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시대가 도래했다. 적어도 며칠 전부터, 내 소셜미디어 피드에 따르면 말이다. 오픈AI가 새 모델인 GPT-6 아스트라(Astra)를 출시하자 그 ‘인간 수준’ 성능에 감탄하는 각종 분석글이 내 피드를 점령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바깥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고, 사실 AGI가 정확히 뭔지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한다. 자신을 콘셉트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영상 속 남자가 자기 직업이 몇 년 내로 사라질 것이라며 자조한다. 이 상황이 슬픈 건지, 우스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피로감에 스크롤을 내리면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우사인 볼트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육상 트랙 위를 달리고, K-팝에 맞춰 칼군무를 추고 있고, 댓글 창엔 “지금이야 재밌지. 이제 곧 우리 차례다” 하는 무기력한 댓글들이 보인다. 이 와중에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인재’류의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잘 팔리나 보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지며 사람들의 무의식에 불길한 암초처럼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대체’.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
우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매일 스스로의 쓸모없어짐을 새로이 발명해 내는 세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총합을 파이 한 판으로 상상해 보자. 매일 자고 일어나면 그 파이의 양은 쥐가 파먹은 것처럼 조금씩 줄어들어 있고, 우린 그 나머지로 정의 내려진다. 자고 일어나면 바둑이, 그래픽디자인이, 심리상담이 사라져있다. 정해진 미래 앞 유예기간이 된 현재를 사는 듯 “우린 이제 끝났어” 같은 농담을 던지고, ‘AI가 ~를 대체’ 같은 표현이 관용어가 되어간다. EU AI Act나 한국 AI 기본법 같은 제도적 논의가 규정하듯 책임은 기술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기업에 있는데, 왜 의지를 가질 수도 없는 AI가 언제나 주어 자리에 있는 걸까? 사실 주어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AI의 미래를 선도하는 일부 ‘비저너리’라는 사람들은 ‘대체’라는 단어를 남 일처럼 참 쉽게 말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우리가 비로소 ‘가치 있는 일’ 또는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약속하며.
생각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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