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은 | 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
2012년부터 지금까지 꼭 10년째 혜화와 합정, 성수 등지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에는 농부들이 직접 나와 각자가 직접 기른 작물을 판매한다. 다양한 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작은 규모의 가족 농가, 귀촌 농부, 청년 농부, 도시 농부가 대부분이다. 좋은 차와 좋은 집을 갈망하는 삶보다 내가 먹고 기르고 나눠주는 질 좋은 먹거리가 당장 다음 끼니 식탁에 오르는 삶, 주어진 영토 안에서 나 이외 다른 생물과 교감하기를 희망하는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 안에서는 농부시장 마르쉐야말로 궁극의 백화점이 아닐까. 이보은 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를 만나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부시장 마르쉐
농부시장 마르쉐는 10년 전 농부, 요리사, 공예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마켓이에요. 우리 다음 세대의 삶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친환경적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요. 그 후로 마르쉐는 젊은 귀촌인들이 조금씩 참여하는 폭을 넓혀가는 시장으로 알려졌죠. 젊은 세대의 농촌 정착은 녹록지 않아요. 정부에서 일정기간 지원하고 있지만, 그 기간 내에 자립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농업인구는 여전히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어요. 전 국민의 4%가 농민인데, 그 중 청년의 비율은 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해요. 정부에서 정책을 세우고 지원금도 주면서 청년들의 농촌행을 장려하고 있지만, 절대적 수치가 작아요.

삶과 업
정부의 정책은 농부의 ‘삶’보다는 농부의 ‘업’을 지원하는 쪽이라고 봐야 해요.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지만 그 자금은 결국 농부들을 거쳐 컨설팅업체, 건설업자, 농자재를 제작하는 기업, 화학 기업들에게 돌아갑니다.

Fast Fruit
샤인머스캣이 대유행이에요. 이렇게 반짝 상승기류를 탄 농작물은 백화점, 마트, 시장 할 것 없이 인기가 좋으니 마치 트렌드처럼, 기르기 쉽고 돈이 되는 농산물로 홍보하고 생산 농가에 정책적으로도 지원해요. 젊은 농부들은 샤인머스캣 재배 농장을 운영할 자격을 갖추고 지원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죠. 하지만 젊은 농가가 우후죽순 생겨나면 출하량이 늘어나고, 시장 가격이 내려가고, 이내 인기가 시들해지죠. 딸기, 체리, 아로니아, 블루베리…. 모두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어요. 저절로 되는 것 출발하는 농부들이 시설이나 장비, 건물을 성급하게 장만하게 하기보다 삶의 터전으로 땅을 일구어갈 수 있도록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원하는 정책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이름 없이도 그 농장은 저절로 치유 공간이 될 거예요. 그럼에도 틀리지 않은 마르쉐가 청년 농부들과 접점을 만들어가는 방향은 정부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마르쉐에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 때면, 다른 무엇보다 농부가 겪은 삶의 경험에 입각해 기획하려 해요. 농부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고도화된 가공 단계와 자동화, 공장 시스템에 기대는 게 아니라 농부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 밥상에 올려보고, 친구들과 나눠 먹어보고, 마르쉐에서 사람들에게 판매도 해보고, 손님들에게 맛보여주기도 하고요. 마르쉐는 이런 일련의 과정, 그러니까 농부라는 삶의 여정에 함께하려 하죠. 정부와 기업이 효율과 경제성을 앞세워 추진하는 방식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저희는 이처럼 찬찬히 삶의 차원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딸기 비즈니스, 버섯 비즈니스가 아니라 딸기와 버섯을 기르는 사람들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지 그게 중요합니다. 10년을 부침 속에 있다 보니 딱 하나,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MZ, 새로운 소비자
언젠가 영국 버러 마켓Borough Market의 전무님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새로운 소비자들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저도 공감했는데요, 이전 세대에게는 삶에 주어진 플랜이 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차를 사고, 결혼을하고, 집을 사고…. 하지만 오늘 젊은 세대는 그런 목표를 세우기가 어려워요. 부동산과 물가는 치솟고, 정규직보다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투잡과 스리잡이 일찍이 보편화된 도시가 런던이거든요. MZ세대에겐 비싼 차와 좋은 집,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이 크지 않아요. 그보다 양질의 먹거리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데 훨씬 관심이 많죠. 누군가는 먹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온갖 먹거리가 야기하는 문제와 부정적 방향을 염려하며 그것을 해결하려는 워리어의 역할을 하고 싶은 젊은이도 있지요. 먹거리와 그 시장에 새로운 세대가 출현했다는 의견에 크게 공감하는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마켓 가드닝과 무해한 삶
2012년부터 10년 동안 농부시장 마르쉐를 이어오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는 한국의 ‘마켓 가드너’들이 마르쉐와 함께 살아남은 거예요. 마켓 가드닝은 쉽게 말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품목, 품종의 채소들을 크지 않은 공간에서 집약적으로 길러가는 방식입니다. 다년생 작물과 일년생 작물을 섞어 짓고, 다양한 품종을 한데 모아 짓죠. 그러면서 세균과 곰팡이를 제거하는 화학 처리를 하지 않아도 특정 균이나 병해충이 퍼지지 않죠. 섞어 짓기의 기본 원리가 바로 그런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는 거예요. 마켓 가드너가 되기 위해, 또는 자신의 먹거리를 자급하기 위해 농사짓는 젊은 농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요즘 MZ세대는 무해한 삶을 꿈꿔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그야말로 해롭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길 원해요. 젊은 농부들의 바람도 같은 맥락이에요.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땅을 헤집고, 농약을 살포해 미생물의 터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농사짓고 싶지 않은 거예요. 생태와 최대한 균형을 이뤄 자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는 거지요.

우리가 농사를 짓는 이유

누군가는 이렇게 반발해요. 마르쉐 농부들처럼 농사를 지으면 대한민국 국민은 어떻게 먹고 사냐고. 농부라면 응당 나라와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젊은 농부는 단호하게 응수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닙니다. 나와 인연이 닿은 씨앗을 땅에 뿌려 다음 세대에 이어주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영토 안에서 생물들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농사를 짓습니다.” 젊은 농부들은 자신이 보살피는 이 땅이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농사 지은 경험을 콘텐츠화해서 SNS에 공유하려 하죠. 그걸 본 누군가가 ‘나도 해볼까?’라고 생각해 또 다른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낳아요. 마르쉐는 그런 다양성을 포용하는 플랫폼이자 다양한 농부가 모여드는 공간입니다.

그린몬스터즈
충남 보령에는 청년들이 모여 지난 2021년 봄 출범한 스마트팜 ‘그린몬스터즈’가 있다. 백다다기오이와 생소한 미니오이를 재배해 품질은 물론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시각언어와 마케팅으로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역대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사업을 통해 배출된 농부 450명 중 지속 가능한 비전과 끈기로 살아남은 단 4명의 농부 중 1명인 서원상 대표는 지난 2021년 5월 10억원 규모의 ICT 스마트팜 설비 구축을 마치고 현재 동료 3명, 교육생 1명과 함께 세상에 없던 꿈을 꾸고 있다. 쉬는 날 없이 새벽 6시면 하루를 열고, 저녁 8시가 되어야 퇴근하는 농장에서 삶을 체화하는 네 청년. 그들의 얼굴에 그늘은커녕 맑고 선뜻한 광이 비치는 건 순전히 그들이 믿고 실행하는 비전 때문이다. 그린몬스터즈 서원상 대표(38), 양요한 생산 총괄(34), 전요한 운영 총괄(32), 윤소현 마케터&디자이너(26) 그리고 스마트팜 창업을 꿈꾸는 교육생 백남은(25)을 보령에서 만났다.

여정의 시작
서원상 LG전자 가전 부서에서 선행 연구를 하며 3년쯤 회사 생활을 했어요. 그 안에서 20년은 편하게 지나가겠지만 그 뒤는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지 1년 정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스마트팜을 접하고 들여다보니 제 역량, 제 가치와 어느 정도 부합하더라고요. 이쪽으로 진입하면 강점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스마트팜은 농업에 ICT를 적용해 작물이 클 수 있는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농장을 말해요. 정부에서 스마트팜 인력 육성을 발표한 시기와도 맞물려 1% 저리로 5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으로 시설 자본금 10억원을 대출받았어요. 운이 좋았죠. 여러 혜택을 받으며 시작했거든요. 무엇보다 가장 큰 건 지금 동료들을 만난 거예요. 처음에는 혼자 할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저 혼자했으면 그럭저럭 수입은 올렸겠지만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했을 것 같아요. 지금
그린몬스터즈는 농사만 짓는 곳이 아니니까요.

사랑스러운 괴물들
서원상 1년 반 동안 정부에서 지원하는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사업에서 전요한·양요한 이사를 처음 만났어요. 홍익대를 졸업한 윤소현 디자이너를 직접 스카우트했고요. 윤소현 청년창업 간담회에서 전요한 이사님과 인연이 닿았어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농업에도 관심이 많았죠. 지금 아니면 농업과 디자인을 접목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 합류하게 됐어요. 전요한 농업을 전공하고 해외에서 1년간 농업 연구원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귀국 후 운명처럼 스마트팜 창업 지원 소식을 접했고, 관련 교육에 참가하면서 형들을 만났어요. 양요한 토목·설계 분야에 몸담고 있었어요. 농장을 함께 운영하다 보니 그동안 접했던 시설, 설비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 강점을 살려 스마트팜 운영에 참여하고 있어요. 백남은 그린몬스터즈에 온 지 채 한 달이 안 된 교육생이에요. 세종시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다가 왔어요.(웃음) 비전 있는 개인 사업을 찾고 있었는데 자율주행, 빅데이터처럼 시대적 흐름을 읽으면서 농업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부 차원에서 청년 농부를 지원하는 정책도 많고요. 처음엔 마냥 멋져 보였는데 실제로 일해 보니 체력 소모도 크고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더 높게 느껴지는 진입 장벽이 오히려 더 좋아요. 윤소현 저희 중 농사를 짓던 사람이나 후계농은 한 명도 없어요. 각자 전공도, 살아온 배경도 다르죠.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강점이라고 봐요. 농사 말고 잘하는 게 각자 하나씩 있는 거잖아요. 저희가 생산하는 작물, 하는 일에 디자이너로서 시각적 요소를 입히는 일도 눈에 띌 테고, 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농업 신scene에서 괴물 같은 존재가 되자는 포부로 그린몬스터즈라고 지었는데, 그대로 증명하고 싶어요.

그린몬스터즈가 개척하는 오이의 우주
서원상 상추도 많이 재배하고, 저희 농장처럼 태양광을 병용하는 경우는 토마토·파프리카·딸기가 메인이에요. 이런 작물은 취급하는 농장이나 유통업체가 많죠. 잘하는 분도 많고요. 승계농이나 후계농처럼 전문가가 아닌 저희로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뛰어든 시장에서 강점을 키우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남들이 잘 안하고 전문가도 많지 않은 오이 재배를 선택한 이유예요. 오이 재배를 한 번 해본 사람들은 두 번은 안 하려고 해요. 힘들거든요. 절대적 노동량으로 보면 토마토에 비해 두 배는 돼요. 같은 시간 동안 자라는 속도가 정말 빨라요. 토마토는 일주일에 두 번, 파프리카는 2주에 한 번 수확한다면 오이는 하루에 두 번도 수확해요. 하루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죠. 저희 농장에서는 백다다기오이와 미니오이, 두 가지를 재배하고 있어요. 미니오이는 대중적이진 않지만 먹어본 분들은 이것만 찾아요. 길이는 10cm 정도 되고 모양이 되게 귀여워요. 등산이나 운동하러 가서 간편하게 먹기 좋고, 오이 특유의 쓴맛이 없고 오히려 단맛이 나요. 가격이 백다다기오이의 1.5배 정도인데도 지금은 물량이 부족해서 못 팔 만큼 인기가 많아요. 인스타그램에도 백다다기오이보다 미니오이를 올렸을 때 반응이 훨씬 좋아요. 해시태그로 인기 게시물에도 자주 등장하고요.(웃음) 윤소현 아직 채소보다는 과일 위주로 SNS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인스타그램을 자주 보지만 귤이나 딸기, 여러 제철 과일을 인스타그램에서 직접 주문해 먹는 분이 많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정보가 전혀 없는 과일과 채소를 마트에서 3만원 주고 살 바에야 내가 아는 농부, 유대감과 라포르가 형성된 생산자에게 3만5000원을 주고 직접 사서 먹는 게 낫거든요.

2030 농부로 살기
서원상 바쁠 땐 농장에서 자기도 해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천 집을 오가면서요. 올인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스마트팜이 워낙 홍보가 잘되어 있어서 시작만 하면 큰 부자가 될 거라는 인식을 하고 계시는데,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매우 높고 워라밸은 꿈도 못 꿔요. 일주일 내리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해서 저녁 8시까지는 일터에 있어요. 윤소현 개인 시간이 거의 없어요. 농장 일뿐 아니라 서류 작업이나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밤에 짬을 내야 해요. 어쨌든 저희 모두 승부를 보자는 각오로 시작했으니 이렇게 올인하는 데 불만은 없어요. 무엇보다 반응이 조금씩 보이니까요. 수익도 늘고 우리가 세운 비전을 지표 삼아 따라갈 수 있다는 데 보람이 가장 커요. 그게 없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농사짓기의 낭만과 현실
서원상 낭만보다는 사업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진입해야 해요. 정부는 단순히 농사짓고 수월하게 생산해서 판매하는 과정 위주로 홍보하고 있고, 시작만 하면 누구나 성공하는 것처럼 알려져 많은 청년이 진입하고 있지만 정착하는 사람은 손에 꼽아요.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사업을 통해 총 450명의 농부가 배출됐는데, 그린몬스터즈처럼 자리 잡은 농부는 단 4명이에요. 다만 여전히 농업은 블루 오션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워라밸은 잠시 접어두어야 해요.(웃음) 전요한 농촌에 정착하는 목표가 명확해야 할 것 같아요. 식물을 키우는 게 좋고 어느 정도 경제 수준에 만족한다면 여유를 즐기면서 살면 되고, 농사로 돈을 벌고 싶다면 정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파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요. 왜 농사를 지으려 하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해요. 서원상 지금은 아직 초창기라 저희끼리 오손도손 운영하는 수준이지만, 5년 뒤면 본격적으로 시스템과 조직을 갖추고 우리나라 농업의 한 축을 이루며 일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그것이 목표고요. 강행군이 이어지는 삶이 힘겹지만 3년 뒤, 5년 뒤까지 설정해 둔 목표와 비전이 있기 때문에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주저앉았다가도 잠깐 쉬고 다시 출발할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