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LP1〉 투어 이후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어요.
한국은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에요. 제가 워낙 바쁘고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가끔은 어느 도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어떤 식당에 갔는지는 떠올라도 어느 나라였는지는 헷갈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서의 기억은 모든 것이 또렷해요. 10년 전에 한국에서 한 일들은 정말 다 마법 같았거든요. 쿨한 바에도 갔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 것 같은 찻집에도 갔는데, 크고 작은 장난감 같은 오브제로 가득했어요. 그 외에 들른 가게 전부 놀라울 만큼 멋졌죠. 그런 기억들이 아직까지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들 모두요. 제 말이 틀릴지 모르지만, 한국은 제 성격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규율도 잘 지키는 것 같은데, 동시에 굉장히 유쾌해요. 성실하고 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아주 자유롭고 대담하죠. 제 성격이 딱 그렇거든요. 엄격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만, 굉장히 장난스럽고 자유롭죠. 그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저와 닮은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 말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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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like Things’는 이번 앨범뿐 아니라 당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유쾌하고 드라마틱한 곡 같아요. 노스 웨스트North West와의 협업도 놀라웠고요. 이 범상치 않은 곡은 앨범 전반, 혹은 당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레이빙과 댄스 음악에서 배운 건 제 안의 어린아이 같은 면을 받아들이는 거였어요. 가장 즐거웠던 밤들을 떠올려 보면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그냥 빠져 노는 순간들이었거든요. 어른들이 클럽에 가는 건, 어찌 보면 우리만의 놀이터인 셈이에요. 어릴 땐 미끄럼틀을 탔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친구들과 춤추고 떠들면서 노는 거죠. 그래서 ‘Childlike Things’가 나온 거예요. 사실 이 곡은 제가 어린 시절에 썼어요. 열두세 살 즈음에 쓰기 시작했고, 열여덟 살에 한 번 녹음했다가 이번 앨범 〈EUSEXUA〉를 위해 다시 녹음했죠. 제게는 정말 중요한 곡이에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듣고 놀랐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제 생각에 〈EUSEXUA〉는 ‘순수하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상태’, ‘판단하지 않는 상태’를 담고 있고, 결국 그건 자신 안의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릴 때 쓴 이 노래를 꼭 이번 앨범에 넣고 싶었고, 거기에 실제 어린아이의 목소리도 담고 싶었어요. 마침 노스가 아빠(카녜이 웨스트)와 함께 ‘Talking’이라는 곡을 불렀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완벽하다’ 싶었죠. 그냥 노스가 자기답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하길 바랐어요. 노래 속에서 뭐든 마음껏 하도록 두고 싶었죠. 그게 아이의 본질이잖아요. 놀고, 평가받지 않고, 그냥 떠오른 걸 해보는 것. 근데 어른이 되면 그런 걸 잃어버리기 쉽잖아요. 이 노래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어른의 개념을 담고 있는 이번 앨범에 넣는 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앨범 자체가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그건 어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저 역시 서른 살쯤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그게 어른이 되어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Childlike Things’가 저를 그 길로 이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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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SEXUA’는 이번 앨범을 위해 직접 만든 단어예요. ‘인간 형태를 초월할 정도로 황홀한 느낌’, ‘오르가슴 직전의 순수한 공허함’을 뜻한다고요. 단순한 앨범 제목을 넘어 철학적 성찰과 탐구의 결과처럼 느껴져요. 이번 작업은 개인적인 삶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EUSEXUA〉 전후로 당신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EUSEXUA〉 이전에는 항상 뭔가 꽉 조여 있는 느낌이었어요. 늘 경직돼 있었죠. 물론 그게 대단한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방해하기도 해요. 제 작업 방식은 워낙 교훈적didactic이었고, 머릿속은 늘 ‘매트릭스’처럼 끊임없이 돌아갔어요. 6년 전에 〈MAGDALENE〉을 발매했을 때는 모든 게 정교하고 완벽해야만 했어요. 〈MAGDALENE〉은 마치 클래식 피아노 연주 같았거든요. 아주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금세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EUSEXUA〉 이전의 저는 스트레스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EUSEXUA〉를 만들면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자연스러운 유연함을 찾고 싶었어요. 제 안에서, 또 제 몸에서 그걸 느끼고 싶었고, ‘아름다움이 뭘까’, ‘인간의 경험은 뭘까’,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인생의 의미는 뭘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죠.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물론 다른 이에게도 더 관대해질 수 있을까’. 〈EUSEXUA〉는 그런 질문에 답을 찾게 해줬어요. 쉽지는 않았죠. 앨범을 발매하고, 캠페인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완벽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원하는 만큼 완벽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거든요. 투어 중에도 어려움이 많았고요. 아시아 투어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죠. 〈EUSEXUA〉는 내려놓는 법, 더 큰 그림을 보는 법,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그래야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EUSEXUA〉 자체가 저를 시험한 셈이죠. 그 이후 이야기가 〈AFTERGLOW〉예요. 오늘 밤 들려드릴, 바로 그거요.

〈AFTERGLOW〉는 〈EUSEUXA〉의 딜럭스 버전으로 알고 있어요. 딜럭스 버전은 기존 앨범의 의도나 흐름을 종종 해치기도 해요. 당신은 단 한 번도 딜럭스 앨범을 발매한 적이 없고요. 딜럭스 버전 발매를 결정한 이유가 뭔가요.
오, 흥미롭네요. 저는 이전까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EUSEXUA〉부터는 조금 이상하게, 메이저와 인디 레이블을 동시에 계약했어요. 영Young 같은 독립 레이블은 절대 딜럭스를 요구하지 않아요. 하지만 애틀랜틱Atlantic은 메이저 레이블이라 딜럭스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앨범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대중의 의식 속에 앨범이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처음에는 평소에 하던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EUSEXUA〉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엄청난 의미를 지니게 됐어요. 아시다시피 〈EUSEXUA〉는 저에게 단순한 앨범이 아니에요. 제 삶을 바꿔놓은 앨범이죠. 솔직히 말하면 〈EUSEXUA〉는 음악에 관한 제 생각 자체를 바꿔놓았어요. 저는 이미 〈EUSEXUA〉 이후 여정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AFTERGLOW〉를 딜럭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딜럭스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냥 모든 것의 연장선, 확장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AFTERGLOW〉를 단순히 딜럭스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EUSEXUA〉를 앨범으로만 보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확장하는 존재로 봐주길 바라요. 그러니까 레이블 입장에서는 ‘딜럭스’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단순히 그런 기술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리고 이건 더 큰 계획의 일부예요. 또 예정된 계획이 있거든요. 〈EUSEXUA〉는 제 커리어에서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예요. 나이가 들어 돌아봤을 때도, 〈EUSEXUA〉는 제 인생에서 정말 엄청난 순간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AFTERGLOW〉는 그 자체로 〈EUSEXUA〉의 연속이자 말 그대로 ‘여운afterglow’이라고 할 수 있죠. 너무 많은 걸 설명하려다 보니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되네요.(웃음)
문득 〈EUSEXUA〉의 커다란 타이포그래피가 눈에 들어오네요. 이전의 앨범 커버에서는 타이포그래피를 강조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는 커버 자체가 ‘EUSEXUA’의 마니페스토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저는 커버에 글자를 넣은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번 건 사실 스티커라서, 레코드를 사면 ‘EUSEXUA’라는 제목이 비닐 포장과 함께 떨어져 나가요. 그러니까 제가 원래 하던 대로 아무 글자도 없는 상태인 거죠. 결국 앨범을 소장하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사실 그게 제 앨범들의 공통된 테마이기도 해요. 저는 앨범에 늘 ‘없음nothing’을 담아왔거든요. 하지만 〈EUSEXUA〉는 제게 정말 중요한 작업이라,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도 스티커를 떼어내면 결국 언제나 그래왔듯,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남는 거죠. 정말 새롭네요.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할게요. 최근 가장 난감했던sticky 상황은.
오,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웃음) 옆집이 공사 중인데, 원래 두 달이면 끝난다고 했거든요. 근데 벌써 여섯 달이 되었어요. 매일 아침 7시 45분만 되면 공사 소리에 잠을 깨요. 저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새벽까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해요. 어떤 때는 새벽 5시까지요. 근데 그렇게 늦게 자도 7시 45분이면 깨버리는 거예요. 얼마 전에도 촬영이 끝나고 아침 7시에 집에 들어왔는데, 게다가 토요일이었거든요. 막 잠들려는 순간, 7시 45분에 드릴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옆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무려 여덟 번이나 전화하니까 받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묻길래 “아뇨, 전혀요. 지금 완전 한계예요. 여섯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고, 토요일까지 공사를 하면서 이웃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 7시 45분이면 공사 소리에 깨는데, 그게 다 당신의 새 주방 때문이잖아요. 수면 부족이 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세요?”라고 답했죠. 그러자 “알죠. 저 애가 넷이에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건 본인 문제 같네요. 저는 잠이 좋아서 아이가 없거든요.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야 하는데, 앞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시네요”라고 말했죠. 이제 그분을 직접 마주쳐야 하는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잠을 못 자니까 감정이 북받쳐 그렇게 말해 버렸거든요. 아무튼 이게 제 새로운 ‘sticky situation’이에요. 저는 원래 갈등에 익숙하지 않아요.(웃음)
하하, 마지막으로는 조던에 관한 질문을 할게요. 데이팅 라이프를 캐묻고 싶지 않았지만,(웃음) 두 사람의 관계는 워낙 건강해 보이고, 솔직히 부러워요. 조던은 ‘Perfect Stranger’ 외에도 ‘EUSEXUA’, ‘Striptease’, ‘Perfectly’ 뮤직비디오까지 디렉팅을 했고요. 〈AFTERGLOW〉에서 두 사람의 협업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조던에 관해 물으셔도 돼요.(웃음) 〈EUSEXUA〉 뮤직비디오들은 워낙 스케일이 크고 영화 같잖아요. 〈AFTERGLOW〉에서는 〈EUSEXUA〉와 정반대로 접근하고 있어요. 옆집에 전화해 화를 낸 날도 조던과 밤새 촬영하고 돌아온 길이었어요. 그냥 집 근처에서 찍었는데, 멋지게 차려입고 거리를 걸으면서 여러 동작을 실험해 보고, ‘AFTERGLOW’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했죠. 그러다 갑자기 ‘해가 뜨는 순간을 꼭 찍어야겠다’ 싶은 거예요. 원래는 해 질 무렵을 찍어 일출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는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놓쳐버렸어요. 결국 해 뜨는 장면을 찍으려면 아침 7시 30분까지 버텨야 했죠. 상상이 되세요? 밤새 해 뜨기만 기다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또 엄청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스태프는 조던 한 명뿐이었거든요. 런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일출이 잘 보이는 장소를 찾았는데, 어디를 가도 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차를 몰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런던 브리지에 갔어요. 저는 얇은 의상을 입고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급히 챙겨온 담요를 두르고 있었어요. 사실 제 강아지 담요였는데,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었거든요.(웃음) 그렇게 저는 런던 거리를 뛰어다니고, 조던은 카메라를 메고 따라오고요. 완전 난리였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조던과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서 크루아상을 먹으며 촬영 얘기를 나눴죠. 그러다 제가 옆집에 전화해 공사 좀 멈춰달라고 화내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요. 참, 이런 순간들이 다 마법 같아요.
text & art KIM SEONGJAE(WISH)
fashion BILLY LOBOS
photography SINIŠA(Image 1, 3, 4), CATALINA SARTOR(Image 2)
hair LOUIS SOUVESTRE
make-up CATALINA SARTOR
interpretation PARK JIMIN(GEE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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