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점점 밤이 짧아진다. 당신과 나, 아직 어린 마음의 낮보다 중요한 밤이 저물어간다. 너는 기필코 결핍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매정하게 꼭 그렇다. 봄을 찰나라고 치고, 그렇다면 봄밤은 찰나의 찰나다. 그 밤에는 늘 웃었던가, 아니야 울었겠지.

누구는 내게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떠냐 하고, 누구는 내게 영화를 찍어보 는 게 어떠냐고 그러더만, 내게 사랑을 해보겠냐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무거나 먹고 대주면서 헤프게 살지만,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의 윤리를 믿는다. 내게 닥칠 모든 불행을 감수하고 원래의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식의 순순한 윤리.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이 옳으므로 그 의지만을 고집하겠다는 윤리 말이다. 날은 더없이 화창하던데 세상은 희뿌연 연기로 꽉 차 보인다면 그것은 태양의 문제인가, 아니면 나의 침침한 눈이 문제인가.

오키나와 나하 공항 면세점이었나, 조니워커 블루인가 하는 귀하다는데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비싼 술 한 병을 샀다. 어떤 날엔 낮부터 혼자 그걸 홀짝거린다. 비싸서 그렇다니, 냄새는 참 좋드라. 마치 어디 야릇한 곳에서 우연히 만나 영문 없이 콧속으로 흘러 들어온 그의 체취처럼 흐릿한 복숭아 향기가 난다.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 나쁘게 찌르는 말을 굳이 제 입으로 하고선, 그게 미안해서, 그런 죄의식을 잊으려 몇 잔 마셨을 것이다.

오늘 서울에는 눈이 좀 내렸다. 여전히 굉음을 울리며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변변한 온기라곤 없다. 미친 놈처럼 싸늘하고 변덕스런 봄날은 뜯어말려도, 기어이 여기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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