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질문자: 이 비디오를 만들 때 어떤 전략을 쓴 거예요?
유르겐 텔러: 가능한 한 제 사진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제 사진이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질문자: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유르겐 텔러: 내가.
– 발렌시아가 2025년 봄/여름 컬렉션 캠페인 비디오에서

로에베, 마크 제이콥스, 발렌시아가, 비비안 웨스트우드, 빅토리아 베컴, 생 로랑, 샤넬, 페라 가모. 8개 브랜드의 11개 캠페인. 지금의 유르겐 텔러는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캠페인을 촬영하고 있다. 확실한 건 그의 사진이 어떤 포토그래퍼보다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 또 최근 몇 년간 온갖 패션쇼의 프론트 로에 앉아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지금 그가 패션 브랜드가 가장 사랑하는 포토그래퍼임을 증명한다. 1964년에 태어나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 촬영을 시작한 유르겐 텔러는 어떻게 2024년의 패션계를 다시 정복했는가.
유르겐 텔러의 방대한 세계관을 쉽게 정립할 수는 없지만, 현재 그의 스타일에 근접한 단어는 아마도 ‘아마추어리즘’과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유르겐 텔러는 이미 1990년대에 거대한 이름이 됐지만, 그 이름은 패션에 국한되었다. 21세기가 되면서 미술계는 유르겐 텔러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점은 그가 1999년에 출간한 사진집 에 있다. ‘Go Sees’란 모델이 캐스팅을 위해 포토그래퍼, 프로듀서, 에디터 등을 만나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까 유르겐 텔러는 캐스팅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는 여러 모델을 촬영한 것이다. 스튜디오가 아닌 자신을 만나러 오는 길 위에서. 패션 사진의 미학과 논리, 질서를 무시하며 거침없이, 그리고 유머를 가득 담아 ‘날것’의 이미지를 생산한다.
유르겐 텔러는 뉘른베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학생을 가르쳤다. 2014년 <시스템> 매거진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에게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지 묻는다.

“아니요, 전혀 없어요.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그 사람을 잘 찍고, 그 사람의 정신, 즉 그 사람 자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이나 손을 잡는 방법 등 상대방의 제스처를 재빨리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바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 제가 너무 개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르겐 텔러는 피사체를 가능한 한 편안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카메라 스탠드를 사용하지 않고, 피사체와 여러 대화를 나누고, 또 가급적 빠르게 셔터를 누르면서. 이 방식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에르 보나르 등의 위대한 예술가를 촬영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방식과 비슷하다. 브레송 또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수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말미에는 ‘결정적 순간’을 잡아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유르겐 텔러의 방식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절정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마추어리즘과 다큐멘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유르겐 텔러는 모델을 편안하게 만들었고, 촬영 막바지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빅토리아 베컴을 마크 제이콥스 쇼핑백에 욱여넣었고, 전라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소파에 눕혀 촬영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영원히 나오지 않았을 이미지를 창조했고, 그렇게 그는 패션 포토그래퍼 중 가장 컬트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2020년대에 들어서며 유르겐 텔러의 비틀린 미학은 더 큰 명성을 얻는다.
그 이유는 미국판 매거진의 커버 연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거진에 사라 문베스가 편집장 자리에 오르고, 그는 ‘베스트 퍼포먼스 이슈’를 발간한다. 시상식에 참석한 아티스트를 조명하는 이 연작 시리즈에서 유르겐 텔러는 브래드 피트, 스티븐 연, 테사 톰슨, 재러드 레토 등의 거물급 인사를 길바닥 커다란 가로수 옆에 두고 제멋대로 촬영했다. 그리고 매거진은 이 파격적인 사진을 커버로 사용하는 용감한 선택을 한다. 그 어떤 잡지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선택 덕에 유르겐 텔러는 밈meme의 경지에 오른다. 사람들은 그가 촬영한 커버 사진을 놀려댔고, 또 패러디했다. ‘길가 나무 옆에서 찍은 사진’, ‘의자에 앉은 사진’, ‘소파에 누운 사진’은 모두 유르겐 텔러의 패러디로 간주됐다. 그렇게 그는 밈이 됐다. 밈은 현대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이다. 유르겐 텔러는 밈이 된 첫 번째 포토그래퍼다.
전통적으로 패션 잡지의 커버 사진은 특권적 지위를 지닌다. 다른 잡지는 가질 수 없는 미학이 패션 잡지에는 존재한다. 엄격한 구도와 조명, 이상화된 모델의 이미지 등 뚜렷한 논리와 규칙을 통해 커버 사진은 엄중히 탄생한다. 매거진과 유르겐 텔러는 이를 뒤집는다. 아마추어 샷, 뉴 노멀 등으로 불리는 이 미학은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평범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앞에 어떤 사람이 슬리브리스를 입고 있는 사진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이 브래드 피트라면. 그 사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된다. 그런데 그 누가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가. 지구에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유르겐 텔러다. 그 미학은 그가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2023년과 2024년, 생 로랑의 후원으로 파리 그랑 팔레 에페메르와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유르겐 텔러의 성대한 개인전이 열린다. 40년에 달하는 유르겐 텔러의 작품 세계를 펼쳐놓은 전시. 구글에 따르면 이 시기에 ‘Juergen Teller’ 검색량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평소의 약 30배, 뉴욕과 영국은 약 10배가 늘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르겐 텔러의 미학은 한 번 더 세계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2023년부터 지금까지, 온갖 미디어에는 AI 기술을 이용한 이미지가 활개를 친다. 화려하거나 괴상한 이미지가 범람한다. 분명 아름다운 이미지도 있겠지만, 복잡한 이 미지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눈에 띄는 건 여백, 아날로그, 그리고 ‘대충 찍은 사진’의 미학이다. 이제 여러 패션 잡지는 전통적 형태의 커버를 반대한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의 한 부분을 캡처하고, 해상도가 낮은 카메라로 촬영한 흐릿한 이미지를 커버로 사용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유르겐 텔러와 비슷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이미지의 핵심은 ‘대충 찍는 것’이 아니니까. 아마추어리즘과 다큐멘터리라는 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구도와 화면 분할, 패션에 대한 이해도, 현장에서의 장악력 같은 디테일한 요소에서는 더더욱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유르겐 텔러에게 캠페인을 맡기는 것이다. 그는 대충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잘 찍은 이미지를 만드니까. 

Text 바론(Baron, 윤승현)
Art 틸리(Tily, 오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