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각종 플랫폼과 상업적 제도 안에서 영화라는 불문율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독일의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여전히 시간의 제약을 뚫고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영화를 만든다. 21세기 영화의 호흡이 어떻든 그는 삶과 죽음을, 개인과 세계를, 예술의 숙명과 반역성을 우리 앞에 보인다. 이는 허상이나 허세, 이상은 결코 아니다. 그게 꼭 자신의 영화 <운디네> 속 몇 번이고 반복한 심폐 소생술과 같은, 간절한 행위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해보며.

여느 서울 사람 못지 않게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가, 서울.
굉장히 집약적으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도시더라.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나가면 언덕과 숲, 강이 있는 걸로 안다. 아마 천국과도 같은 풍경이겠지. 이 점이 서울이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과 다른 점 같다.

정확히 파악했다. 지난 4월에 당신 영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서울에서 당신을 만날 줄이야.
(칼럼을 보며) 너무 멋있네. 감사하다. 나의 딸이 한국 팬이다. 딸이 <데이즈드> UK는 몰라도 코리아를 종종 챙겨보더라. 이 인터뷰가 실리는 책을 꼭 딸에게 선물하고 싶다.

좋다. 곧 신작 <어파이어>가 개봉하지만 그에 앞서 물어보고 싶었던 건, 당신 영화의 비극성에 관해서다. 역사, 공간성, 물.. 크리스티안 페촐트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더러 등장하는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나는 비극 자체를 매력적으로 여긴다. 비극에서는 신이 운명을 결정하지 않나.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영화는 비극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반대로 신이 부재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나갈 수 있을지를 그리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잘 사는 것이 인간의 임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 영화는 비극보단 희극에 가까울 수 있다.

당신의 희극은 비극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바바라>, <옐라> 등 몇몇 영화가 떠오른다.
그렇다. <옐라> 의 경우 이미 죽은 여주인공이 자신이 바라던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죽음이 아닌 삶을 찬미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살아가는 현재를 말하면서, 죽음을 볼 수 밖에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의 이미지, 혹은 죽음의 그림자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일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13살 때부터 실업자가 되어 상당한 시간을 실업자로 살았다. 독일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령 취급을 받는데, 당시 어린 나는 아버지가 잠시 유령이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영화 속 유령의 이미지들은 다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유령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과 정체성은 큰 관련이 있으니까.

신작 <어파이어> 속 레온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늘 “일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달고 다니지 않나. 그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애써 드러내는 듯 하다. 그게 무척 어리석어 보이지만.
상당히 오랜만에 나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영화다.(웃음) 맞다. 토마스 슈베르트가 맡은 ‘레온’이 나와 닮았다. 레온이 가진 남성성 때문에 그가 더 우스워보일 텐데, 그런 유머가 섞인 장면을 통해 나는 그 남성성으로부터 도망을 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레온을 깨뜨리는 건 나디아다.
나디아의 그 짧은 대사에는 사실 많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이걸 글이라고 할 수 있어? 이걸 왜 나한테 읽으라고 준 거야? 너는 지금 너 자신을 속이고 있어. 그리고 너 스스로를 속이는 데에 나를 이용하고 있어.” 예의있는 비평과는 거리가 멀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끝’인 말이다. 이 대사는 파올라 베어가 현장에서 직접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  

당신의 영화에서 미련한 남자 캐릭터들을 깨우치는 건 늘 여자인 주인공과 캐릭터다.
가장 초기에 썼던 각본은 남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계속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 남성 캐릭터에 내가 너무 많이 반영이 되어,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꿔보았는데, 굉장히 흥미롭더라. 내 영화 속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여성을 정복하진 못한다. 여성은 늘 주체가 되고 남성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는, 흥미로운 관계가 생긴다. <어파이어> 역시 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자화상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계기가 감독과 캐릭터의 사이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맞다. 이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나는 카메라 그리고 서술자가 늘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금증은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하고, 알고 있던 것이 새로워 보여야 생기는 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어떤 한 사람이 한 여성을 바라보고, 욕망하고, 꿈꾸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다.

예리한 시선이다. 그런데 사건이 중요한 영화가 있는 반면 감정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가 있다. 당신의 영화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를 통해 감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 영화 중 <버닝>을 좋아하는데, <버닝>을 예로 들어보겠다. 영화 속 젊은 남자가 차를 계속 타고 다니며 한 여성을 찾는 건 스토리다. 하지만 이 스토리를 통해서 그리움, 욕망, 소망, 사랑과 같은 감정이 새로 생겨난다. 즉 스토리가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남자 주인공이 그저 차에 앉아 “나는 그 여자를 욕망한다. 나는 여자를 그리워한다”라고 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웃음)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으로 <운디네> 속 파올라 베어와 프란츠 로고스키가 팔과 어깨를 서로에게 기대 오랫동안 걸어가는 장면을 가장 아낀다. 생각해보면 불편할 수도, 웃길 수도 있는 동작인데 당신의 말대로 사랑이 보일 수 있다는게 무척 신기했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운디네>의 두 주연 배우 파올라 베어와 프란츠 로고스키는 나의 영화 <트랜짓>에서 앞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두 배우는 배우 이전에 댄서였다는 점, 배우에 관한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며 가까워졌다. 이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들이 굉장히 오랫동안 함께 춤을 춰왔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연스럽게 잘 걷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이 둘은 함께 걷는 것마저도 잘하더라. 그래서 서로에게 기대어 걷는 그 모습을 통해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카메라 감독에게 이 장면은 무조건 오랫동안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웃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에서 한국의 시인 최승자의 시가 떠올랐다.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라는 구절. 이처럼 나는 당신의 영화를 시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익히 알려졌듯, 당신은 문학도이기도 하다. 당신의 영화는 문학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내게 있어서 문학은 단순히 모티브만은 아니다. 내가 여덟 살 때 우리 동네에 마지막으로 있던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 그 이후 나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 도서관에는 공원이 보이는 큰 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항상 그 창문 앞에 앉아 몽상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창문은 내게 또 다른 스크린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가 문학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바로 이 기억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내가 영화의 감정과 감수성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내가 문학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영화를 볼 때면 한 시대의 개인이 그가 머무는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과 얼마나 얽혀 있는지 확인을 한다. 오늘날 감독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세계의 사건 하나가 있다면.
이번 <어파이어> 작업 초기 당시에는 굉장히 가벼운 여름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앞에 남은 여름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았다. <어파이어>를 보면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한 테이블에 모여 뭘 먹고, 마시고, 서로 관계를 가지고, 춤을 추며 논다. 나는 지난 코로나 19 펜데믹 당시 록다운을 겪으며 이런 인간다운 행위들이 그리웠다. 특히 그 시기에는 우리의 사회적인 삶이 죽었음을 알고, 우리 모두 이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쩌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사랑, 섹슈얼리티, 에로티시즘 그리고 춤 그리고 장난이 가득한 여름을 우리가 앞으로는 가지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이번 영화 작업을 하며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세계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많은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람들로 영화관으로 모이게 하고, 영화를 통해 삶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영화를 통해 삶의 복합성과 재미를 알게 된다면, 모두가 세계를 그만 파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제 어떤 몰락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 나의 영화에서라도 미래가 계속된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Text Kwon Sohee
Photography Lee Yunkyun
Art Lee Sanghyeon
Film Son Mingyeong, Kim Jiseop

더 많은 화보와 기사는 <데이즈드> 10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Check out more of our editorials and articles in KOREA October prin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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