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르덴 형제는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는 형 장피에르 다르덴과 사운드를 담당하는 동생 뤼크 다르덴으로 구성된 형제 영화감독이다. 그들의 영화는 거절과 실패, 고립된 상황과 가혹한 시련에 방치된 인물이 타락을 멈추고 거듭나도록 곁에서 이끈다. 감정도 이야기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장면의 연결이 아니라 오직 인물의 행동만을 따라 움직인다.
어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토리와 로키타>의 한국 첫 상영을 마쳤다. 시네필 사이에선 전주에 뜬 벨기에의 BTS라는 환호도 있었는데, 현장 반응은 어땠나.
뤼크 다르덴 스크리닝에는 참석하지 않아 잘 모른다. 극장에 앉아 우리 영화를 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웃음) 정말 꼭 봐야 할 상황이 아니면 피하려 한다. 우리 영화를 맨 처음 상영하는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부터 <토리와 로키타>까지 유색인종인 벨기에 이민자가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최근 유럽을 둘러싼 난민 문제가 떠오른다.
장피에르 다르덴 몇 년 전 유럽으로 이민을 오거나 난민 신청을 한 수백 명의 미성년 아이들이 떠돌다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체류증을 받지 못해 결국 불법 체류자가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약이나 매춘 같은 음성 조직에 몸담게 된다.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내몰린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도 그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취재를 시작했다. 그러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매정하게 쫓겨난 미성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
벨기에 출신인 백인 감독이 어린 아프리카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 어떤가. 당사자성에 관한 비판과 의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뤼크 다르덴 만약 흑인 감독이 <토리와 로키타>를 만들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나왔을 거다. 중요한 건 누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술가는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감정을 나누고 공감해 표현하는 사람이다. 같은 이야기라 해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가 말한다면 더 다양한 형태와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이 많은 백인 남성인 우리가 만약 젊은 한국 여성에 관한 영화를 찍는다면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와 다른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지점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 가족도 아닌 토리와 로키타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마음을 생각했다. 결국 이 영화는 우정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일 텐데, 그간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생각하면 어쩐지 낯설기도 하다.
뤼크 다르덴 이민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살아낼 수 없다. 토리와 로키타라는 소년 소녀가 서로의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늘 함께하던 둘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상황을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끝까지 서로를 지켜내는 숭고한 우정을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의 영화엔 늘 청소년을 비롯한 소수자가 등장하고, 사회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관한 윤리적 충격과 물음을 던진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장피에르 다르덴 당신 말대로 우리 영화에는 늘 소외된 아이들과 인물이 존재한다. 글쎄, 잘 모르겠다. 아마 우리는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얼굴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말하고 싶다. 특정한 사회적·도덕적 상황에 갇힌 인물에서 출발해 그 인물들이 출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여기서 말하는 출구란 처음에는 없었던 타인을 향한 고귀한 우정이나 연대감, 책임감 같은 마음이 새롭게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토리와 로키타> 역시 오프닝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지된 카메라는 무표정인 로키타의 정면을 비추고, 프레임 바깥으로 타인의 건조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참견할 뿐이다.
장피에르 다르덴 로키타가 이민국에 갇혀 있는 상황인데, 그 장면을 표현하는 몇 분간 프레임 안에 인물을 가두는 게 가장 좋은 장치라고 판단했다.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말하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화면을 고정함으로써 관객들이 로키타와 같은 시점, 같은 시간만큼의 경험을 할 수 있고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르덴 형제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이미지와 리듬감을 구축한 데에는 핸드헬드와 롱 테이크의 영향이 크다. 굳게 밀어붙이면 스타일이 된다.
뤼크 다르덴 제목을 말하고 싶지 않지만 초창기에 그런 방식으로 찍지 않은 영화가 있다. 한마디로 망했다고 보면 된다. 정통적인 영화 촬영 기법이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우리만의 스타일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핸드헬드는 마치 죽은 이를 염하는 느낌이 든다.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 아주 작은 숨소리까지 전부 담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롱 테이크는 시간의 현재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촬영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토리와 로키타>는 <로제타>, <아들> 등 알려진 다른 영화에 비해 카메라의 움직임이 비교적 잠잠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 속 현실은 비극적인데 카메라와 시선은 안정적으로 유지한 이유가 궁금하다.
장피에르 다르덴 어떤 사건에 휘말린 인물을 보여줄 때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 단순한 움직임을 추구했다. 만들어내거나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붙거나 그들이 뛰면 함께 뛰며 곁에서 바라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곧 무슨 일이 닥칠 것처럼. 빈 프레임 안으로 무언가 불쑥 등장할 것만 같은.
시차 때문에 피곤해 보이니 웃자고 묻는다. 핸드헬드와 롱테이크 기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영화를 찍어야 한다면.
장피에르 다르덴 연출료로 억만금을 받을 수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겠다. 참고로 우리는 두 명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웃음) 그동안의 영화를 보아 알겠지만,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스타일도 장르도 영화 속 배경이나 공간도 늘 거기서 거기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이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형제인지도 모른다.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건 딱 두 가지. 광산이 무너지거나 산소가 부족해 정신을 잃는 것밖에 없다.
형제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떤가. 형이 있는 내 입장에선 둘이 나란히 앉아 말하고 있 는 모습조차 아주 신비롭게 보일 지경이다.
뤼크 다르덴 자매들은 그런 말을 안 하는데 형제들이 꼭 그런 말을 하더라.(웃음) 우린 처음부터 함께 작업을 시작했고, 벌써 30여 년이 흘러버렸다. 바라보는 방향과 하고자 하는 말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서로의 지향점이 달랐다면 진작 각자의 길을 갔을 거다.
누군가 그러더라. 다르덴 형제 영화는 현대 영화의 또 다른 전형이 될 거라고. 지금, 영화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피에르 다르덴 우리는 영화 학자가 아니다. 심오한 답을 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뤼미에르 형제 이후 영화는 100년이 훌쩍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의미로 변모하며 존재해 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생각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극장이 정말 신기하거든. 전 세계 어딜가든 극장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한명이든 두명이든 백명이든 함께 모여 영화를 본다. 그건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고 위대한 일 아닌가. 팬데믹을 비롯해 매번 다른 위기를 겪었지만, 또 매번 살아 남았다. 그게 영화의 의미이자 힘인 것 같다.
깜깜한 극장에 혼자 앉아 언젠가 삶이 영화가 되거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피에르 다르덴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거대 자본을 투입한 광고 영상이나 프로파간다 영화라면 모를까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건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다른 조건에 사는 사람들의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이해하거나 평소와 다른 마음을 먹는다. 영화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Text & Photography Choi Jiwoong
Art Ha Su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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