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영웅은 누구였나요.
말 그대로 ‘슈퍼맨’이었어요. 1978년 나온 첫 번째 을 통해 크리스토 리브를 봤는데, 저의 첫 영웅이자 첫사랑이었죠.(웃음) 사람이 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너무 멋져 보였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 평범한 일상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상상이 제 인생을 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항상 마법 같은 세계를 찾고 있었거든요. 사실, 우리 모두 깊은 내면에서는 일상 너머의 어딘가를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라면서 남성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한참 후에야 아빠가 제게 인생의 본보기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릴 때 아빠가 프로듀서, 작가, 감독으로 일하셨는데, 종종 TV에 리포터로 출연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남자는 늘 잘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갔을 때 친구들이 스트리트 웨어나 고스 혹은 펑크 스타일 옷을 입었는데, 저는 항상 재킷에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다녔죠. 이후 패션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며 슈트, 맞춤복, 정장 코트 같은 포멀한 의상을 많이 디자인하게 되었어요.
패션 디자이너로 20년이나 일했어요. 패션에 대한 사랑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났나요.
여전히 헷갈려요. 시작은 아주 어릴 때였어요. 여덟, 아홉 살 때 옷을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저에게 패션은 늘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으로, 저 자신 밖의 어떤 것을 만들거나, 혹은 저 자신을 투영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것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고 만족스럽지 않았죠.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결국 이루지 못할 사람을 만들려는 것처럼요. 재킷 하나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림으로 되돌아갔어요. 10대 시절에 그림을 그렸는데, 회화는 타협하거나 판매에 대한 걱정 없는 더 순수한 창작 과정처럼 느껴졌거든요. 역설적으로, 패션을 완전히 떠나자마자 다시 패션을 사랑하게 된 거죠.
멀어지면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고 하죠. 디올, 루이 비통, 보테가 베네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패션을 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강한 직업 윤리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화가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예요. 매일 스튜디오에 나오는 것. 비록 그날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스튜디오에 있으려고 하는 거죠. 작지만 한 칸씩이라도 진전을 이루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어요.
작품 속 인물들이 종종 왜곡되거나 뒤틀린 모습이에요. 지금은 신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남성의 몸을 그리니까 신체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해요. 점점 더 자아 인식이 되었고요. 이제는 몸에 훨씬 친절해졌어요. 20대 때는 신체를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흥미로운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얼굴이 달라졌거나 피부가 예전만큼 탄력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죠. 특히 30대 후반부터 큰 변화를 느꼈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제는 아름다운 대상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그 인물 속 표현을 찾는 데 더 집중해요.
이전 전시에서 1980년대 뉴욕의 게이 남성들을 기록한 스탠리 스텔러의 작업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현재 작업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나요.
요즘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영화를 많이 보고 있어요. 파솔리니의 주제 선택, 배우 선택 그리고 프레이밍이 저와 잘 맞고, 영감을 줘요. 저는 보통 어두운 주제를 작업하곤 하는데, 파솔리니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들조차 어둡고 강렬한 감각이 있어 자극을 받아요. 예를 들어, 갤러리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arious Small Fires’ 서울 전시를 위해 만든 ‘Sebastian’ 시리즈는 성 세바스찬을 묘사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했어요. 역사적으로 성 세바스찬은 가장 아름답고 고요한 성인으로 묘사되지만, 대부분 고문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이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표면 아래에도 언제나 어둠과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Sebastian’은 생동감 넘치는 핑크와 레드로 가득 차 있는데요, 이런 색에 끌린 이유가 있다면.
강렬하지만 아름다운 색으로 작업하고 싶었어요. ‘Sebastian’ 시리즈는 매우 폭력적인 주제를 매혹적으로 그려보고 싶었죠. 레드는 가장 폭력적인 색상이에요. 인간의 감각을 가장 자극하는 색이기도 하고요. 빨간색을 보면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느끼잖아요. 저에게 핑크는 한 톤 낮은, 아름다운 빨간색이에요.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는 색이죠. 살결이나 아름다움, 소녀 또는 동성애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핑크, 레드, 오렌지에는 혈액과 피부가 담겨 있어요. 피부가 핑크빛을 띠는 건 그 아래로 보이는 혈액 때문이죠. 우리는 끊임없이 피를 보고 있어요.
이번 시리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나요.
‘Sebastian (for MS)’(2024)가 초기 작업 중 하나인데, 제가 이 시리즈에서 원하던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 폭력과 동시에 욕망.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1988)의 한 장면을 참고했어요. 이미 아이디어가 있었고, 색감도 생각해 놓았죠. 그런데 결과물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고, 아주 강렬한 작품이 되었어요. 이 작품이 나머지 그림의 톤을 결정했죠. 강렬함과 모호함을 톤으로.
폭력과 욕망을 다루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는 아이디어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세상을 창조하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하죠.
화가가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기적인 것 같아요. “내가 이미지를 창조하고, 여러분은 그것을 봐야 해”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다소 오만한 태도죠. ‘Sebastian (for Itai)’를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애무를 당하나? 아니면 목을 졸리고 있나? 관객으로부터 또는 화가로부터 손이 나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파워 역학에 관심이 많아요. 주체와 화가 사이에는 힘겨루기가 존재하죠. 특히, 초상화에서 회화는 대상을 고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폭력이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워낙 즐거움에 대한 작품 활동을 많이 하죠. 최근 누리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면.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은 커피를 만드는 것이에요. 남자친구가 일본산 예쁜 수동 커피 그라인더를 선물해 줬어요. 최근 일상은 이래요.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고 물을 내린 다음 5분간 명상해요. 그 후 커피를 만들고, 약 5분간 그림을 그리죠. 그러고는 그날 어떤 일을 하든지 늘 그림 그리는 것과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 15분간의 즐거움이 가장 순수하게 느껴져요.
Text & Art 세라(Sarah, 최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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