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푸투라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작가 안소니 맥콜


공기 중 부유하는 먼지와 헤이즈 현상이 어우러져 조각처럼 진화하는 빛의 형태


아이디어 스케치, 스토리보드, 전시 스틸 컷 등 작가의 주요 문헌을 전시한 아카이브 룸

안소니 맥콜은 영화를 퍼포먼스로 만든 첫 번째 작가다. 그는 이 위대한 시도를 이미 1970년에 완성했다. 다만 이를 실제 구현할 기술을 20년간 기다렸다. 그가 ‘21세기에 먼저 도착한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유다. 안소니 맥콜이 기다린 20년, 그리고 50년의 작업 여정을 이야기한다.

처음 만든 솔리드 라이트 필름은 무엇인가요.
‘원뿔을 묘사하는 선Line Describing a Cone’. 1973년에 만든 첫 번째 솔리드 라이트 필름이에요. 이 작업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영화가 어떤 대상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죠. 이 작품은 순수한 빛의 투사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관객에게는 스크린을 등지고 빛을 쏘는 프로젝터 쪽을 바라봐 달라고 요청했고요. 스크린에는 2차원 화면, 그러니까 선이 점점 원형을 그리는 단순한 이미지가 보이지만, 그 반대에는 전혀 다른 형태가 펼쳐지기 때문이죠. 3차원 공간에서는 관객이 점차 구체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빛의 곡면, 궁극적으로 원뿔 형태로 완성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돼요. ‘영화를 퍼포먼스로 만드는 방법.’

그렇지만 당시에는 솔리드 라이트를 온전히 구현할 기술이 없었다고요.
맞아요. 당시 제가 작품을 만들고 상영한 곳은 뉴욕의 낡은 창고였어요. 그곳은 공기 중에 먼지가 많았고, 관객들은 늘 담배를 피워 연기가 가득했죠. 작품이 나타내는 빛의 궤적이 잘 드러나는 환경이죠. 하지만 스웨덴의 말뫼 쿤스트할레에 상영 초청을 받았을 때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그 미술관은 신축 건물이었거든요. 철재와 유리, 매끄러운 목재 바닥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실내 흡연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요. 그 결과 프로젝터의 빛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 ‘공기 중의 먼지와 연기’야말로 이 작업에서 보이지 않는 동반자였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죠.

그에 실망해 직종을 바꿨다고 들었어요. 그 무렵 당연히 많은 고민을 했을 테고요.
작품을 구현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어요. 1970년대에는 제 작업처럼 비물질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을 환영하지 않는 시기였거든요. 중요한 아방가르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은 있었지만, 수입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요. 다행히 저는 미술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사진, 그래픽디자인,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그 기술을 바탕으로 예술 출판물을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도 작지 않은 성공을 거뒀죠?
그래픽디자인을 시작하고 작업을 점차 확장할 수 있었어요. 다섯 명으로 이뤄진 팀이 함께하는 스튜디오로 성장했으니까요. 갤러리와 미술관을 위한 작업을 하면서 매년 수십 권의 아트 북을 제작했어요. 대상은 다양했고요. 로이 릭턴스타인, 지그마어 폴케, 바버라 크루거, 프랑시스 피카비아, 장미셸 바스키아,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로버트 라이먼 등이요. 특히 제 스튜디오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과 관련한 대부분의 책과 전시 도록을 맡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동안에도 빛을 이용한, 또는 지금의 작업에 대한열망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일은 마감 중심의 풀타임 업무였어요. 점점 저 자신이 두 가지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를 ‘영화 작가’ 안소니 맥콜로 아는 사람은 디자이너로서의 저를 모르고, 반대로 디자인 업무를 통해 만난 사람은 안소니 맥콜이라는 영화감독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삶은 생각보다 괴로웠어요. 결국 두 정체성을 오롯이 병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한동안은 디자인에만 집중했어요.

그렇게 지내다 1990년대 공기 중에 안개 효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헤이즈 머신’을 발견했다고요. 다시 예술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그과정은 어땠어요?
맞아요. 1990년대 중반쯤 두 명의 독일 예술학도가 제 스튜디오를 찾아오면서 헤이즈 머신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그들은 쾰른에서 브리기트 하인Birgit Hein 감독에게 제 영화를 배웠고, ‘원뿔을 묘사하는 선’을 상영하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죠. 저는 흔쾌히 허락했고, 그들은 상영을 위해 헤이즈 머신을 가져왔어요.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가 공간을 채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거예요. 다시 빛을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 깊이 자리 잡았죠.

20년이 지나도 솔리드 라이트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나요.
네, 그리고 1990년대는 거의 모든 갤러리와 미술관이 비디오아트를 활발히 전시했거든요. 16mm 필름 작업을 해오던 저로서는 비디오 매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죠. 마침 그 무렵 우연히 여러 큐레이터가 1970년대 제 작업에 관심을 보였어요. 자연스레 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늘어갔고요. 그때부터 드로잉을 시작하고 영화 작업을 천천히 재개했죠. 이후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어요. 결국 저는 그래픽디자인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예술가로 돌아가 다시 작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새로운 솔리드 라이트 필름을 완성했어요.

전시하고 있는 작품 ‘불의 풍경Landscape for Fire’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이 작품이 단순히 솔리드 라이트를 만들게 한 계기라고 설명하기에는 아주 멋진 퍼포먼스처럼 보였거든요. 불을 지피는 방식, 순서도 아주 복잡하고요.

1972년 젊은 예술가였던 저는 퍼포먼스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제가 가장 확장된 형태로 진행한 것이 불 퍼포먼스 작업이죠. 이 퍼포먼스는 야외에 불꽃을 격자 구조로 패턴을 만들어요. 각 지점을 정해진 순서대로 점화하면서 격자 안에서 불꽃의 구성 패턴이 끊임없이 변화하죠. 작업은 아주 철저히 계획했고, 그걸 기록하는 매체로 ‘필름’을 선택했어요. 그렇게 제 첫 번째 영화 작업인 ‘불의 풍경’이 탄생했고요. 그리고 알다시피 이 작업을 보고 나서 영화와 퍼포먼스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어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영화가 아닌, 영화 자체가 퍼포먼스가 되는 길에 대해서요.

소리의 이동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 ‘트래블링 웨이브Traveling Wave’는 보이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감각하도록 만들어요. 이렇게 소리의 형태를 모든 감각으로 체험한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트래블링 웨이브’는 ‘보이지 않는 조각’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화이트 노이즈로 구성된 사운드 웨이브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전시장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죠. 제가 매료된 지점은 ‘보이지 않는 파동’이 지나가고 다가올 때, 우리 몸과 귀가 그것의 공간적 이동을 감각적으로 인지한다는 점이에요. 관객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 안에서는 두 종류의 움직임을 동시에 마주하게 돼요. 하나는 자신의 몸이 이동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변화, 또 하나는 작품 안에서 자율적으로 발생하는 움직임. 그 움직임이 계속 겹치며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죠.

‘서큘레이션 피겨스Circulation Figures’는 여러 사람을 초대해 각자 자신의 존재를 촬영하게 했어요. 이 점은 솔리드 라이트와 비슷하죠. 카메라 뒤에서 자신을 찍게 한다는 것이요.
‘서큘레이션 피겨스’를 위해 피사체 없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16명의 사진가와 영화 제작자를 초대했어요. 이들에게 준비한 공간은 ‘두 개의 거울로 구성된 구조’, 그리고 ‘찢어진 신문지가 흩뿌려진 무대’였죠. 여기서 그들에게 스스로를 촬영하라고 요청했는데요, 이 설정은 늘 수행하던 보이지 않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단절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카메라 뒤에 숨은 존재가 아닌, 이미지의 대상이자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자가 된 것이죠.

당신이 만든 수평 구조의 솔리드 라이트는 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푸투라 서울에 수직 구조로 설치된 솔리드 라이트 작품 ‘스카이라이트Skylight’와 아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수평과 수직의 차이지만 수평은 영화 이미지를, 수직은 건축 이미지를 강하게 띨 것 같거든요.
맞아요. 수직과 수평 구조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죠. 스크린과 프로젝터 사이의 거리가 10m로 동일하다고 해도 공간적으로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니까요. 수직 구조는 조각적이고 ‘서 있는 형태standing figure’를 연상시켜요. 원뿔 형태의 표면에 구멍은 마치 그 형태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처럼 느껴지고요. 반면 초기의 수평 구조는 여전히 전통적인 수평형 영화 투영법을 유지하고 있죠. 솔리드 라이트가 수평 구조에서 수직 구조로 바뀔 수 있던 것도 기술 발전 덕이에요. 1990년대 후반 16mm 필름 프로젝터에서 디지털 프로젝터로 전환되면서 수직 방향 설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해졌거든요. 16mm 필름 프로젝터는 필름 릴이 옆으로 놓이면 떨어지기 쉬운 구조였지만, 디지털 프로젝터는 형태상 천장에 설치하기 용이하기 때문이에요.

솔리드 라이트는 조각과 영화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음, 조각과 영화 중 하나를 택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조각이자 영화라고 보는 게 맞겠죠. 두 속성을 모두 갖고 있어야 하니까요. 이 작업은 관객이 3차원 공간 안에서 움직이며 형태를 들여다보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감상한다는 점에서 조각이고요. 동시에 관객의 움직임이나 필름 자체의 흐름이 시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이기도 해요.

Text 바론(Baron, 윤승현)
Photography 모건(Mogan, 연권모)
Art 주노(Juno,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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