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빗길을 뚫으며 지하철 3호선과 경주하는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 사실은 앞뒤로 차가 꽉 막혀 시속 20km/h도 채 되지 않았다.



앞코가 길게 튀어나온 롱 노즈 실루엣. 엔진은 길게 뻗은 보닛 아래 숨어 있다.


코가 긴 대신 꼬리는 짧다.


프런트 그릴과 헤드램프는 날렵한 상어를 떠올리게 한다. 잠깐 통화하고 온 사이, 배경지는 비에 젖어 찢어져 있었다.

도로에 들어서면서 줄곧 휘파람을 불었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는 멜로디였는데, 제목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띄엄띄엄 달리는 차를 바라보며 어떻게든 곡명을 생각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슬한 경계에서 지는 것은 대체로 나 자신이다. 브레이크 패드를 밟고 스티어링 휠에 달린 빨간 엔진 버튼을 눌러 시동을 끈다. ‘눈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 휠에Eyes on the road, hands on the wheel’라는 페라리의 철학과 반대로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와 나는 멈춰 있다. 눈을 감고 포도나무가 빼곡히 포개진 이탈리아 구릉을 달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포도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라디오를 켠다. 귀에 익숙한 로고송과 함께 DJ의 나긋한 멘트가 시작된다.
“5월의 화창함에 때때로 그늘이 지기도 하죠. 하필이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네요. 비가 추적이는 오후를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도 저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기분이길 바라며 첫 번째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 닉네임 ‘날아라 붉은 돼지’님의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돼지도 꽤 빨리 달린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최고속도가 자그마치 시속 50km/h에 육박합니다. 우사인 볼트의 세계신기록이 약 38km/h라고 하죠. ‘돼지 vs 우사인 볼트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면 어느 쪽에 베팅하시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돼지 편에 서겠습니다.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지난날Bygone days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작년 이맘때, 저는 이탈리아로 로드 트립을 떠났습니다. 피렌체 남부에서 로마까지 가는 코스를 함께한 차량은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였습니다. 트레비 분수에 쏟아져 일렁이는 물의 형색을 띤 모델이었죠. 처음 시동을 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레이싱 머신을 연상시키는 스티어링 휠의 엔진 버튼을 누르자 V8 터보엔진이 점화하는 소리가 심장을 ‘쿵’ 하고 울렸습니다. ‘지난 20년간 최고 엔진Best Engine of the Last 20 Years’에 선정된 V8 터보엔진은 단 1,900rpm에서 토크의 80% 퍼포먼스를 보인다고 합니다. 낮은 rpm에서 강한 토크가 나온다는 것은 평화로운 여행길에 편하지만 강력하고 빠른 운전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죠. 앞발을 번쩍 든 페라리의 기세 좋은 말처럼 평탄한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토스카나 언덕이 익숙해질 즈음 소프트톱을 열었습니다.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시간은 단 13.5초면 충분했습니다. Z 형상으로 접히며 도로를 달리는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를 봤다면 영화 속 한 장면 같지 않았을까요? 토스카나의 햇살로 채워지는 페라리 GT카. 한 가지 의미를 더하자면 로마 스파이더는 1969년 이후 5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소프트톱 모델이기도 합니다. 페라리 365 GTS4를 연상시키는,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귀환이죠. 그만큼 기술도 진보했습니다. 뒷좌석의 윈드 디플렉터를 작동하면 차량 내부로 들어오는 바람을 뒤쪽으로 회전시켜 쾌적한 운전 환경을 보장해 주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람으로 헝클어질 뻔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기분이랄까요.
스티어링 휠 뒤편의 패들시프트로 기어를 바꾸는 순간, 8단 듀얼 클러치가 기민하게 반응하며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매끄럽게 기어 단수와 엔진 회전수에 맞춰 반응했습니다. 섬세하게 그리고 날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은 정말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영국에 <007>의 제임스 본드가 있고, 미국에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가 있다면 이탈리아 토스카나 SR222 국도엔 페라리 로마 스파이더와 함께 붉은 돼지인 제가 있었습니다. 도로는 마치 좋은 음이 나는 피아노 건반처럼 오르락내리락했고, 로마 스파이더는 그 위를 각양각색의 한 음표처럼 리드미컬하게 연주하듯 달렸습니다.
SP60 국도로 들어서 아스키아노Aschiano라는 아주 작은 마을을 순식간에 통과하자 사이프러스나무가 가지런히 늘어선 지그재그 길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눈에 담은 광경을 말로 다 담지 못하는 사실이 비통합니다. 이런 풍경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곳을 제가 달리고 있다니요. 로마 스파이더는 부드럽게 몸을 낮추고 앞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긴장감보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춤추는 듯한 감각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했습니다. ‘La Nuova Dolce Vita!’ 로마 스파이더의 콘셉트 문구 그대로였습니다. 아! 달콤한 인생이여.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의 토스카나를 상상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로마를 향해 힘차게 달렸습니다. 로마라는 도시는 페라리에, 이탈리아인에게 이런 존재구나. 그러나 그 환상은 로마에 도착하는 순간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스쿠터, 신호를 무시한 채 돌진하는 자동차, 난발하는 경적. 혼잡과 무질서로 아득했지만, 로마 스파이더를 탄 제게 무심한 손짓과 윙크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페라리, 그것도 로마를 탄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어이 친구, 좋은 하루 되게나Amico, Buona giornata’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거든요. 이 붉은 돼지는 지금도 여전히 로마 스파이더의 떨림과 이탈리아 구릉을 잊지 못합니다. 영화 속 대사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네, ‘날아라 붉은 돼지’ 님의 이야기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있죠. 잠시 광고와 노래 한 곡 듣고 오겠습니다. <붉은 돼지>의 수록곡 ‘지난날Bygone Days’입니다.”

“♩♩···♪♩···♬♪~”

“아아! 제가 한 가지 깜박한 것이 있네요. ‘날아라 붉은 돼지’님께는 사은품으로 요즘 가장 핫한 성수동 연무장길에 새롭게 오픈한 멀티숍 모스MOTH 50만 원 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 이름이 왜 모스(나방)냐고요? 나방이 나비보다 못 한 게 있나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빛을 향해 몸을 던지는 불나방. 자신만의 가장 매력적인 향으로 처절하게 유혹하는 나방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있을까요? 주소는 성동구 연무장길7···.”

Text 타쿠(Taku, 강승엽) 
Photography Kim Jiyoung
Art 던(Dawn, 위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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