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zed Earthround

이야기에는 시간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하지만 꼭 이 순서일 필요는 없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와 미할 엔그레르트의 <우먼 오브>를 보고 지친 몸으로 극장을 나섰다. “삶이 괴로울 정도로 길더라.” 중극장을 나오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끝낼 수 있다면 진작 끝냈을 이야기였지만 도무지 그럴 줄 모르고 영화는 매일 삶이 반복되는 것처럼 길고 촘촘하게 이어졌다. 같은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 찾기’ 문제에 관해 자비에 돌란의 <로렌스 애니웨이>가 되레 쉽고 성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 영화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좋은 영화에 가까울지 생각하다 어째 부산에서 만난 이 영화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졌다. 카메라는 주인공 안제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두커니 둔다. 거기엔 환희도 감동도 기승전결도 없다. 그런 거리감에서 오는 삶의 적나라함을 목격했을 때, 다음 영화를 향해 뗀 발걸음이 알 수 없게 무거웠다. 한낮 정오의 영화제 한복판에서 괜히 심오해졌던 일.

영화제는 이미 개봉이 확정된 작품도 몇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이 다수다. 말인즉슨 여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요원한 영화가 있다는 얘기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앙겔라 샤넬렉의 <뮤직>은 시작한 지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에야 처음으로 음악이 등장한다. 나는 음악이 어서 들리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게 영화의 단서일 줄 알았고, 그렇게 영화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내 이 개인적인 기억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했다. 남은 러닝타임 60분 정도를 몽땅 보내고서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단단히 오해했구나 깨달았다. 괜한 시도였다. 이건 다 영화제 때문이었다.

10월마다 부산에서는 영화제가 열린다. 지난 4일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를 개막작으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을 알렸다. 서울서 그걸 바라보고 있을 때, 이미 부산에 간 이들의 기대와 실망과 만족이 뒤섞인 감상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그런 이유로 괜히 조바심이 났다. 예매하려는 영화마다 ‘매진’이라고 하는 매정한 안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도 이상하게 그랬다. 간다고 해서 모두 보는 것은 아닌 걸 알지만 그럼에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활기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지난 5월부터 모두가 갖고 있던 것이었다. 불통과 관료주의, 예산 삭감 같은 냉랭하고 건조한 말들이 오가는 와중에 열린 행사는 수많은 보도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붕 뜨거나 위축된 기색은 아니었다. 되레 차분한 긴장 같은 게 감도는 게 좋았다. 영화제에 온 모두가 각자 바빠 보였다. 영화제에서 할 일은 영화를 보는 것 하나뿐이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과 후의 마음이 어떻든 누구나 자신이 그 시간에 선택한 영화에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영화에 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분명 집 앞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1만5000원 내고 영화를 보는 마음가짐과는 다른 부류의 것일 테니까.

무수한, 반짝이는 영화들 가운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처음으로 선택한 건 순전히 그런 마음이었다. 만약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있다면 부산에서 먼저 본 후 이 영화에 뭐라도 보탬이 될 목소리를 얹고 싶다. 참여하고 싶고 발견하려 들고 싶다. 영화는 세 번에 걸쳐 미묘하게 다른 카메라 앵글과 구도를 통해 답이 아닌 질문 한 가지를 남기는데, 성숙하거나 이상적이기보단 그저 씩씩하고 아름다워 좋았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라는 두 가지 권리에 대해 그걸 마치 상충되는 개념처럼 여기는 오늘날,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 영화의 화법이 통하길 진실로 빌었다.

라두 주데의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확실하게 달랐다. 이 루마니아 태생의 감독은 상영에 앞서 애당초 ‘너무 루마니아적인’, ‘국지적인’ 영화임을 밝혔는데, 영화가 지닌 정치성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여러모로 솔직해 웃기고 재밌었다. 숨기거나 배배 꼬지 않으니 유쾌했다. 노동 착취에 관한 이야기라는 그의 영화는 거대 자본 혹은 노동법 운운하지 않고 다만 한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착취가 어떻게 발단하고 작용하는지에 관해 착취의 착취의 착취가 거듭되는 구조로 밑도 끝도 없이 끌고 나간다. 영화가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와 정치적인 것이 될 때, 인상 깊고 효율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의 이야기는 영화제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치적으로, 반짝반짝.

이 밖에 우연한 만남들. 이건 지극히 나의 사정과 사적인 것이 이룬, 꿰어낸 나만의 영화제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다’ 따위의 긴 제목을 아직까지 기억하게 하는 필립 가렐의 신작 <북두칠성>의 박자, 그리고 내재된 불안 같은 ‘신과 구’ 사이의 충돌은 예시카 하우스너의 <클럽 제로>로 이어져 보다 급진적이고 기괴해진다.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이 무색할 정도로 한 개인이 자기만의 세계,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이데올로기에 빠졌을 때 저 먼 방글라데시 출신 감독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의 <자서전 비슷한 것>은 영화 바깥의 관객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니콜라 필리베르의 다큐멘터리 <파리 아다망에서 만난 사람들>은 현실을 자주 잊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현실에 대해 보여준다. “대화 다음에 약이 아니야. 미치지 않으려고 약을 먹는 거야.” 한 정신 질환자가 말했다. 그런 말을 진짜 담는 것과 재현해 내는 것의 차이는? 빔 벤더스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안젤름>을 통해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안젤름 키퍼를 조명하기 직전 말했다. “사실 이건 영화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실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걱정은 마세요. 안 아파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막을 내렸다. 영화제는 보통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달랐다거나 의외였다거나, 그런 말로 언제나 평가가 갈린다. 그렇게 100명이 있다면 100명의 영화제가 있을 테다. 누군가 부산에 다녀온 내게 ‘말’을 불러오는 게 영화제의 숙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제의 진짜 숙명은, 그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 다다. 세상이 어떤 사정으로 눈을 돌리든 입을 다물든, 열려 있든 닫혀 있든 거기 있기만 한다면 영화제는 언제고 이해되거나 오해될 것이다. 어쩌면 영화제를 휘감고 있을 정체성의 정치란 늘 그런 식이니까.

무엇보다 영화제의 영화 안에 있었을 때, 혼자이면서 혼자이지 않아 좋았다. 이런 감각이라면 영화제에 더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겠구나, 부산에서 그런 마음을 홀로 먹었다.

 

Text Kwon Sohee
Art Ha Suim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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