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마티유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가 지나온 흔적을 다시 걷기로 한다. 데뷔 시즌부터 3부작에 걸쳐 이탈리아를 향한 헌사를 담아내더니, 직전 시즌엔 원초적 세계로의 여행에 몸을 싣는다. 생각해 보면 모든 여정에 늘 자연이 함께했다. 그는 인간이 동물과 광물과 식물 같은 원초적 자연 세계와 다시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옷과 말로 줄곧 주장하고 증명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인정하는 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옷을 만들 수 있는 자유로운 힘이 된다는 말과 함께.

마티유 블라지에게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불타버린 메마른 황무지에서 비롯한 새로운 재생의 과정이다. 그러니까 보테가 베네타 2024년 겨울 컬렉션은 결국 머물기보다는 어딘가로 향하고, 무언가를 해야하는 이들을 위한 옷에 관한 담론이다.

배우 이영애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물결이 일렁이듯 신선한 기류를 형성했다. 줄리앤 무어와 에이셉 라키, 케이트 모스, 셀마 헤이엑, 아오이 유우, 라프 시몬스 같은 이름을 한입에 담아 호명하니 불어오는 바람은 또 얼마나 낯설고 신선한 일인지 생각하며 쇼를 기다렸다.

저무는 태양인지, 아니면 모든 걸 집어삼키는 거대한 화마인지 알 수 없는 붉은 배경이 장벽처럼 서 있다. 새까맣게 그을린 채 저마다의 민낯을 드러낸 나무 바닥이 마치 죽은 대지인 듯 버티자, 그 위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 진 유리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 선인장은 모든 것이 죽어버린 척박한 땅에 서 저 혼자 꿋꿋이 뿌리를 내리고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이제 마티유 블라지는 ‘새로운 재탄생’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특유의 우아한 낙관주의적 태도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셈이다. 지금까지 그의 옷이 주로 물과 같이 흐를 줄 알았다면 지금 내 앞에 즐비한 오늘의 옷은 산처럼 묵묵히 서 있다고 여겨졌다. 지난 옷보다 수분감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장식적 요소나 화려한 디테일을 과감히 덜어내고 의도적으로 침착한 태도와 평정심을 유지하기. ‘심플하다’ 혹은 ‘단순하다’는 표현보다는 ‘정직하고 담백한 자신감’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축축하게 젖어 흘러 버리는 옷보단 버티고 서 있는 옷의 힘과 생명력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긍정의 힘보다는 우울과 혐오와 염세주의에 중독되기 쉬운 세상. 그는 여전히 가끔 보이는 낮의 햇살과 푸른 하늘이 주는 옅은 희망의 색채를 옷에 담는다. 회복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과 뱀과 불꽃의 모티브를 반복해 사용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쇼의 말미, 붉은빛을 뚫고 무대 뒤에서 돌진하듯 달려 나오는 마티유 블라지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때, 그가 지닌 선한 우아함의 근원을 조용히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새삼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마티유 블라지는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진지한 사상가이자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쇼장에 서 있던 유리 선인장은 베네치아 무라노섬의 유리 장인들이 손수 만든 것이다. 쇼가 끝난 직후 밀란의 작은 호텔 방에 앉아 구글맵을 열어 그곳에 닿는 길을 헤아리다가 말았다.

이 글이 어딘가에 닿을 온화한 봄날, 나는 어쩌면 밀란과 베네치아에 차례로 당도할 예정이다. 다시 마티유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를 만날 수 있을까. 무라노섬의 투명하지만 뜨겁고 강인한 선인장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저 옛날 어느 날까지는 지구의 땅이라는 게 단지 하나의 커다란 판으로 존재했다지. 그 간극을 메운 건 바다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 마침 새삼스럽지도 않게 되었다.

Text Choi Jiwoong
Art Lee Sang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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