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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117

By EDITOR'S LETTER

 

共生
2018년 1월호는 사전에 노출됐다.
나 스스로 사방팔방 노출시켰다.
내가 잡지를 처음 시작하던 2003년도 편집장이었다면,
아마 “미쳤냐? 돌았어?” 했을 것이다.
아니다, 나를 죽였겠다.

2000년대 프린트 매거진의 생명은 출간된 뒤 확인할 수 있는 독자의 피드백과 판매 부수였다.
서로 더 잘 팔렸다고 자랑했다. A가 강남 지역에서 더 팔린다고 하면, B는 대형 서점에서 더 팔린다 했고, C는 A와 B는 부록 장사라고 깎아내렸다.
D는 A와 B와 C의 자료는 조작되었다고 했다.
독자의 피드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에디터에게 백화점 매장에 전화를 돌리라고 했다. “저 A 잡지에 실린 제품 보고 전화했는데, 그 상품 살 수 있나요?”
B는 독자를 명예 에디터로 뽑고, 그들의 의견을 매주 1회씩 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C는 브랜드와 독자가 함께하는 특별 이벤트를 끊임없이 개최했다.
D는 B와 C의 독자가 겹친다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했다. 사전에 책 내용이 노출된다면 그 호는 팔리지 않는 것이었다.
누가 더 철통 보안을 하느냐, 그것이 자존심 싸움이었다.

당시 나는 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름 매너 있게.
              1. 촬영을 마친 연예인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편집장님이 다 사진을 직접 셀렉하셔서요. 책을 통해 확인하셔야 해요. 제가 꼭 이 사진이 좋았다는 말씀은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1. 잡지에 실린 모델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려는 매니저에게,
“발간하고 최소 2주일 뒤에 업로드하셔야 해요. 독자들이 책을 구입할 시간은 줘야 해서요.”
              1. 유가 화보(브랜드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만든 화보) 담당자에게,
“저도 정말 보여드리고 싶은데… 제가 편집장님 몰래 일부 내용만 발췌해서 드릴게요. 걸리면 저 진짜 혼나요. 이해하시죠?”
              1. 그 담당자가 A 매거진은 다 보여줬다며 더 보여달라고 할 때,
“알아요, 그런데 아시죠? 저희는 A 매거진보다 엄격해서요. 저 정말 잘려요. 죄송합니다.”

프린트 매거진을 비롯한 미디어의 환경은 2010년대 초반 홈페이지와 어플 제작에 열 올리던 프린트 매거진의 과도기를 지나
2015년을 전후로, 소셜 네트워크와 더불어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플랫폼 소용돌이 속에서 급격하게 변화했다. 누구나 다 아는,
입만 아픈 이 3년여의 태풍 같은 시기를 거치며 프린트 매거진이 살아남기 위해 찾은 답은 간단명료했다.

팔로워 수에 목매달기.
매거진의 팔로워 수를 늘릴 만한 기회가 되는 콘텐츠에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발간 전 비밀? 사치이고 객기이며 꼰대 같은 소리다.
얼마든지 상의하고 논의할 테니
또 촬영을 해준다면야.
또 콘텐츠를 제작해준다면야.
자신들의 소셜 네트워크에 업로드해준다면야.
그런데 이상했다. 툭 터놓고 오픈하며 공유하는 새로운 아젠다와 결합된 프린트 매거진의 ‘팔로워 수 늘리기’에 여러 부작용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누구나 쉽게 하는 말,
“누가 요새 프린트 매거진에 광고해요. 당연히 저희도 안 하죠.”
또 누구나 쉽게 듣는 말,
“XXX 매거진, 없어질지 모른다더라(프린트는 접고 디지털만 한다는 식의).”

존재감이 없는데 영향력을 논하는 난센스가 지속되고, 아침에는 X가, 점심에는 Y가, 저녁에는 Z가 좋다는 변별력 없이
피로한 업로드가 이어지며, 팔로워 수에 대한 온갖 의심과 검증이 난무하기까지.

2017년 말, 이제는 모두가 묻는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프린트 매거진의 디지털인가?
과연, 그것이 진정 프린트 매거진이 가야 할 길인가?
이것이 프린트 매거진을 살리는 길인가, 죽이는 길인가?

비밀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프린트 매거진에 진정한 디지털은 다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생할 수 있습니까?
희생할 수 있습니까?

프린트 매거진의 서비스 정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진짜 디지털.
2018년, 그것(만)을 찾겠다.

 

 

201712 #116

By EDITOR'S LETTER

“11월호가 너무 두꺼운 것 아닌가요?”
다른 매체에서 이직한 팀원이 물었습니다.

“뭐예요? 돈 잘 버는 ooo매거진도 이렇게 두껍지는 않아요.”
늘 저를 걱정해주는 브랜드 담당자도 말했고요.

스스로 자신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
“광고가 많아서요!”
그런데 그건 아니니까요. 대답을 잘못했어요.
그러면서 내심, 12월호는 좀 줄여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아뿔싸,
하다 보니 12월호는 296페이지(11월호보다도 40페이지 더 많은)가 되어버렸습니다.

비록 부록은 없지만, 올 한 해 <데이즈드> 코리아를 사랑해주신 여러분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콘텐츠에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11월, 12월호라고 책값이 싸지는 것도 아니고요.

더불어 전,
수완이 없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겁 없는 편집장과
철없는 발행인이
공존하는
자학적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즐길 줄은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책을 구입하신 모든 독자 여러분.

2018년,
더 잘할게요.
언제 사도 꽉 차고 두툼한 패션 매거진답게요.

 

201711 #115

By EDITOR'S LETTER

<데이즈드&컨퓨즈드> 한국판의 편집부는 인큐베이팅 중이다.

전 세계 패션 매거진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말하면 혼돈이다. 100년을 넘게 고고하게 쌓아온 미국발 메이저
패션 매거진의 틀이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새로운 패션 세대 앞에서 맥을 못 펴는 형국이다. 패션 브랜드도,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 헤리티지, 아카이브… 다 ‘흥’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을 여전히 우러러봐주며 부와 명예를 쌓은 30, 40대만 마냥 바라볼 수는 없다.
세상의 주류는 젊다 못해 어려져만 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문화계를 주름잡던 20대 중반은 이제
베테랑 축에 속한다. 현재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스토리 나 등은 10대 초반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전 <디즈니>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어린 자식을 달래기 위한,
결국 부모 세대를 위한 오락물이었다면 요즘의 판도는 전혀 다르다. 기성세대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은 디지털 네트워크로 10대들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정교하고 강하다. 무시해서도,
외면당해서도 안 된다. 인정받아야 한다.

국내 패션 매거진의 시장은 더 혼돈이다. 기술에 유난히 예민한 우리 민족은 종이를 볼 인내력보다는 디지털이
주는 편의성을 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 세계 패션 매거진 시장 역시 메이저 매거진의 붕괴와 더불어
도약하는 신규 매거진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한국 패션 매거진에는 글로벌한 패션 특종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아시아에 배정된 특종은 중국 매거진의 몫이다. 일본은 패션계에서는 탈아시아다.
세계 패션계가 한국 패션 매거진에 돈을 쓰는 경우는 하나다. 연예인.

<데이즈드&컨퓨즈드>의 정체성은 패션 매거진이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Fashion Together.’ 패션은 혼자
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에디터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패션 매거진이 처한 현실을 이해 및 극복하고 내일을
도약할 수 있는, 기존과는 확실히 다른 에디터여야 한다.

시대적 키워드인 다양성과 독립성의 반대말은 편협함과 의존성이 아닌 ‘늙음’이다. 늙은 매거진은 패션
매거진이 될 수 없다. 끊임없이 실험할 것이다.

<데이즈드&컨퓨즈드> 한국판의 편집부는 인큐베이팅 중이다.

2017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일 줄은 몰랐다.
바로 여기, 직장인 그득한 도심 한복판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컨버스 사무실에서
오혁을 대면할 줄이야.

첫 만남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음성을 오롯이 듣고 그의 생각을 감히 유추도 해보며 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던 그 기다렸던, 그 시간이 처음이었다.

결론적으로 일은 아니었다.
일이라고 하기에 오혁은 대화하기 충분히 좋은 상대였다.
한 번 더 말해, 대화를 하기 좋은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일이 아닌 행운이다.

더불어 오혁은 사진 찍기에 좋은 상대이기도 하다.
는 오혁을 72시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의 길거리에 컨버스 원스타만
신긴 채 던져놨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촬영 커트를 ‘발라’ 먹는 오혁이었기에
재래시장에서도, 웃통을 까도, 이름 모를 할아버지 옆에서도, 심지어 생애 처음 한국에
왔고 역시 생애 처음 오혁을 마주한 파란 눈의 사진가 앞에서도 그 재능을 증명해냈다.

길거리는 가공되지 않을 때 매력적이란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학습해왔다.
흔히 스트리트 컬처(Street Culture)라고 하는 것 또한 ‘날것’의 힘으로 생성되고
사라진다.

오혁은 감히 오혁 세대의 창조자라고 말해도 거추장스럽지 않을 만큼
2017년의 대한민국 거리 문화에 담담하고 또 담대하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와 교감했던 이 책에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지 못하는 사진과
대화를 곱씹어보니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자연스레 결정됐다.

그래 이게 청춘이지 뭐.
시행착오 따위 남은 시간에 충분히 던져버려도 좋을 이게 젊음이지 뭐.

원스타(One Star) 혹은 원스타(Own Star),
오혁은 길거리(Street)에 살아 있다.

201710 #114

By EDITOR'S LETTER

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과도 같다.
아침 출근길 세탁기 버튼을 눌러 시작된 빨래는 기계적이고도 전투적인
목욕을 마친 후 서로의 젖은 몸이 꿉꿉해지지 않도록 온 종일 발버둥을 쳤다.
목 빠지게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간절함이 있어서다.
한시라도 빨리 빨랫줄로 인도돼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길 바라는
소박한 꿈은 내 방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던 유년 시절과 닮았다.
이토록 치열했던 그들에게 향까지 나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멀쩡한 것만으로도, 괜찮다. 고맙다.
이 시간의 빨래 널기에는 관용이 필요하다.

관용이 필요 없는 부분은 글쓰기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새벽 2시의 빨래 널기가 끝난 후
설거지 가득 쌓인 싱크대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고독하다.

이유는 명료하다.
말이 많아져서다.

선생님은 부반장 겸 미화부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고,
아버지는 성실하게 효도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 많아지는데 글이 잘 써질 수는 없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편집장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아들이고 싶다.
나는 좋은 친구이고 싶다.
나는 좋은 외삼촌이고 싶다.
나는 좋은 디렉터이고 싶다.
나는 좋은 오빠이고 싶다.
나는 좋은 발행인이고 싶다.
나는 좋은 애인이고 싶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새벽 2시의 빨래 널기는 의식이다.

201709 #113

By EDITOR'S LETTER

 

폭우다.
낯설다.
빗소리가 그렇다.
새로운 사무실에서의 빗소리가 선명하다 못해 우렁차다.
창이 많아 그런가 보다,
싶다가도 예민하다.

소리뿐 아니다.
풍경도 다르다.
익숙한 사람 반, 생경한 사람 반이다.
2년여를 함께한 익숙한 사람일지언정 표정이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너무’ 그렇다.

이 낯섦, 스스로 선택한 낯섦.
그간 수백 번도 넘게 되뇐 말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는 무엇도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내 휴대폰에 방수 기능이 있는지, 물에 빠진 사람을 과연
어떻게 끌고 나올 것인지를 계산할 따위의 여유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다,
이것은.

의지는 확인했으니 덤벼야 했다.
숙제는 아니었다.
욕망을 수천 번 곱씹으니 운명까진 아니더라도 희망이다.

낯섦이 주는 두려움에 설렘을 뒤섞어 삼키며 읊는다.

아프다.
제정신이 아니다.
DAZED & CONFUSED다.

아름다운 마음과 언어(Beautiful Mind & Words)만이 길이다.

2017 SPECIAL EDITION

By EDITOR'S LETTER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거의 매일 달에 관한 글을 썼다.

달이 좋은 이유를 꼽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두서없이 적자면

그 빛이 해보다는 덜하되, 별을 비출 만큼은 우직하고
품은 사연이 별보다는 덜 다채롭지만,
어느 하늘에서나 보일 만큼 큰 존재감이 있으며
생김 생김이 구름보다는 덜 자유롭지만,
시의 적절하게 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융통성은 지닌,
그래, 달이 되고 싶었다.

요즘 친구들은 주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TV도 스마트 폰도, 하다못해 동네 식당에서도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 무렵 깨달았다.
비록 내가 달이 될 수는 없지만 는 달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의 사진을 112페이지에 걸쳐 담은 112호는
가 달이 될 수 있겠다는 의지를 작게나마 보이고자 하는 의지다.

한 명의 연습생이, 인고의 과정을 거쳐 세상의 별이 되기 직전까지의 모습을
세 명의 훌륭한 사진가가 담았다.

허나 이것은 추억이 아니다.
미래다.
흥분이다.
질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원의 1%도 담지 않았다.
그와 나눈 대화 중 단 11가지의 질문과 답만 있을 뿐이다.

달의 빛은 깊고 고요하지만, 그만큼 은밀하기 마련이다.

그래, 나는 달이 되고 싶다.

I wrote about the moon almost every day
through the 3 whole years of my middle school life.

There are hundred reasons why I like the moon but I ramble.

The light less bright than the sun but soft enough to reflect the stars,
the stories it has less colorful than the stars,
but its presence could be seen from any sky,
a shape less free than the clouds but flexible to change timely,
Yes, I wanted to be the moon.

Many fellows nowadays want to be famous.
The stories of famous people rule the world in televisions,
smart phones and even in the local restaurants.
That’s when I realized.
Even if I cannot be the moon, could be the moon.

Vol.112 featuring photos of ONE through
112 pages is a little will that hopes to show the will
that could be the moon.

Three amazing photographers took photos of a trainee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endurance until he becomes a world star.

However, this is not a memory.
This is a future.
This is a fever.
This is a question.

Nevertheless, I didn’t even feature 1% of what I felt from ONE.
There are only 11 questions and answers of the conversation
that I shared with him.

The moonlight is deep and calm but secretive as much.

Yes, I want to be the moon.

201708 #112

By EDITOR'S LETTER

몇 년 전 일입니다.
잘 안되던 수입 브랜드가 당시 가장 뜨거운 명성을 얻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함으로써
미디어를 비롯한 패션 관계자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이제 힘을 실을 때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매장을 한 군데 빼고 전부 닫는 것으로 하자.”

‘왜’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의 경력과 연륜 앞에서 그 질문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뉴스도 더 뿌리고 화보도 더 찍고,
매장 수도 유지 혹은 확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본격적으로
손을 댄 컬렉션들이 매장에 입고되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톱스타들의 협찬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거진 에디터들은 앞다퉈 메인 화보에 우리 브랜드를 실었습니다.
매출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폐점했던 매장 쪽 백화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입점하시죠. 훨씬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조건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백화점의 황금 자리에 우리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금의환향.
사장님의 ‘덜기’ 전략은 한마디로 적중했습니다.

패션 비즈니스에서 변화에 따른 전략은 때론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훌륭한 디렉터 한 명의 의견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심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팀을 이끌 수 있는
능력있는 디렉터여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오늘날 우리나라 패션계에 행여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바로 이러한 디렉터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감히 이야기드려봅니다.

<데이즈드>는 한 번 더 큰 변화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인사는 모든 변화를 마친 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좋은 디렉터가 되는 길, 그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201707 #111

By EDITOR'S LETTER

아이가 아버지의 손바닥을 샌드백 삼아 잽을 날린다.
“원, 투, 원, 투.”
아버지의 기함에 따라 고사리손이 하늘을 찌르듯 재빠르다. 기척도 좋다.

다음은 기마 자세다.
아버지의 무릎 위로 아이의 두 발이 각각 나뉘어 포개진다.
“원, 투, 원, 투.”
한결같은 아버지의 기함에 아이는 양팔을 벌린 채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한다.

실수를 할 때면 더 행복해진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그만이다.
아버지의 두 팔을 딛고 푸른 하늘을 나르는 관람은 보너스다.

오늘 한 생명과 헤어졌다.
내내 울었다.
보내고 오는 길,
구름이 어찌나 그림 같은지, 또 공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화딱지마저 났다.

그리고 창을 열어봤던 장면,
아이와 아버지는 서로의 정(情)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한한 유통기한이 주는 번뇌는 이놈의 정의 힘으로 미덕이 된다.

되레 나는 애써왔다.
정 따위,
실속 있게 살려면 쿨해져야지,
이 반대의 끝에 있는 것이 정이지, 없애야지 했다.

낯설었다.
정을 뗄 때 일어나는 감정에 이리 솔직해도 되는지 겁이 날 정도로
낯설었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진다.
약해지고 마구 구겨진다.

혼탁한 망상에 기대 울고 싶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욕 나오는 밤이다.

201706 #110

By EDITOR'S LETTER

고 노무현 대통령은 등산할 때마다 국내 등산복 브랜드를 번갈아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라푸마, 트렉스타, 영원 등등.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뉴스가 올라왔다.
등산하면서 쓴 선글라스가 수입 브랜드 오클리였다고,
국산 선글라스도 좋은 것 많은데 그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 정권에서 최순실은 비전문가를 써서 대충 가방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대통령에게
들게 했다. 언론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가방을 들었다고 마치 애국자인 양 대서특필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모두가 안다.

며칠 전 대선에서 떨어진 모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션(Fashion)’ 좌파라는 말을 썼다.
패션 좌파가 신조어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 말은 강남에서 사치스럽게 유흥을 즐기면서 좌파로서
청렴한 척하는 부류를 뜻한다. 철저히 ‘패션=사치’라는 기준에서 파생된 언어다.

우리는 대통령 혹은 공인의 사치 기준으로 패션을 삼는다. 그들은 싼 옷, 국내 브랜드의 옷,
낡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옷, 수입 브랜드 옷, 새 옷을 입은 대통령.
뭔가 모를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의 경우는 이것을 잘 활용한 경우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입은 의상을 이례적으로 스스로 시시콜콜하게 기재해서 발표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은 50만원대의 ‘조나스&시에’라는 슈트 맞춤 브랜드였고, 영부인은 루이 비통
투피스를 입었으나 빌려서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서민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은
고액 연봉자로 직장 생활을 했던 마크롱의 부자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마크롱의
라이벌이던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1600만원 상당의 슈트 두 벌을 선물받아 대중의 분노를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철저한 전략이다.

패션은 전략이고 산업이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돈을 모아서 1년에 한 벌 구입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수입 브랜드를 입은 경험을 통해 루이 비통처럼 대대손손 물려받아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이다.

나이키를 신고 수입 브랜드 입은 공인을 욕하거나
100만원짜리 아이폰을 쓰면서 50만원짜리 티셔츠에 어처구니없어하는 우는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패션관이 ‘득’이 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