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 중 빙글빙글 도는 구조물에서 출연진이 기상천외한 몸동작으로 온갖 곡예를 펼친다.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원형 공연장. 공연장은 객석에 둘러싸여 있다.


철재로 만든 그네인 줄 알았는데 과격한 다이빙 발사대였다. 앞뒤로 흔들다가 점프를 하고, 나중에는 그네를 몇 바퀴씩 돌린다.


천장에서 내려온 감옥이 물속과 공중을 오간다. 감옥에 매달려 결투를 벌이는 출연진


어둠의 무리와 그 대장 격인 ‘다크 퀸’

작고 반듯한 마카오. 마카오 국제공항을 나서 호텔로 이동하는 10분간의 소회다. 서울 은평구와 면적이 비슷한 마카오는 모든 것이 말끔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모든 도로는 쓰레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단출한 이동수단은 효율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친절
한 에스코트에 반듯한 미소로 응하면 곧장 호텔 룸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호텔로 가는 도로 옆엔 프랑스식 르네상스 정원을 본뜬 ‘르 자뎅Le Jardin’이 있다. 아주 솔직하게도 르 자뎅은 프랑스어로 정원이라는 뜻. 그 주변에는 파리 에펠탑을 절반 크기로 만든 ‘마카오 에펠
탑’이 세워져 있다. 마카오의 야외는 대체로 이렇다. 익숙하고 편안한 아름다움이 일상에 절묘하게 배치돼 있다.
 내가 묵은 곳은 멜코 리조트 & 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시티 오브 드림즈 마카오’였다. 네 개의 호텔과 카지노, 쇼핑몰이 모여 있는 복합 리조트. 호텔 밖의 마카오가 작은 유럽이었다면, 시티 오브 드림즈의 모든 것은 오히려 거대하다. 호텔 ‘모르페우스’는 자하 하디드가 생전 마지막 지은 건물답게, 또 그리스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크기와 구조를 자랑했고, 리조트 곳곳에는 초대형 아트 피스가 놓여 있었다. 마카오에서 만난 대부분의 것은 뚜렷한 의도와 설계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눈길을 사로잡는 아트 피스 옆에는 카지노 또는 쇼핑몰로 이어지는 길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예쁜 것을 온통 감상할 수 있었다. 장미셸 오토니엘, 무라카미 다카시, 고이즈미 사토루 등의 작품을 미끼 삼는다면 얼마든지 꾀여도 좋다. 이런 설계라면 상술에 몸을 맡기는 게 차라리 편하다.
 저녁이 됐고, 잠깐 마주한 마카오의 밤과 빛은 아름다웠다. 수십 미터를 치솟는 대형폭포와 화려한 조명, 다른 아시아에서는 만날 리 없는 유럽 양식 건물 무리는 당연하게도, 서울에서 온 별생각 없는 청년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서 룸서비스를 주문하고는 작은 우울감을 곱씹었다. 포르투갈이 중국에 마카오를 반환하던 26년 전, 그때 이 도시는 포르투갈의 문화가 남아 있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중국은 간척사업으로 섬을 확장했고, 시티 오브 드림즈 마카오를 비롯한 마카오의 대다수 시설은 그 위에 올려졌다. 오늘 내가 만난 모든 건 명확한 의도를 지닌 계획과 함께 21세기에 빚어진 것이다. 낮에는 흥청망청 좋다가도 밤이 되면 서늘함을 느낀다. 그래도 XO소스로 볶은 새우볶음밥은 참 맛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중국 호텔의 룸서비스는 그 어느 나라보다 훌륭했다.
 그리고 이튿날 계획은 한 가지. 마카오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를 보는 것. 제작비 4000억 원을 투자하고,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돌파한 이 쇼는 2020년부터 장기간 휴식기를 가졌다. 오랜 재정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5월 7일, 5년 만에 다시 공연을 선보인다. 그렇게 대단한 쇼의 초연을 보는 날인데도 꿍한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영화 <매트릭스> 시스템에서 자유의지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달은 네오의 마음 같달까. 공연장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이번 공연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리뉴얼 버전, 그러니까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2.0’에 가깝다는 소문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보이는 거대한 설렘을 마주하니, 센티한 마음은 살짝 위축된다. 또 공연장 바깥에는 매끈한 근육을 자랑하는 출연진이 관객과 어우러져 가벼운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신체를 맞닥뜨리면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연장은 1,700만L 규모의 거대한 원형 수영장으로, 객석은 공연장을 270도로 둘러싸고 있다. 출연진은 객석에도 등장한다. 18세기 유럽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캐릭터가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고, 또 관객의 휴대전화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다. 출연진끼리 다투고 도망가고 서로를 붙잡으려는 모습을 보면,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공연의 일부라는 걸 알 수 있다. 관객이 객석을 채우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공연은 객석에서부터 시작된다. 악의 군단처럼 보이는 무리가 등장하고, 이를 피해 주인공은 소중한 검을 숨기고는 달아나 버린다. 검은 바로 관객에게 자랑하던 그 보물이다.
주인공이 물속으로 다이빙하며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특징은 도저히 공연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 대담한 다이빙에 잠시 넋을 놓고 있으면 잠시 후 물속에서 거대한 배가 솟아오른다. 주인공은 자신의 검을 지키기 위해 돛대 위에서 결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출연진이 수십 미터 높이에서 일사불란하게 다이빙을 선보인다. 이후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악의 무리에게서 공주를 구하는 러브스토리’로 이어진다. 그 속에 <캐리비안의 해적>, <삼총사>, <미션 임파서블> 같은 클리셰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감동적이고 재밌으면서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으로, 우리는 곡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야기의 흐름은 혼란스럽다. 18세기 유럽 같은 배경은 어느새 중국 무협소설 속 강호로 바뀌고, 그 이후에는 미래도시가 된다. 수영장은 금세 메마른 지상 무대로 변하고, 또 언제는 점프 스턴트가 설치된다. 곧이어 오토바이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스턴트 쇼를 선보이는 식. 혼란스럽지만 일관되게 놀라운 공연을 보고 있자면 그저 순수한 감상만이 남는다. 나를 비롯해 한국에서 출장 온 동료, 선후배 기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라워할 뿐. 지금의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이전보다 곡예의 난도가 훨씬 높아졌다. 전 올림픽 선수까지 채용하고, 캐스팅의 제1원칙을 신체 능력에 두었을 정도. 철저한 계획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훈련을 통해 이 공연이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담대한 공연을 보고 나니 기분은 말끔하다. 배배 꼬였던 생각이 풀린다. 마카오의 경관과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의 모습은 다를 바 없다. 준비 과정조차 비슷했을 것이다. 정확한 목표를 향해 모두가 노력한 결과물이고, 운 좋게도 또 현명하게도 그 목표와 계획은 모두 지금 시대에 부합한다. 마카오의 밤이 공평하게 아름다움을 보여주듯,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는 모두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Text 바론(Baron, 윤승현)
Art 주노(Juno,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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