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Ji Woong Choi
Fashion Yu Ra Oh
Photography Jong Ha Park

자연스런 구김을 연출한 테일러드 재킷은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기본에 충실한 까만 니트 풀오버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어디서 오셨나요?
뉴욕요. 이틀 전에 서울에 왔어요.
뉴욕을 기반으로 도쿄를 오가며 생활한다고 들었어요. 닮은 듯 전혀 다른 도시가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은 꼭 도쿄에 가는데요, 일본에 있는 아이들과 손주 녀석을 보기 위해서죠.
머무는 도시가 작업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감을 주기 도 하나요? 호르몬 변화도 있을 것 같고요.
글쎄요. 호르몬 변화까지 감지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머무는 장소에 따라 영감과 자극을 받는 건 사실이죠. 뉴욕은 지금 제가 사는 집이 있고, 가장 편안한 도시이긴 해요. 저는 주로 집에서만 작업하는 편 이지만 이렇게 한 번씩 서울이나 베를린 같은 다른 도시에 머물면 분명 작업에 도움이 돼요. 현지 사람들을 통해 환기가 되니까요.
지난 40여 년의 활동 기간을 망라하는 대규모 전시 의 장소로 서울을 택한 이유가 뭐죠?
내가 서울을 택한 게 아니라 서울이 나를 선택해준 거 죠.(웃음) 4층 건물 전부를 사용하는 큰 전시예요. 저는 처음에 피크닉이라는 공간이 흥미로웠어요. 그게 좋았어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멋진 공간이더군요.
서울의 구도심이죠. 전시장 바로 옆에는 남대문시장이 있고요.
어제 남대문시장에서 평양냉면을 먹었어요. 아주 맛있더라고요.(웃음) 강남 같은 곳에서 전시했다면 지금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예요. 피크닉은 오래된 동네에 새로 생긴 아트 스페이스잖아요. 그게 여러 힘과 의미가 있죠. 남대문시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어릴 적 내가 살던 도쿄 같기도 하고, 오사카의 오래된 거리 같기도 하고요.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의 펑키함도 느껴졌어요. 아주머니들의 에너지도 멋지고요.
매끈한 도심보다 낡고 오래된 동네를 좋아하시나보군요.
네, 맞아요. 도쿄든 뉴욕이든 서울이든 잘 발달한 도시잖아요. 그 자체로도 멋스럽지만 차가운 인상이 들죠. 남대문시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잖아요.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잘 간직한 곳이니까 그대로 지켜나 가길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부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Apichatpong Weerasethakul)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동시대 미술가의 작품을 선보이죠. 동시에 선생은 이번에도 물의 이미지가 강한 작품을 작업하셨고요.
우리에게 물은 참 중요하고 소중하죠.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단순히 그런 이유로 물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요, 저는 물의 형태에 관심이 많아요. 얼음이 되기도 하고, 구름이나 수증기가 되거나, 눈이 되기도 하죠.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물의 모양에 흥미를 느껴요. 온종일 안개만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죠. 구름도 마찬가 지고요. 지난 20여 년 동안 쭉 구름 같은, 안개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류이치 사카모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 첫 장면이 생각나네요. 대지진이 휩쓸고 간 물속에서 건진 피아노 한 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계셨어요.
지진,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일매일 생각해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일이니까요. 그 피아노를 만나기 전과 후 내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그래서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내게 그 피아노는 대지진과 같은 존재거든요.
그 장면에서 좀 울컥했어요. 마치 피아노는 시체 같았고, 선생은 그 피아노를 정성껏 위로하고 있었으니까요.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피아노는 참 중요한 존재구나’ 짐작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가지고 놀거나 만지거나 연주했죠. 나의 맨 처음 기억 역시 피아노와 이어지니까요. 할아버지와 어머니도 피아노를 좋아하셨죠. 피아노는 내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진 피해로 망가진 피아노를 처음 봤을 때 마치 내 몸이 망가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슬프고 조심스러워서 피아노를 만지는 일조차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 말 너무 무겁네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울지 말아요.
많은 사람이 선생을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로 기억 하곤 하죠. 하지만 젊은 시절 예술과 현실을 고민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행동했고, YMO라는 밴드에서는 지금 들어도 여전 히 실험적인 음악을 만드셨어요.
YMO를 알고 있나요? 고맙네요.(웃음) 저는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재즈나 팝, 포크 같은 대중음악은 제 영역 밖이었죠. 그러다가 좋은 계기로 YMO에 합류하게 됐어요.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는 당시 그 분야에서 최고였으니까 믿음직했거든요.(웃음)
YMO로 활동하던 1980년대 초 도쿄는 어땠나요?
모든 것이 팽창하던 시기였죠. 여러 아시아 국가가 그랬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영역의 대중문화가 미국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걸 따라 하는 수준이었죠. 그러다가 일본산 자동차나 가전제품, 패션이 발달하면서 서양 문화를 흉내내기보다 우리만의 것을 해보자는 용기를 낸 시기였어요. YMO의 힘은 거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의 젊은 예술가 역시 예술과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때보다 많은 부분에서 훨 씬 어둡고 막막해 보입니다. 맞는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창작을 하기 어려운 시대예요. 작업자뿐 아니라 모든 개인이 너무 많은 정보를 바로 바로 습득하고 흡수하니까요. 소비는 빨라지고요. 빠르고 다양한 정보가 개인의 삶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작업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될 수 있어요. 저 역시 이번 앨범 를 만들 때 모든 외부 활동과 SNS 활동을 다 끊었어요. 몸과 마음과 머리를 다 비운 상태에서 작업했죠. 때로는요. 내 안에 아무 정보가 없게 하는 일이 중요한 거 같아요. 작업자에게는요.
기술과 정보의 발전이 어떤 면에서는 예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보시는군요?
우리는 경쟁과 소비가 지나치게 심화된 세상에 살고 있 으니까요. 어떤 창작자가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작업이 너무 쉽게 소비되어버리는 경향이 있죠. 소중하지 않게요. 그건 참 슬픈 일이거든요. 를 제작하면서 판매나 마케팅에 대한 계산은 아예 하지 않았어요. 단지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만 집중했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앨범이 될 수 있지만요, 때론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음악을 만드는 건 어떤가요? 작업자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이잖아요. 그 한계가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는지 궁금하네요. 영화음악은 매력적인 영역이에요. 그러니까 계속하는거 겠죠.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있어요. 그게 제게는 큰 자극이 돼요. 그리고 영화감독 중에 매력적인 사람이 참 많거든요.(웃음) 그 많은 사람을 리드하는 카리스마, 인품, 지식, 교양을 겸비한 감독이 많아요. 그들과 만나서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아요. 저는 주로 혼자 작업하니까요. 고독감을 많이 느끼거든요. 영화는 많은 사람이 함께하니까 고독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어요. 그게 좋아요.
영화를 향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선생에 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적부터 영화광이었어요.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했죠. 어릴 때는 SF나 전쟁 영화 같은 장르물을 좋아했고요.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화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영화를 매일 밤 자기 전에 한 편씩 보고 있어요. B급 영화도 좋아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도 좋아해요. 너무 두서 없는 리스트인가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감독이 있는데요, 돌아가신 로베르 브레송을 진심으로, 굉장히 좋아합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죠. 암 선고에 이어 죽음의 문 턱을 엿본 후 삶과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으셨나요?
우선 제게는 일본을 엄습한 대지진이라는 재해가 무척 큰 충격이었어요. 그 일이 있은 지 3년이 지나고 암이라는 병이 찾아왔어요. 물론 병을 계기로 의식 변화가 일어 난 건 맞지만, 그전부터 서서히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었죠. 지금은 젊으셔서 잘 모르겠지만 마흔 살이 지나면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여러 가지 의미로요. 저 도 그때부터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죠.나도 중요하지 만 이 세상의 모든 생물, 동물, 자연, 환경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됐어요. 죽음을 잘 준비해야죠.
바흐 좋아하시죠? 요즘은 바흐를 연주할 때 어떤 마 음이 드세요?
온통 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하죠.(웃음) 바흐를 연주할 땐 늘 숭고한 기분이 들어요. 어떤 다른 피아노곡을 연주해도 결국은 다시 바흐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고요. 바흐는 제가 여전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멀고도 위대한 존재예요.
바흐를 이야기할 때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이시네요.
아, 그런가요?(웃음) 어떤 얼굴인지 궁금하네요.
아이처럼, 황홀해 보였어요. 브레송의 영화 중 단 한 편만 고를 수 있으세요?
브레송을 알아요? 그러기엔 너무 젊어 보이는데, 기특하고 반갑네요.(웃음) 브레송의 영화 중 한 편만 고르는 건 너무 어려운데요. 음, 역시 죠. 굉장히 슬픈 영화니까요.






몸과 마음과 머리를 다 비운 상태에서 작업했죠. 때로는요. 내 안에 아무 정보가 없게 하는 일이 중요한 거 같아요. 작업자에게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