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까만 파리의 밤. 검은 차가 멈춘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플래시가 팡팡 터진다. 파리 패션위크 시즌의 공기는 늘 어느 정도 과열돼 있고, 모두가 다음 장면으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순간엔 좀처럼 이동할 줄 모른다.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1월 오트 쿠튀르 주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펼쳐진 불가리 아이콘즈 미노디에르 컬렉션BVLGARI ICONS MINAUDIÈRE과 이를 기념한 밤의 이벤트가 딱 그랬다. 처음에는 작고 정교한 오브제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닌 태도임을 직감한다.

불가리 아이콘즈 미노디에르 컬렉션은 주얼리와 액세서리,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대화 ‘Carrying Culture’를 내세운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슬로건이나 허황된 선언이 아니다. 불가리 아이콘즈 미노디에르 컬렉션의 세계는 실용 언어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많이 담기 위한 오브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덜 담고 더 남기는 방식에 가깝다. 핵심은 무엇을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들고 다닐까를 선택하는 태도다.

컬렉션은 하우스의 다섯 아이콘 모네떼Monete, 투보가스Tubogas, 디바스 드림Divas’ Dream, 불가리 불가리BVLGARI BVLGARI, 세르펜티Serpenti와의 대화를 통해 탄생했다. 이러한 상징은 표면의 장식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모티브를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를 다시 짠다. 금속 곡선이 손안에서 만들어내는 긴장, 잠금장치를 여닫을 때의 리듬, 자개와 스톤의 인레이가 빛을 받아 반응하는 깊이까지. 마치 우아하고 얌전한 외침 같다.

다시 고운 꽃으로 물든 아름다운 밤의 시간. 그날 밤의 핵심은 사실 그 시간대에 있었다. 불가리 아이콘즈 미노디에르 컬렉션 프리뷰 행사의 긴장감이 다소 가라앉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속도를 맞추는 순간. 음악은 앞으로 치고 나오는 대신 공기를 받쳐줬고, 우리의 대화는 크지 않았지만 명확했다. 불가리의 미감이 늘 그렇지만 화려함의 총량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장면의 집중도를 한껏 높이고 있었다. 행사 장소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효했다. 기록과 보존의 공간에서 불가리 아이콘즈 미노디에르 컬렉션을 공개한다는 건, 순간을 머무는 대신 아카이브 가능한 오브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즉시 소비될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문장을 남기려는 태도. 프리뷰 행사와 디너, 퍼포먼스가 이어진 밤 전체가 그 문장 하나를 위해 정렬되어 있었다. 형형하게 반짝이는 불가리의 초상. 말없이 오래가는 인상. 밤은 다 갔고 사람들은 내일의 쇼를 향해 흩어졌지만, 어떤 장면은 그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