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Fashion Min Ji Kim
Photography Yu Lee

 

브라스 소재 시가렛 케이스는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비밀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로저 비비에의 시가렛 백을 보면 그렇게 된다. 관능적이다. 디자이너 브루노 프리소니(Bruno Frisoni)는 북아프리카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이 가방을 디자인했다. 반지, 팔찌, 목걸이… 어떤 액세서리보다 특별하다. 걸치는 것만으로 ‘패션’이 된다. 이브닝 룩에 대담함을 더할 붉은 컬러, 금속 케이스에 손으로 새긴 ‘RV’ 시그너처, 가느다란 체인 스트랩. 열 때는 여느 담배 케이스처럼 하면 된다. 속에는 매끈한 몸체와 대조적으로 견고한 가죽을 덧댔다. 느긋하고 권태로운 봄밤의 파티를 즐기는 그녀의 시가렛 백은 은밀하기까지 하다. 무슨 비밀을 그 속에 감췄을까. 궁금한 신사는 정중하게 말을 거세요.

 

실버 스트랩 샌들은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다이어트

패션 브랜드에 슈즈와 백은 막강한 수익을 책임지는 동시에 시그너처를 견고히 다지는 역할을 한다. 드리스 반 노튼도 매
시즌 슈즈에 힘을 쏟는다. 최근 몇 시즌 동안에는 기둥을 뽑아 만든 것 같은 기이한 굽이 달린 부츠와 플랫폼 샌들을 선보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다이어트’를 작정한 듯하다. 땅에 닿을 듯 납작한 플랫폼과 간신히 발을 고정하는 기능만 남긴 듯한 얇은 스트랩, 그리고 한층 간결해진 굽, 앞코의 각진 형태와 유려한 곡선 스트랩. 모두 조화롭다. 발등을 지나가는 스트랩은 어떻게 하면 여성의 다리와 발이 아름다워 보이는지 알고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어렵다는 ‘무심한 듯 시크한’ 디자인이라 칭하고 싶다.

깅엄 체크 패턴을 입은 해먹 백은 로에베(Loewe).

 

변곡
‘연예인 누구누구 가방’으로 불리던 해먹 백에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아방카 트럼프의 방한 패션에 등장한 것이다. 2014
년 로에베에 조나단 앤더슨이 오면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방이 계속 나왔는데 퍼즐 백, 게이트 백, 해먹 백 등 종류도 다양하다. 2018년 S/S 컬렉션에서는 페미니티를 재해석해 다양한 가방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의 캐릭터는 공예에 조예가 깊은 여행가로, 실용주의적이지만 파스텔 컬러의 패널과 깅엄 프린트, 페이즐리를 즐기는 우아함도 갖춘 인물이다.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해먹 백 역시 파스텔 컬러의 깅엄 프린트를 더했다. 또 한번 뭇 여성의 마음이 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방으로 스터드가 부착된 스파이크 샌들은 발렌시아가(Balenciaga).

 

신무기
발렌시아가의 뉴 시즌 슈즈인 스파이크 샌들은 페티시에서 영감을 받아 사방팔방으로 스파이크가 부착돼 있다. 뾰족한 스파이크는 섹시하고 꽤나 위협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접근 금지를 알리듯이. 건강한 남자라면 이런 샌들에 기죽을 필요 없을
텐데, 글쎄 어떨는지 모르겠다. 날렵한 앞코와 11cm의 아이스픽 힐이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카프스킨은 한없이 부드럽다. 은은한 광택도 발한다. 이 부드럽고 섹시한 신무기는 신었을 때 안정적인 착용감을 준다. 밤길이 무서울 리도 없다. 자신감 너머의 섹시함, 섹시함 너머의 자신감. 가히 세기의 신발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