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내가 가장 정상이라고 생각해.

스물셋에 들어간 첫 잡지사 편집장이
입사 반년도 안 됐는데 내게 대뜸 그러셨어.
너 진짜 타고난 잡지쟁이다.

그 말이 뭔지 몰랐으니 좋지도 싫지도 않았어.
누가 나를 뭘로 고정하는 것은 싫어했으니 이랬지.

편집장님, 전 바람이 되고 싶어요.
어디에도 머물고 싶지 않아요.

지금 와서 보면 그 양반, 천재인 듯.
나는 전 세계 어느 누구보다 잡지쟁이라고 생각하니까.
운명이고 필연이고 다 갖다 붙여도
난 진짜 잡지적이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 되겠어?
게다가 그걸로 돈을 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5%라도 하고 산다면 그건 축복이라고 하지.

근데 난 그걸 하고 살잖아.
매일 꿀을 꿀꺽하니까 독도 먹어야 해.

순리라니까.
그 무엇보다 먼저, 봄에는 민들레가 피고,
여름은 덥고, 사람은 누구나 죽는, 그 순리.

나이가 들었다는 건
머리카락이 세고 면역력이 떨어지고
듣도 못한 바이러스에 걸려서 앞이 안 보이고
병원을 클럽보다 자주 가는, 뭐 그런 게 아니던데.
쉽게 말해 연기가 안 되는 순간?
그러니까 연기자로서 은퇴, 이때가 나이 들었다. 딱.
왜 다들 늙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게
결국 반사회성,
한편으론 또 내 자아를 찾는 거잖아.
그래서 슬프지만 또 뭐 기뻐.
아, 나 이런 인간이구나,
알았는데 20~30년 숨겨 두고 살다가 다시 만나니 반갑기도.

난 솔직히 이래.

밝고 친절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되레 불행했어요.

우리나라는 회복, 재활 이런 게 ‘너무’ 인생 막판이나 중병에만 존재해.

요양 중이야.
요양하면서 유영 중이야.
요양하면서 유영 중에 아양 떠는 거야.
요양하면서 유영 중에 아양 떨면서 이양하는 거야.
요양하면서 유영 중에 아양 떨면서 이양하다가 오열하는 거야.

그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Rehab’이나 듣는다. 또.
2006년에 그가 직접 쓴 곡이니까 벌써 딱 20년 전이네.
무한 영광을 누리던 천재였는데 사랑에 얻어맞고 세상에 뜯기고
약과 술에 중독됐지만 재활원은 가기 싫고.

no, no, no.
I wont go, go, go.
재활원에 가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노래 내내 세 번씩 거절한다.
I don’t ever wanna drink again
I just, ooo, I just need a friend
시간이 없다고, 아빠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라고, 친구나 내놓으라고.
문제는 술이 아니라 이 눈물이 마를 때까지의 시간이라고.

다 그러잖아.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고.
그 말인즉 어쩜, 모두, 우리, 정말, 있었다는 거잖아.
선례가 선행이, 나도 뭔가 그렇게 나 같았던 흔적이. 사례가, 과거가, 그치?

사랑 좀 그만.

P.S.
1947년 9월 25일. 올해 9월 25일은 금난새 선생의 여든 번째 생신이다.
나는 요양하면서 유영 중인데, 선생은 팔순에 개척 중이다.
공연장이 없으면 짓고, 길이 없으면 내고,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 사람.
그이의 80년 만의 첫 패션 화보가〈데이즈드〉 9월호에 있다.
무한 영광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아껴둔 말.
생신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시오.
선생님 말투로 한 번 더 석세스하시고, also, 우리도 석세스.

이호명
李浩銘
Homéo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