다 친해졌어요. 그래서 그럼 “우리 노래를 같이 써볼까?”가 된 거예요. 제가 혼자 흥얼거리면서 작사 작곡을 한 노래가 다섯 곡 정도 있었는데, 저는 악기를 잘 못 연주하니까 윌이 “내가 편곡해 줄게” 해서 피아노 앞에 둘이 앉았고요.

처음부터 서로 시너지가 나는 관계였네요. 윌은 어떤 사람이에요?
저희 둘 다 실패를 엄청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때로는 비관적이지만 윌은 그럼에도 계속 유머러스한 게 특징이에요. 우리가 행사 다닐 때 둘 다 긴장하는 건 똑같은데 윌은 항상 “휴, 웃어, 웃어” 이렇게 말해 리마인드를 해주거든요. 그게 (저랑 윌의) 차이예요. 저는 스스로 그걸 잘 까먹고, 윌은 아무리 힘들 때도 약간 해학적이고. 페이소스 같은 게 있는 친구예요, 제가 느끼기에.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작도 궁금합니다.
첫 아이디어를 떠올린 날 윌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인간 같은 로봇들이 있는 미래가 배경이에요. 주인에게 버려져 외롭게 로봇들만 살게 되는 아파트가 있어요. 개중에 주인공은 자신의 옛 주인이 세상을 떠서 버려진 거예요. 근데 이 친구는, 로봇인데도 재즈를 좋아해요. 재즈는 가장 인간적인 음악이잖아요. 즉흥연주를 해야 하고요. 그리고 영혼이 있어요. 자기도 죽어서 어디론가 가면 옛 주인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친구예요. 그래서 밤에 혼자 지하 주차장에 가서 트럼본을 연주하기도 하는. 이게 〈어쩌면 해피엔딩〉을 시작하게 된 한 문단이었어요. 지금은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됐는데, 그때는 그렇게 외로운 정서가 강했어요.

 

센티멘털과 브로드웨이는 정반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요. 영어로 ‘subtle’이라고 하잖아요. 미묘한, 이런. 오묘한, 은근한. 그게 제 취향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화려한 것도 싫어하고요. 어떤 옷을 사도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포켓 디테일이 조금 다를 뿐인데 좀 더 값이 나가는 걸 찾는. 저는 그런 가치를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게 세련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디테일을 알아보는 게 ‘subtle’이라고 생각하는데, 브로드웨이는 그런 미묘함을 느끼기 힘든 시장인 것 같았어요. 한 번은 프랑스 관광객으로 보이는 남성 네 명이 〈어쩌면 해피엔딩〉을 보러 왔는데, 그들을 지켜보며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요. 제 공연은 그 언어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되게 미묘한 ‘농담’인 거예요. 그리고 옛날 극장이라 밖에 소방차 같은 게 지나갈 때마다 관객들이 그 소리에 되레 놀라고. 이곳의 관객들은 바깥 소리도 차단시킬 만큼 ‘빅’ 사운드를 원하구나, 그리고 언어를 오묘하게 다 캐치하지 못 해도 슬랩스틱처럼 큰 유머가 필요하군. 그런데 이런 관객들에게 내가 어쩌자고 이런 고집을 부렸지?(웃음) 큰일 났다, 정말. 그래서 정말 실망한 관객도 있을 거예요. 조용조용한 공연에, 배우도 네 명밖에 안 나오고. 화려하지 않고. 보통 관객이 기대하는 뮤지컬과는 다르니까요. 미국은 “하하” 크게 웃어야 하는데 저는 ‘피식’을 좀 더 좋아했으니까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저는 원칙주의자예요. 내가하고 싶은 대로, 설령 이게 덜 성공하더라도 혹은 더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처음 원한 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갔어요.

그 ‘피식’ 같은 미묘한 농담을 다들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까요.
좋은 질문인데요, 제가 확실히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많은 평론가가 그 ‘subtle’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좋은 얘기를 해줬어요. “이건 브로드웨이에서 무척 귀한 정서다. 그러니 우리가 이 공연이 잘되길 응원해야 한다”라고 일제히 모두가, 마치 팬덤처럼 정말로 그렇게 다 지지해 줬어요. 관객분들도 직접 ‘반딧불’이라고 이름 붙이고, 자기 돈을 합쳐 티켓을 구매해 무료 나눔을 할 정도로. ‘〈어쩌면 해피엔딩〉을 꼭 살려야 한다’라는 움직임이 업계 전체에 있었어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로봇은 사랑을 처음 알아가잖아요. 거기서 오는 행복, 슬픔이 그렇게 생경했나 싶어요.
맞아요. 저는 ‘인간이 언제부터 행복 같은 걸 누렸다고 사람들이 행복을 기본으로 생각하지? 그건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하는, 불안해하는 마음 아닌가?’라는 생각 많이 해요. 한편으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쓰고 싶었어요. 행복이나, 사랑이나 그런 것들.

작품에 관한 한 비평은 특히 우리를 찌르기도 해요. “어쩌면 우리가 로봇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로봇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행복은 결국 인간의 것이라는 주장은 어떨까요.
기계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정을 더 잘 흉내내겠죠. 심지어 행복감마저 기계가 만들어낼 수 있겠죠. 근데 오거닉이 더 좋지 않아요?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구름 때문이든, 아니면 나무에서 나는 좋은 향 때문이든, 그렇게 잠깐 마주치는 자연스러운 순간 더 행복할 때 좀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text KWON SOHEE(SOHEE)
fashion SEO YEONJAE(AMY)
photography SHIN KIJUN
art KIM JIWON(JUNO)
hair & make-up LEE S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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