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프리폴 컬렉션 ‘The Wild Bunch’는 어떤 이야기에서 출발했는가.
이번 컬렉션은 1950년대 고전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베니스 비치를 무대로 활동하는 악명 높은 갱단 ‘더 더들리 더즌스The Dudley Dozens’, 이들은 한때 용병이자 행동대원이었지만 이제는 무정부주의자로 변모한 인물들이다. 영화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배신당한 이들이 캘리포니아 전역을 휘젓고 다니며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비치는 나의 고향이자 지금까지 선보인 모든 컬렉션에 영감을 준 장소다. 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인 만큼, 베니스 비치는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과 이야기가 섞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컬렉션에는 바로 그 다양한 감성과 다채로운 에너지를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 컬렉션에 ‘불완전함’을 담았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가.
이번 컬렉션은 나 자신은 물론 영화 속 주요 캐릭터들이 가진 내면의 불안과 분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많은 의상이 뒤집혀 있거나 잘못 봉제되어 있고, 조각조각 이어 붙어 있기도 하며, 얼룩지고 더럽기까지,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느낌이다. 모델 캐스팅과 사진 역시 이런 서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평소엔 아주 정밀하고 계획적인 방식으로 작업하지만 이번엔 그 정교함을 일부러 내려놓고, 영화 속 캐릭터와 옷이 지닌 혼돈과 날것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이번 컬렉션 룩 전부를 캘리포니아에서 제작했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진정성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매일 그 대상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옷을 제작할 때 스케치만 전달하고, 몇 달 뒤 완성된 결과물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내 영혼이나 창작에 대한 열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번 컬렉션의 모든 의상은 내 영혼의 일부와도 같기에, 정원을 가꾸듯 매일 세심하게 다듬고 손길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생활하며 느끼는 에너지가 깃든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번 컬렉션은 사진가 피터 베를린 Peter Berlin과의 협업이 눈에 띈다. 그의 작업과 ERL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평소 다른 아티스트와 잘 협업하지 않는 편인데, 피터 베를린의 전시를 본 뒤에는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다행히 그가 ERL과의 협업에 흥미를 느껴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 피터는 단순한 사진작가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진짜 이야기꾼이다. 그는 단순히 옷을 사진 찍는 것을 넘어 그 옷을 존재하게 만드는 인물과 세계를 함께 창조하며 작업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나 역시 컬렉션을 만들 때 늘 강렬한 서사에서 출발하는 만큼 그의 작업 방식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또 피터는 밤새 혼자 몰두해 작업하며 자기만의 상상 속 세계를 구축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나와 굉장히 닮아 있다.


이번 컬렉션은 어떤 점에서 이전과 차별화되는가.
이번 컬렉션에서는 질서나 균형보다는 ‘혼돈’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과감한 실험과 모험을 시도하고자 했다. 이전 컬렉션들은 비교적 과학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면, 이번에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이나 아이디어, 혹은 외면해 온 영감들을 마음껏 분출하듯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업은 나에게도 새로운 해방이자, ERL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text LEE SEUNGYEON(SIEN)
art YANG HYEIN(ING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