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울었어.
걱정하지는 마.
자지러지게 많이 웃기도 했으니까.
그러고 싶었어.
한 편 한 편의 살이가 슬픈지 웃긴지 비겁한지 유난스러운지.
속은 시원하니?
차라리 그랬으면 됐고, 넘어갈 수는 있겠고.
존재가 중요하다, 결국 그게 다라고 늘 목 놓아 외쳤는데
우주적 관점? 뭐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고.
그저 현상에 불과한 거더라.
나도, 너도, 한낱 부질없다면 그렇게 부서지고 말.
그대의 나르시시즘을 응원해.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거야말로 숨 쉬는 이유의 전부일 수 있겠더라.
멀어서 좋아?
더 읽고 싶어?
더 쓸까, 말까.
그렇다면 실물을 남겨야 한다는 걸 명심해.
앞으론 그게 전부가 될 테니.
우리 최소, 우리 뒤까지도 자본주의 안에서 굴러갈 테니.
뭐라도 끄집어내.
무시는 찬밥에조차 하지 말고.
오늘도 울고 싶어.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한 채 너의 꿈에 나타났다는 너의 말,
무척이나 고마웠다는 걸 이제야 고백하며.
그래, E.T.처럼 웃진 않을 거야.
이겸
李兼
Guiom Lee
“신선한 육회덮밥 어떠세요?”
“목살구이에 볶은김치 얹어 드시면 어떠세요?”
“굴비에 녹차밥 어떠세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국수 어떠세요?”
“미나리 된장찌개에 보리밥 비빔정식은 어떠세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의사를 타진한 뒤 음식을 보내는 것, 이걸 계속한 지 10년도 넘었다.
두 분 다 반응이 별로일 때는 나름 비장의 무기가 있다.
“장어구이 어떠세요? 양념 안 할 걸로요.”
그렇다.
늘 장어 앞에선 ‘답정 부모’다.
“그래, 그게 좋겠다” 한다.
마지노선이었다.
그분들께 내가 느끼는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그 서비스의 한계치에서.
10대 후반 이후엔 같이 살지도 않고
결혼을 하지도 않고
자식이 있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고
1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도 않고
평소 애교 부리지도 안부 연락도 않는
그런 자로서 할 수 있는.
이것도 중독인가 싶다.
요즘은 에서 가장 보람된 일 중 하나가 이것이니.
“던은 샌드위치를 좋아하니까 서브웨이 어때?”
“위시는 아샷추!”
“티싱은 자극적이지 않은 통닭!”
“소희는 공짜면 아무거나 잘 먹으니 족발이나 보쌈.”
“지웅은 오징어회면 충분.”
“루루는 살 빼야 하니까 외면.”
내 부모에게처럼 그 고마움을 향한 서비스 영역에서의 마지노선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요즘 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즐겁다.
심지어 그것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못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오늘 뭐 마실래? 뭐 먹을래?”
나의 주문 플러팅이 계속되기를.
그게 다이고, 또 그게 전부일 테니.
모두가 건강하다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그리고 돌아간다는.
><;
이겸
李兼
Guiom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