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스트랩 쇼트 드레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샌들 힐은 질 샌더(Jil Sander), 타이츠는 에디터의 것.


오버사이즈 재킷은 와이씨에이치(YCH), 브라톱은 토템(Toteme), 로고 웨이스트 밴드 언더웨어와 타이츠, 샌들 힐은 모두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리에디션 바이닐 바이커 재킷과 헤리티지 스커트는 꾸레쥬(Courrèges), 웨지힐 부츠는 토템(Toteme).


스트랩 쇼트 드레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글러브와 타이츠는 에디터의 것.

 

“It’s too late to be grateful, it’s too late to be late again, it’s too late to be hateful….” 애니 클라크Annie Clark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tation to Station’에 맞춰 연신 몸을 흔들던 매 순간을 헤아려 본다. 카메라 앞이라는 그 어떠한 의식은커녕, 단숨에 스튜디오를 자신만을 위한 무대로 바꾸던 그 순간을.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려나. 지난봄 발매한 앨범 All Born Screaming 투어의 일환으로 서울을 찾은 그. 마지막 방문 후 꼬박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단순히 위대한 아티스트 정도로 표현하기에 세인트 빈센트는 이미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그 위로 올라선 지 오래. 2014년, 앨범 St. Vincent로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세인트 빈센트는 자신만의 세계를 우뚝 세웠다. 이후 발표한 두 장의 앨범 또한 연이어 같은 영예를 안았고, 롤링 스톤 선정 ‘The 2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 리스트에 당당히 26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는 미친 듯이 기타를 갈아 치우며 음악과 하나가 되던 세인트 빈센트. 그 순간마다 프린스Prince,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까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그가 가진 힘이다. 그들로부터 이어져 온 찬란한 계보, 세인트 빈센트를 마주하는 데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고, 쿨하게 으스대고 싶건만 호텔 로비에서 애니를 기다리는 내내 벌벌 떤 기억뿐이다.

이른 아침, 촬영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들은 앨범은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의 Heaven or Las Vegas. 애니의 ‘2024 Spotify Wrapped’를 의식한 선곡이기도 하다. 세인트 빈센트의 곡은 오래전부터 줄곧 들어왔기에, 그저 오늘을 위한 유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장 먼저 촬영장을 채운 음악 또한 Heaven or Las Vegas. “당신의 2024 Spotify Wrapped를 봤어요. 콕토 트윈스의 Heaven or Las Vegas로만 가득하던데. 어떤 순간들을 함께했을까요.” “매 순간, 오늘을 포함해서요. 그 앨범은 제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던 시기에 희망을 줬어요.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앨범이에요.” 애니에게 멋쩍은 고백 또한 털어놓는다. Daddy’s Home은 새파랗던 스무 살을, Masseduction은 한없이 내달리던 고등학교를 그리게 한다고. “음악은 기억의 강력한 매개가 되곤 해요. 아티스트로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쁜 기억이 더 강하게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나쁜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지는 않아요. 그 음악을 사랑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여러 번 다시 찾게 되죠. 그리고 그때마다 새롭게 느껴져요.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나쁜 기억은 점점 사라져요. 우리는 계속 변하니까요. 물론 우리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고, 언제나 곡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사람들은 음악이 주는 감정을 기억하죠. 음악은 터널이에요.” 과거의 어둠을 지나 현재의 빛을 마주한다는 것, 음악이 빚어내는 그 다면성이 애니 클라크가 말하는 아름다움으로 들렸다. 모든 것이 삶의 일부이기에.

All Born Screaming은 애니가 설립한 레이블 ‘Total Pleasure Records’에서 발매하는 첫 앨범이기도 하다. 딱! 세인트 빈센트답구나, 싶은 이름. “‘Total Pleasure’는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에요.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같은 표현처럼요. 그 안에는 쾌락주의적인 것도 있고, 또 조금 웃긴 느낌도 있어요. 뭔가 끈적거리는 느낌도 있죠. To… tal Pleasure…” 완전한 쾌락?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인트 빈센트라는 아티스트의 총체가 담겼다는 것. ‘우리는 모두 비명을 지르며 태어난다.’ 앨범 제목 또한 ‘살아감’에 대한 선언으로 읽힌다. 열망, 좌절, 갈증, 삶의 그 모든 원초적 감정이 뒤섞인 이 앨범을 위해 고찰을 거듭했을 그에게 물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신념은. “굳건해야 할 때와 유연해야 할 때를 아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잃고 싶지 않은 가치도 궁금하다. “유머 감각과 호기심.” 부단히 자신과 닮은 답변을 내놓는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어느 쪽에서 태어났을까요. 이미 답을 알 것 같지만.” “오, 정말 이렇게 말하기 싫지만, 아마 지옥일 것 같아요.” 현재의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시기, 역시 지옥일 테지만. “하!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역사를 돌아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분명 예전에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을 테니까요. 어떤 것은 많이 나아지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더 나빠지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것은 예전과 똑같기도 하고요.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 복잡한 존재죠.” 우문현답, 단순한 대답을 넘은 하나의 통찰이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로 ‘cunt’를 꼽은 이 당돌한 아티스트는 전날 밤 공연도 그렇게 만들었다. “어젯밤은 얼마나 ‘cunty’했나요?” “하하하. 매우 cunty했죠. 1부터 cunt까지 스케일로 말하자면, full cunt.” 컬트 의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모두를 홀려놓았던 약 1시간 40분의 공연, 미친 듯이 무대를 가로지르던 애니 클라크는 객석으로 몸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속삭임, 질주, 무릎 꿇고, 머리채까지 잡히니 혼이 쏙 빠진 채로 공연장을 나온 기억, 앙코르 곡 ‘Somebody Like Me’를 마친 그를 멍하니 서서 바라봤던 수십 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던 그 순간. 이렇게 단절적인 기억으로 옅어져 버린, 그런 충격이었다.

스페셜스The Specials의 셀프 타이틀과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Mezzanine으로 채워온 촬영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애니는 다음 날 마닐라 공연을 위해 공항으로 가야 하는 상황, 짧은 인터뷰 시간을 원망하며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을 다시금 골라본다. All Born Screaming의 모든 트랙은 저마다 빛을 발하지만 단연 돋보이는 트랙은 ‘Sweetest Fruit’. 4년 전 달을 좇아 우리 곁을 떠난 ‘소피SOPHIE’를 위한 헌정 트랙이다. “저는 그냥 팬이에요. 소피의 작업을 좋아했죠. 소피는 항상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혁신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요. 이 곡은 소피와 소피처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헌사예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건 애니 클라크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짧은 시간 속에서도 애니와의 대화는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 자리를 빌미 삼아 당돌한 질문도 던져본다. 우리가 마주 앉은 이곳은 한국이니까. “K-팝은 정말 음악적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많아요. 한번 깊이 파보면서 놀라웠던 건, 벌스에 한 장르, 프리코러스에 또 다른 장르, 그리고 코러스에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되는 식이에요. 정말 재밌어요.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완전한 매시업 같아요!” 예상치 못한 열성적인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어디로 튀려나, 종잡을 수 없는 건 무대 위에서만이 아니었다. 어김없이 유쾌하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애니 클라크. 하하. 한결 편해진 분위기,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질문이다. “스스로가 천칭자리답다고 생각해요?” “오, 당신은요? 물고기자리죠? 천칭자리?” “전 전갈자리예요.”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군요.(웃음) 한 가지 다른 점은 더 이상 우유부단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이제는 그냥 열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보자고 생각해요. ‘그래! 해보자!’ 이런 느낌이죠. 그렇지만 확실히 예술과 아름다움에 끌려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에너지가 다르잖아요. 저는 확실히 공기 같은 에너지가 많고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의 불도 있어요. 하지만 물이나 땅의 에너지는 부족한 것 같아요. 하하하. 이게 끝인 것 같네요.” 이 대화를 끝으로 아름다움을 좇는 천칭자리를 떠나보냈다. 10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남긴 트윗을 기억하냐는 질문만 덧붙인다. “‘서울 사랑해요’ 그런 느낌이었나요?(웃음) 맞아요. 여전히 동의해요.” 처음 인사를 건네던 순간, 어색하게 흔들렸던 악수는 작별의 순간 따뜻한 포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세인트 빈센트는 단순히 한 시대를 정의하는 아티스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말했듯 음악은 마치 끝없는 터널과도 같고,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빛은 우리가 지나온 모든 여정을 환히 비춰준다. 세인트 빈센트가 바로 그런 빛이었다.

 

Text & Art 위시(Wish, 김성재)
Fashion 솝(Soap, 오유빈)
Photography Kim Jiyoung
Hair & Makeup Yun Hyejeong
Assistant 잉걸(Ingur, 양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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