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Q1. 복싱의 어떤 매력에 빠져 시작하게 됐나요?
고향이 북한이다 보니 평양에서 처음 복싱을 시작했어요. 체육 선생님의 친구가 복싱 감독이셨는데, 제가 남자 친구들보다 잘 뛰는 모습을 보고 복싱을 시작해보자고 제의하셨지요. 그래서 체육관에 따라갔는데, 또래 여자아이들이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샌드백을 치면서 땀 흘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또 한편으론 더 잘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시작했죠.

Q2.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복싱을 처음 시작했어요.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맞는 것은 당연히 두렵죠. 복싱 선수라고 해도 맞으면 아픈 건 매한가지니까요.(웃음) 하지만 링 위에 서면 두렵다기보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요.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걸 극복하고자 한 노력들이 저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었죠. 누구나 두려운 게 있겠지만, 두려움에 멈춰만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을까요?

Q3. 북한에서 어린 시절부터 복싱을 하다가 한국에 온 후 복싱을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복싱을 다시 시작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겠죠. 사실,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어떤 힘이 있잖아요. 그 시절의 최현미 선수에게 스포츠가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나요?
한국으로 와서 학교를 다니는데 한 학생이 탈북자라고 비꼬며 욕을 한 적이 있어요. 당연히 화가 났지만, 그 학생보다 내가 더 잘하는 것을 보여줘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복싱을 다시 시작했죠. 돌이켜보면 살면서 받은 마음속 상처로 흔들릴 때마다 스포츠가 저를 잡아준 것 같아요. 운동이란 게 신기하게도 몰두하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의지나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게 느껴져요.

Q4. 한국에 와서 복싱을 다시 시작했고, 그 어려운 과정은 누가 봐도 느껴지는데··· 처음 챔피언 벨트를 들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그 순간엔 북한에서 한국으로 어렵게 온 순간들, 힘들게 운동하면서 시합을 준비하던 모든 날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흘렀어요. 경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 체육관에 가니 관원들이 챔피언이 된 것을 축하해주는데, 그제야 실감했죠.

Q5. 모든 운동선수의 꿈은 당연히 우승이고, 최고가 되는 거잖아요. 어린 나이에 정상에 올라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겠어요.
오히려 나이가 어려 이기는 것을 더 즐겼어요. 열심히 준비해 링 위에 올라갔고, 우승을 하니 잘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었죠.

Q6. 그 후에도 2006년 대통령배 전국시도대회 페더급 57kg 우승부터 2013년 세계권투협회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까지, 우승만 무려 일곱 번을 했죠.
챔피언 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하고 경기를 준비했어요. 스스로 더 채찍질할 수 있었고, 7차 전까지 방어에 성공했죠. 그 후에 모든 걸 내려놓고 체급을 올려 도전자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결국 두 체급의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죠. 복싱은 노력에 대한 결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수하고 거짓 없는 스포츠인 것 같아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요.

Q7. 지난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제가 복싱을 시작하면서, 복싱 선수 같이 안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예쁘다는 뜻일 거다이것도 편견인 것 같다라고 말했죠. 복싱은 자칫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운동인 만큼 사실 여성이 접근하기 어려운 운동 중 하나라는 편견이 많잖아요. 지적하셨다시피 성별과 외모, 그리고 복싱에 대한 고정관념, 즉 흔히 말하는 ‘여자가 복싱을?’에 대해 반박해주신다면요?
시상식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목표를 멋지게 성취해낸 여성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그동안 제가 차별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떠올려보니 “여자가 무슨 복싱이냐”, “그만 맞고 시집이나 가라” 등 그 순간에는 잘 인지하지 못한 차별적 발언도 꽤 있었어요. 단순히 ‘여자’이기 때문에 어떤 일에 장벽이 생긴다는 건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기엔 사실 꽤 촌스러운 일이죠. 그저 제 삶의 결정권을 저에게 주었고, 그 삶을 사는 거예요. 복싱뿐 아니라 성별로 나뉘는 모든 차별, 말 그대로 틀에 박힌 고정관념과 편견일 뿐이죠. 따분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이 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Q8. 최현미 선수가 운동하는 여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복싱을 준비하는 여자 지인 또는 후배에게 꼭 해주는 조언이 있다면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기쁘지만 아직까지도 성차별뿐 아니라 인종차별 등 다양한 차별이 존재해요. 이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나아가야 하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할 때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된다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더 큰 힘이 되겠죠. 그리고 운동을 하다 보면 종종 저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요. 하지만 한계를 정해놓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내딛다 보면 환희의 순간이 찾아오죠. 그때의 쾌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고, 경험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어요. 언젠가 그 순간이 올 것을 믿고, 포기하지 마세요.

Q9. 이 외에도 복싱을 포함해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하려는 초보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종목과 노하우가 있다면요?
가끔 운동을 하고 싶다면서도 망설이는 분들이 있는데, 망설이지 말고 그냥 가볍게 집 앞을 산책하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일상에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다 보면 분명 재미를 느낄 거예요. 일단 운동에 발을 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스포츠는 절대 노력을 배신하지 않아요. 많은 노력을 쏟은 후에 분명 자신이 얻어가는 변화가 더 많을 것이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Q10. 이번에 스포츠를 사랑하는 여성 대학생들로 구성된 나이키 캠퍼스 클럽(NCC)을 필두로 많은 여대생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라이브 스포츠 세션을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함께하게 된 소감이 어때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어요?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에 주로 남성 분들이랑 운동을 해왔는데, 가끔 이렇게 여성 분들과 운동을 할 기회가 생기면 설레요. 그리고 참여한 친구들이 대학생이다 보니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더 기대가 돼요. 예전처럼 한 공간에 모여 운동을 즐기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디지털’이 있잖아요.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고, 그에 걸맞게 온라인 화상으로 모두 모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워요. 각자의 위치에서 스포츠가 가진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면서 동시에 위안이 돼요.

Q11.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복싱 세계 챔피언.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모두 경험해봤는데,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복싱의 4대 메이저리그인 WBA, WBC, WBO, IBF의 챔피언 벨트를 모두 갖는 것이 복싱 선수로서 목표죠. 그리고 제가 가진 복싱의 재능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공부를 더 한 뒤 한국 최초로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후배 양성을 위해 힘쓰고 싶어요.

Q12. 복싱을 넘어 ‘운동’은 최현미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요즘 복싱뿐 아니라 골프, 수영 등 즐기는 운동이 많아요. 살아오면서 많은 비난과 모욕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운동은 제게 자신감을 주고, 꿈을 정의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돼주었어요. 제 인생 자체라고 말할 수 있어요.

Q13. 최현미,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요?
제가 방어전을 세 번 더 치른다면, 대한민국 복싱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겠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에요. 그래서 현재 제가 다시 선수로 돌아가기보다는 대한민국 복싱이 다시 부흥할 수 있게 힘을 쓰고 싶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후배를 양성하며 말이죠. 한마디 덧붙이자면 ‘최현미라고 복싱을 잘하는 선수가 있었지’라고 저를 기억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복싱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