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가스파가 보내준 파리 10구의 카페 주소.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영화로 악명 높은 그가, 햇살 속에서 왠지 달라 보였다. 카페에 들어서자, 주인이 “안녕, 가스파,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넸다. 가스파는 피곤한 눈빛이지만 미소를 떤 채, “패션위크 파티가 길어서 잠을 까먹었네”라며 농담했다.

어제 생 로랑 쇼는 어땠나요.
긴장했는데, 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로제도 보았고요.(웃음) 패션위크 보러 파리에 왔죠?

맞아요. 파리행 비행기에서 <소용돌이Vortex>(2021)를 봤어요. 단일 카메라로 시작하다가 점차 검은 선이 나타나면서 화면이 둘로 나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순간이 주인공의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는데, 그 주제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장면 이후로 분할 화면은 두 사람의 점점 더 깊어지는 거리감을 묵묵히 드러내죠.
<소용돌이> 직전, <룩스 에테르나Lux Æterna>(2019)라는 52분짜리 영화를 만들었고, 이라는 생 로랑 패션 필름에서도 분할 화면을 사용했어요. <소용돌이>에서는 ‘왜 전체 영화를 가차 없이 개념적으로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면 안 될까?’라고 생각했죠. 스토리가 일종의 이중적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거든요.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여성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소통할 수 없는 관계를 그려요.

모든 영화가 하나의 연속적인 내러티브라고 생각하나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겼어요.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다음 영화의 첫 장면과 연결하는 게임을 하곤 했죠. 저에게도 제가 만든 이전 영화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긴 해요. 예를 들자면, 영화 <돌이킬 수 없는Irréversible>(2002)의 극 초반에 영화 <아이 스탠드 얼로운I Stand Alone>(1998)에 나온 캐릭터가 등장해요. 그 영화는 깜빡이는 불빛으로 끝나는데, 불빛이 <엔터 더 보이드Enter the Void>(2009)의 시작을 장식하죠. 그렇지만 제 영화들은 직접적으로 연속성을 띠진 않아요. 가끔 하나의 집착이 비슷한 집착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죠. 제 다음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 저도 전혀 모를 때가 많아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인생을 바꿨다면서요.
큰 스크린으로 본 첫 번째 영화는 아니었지만 저에겐 첫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예요. 마지막 장면에 깜빡이는 조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제 첫 번째 사이키델릭 경험이었어요. 평면 스크린이었는데도 저를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뜨렸어요. 그 영화가 감독이 되도록 이끈 계기였죠. 저를 또 다른 차원으로 데려갔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영화가 현실 세계의 반영이라 생각하나요, 아니면 판타지라 생각하나요.
둘 다 조금씩이요. 영화를 만드는 의식 자체가 본질적으로 인위적이며, 현실 세계와 거리가 멀죠. 삶은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만, 영화는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건너뛰어요. 시선이 캐릭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추상적으로 바라보죠. 스토리를 영화로 각색할 때는 사용하는 언어의 어느 도구를 쓸지 결정하는데, 저는 각 영화에서 다른 도구를 사용해 봤어요. 어떤 영화에서는 스플릿 스크린을 사용했고, 다른 영화에서는 3D로 작업했으며, 시간의 연속성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롱테이크를 사용한 적도 있어요. 영화는 샤머니즘적 여행과 같아서 반드시 현실 세계와 연결되지는 않죠. 하지만 저는 다큐멘터리도 좋아하고 스토리 속에서 현실감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배우들에게 현실감 있게 연기하도록 요청하죠. 종종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하기도 하는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해 달라고 주문해요. 연극적인 연기나 대사를 외운 티가 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현실처럼 느껴져야 하니까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있나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이 죽음을 신의 뜻이라고 믿고, 신만이 자신들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들은 약을 믿지 않았죠. 다큐멘터리를 더 찍고 싶어요. 아버지는 늘 자기 다큐멘터리는 언제 찍을 거냐고 물어보죠.(웃음)

아버지인 화가 루이스 펠리페 노에Luis Felipe Noé의 그림은 모두 정말 강렬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보면, 형광색을 써서 색감이 정말 풍부해요. 정말 대단하죠. 지금 91세인데, 뇌는 완벽하게 돌아가죠. 작년에 책을 두 권이나 썼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아버지라기보다는 좋은 친구나 형제 같은 존재예요.

가족과 아르헨티나에서 파리로 처음 이주했을 때 어땠나요.
1976년 말 아르헨티나는 독재정권 아래 있었어요. 부모님이 좌파 성향이 굉장히 강해 고문 수용소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도망쳐야 했어요. 아버지가 먼저 떠났고, 몇 달 후에 어머니와 제가 파리에서 합류했어요. 그때 정말 신났죠. 아버지가 아파트를 마련해 두기도 했지만, 그보다 만화책과 영화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죠. 파리는 만화책을 사고 영화를 보기에, 이 세상에서 최고의 장소였어요. 점점 더 영화에 빠져들었고, 매일 밤 TV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 가고, 만화책을 사면서 정말 즐거운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폭력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이었나요.
엄청 충격적인 첫 경험은 아버지가 아르헨티나를 탈출하기 직전이었어요. 그때 열두 살이었죠. 어느 날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어요. 갑자기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총과 기관총을 든 사복 경찰 15명 이상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어요. 무기도 없었던 아버지 머리에 총을 겨눈 장면은 절대 잊을 수 없어요. 그 이미지가 어린 시절 저에게 깊이 각인되었죠. 그날 이후로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경찰서에 가는 것을 피하게 됐어요.

동양철학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선설’ 대 ‘성악설’로 말하는데요, 어느 쪽이라 생각하나요.
인간의 본성은 동물적이고 파충류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선이나 악을 믿지 않아요. 두개골 안에는 세 가지 유형의 뇌가 있어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신피질이요. 인간이냐 동물이냐 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들 모두가 하나의 두개골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마치 서로 다른 컴퓨터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것 같아요.

 

Text & Art 세라(Sarah, 최연경)
Photography 노아(Noah, 노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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