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질문들에 직접 답해 본다면.
지금은 베를린에서 <지느러미>라는 영화를 편집하고 있다. 원래는 3주 정도 머무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8주 정도 있을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불현듯 어디서 나는 냄새를 따라가듯 순식간에 이끌려, 뜻하지 않은 신선한 충격을 먹었다. <다섯 번째 흉추>를 보고 난 감상이다. 그러다 <다섯 번째 흉추>가 제작비 100만원 정도의, 하루 만에 찍을 수 있는 영화로 처음 기획됐다는 배경을 알았다. 100만원을 손에 쥔 감독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100만원을 손에 쥔 감독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몇 회차에 찍을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어떤 밥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다. 요리 실력이 정말 좋다면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를 하면서 돈을 아낄 수 있을 테고(누구나 현장에선 참치마요 컵덮밥 도시락보다는 홈메이드 요리를 더 좋아할 테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요리 실력이 형편없다면 창의적인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지. 형편이 좋지 않은 제작 환경에서는 무엇을 먹는지, 커피나 음료를 하루에 몇 번 줄 수 있는지에 따라 ‘파이팅’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제 삼각김밥도 2000원이나 하는 세상이니. 인플레이션이 모두에게 참 가혹하다.

특히 ‘하루 만에 찍을 수 있는 영화’라는 대목에서 어떤 강박과 절박함, 패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비단 신인 감독만의 고민은 아닐 테고, 굳이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당장은 그런 환경에서 찍어야 할 수밖에 없으니 붙는 수식어다. ‘저예산’이라는 환경은 내가 원해서 얻은 게 절대 아니다.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현장에서는 누구나 예산 규모가 어떻든 생각지 못한 문제와 맞닥뜨리겠지만, 저예산 환경에서는 어떤 문제든 돈으로 그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게 다른 환경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선택해서 놓인 환경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환경이다 보니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임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여유가 더 없어지고, 나 스스로가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얼른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밥과 커피는 맛있는 걸로 함께 나누고 싶다.

그나저나 밥은 잘 먹고 다녔나. 지난 촬영 중 가장 맛있었던 식사 메뉴가 무엇이었나.
내 현장은 아니지만, 몇 년 전에 많이 힘들었던 외주 작업 촬영을 밤새워 한 다음 장비를 같이 반납한 친구들과 함께 호텔 조식 뷔페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얼른 자고 싶은 욕망을 뒤덮을 정도로 맛있는 양송이 크림수프를 먹은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감독 박세영의 요즘 생활은 어떤가.
지금은 다행히 뭘 찍고 있지는 않고, 후반 작업 중이다. 후반 작업은 나만 고생하 면 되는 거라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 좋다. 촬영 현장 이외 내 생활은 누가 어떤 일을 주는지, 그리고 내 작업과 관련된 일의 타협과 조율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제일 즐거운 시간은 일주일 동안 아무 일정도 잡혀 있지 않아 집에서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다시 정주행한다거나, 책과 만화를 읽는다거나, 음악을 하루 종일 들어도 되는 그런 날들이다. 1년에 한두 번 그런 행운의 일주일이 주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블라드미르 소로킨Vladimir Sorokin의 <Blue Lard> 다

한국에서 ‘독립영화’ 만들기는 어떤 일이라고 여겨지는가.
잘 모르겠다. 지원을 받고 제작한 영화는 단편 <기지국> 하나뿐인데, 그 당시에도 나는 인건비로 단돈 1원도 챙기지 못했다. 치열한 것 같다. 지원과 관련한 사실은 잘 모르겠다. 거의 매번, 모든 지원사업에서 떨어졌기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많이 알지 않을까. 나도 지원이란 걸 받아보고 싶다.

실례가 아니라면 묻고 싶다. 제작한 영화에서 수익이 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통한 상금도, 개봉 수익도 모두 작년에 처음 받아봤다. 금액적인 밸런스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 영화에서만큼은 더욱. 남의 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돈을 갚아야 하는 투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환수(혹은 회수)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이 아니기에 내 영화의 제작비는 그대로 나간 것,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누가 그러더라. 영화는 돈의 예술이라고. 당신 영화 속 미술이나 로케이션을 보았을 때 주어진 ‘예산’에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미술은 미술감독님의 센스로 ‘화들짝’ 만회한다. 미술감독님들, 감사합니다. 인 님, 태리 님, 승우 님, 윤서 님 감사합니다. 로케이션은 되도록이면 퍼플릭 스페이스에서 찍으려고 한다. 돈 내고 빌려야 하는 곳이라면 꼭 필요한지 고민한다. 근데 거의 항상 폐가·폐허·폐공장을 빌리는데, 생각보다 아주 비싸다고 느낀다. 왜일까? 폐가를 돈 내고 빌리다니, 자본은 가혹한 것 같다. 곧 대한민국의 모든 공간에 렌털비가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아쉽다.

지난 현장과 가장 최근 선보인 <기지국>을 비교했을 때 규모가 점점 커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규모가 커지기보다는 예산은 비슷하고, 포부와 욕심이 커지는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데···

현재 작업 중인 <지느러미>의 총제작비는 어느 정도인가.
비밀이다. 왜냐하면 후반 작업이 늘어나면서 예산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흉추>와 비슷한 제작비로 시작했으나 거의 2년간 작업을 지속해 나가다 보니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규모와 좋은 작품은 비례한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딱히 상관없는 문제인가. ‘작업 규모’에 관한 감독 박세영의 여러 생각이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규모라···. 왕빙은 혼자서 찍고, 페드로 코스타도 현재 스태프가 본인과 사운드 오퍼레이터 말고는 없는 것으로 안다. 알베르트 세라는 <퍼시픽션>을 블랙매직 세 대로 찍었다고 들었다. 각 영화에 맞게 작업 규모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규모에 따라 영화도 영향을 받아 제작되는 경우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규모가 작았다가 커지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레딧에 자주 눈에 띄는 이름들이 있는 걸로 봐서는, 몇몇 스태프와 손발 맞춰 오래 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한마음 모아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가.
최근 작품을 같이 도와준 친구들은 오랫동안 외주 작업도 함께 하고, 서로의 작업도 돕는 친구들이다. ‘한마음’이 모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고맙고, 도와달라고 할 때 ‘혹시 이번에는 거절할까’ 싶어 사실 조마조마하다. 매번 이렇게 도와줘 고마울 따름이다.

작업 환경에서 가장 개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음 같지 않은 처우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을 개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밥, 커피, 음료, 대기 공간, 이동 편 등. 돈이 없으면 먼저 포기하거나 희생되는 게 이런 것이다. 그게 참 싫다. 돈이 없을수록 ‘몸으로 때워야’ 하는 그런 공식 같은 걸 최대한 멀리하고 싶은데, 돈이 없을수록 이런 제작 환경으로 변모하는 건 한순간이다. 오직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제작 차원에선 저예산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영화 연출, 촬영, 편집, 보정까지 감독 박세영은 그모든 것을 겸한다.
촬영, 편집, 보정 등을 해온 것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다. 남의 돈을 책임져야 하는 외주 제작 환경에서는 이런 역할을 배분하지만 내 돈으로 찍는 영화는 최대한 내가 다 하려고 한다. 욕심일 수 있겠지만 배우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한 작품에 쏟는 돈이 못 돼도 대학 학비 정도는 된다. 그래서 처음엔 학교 다닌다는 생각으로 편집, 보정, 믹싱 등을 시도해 본 거다. <다섯 번째 흉추> 까지는 계속 그래온 것 같다. 지금 후반 작업 중인 <지느러미>는 과정이 또 완전히 다르긴 하다. 1년간 혼자 편집한 다음에 한국에 있는 편집자 친구와 함께 하고, 그다음 유럽에 있는 편집자와 같이 하다 또 혼자 작업하다, 지금 또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 마무리는 혼자 하고 싶지만. 

만약 <다섯 번째 흉추>가 100만원짜리 영화라면, 최근 개봉한 <듄: 파트2>의 예산 1억9000만 달러(약 2531억원)가 당신에게 주어졌을 때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제작비의 차이로 소재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다섯 번째 흉추>를 조금 더 사치스럽게 찍지 않을까. 예를 들어 버섯 농장을 만들어 수억 개의 버섯을 직접 키운 다음에 하나의 산을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키운 버섯과 곰팡이로
뒤덮고, 그걸 아주 멀리서 엄청나게 길고 무거운 줌렌즈로 줌아웃해 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전 준비를 같이 돕는, 프로덕션에 임하는, 포스트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더 맛있는 식사를, 핸드드립 커피 등을 수시로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거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무슨 영화를 만들든 이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감독 박세영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만만치 않은 길을 택했다.
미안하지만 만만치 않은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엔 얼굴과 이야기를, 이미지와 사운드를 조작하고 조립하는 일인데 그게 즐거우니까. 그리고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있다. 무어든 나 좋으라고 하는 것이고, 내가 즐겁기 때문
에, 그리고 아직 시작도 못한 느낌이라 열심히 하겠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 가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영화를 만드는 박세영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평상시에는 돈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돈 생각은 굶기 시작할 때 한다. 그때쯤 되면 어차피 스트레스받으면서 하기 싫은 일, 하고 싶은 일 가리지 않고 돈을 필사적으로 벌게 돼 있으니. 영화 만들 때도 똑같다. 꼭 해야 할 때는 치열하게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조율하고 계산하고 아끼고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안 하고 싶다. 내 눈앞에 컴퓨터가 있고, 외장하드 여섯 개가 꽂혀 있고, 편집 프로그램이 켜져 있으니 일단 오늘은 열심히 완성을 향해 달리겠다.

Text Kwon Sohee
Art Joung Mi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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