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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edAuthor

2026 #256

By EDITOR'S LETTER

사람을 만나는 일을 줄이고 있다. 웬만한 대화는 AI를 통해 나눈다. 나가지 않아도 견문은 넓어지고, 사사로운 부침 없이 여유롭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 만난 사람은 더 강렬하게, 더 오래 박힌다. 이 효과가, 나쁘지 않다.

그런 와중에 마티유 블라지를 만났다. 뉴욕에서 펼친 샤넬의 메티에 다르 컬렉션을 다시 불러내는 서울의 레플리카 컬렉션. 그 쇼를 위해 그가 이 도시를 찾았다. 우리는 지난겨울부터 이 여정을 준비해 왔고, 그날은 그 대장정의 절정이었다. 쇼는 내일이었다. 옷은 아직 걸리지 않았고, 음악은 아직 울리지 않았으며, 도시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 하루 전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샤넬에 온 지 1년. 1년이면 열 개의 컬렉션이라고,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한 해에 열 번, 세계를 새로 그린다는 뜻이었으니까.

우리가 앉은 곳은 63빌딩 옆, 큐비즘이 내걸린 새 미술관 퐁피두 한화였다. 그는 큐비즘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췄다. “Cubism arrived pre-war, but it predicted the future.” 큐비즘은 전쟁 이전에 등장했지만, 미래를 예측했다. 과거가 미래를 먼저 본다. 그는 그것을 사유의 지형mindscape이라 불렀다. 각기 다른 정신 상태가 한 화면 위에 포개진 풍경. 백남준의 스크린을 떠올리며 어쩌면 자기만 보는 연결 고리일지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그 연결을 함께 보았다.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면서 동시에 미래로 달려가는 도시. 그것이 그가 본 서울이었고, 내가 매일 보는 서울이었다.

패션도 순환한다. 1970년대 바지와 1990년대 신발이 한 사람의 몸 위에서 공존하는 시대. 특정 시대의 스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The decades for me, they’re not so im-portant. You can just borrow and then translate.” 시대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빌리고, 번역하면 된다. 시대를 소유하지 않고 통과시키는 사람의 어법이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많은 역사에서 어떻게 하나의 비전을 길어 올리는가. 작업, 그리고 직감이라 했다. 프레임은 샤넬이다. 그 안에서 그는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만 꺼낸다. 때로는 어떤 패브릭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거기서 시작되니까. 르사주, 몽텍스, 르마리에, 마사로. 장인들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그는 가장 기뻐한다. 그 말이 좋은 대화의 시작이기에. “Me, I can dream. I love techniques. But you can never do it alone.”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기술을 사랑한다. 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혼(魂)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꿈과, 그 꿈을 손으로 옮기는 이들 사이에.

가브리엘 샤넬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가 가장 단단해졌다. 그는 재봉사의 옷,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의 옷을 가져와 귀족의 옷으로 다시 맥락 지었다. 그렇게 계급의 위계 그 자체를 지웠다. 움직여야 하는 사람을 위해 옷을 지었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옷을 통해 같은 기능을 쥐여 주었다. 오늘 아침 티셔츠를, 슈트를, 바지를 입은 모든 여성은 그 근본을 매일 다시 비춘다. “You dig in the past to unlock the future.” 과거를 파고들어, 미래를 연다. 그는 그것을 집중이 아니라 퀘스트라 불렀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갈지 안다고. 그러니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샤넬은, 내일이 있다.

좋은 대화는 그런 것이었다. 한 사람의 과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모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When it’s about culture, it can never be wrong.” 문화에 관한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틀릴 수 없다. 문화는 그렇게,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샤넬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샤넬은 있다.

파리, 뉴욕, 서울을 오가며 오직 그 하루의 쇼를 위해 달려온 7개월을, <데이즈드>의 웹과 소셜 채널을 통째로 샤넬에 빌려준 그 일주일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20년이 넘는 기자 생활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을 장면 중 하나로.

오랜만에 직접 청소를 했다. 몇 년 만에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새집으로 찾아오는 날이 내일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AI와의 만남을, 10퍼센트쯤 줄여야겠다고. 견문은 그렇게 넓어졌지만, 박히는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있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