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골드 리프 모티브의 폴리폴리아주 슬링백 펌프스와 크리스털을 세팅한 브이 로고 펄 링은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토마토 줄기를 형상화한 카프스킨 참은 로에베(Loewe). 


메탈 트리옹프가 돋보이는 그로그랭 뮬은 셀린느(Celine). 


물을 닮은 컬러의 라미네이티드 카프스킨 펌프스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투명한 웨지힐이 돋보이는 레더 뮬은 구찌(Gucci).


골드 간치니 오너먼트를 장식한 슬링백 펌프스는 페라가모(Ferragamo).


스터드 디테일의 메탈릭 레더 뮬은 맥퀸(McQueen).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디젤(Diesel),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라반(Rabanne), 프라다(Prada), 스포트막스(Sportmax).

에디터 어시스턴트 시절, 가장 마주치기 싫은 골칫덩이를 꼽으라면 단연 야외 촬영 도중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였다. 에르메스와 샤넬 등 함부로 만지기도 어려운, 아기처럼 조심스레 대해야 하는 하이엔드 제품이 행여 비에 젖을까 철통 보호하던 노력을 회상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닐과 타월로 감싸고 우산을 씌우며 ‘젖지 않게’ 온 힘을 다하던 나날. 이 한 몸 다 젖으리. 그 시절의 나는 물을, 특히 고가의 가죽에 맺힌 물기를 재난처럼 여겼다. 

‘물’과 ‘럭셔리’, 두 단어가 나란히 놓이는 모습은 어딘가 불안했다. 젖는다는 건 곧 손상이자 흠을 의미하니까. 그래서일까. 이 조합에서 느껴지는 금기 같은 긴장감은 묘한 마성을 띤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놀랍게도 다수의 2025년 봄/여름 컬렉션은 내 편협한 관점을 깨뜨렸다. 촉촉한 감각을 정면으로 끌어안으며 패션의 언어로 승화했다. 이번 시즌, 런웨이 위에서 이 물성을 가장 잘 표현한 아이템은 글로시한 뾰족구두. 표면에 반짝이는 조명을 반사하며 물살을 가르듯 걸어 나오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시선이 이끌렸다. 촉촉한 공기가 감도는 밤거리를 닮은 쇼장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생로랑의 스틸레토 힐은 ‘웨트 럭셔리wet luxury’라는 개념의 완결이었다. 저 힐을 신으면 왠지 사연 있는 여자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물기를 연상시키는 요인에는 소재가 이끄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프라다와 보테가 베네타의 메탈릭 슈즈는 그 위에 물방울을 똑 떨어뜨리고 싶은 불경한 충동을 자극한다. 스포트막스의 슈즈에 장착된 투명한 웨지는 얼음처럼 맑고 단단했고, 디젤의 PVC 힐은 곧 다가올 장마철에도 끄떡없겠다는 인상을 남겼다. 라반의 펌프스를 보자 저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투명한 아크릴로 한 겹 감싼 실루엣이 촬영장에서 혹여 슈즈가 젖을까 비닐로 꽁꽁 싸매던 기억을 상기시켜서. 감정의 끝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굽과 물빛처럼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스며드는 불온한 시선. 하우스들은 젖지 말라는 경고 대신 더 깊이 들어가 보라고 부추긴다. 건조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광택은 감정의 반사이고, 습기는 균열이며, 그 균열 사이로 흘러나오는 건 무너짐이 아닌 여유다. 멋들어진 슈즈를 신고 감히 물속에 들어서는 용기처럼 걷고, 젖고, 흘리고, 끝내는 그대로 빛나는 것. 

 

fashion & text PARK YEONJE(YEON)
photography YEON GWONMO(MOGAN)
art KIM JIWON(JUNO)

 

Discover more in KOREA JULY 2025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