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는 시간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하지만 꼭 이 순서일 필요는 없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와 미할 엔그레르트의 <우먼 오브>를 보고 지친 몸으로 극장을 나섰다. “삶이 괴로울 정도로 길더라.” 중극장을 나오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끝낼 수 있다면 진작 끝냈을 이야기였지만 도무지 그럴 줄 모르고 영화는 매일 삶이 반복되는 것처럼 길고 촘촘하게 이어졌다. 같은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 찾기’ 문제에 관해 자비에 돌란의 <로렌스 애니웨이>가 되레 쉽고 성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 영화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좋은 영화에 가까울지 생각하다 어째 부산에서 만난 이 영화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졌다. 카메라는 주인공 안제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두커니 둔다. 거기엔 환희도 감동도 기승전결도 없다. 그런 거리감에서 오는 삶의 적나라함을 목격했을 때, 다음 영화를 향해 뗀 발걸음이 알 수 없게 무거웠다. 한낮 정오의 영화제 한복판에서 괜히 심오해졌던 일.

영화제는 이미 개봉이 확정된 작품도 몇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이 다수다. 말인즉슨 여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요원한 영화가 있다는 얘기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앙겔라 샤넬렉의 <뮤직>은 시작한 지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에야 처음으로 음악이 등장한다. 나는 음악이 어서 들리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게 영화의 단서일 줄 알았고, 그렇게 영화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내 이 개인적인 기억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다. 남은 러닝타임 60분 정도를 몽땅 보내고서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단단히 오해했구나 깨달았다. 괜한 시도였다. 이건 다 영화제 때문이었다.

본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지금 무료로 가입하고
끊김 없이 읽어보세요!
가입하고 계속 읽기
송지오, 첫 앰배서더, 에이티즈 성화가 나타난 순간, 설명은 끝났다.FASHIONNEWS

송지오, 첫 앰배서더, 에이티즈 성화가 나타난 순간, 설명은 끝났다.

2025/07/28
<여덟 번째 감각>을 연출한 두 젊은 남자. 그들이 창조한 작품 안에는 한계 없는 감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FEATURENEWS

<여덟 번째 감각>을 연출한 두 젊은 남자. 그들이 창조한 작품 안에는 한계 없는 감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3/04/22
타인을 이미지로 쉽게 판단해 버리는 시대에 존칭을 브랜드의 이름으로 삼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FASHIONNEWS

타인을 이미지로 쉽게 판단해 버리는 시대에 존칭을 브랜드의 이름으로 삼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

202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