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지난 며칠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꿈자리가 뒤숭숭한 건지, 아니면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지. 아무튼 달큼하게 잘 잤다. 그럼 족하다.
금요일 아침 8시 3분 신오사카역에서 도쿄로 출발하는 신칸센 노조미 214열 특실에는 승객이 여덟 명뿐이었다. 열차가 움직이
자 푸른 옷을 입은 승무원이 따끈한 물수건을 건넸다. 교토와 나고야를 차례로 지나며 터널을 반복해 통과했는데, 그때마다 산의 높이와 들판의 거리는 닿을 듯 또 멀리 달아났다. 때때로 눈발이 날렸고, 그보다 자주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차창에 기대 울어도 썩 괜찮게 예뻤을 텐데, 그거 아는데 참았다. 힘껏 참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없음 속에 있다. 있다는 것이 없다는 것과 겹쳐 있다. 말하자면 산송장이다. 아니면 완벽하게 살아 있나? 사태 속에 휘말리지 않은채 순수하게 증류되어 살아 있는 것 말이야.
어디서 읽었더라. 롤랑 바르트는 모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모든 새로운 것에서 악취를 맡는다. 그 악취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독해진다. 아마 그 냄새에 질식해 죽을 것이다. 악취 나는 사물의 냄새, 이미지의 냄새, 말의 냄새에 숨이 막힌다. 나를 떠난 이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슬프다. 내가 해가 된다면, 네 욕망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면 먼저 떠나겠노라 호언장담했고 쿨한 척 실천했으니 산뜻한 기분이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튼, 이별했고 며칠째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니다. 그럴 일이 없었기때문이다.
도쿄에는 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비 같기도 하다. 뭐든 그것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밤 오사카 목시 호텔 1층 바에서 늦도록 술을 마셨다. 처음엔 샐러드와 맥주로 간단히 요기나 하고 일찍 잠들심산이었지만 크루라 불리는 직원들과 말을 텄고, 싸구려 샴페인을 나눠 마셨다. 덕분에 아직 술이 깨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니다. 어제 만난 크루 중 미에라는 이름의 여성은 재일교포 3세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던가, 빅뱅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그는 종종 눈물을 훔쳤다. 슬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자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도쿄에 묵을 곳이 없다는 내 말에 미에는 얼마 전 새로 생긴 긴시초역 주변의 목시 호텔을 주선해줬다. 담배에찌든 내 가득한 닭장 같은 비즈니스호텔에서 한껏 웅크리고 지내는 것보다 최악일 리 없을 테니 기꺼이 응했다. 게다가 오늘 밤에는 목시 호텔에서 오프닝 파티가 열린다. 6만 원어치 택시비를 치르고 내린 목시 호텔에는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하는 프런트 데스크가 없다. 대신 바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체크인하는 몇 분 동안 순식간에 모히토 한 잔을 들이켰다. 속이 뜨끈하게 달아올랐고 그다음 일은 기억나지 않는
다. 916호 더블 침대에서 깊고 순한 잠에 빠졌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한밤중이다. 지난 며칠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꿈자리가 뒤숭숭한 건지, 아니면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지. 아무튼 달큼하게 잘 잤다. 그럼 족하다.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술을 많이 마셨다. 성공적인 파티의 척도는 공짜 술이 모자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렸으니, 그 부분에서 보자면 도쿄 목시 호텔의 오프닝 파티는 썩 괜찮았다. 모두 기분 좋게 취 한 것처럼 보였다. 핑크색 네온 조명이 공간 전체에 퍼져 있어서 얼굴이 붉어지는 일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족히 190cm는 돼 보이는 여장 남자는 엉덩이를 이렇게 저렇게 흔들면서 이곳저곳 쏘다니며 참견했다. 그에게서 짙은 장미 향이 났다. 이태원 클럽 트랜스에 순자라는 이름의 쇼걸이 있었다. 나는 그를 오래 사랑했다. 순자는 어느 날 죽어버렸는데,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건 세 계절이 지난 뒤였다.
앳된 소년 여럿이 서성이며 어색하게 캔맥주를 홀짝였다.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열일곱 살 먹은 소년 타페이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피차 짧은 영어와 일본어가 혼재된 대화 속에서, 나는 그 애의 맑은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내 그 아이가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너는 창창하게 어리구나. 그래서 깨끗하구나. 아름답구나. 그런데 머지않아 너도 곧 망할 거야. 서울이든 도쿄든 리한나와 레이디 가가는 세트로 묶여 아주 늘어지도록 흘렀다. 갈 사람은 가고
제일 쓸쓸한 몇만 공터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 선심 쓰듯 돌린 돔 페리뇽 몇 모금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 녹화된 스모 경기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나른한 기운이 들어 잠시 눈을 감았다. 깜빡 졸았다고 해야할까, 시간은 아침 6시 7분.
인적이 드문 새벽의 유흥가를 터덜거리며 걸었다. 지척에 솟은 스카이트리는 작은 골목에 복잡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과 맥주를 샀다. 맥주는 그 자리에서 홀짝였고 담배는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긴시초역 부근까지 걷다가 다시 목시 호텔 916호로 돌아왔다. 양치하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견디기 어려운 졸음이 밀려온다.
얻은 것은 갈라진 목소리와 버석대는 갈증뿐이다. 그런데도 제정신이 돌아올 즈음 다시 술을 마신다. 아무래도 쉽게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은 불안 탓이다. 잠은 ‘그로기’여야 한다는 습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잠 속으로 때려눕혀야 한다는 강박은 악몽을 선물해준다. 그러나 악몽이라도 가끔 꿈을 기억하는 것이 낫다. 도쿄 긴시초역 목시 호텔에서의 하룻밤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